두 완전무장한 기병이 사자 사냥에 나서고 있으며, 아마도 아나톨리아나 북부 시리아가 무대일 것이다. 이것은 트로예스 대성당의 상아 상자에서 발견되었으며 11세기의 것으로 보인다. 스케일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입고 있는 코르슬릿은 러멜러라 추측할 수 있다. 등자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 미술적인 관점에서 생략된 게 이유인듯 하며, 다른 자료에서는 나타난다.
비잔티움 군인의 급여는 일반적으로 높았다. 자료에 따르면 테마의 부대(지방군)원은 월급이 1 혹은 1.5 노미스마(1/72파운드 금화)였으며, 연봉으로 계산하면 12~18 노미스마를 받았다.(파운드로 따지면 1/6-1/4파운드)
테마 소속병들은 추가로 땅도 지급받았고, 947년 콘스탄티누스 7세의 포고령에 따르면 금 2파운드(144노미스마)이상의 가치가 있는 땅이 제국 수군(그리고 아마도 보병에도)에게 지급되었고 4파운드(288노미스마)의 가치가 있는 땅은 테마 소속의 해군과 기병에게 지급되었으며, 10세기 말에 이르면 기병에게 주어진 둔전의 가치는 864 노미스마에 이르렀다.
그러나 9세기의 아랍 역사가에 따르면 테마 군사들은 오직 3년에 한 번씩, 어떤 경우는 4, 5 심하면 6년에 한 번씩 급료를 받았다고도 한다. 콘스탄티누스 7세는 테마병들이 네 개로 나뉘어 4년에 한 번씩 번갈아 급료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것이 “오래된 관습”이라고 언급하며, 군인이 실제론 언제 급료를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는 테마병들이 3~6년마다 한 번씩 근무하는 반면 정예병들은 상비군이었음을 의미한다. 또는, 보조금의 경우 훈련이나 소집 시기에 지급되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병사들은 작전행동에 나섰을 때 보조금을 받았고, 특별 상여금이나 전투의 전리품 분배, 상이병이 받는 지원금, 전사한 군인의 과부가 받는 보상금도 있었다.(9세기의 경우는 금 5파운드였다.)
레오 6세의 치세에 장교들이 받은 연봉은 다음과 같다. 데카코스는 금 1파운드(72 노미스마), 펜테콘타키스는 144 노미스마, 반돈의 지휘관인 코미스는 216 노미스마, 5등급인 스트라티고스는 360 노미스마, 4등급 스트라티고스(키비레오톤, 에게온, 사모스 테마 등의 수군 지휘관)는 720 노미스마(10파운드), 3등급 스트라티고스는 1440 노미스마(20파운드), 2등급 스트라티고스는 2160 노미스마(30파운드), 최고위 스트라티고스는 2880 노미스마(40파운드)를 받았다.
에카톤다키스, 미라코스, 투르마키스가 받은 급여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아마 그들이 보좌하는 장군의 급료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서방의 테마는 동방에 비해서는 급여가 좀 적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지방에서 걷힌 세금은 먼저 이들에게 지급되었고 제국 국고로 바로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장비
뒷장의 컬러 삽화에 보이는 장비는 실제로는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남아있는 그림 자료는 그걸 더더욱 믿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갖췄던 장비의 질이 매우 뛰어났음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여기에 대해선 동부 테마에서 다양한 군사적 보직을 역임했던 케카프메노스가 그의 1,070년경의 저서 스트라테기콘에서 보이는 기민한 관찰을 언급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당신의 기병은 좋은 말을 타고 아주 좋은 무장을 갖추었으며 안장끈과 부츠는 딱 맞다. 만약 그가 용감하다면, 당신은 좋은 말을 타고 깔끔한 제복과 양질의 무기가 그의 용기를 두 배로, 또는-만약 그가 겁쟁이라면-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만약 그의 무기가 형편없다면, 안장이 너무 크고 신발이 안 맞거나, 말이 좋을 게 하나도 없다거나 한다면,
그가 아무리 뛰어난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하면 살갗을 무사히 보존할지 생각하면서, 기회가 되는 대로 달아나는 것뿐일 것이다.’
갑옷
운 좋게도, 우리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병법서와 보고서, 동시대의 많은 그림 자료에 따라 그들의 무기와 갑옷에 아주 세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시기에 주요한 갑옷 형태는 메일, 스케일, 러멜러 이 셋이며, 이 중 러멜러가 가장 비중이 컸다.
러멜러 아머는 작고 기본이 되는 직사각형의 철판(길고 가는 것이나 혹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것도 있다.)을 가죽끈으로 구멍을 통해 가로로 엮어 각각을 위쪽으로 덮는다.(스케일은 아래로 덮는다.) 러멜러는 대부분 철제였으나 가죽이나 각재-Horn-도 있었다.
비잔틴 군대 갑옷의 가장 특징적인 클리바니온(라틴어 클리바나리우스-중기병-에서 왔다.)은 라멜러 코르슬릿이었으며, 소매가 없거나 짧으며 허리까지 오는 게 보통이었다.
무릎까지 내려오고 긴 소매를 가진 러멜러 코르슬릿도 11세기의 자료에서 발견되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것이다.
스케일 코르슬릿은 매우 경직되어 있고 유연성이 적다. 그들이 보이는 자료에 따르면(단, 미술 기법 탓에 메일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몸통만 덮거나 소매가 없다. 메일 코르슬릿-자바이 혹은 로리키아(라틴어로는 로리카)-은 이것들 중 가장 드문 것으로, 대부분은 무릎까지 내려오고 팔뚝 또는 손목까지 덮는 긴 것이다.
메일 후드도 착용했으며, 클리바니아는 대부분 메일 코르슬릿 위에 입는 형태로 발견된다.
패드를 대거나 솜, 가죽, 천을 누빈 형태, 그리고 펠트제 몸통 갑옷-적어도 두께가 3/4인치는 되는- 역시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데 에필로리키온, 카바디온, 밤바키온 등이 있다.
대부분은 소매가 있으며, 에필로리키온이나 밤바키온같은 경우 최소한 후드는 달려 있다. 전자는 클라바니온이나 로리콘 위에, 후자는 아래에 입는 경우가 많았다. 에필로리카는 대부분 기병이 착용했으며 카바디아는 보병이 입었다. 화살방지용 펠트제 망토도 탁티카에서 언급되어 있는데, 두꺼운 펠트제 모자도 마찬가지다.
소매가 있을 자리와, 스케일이나 러멜러 코르슬릿이(그리고 대부분의 메일이나 퀼팅 코르슬릿도)단지 허리까지만 내려오는 탓에 허리나 어깨에는 프테루게스라 불리는 천이나 나무 조각을 댔으며, 가죽이나 누빈 솜, 심지어 스플린트 아머를 댄 것도 있다.(투구의 애번테일은 대부분 러멜러, 가죽 혹은 누빈 귀덮개 등인데 사슬로 만든 것은 눈을 제외한 안면을 모두 가리는 것도 있다.)
전완(前腕)부나 정강이는 뱀브레이스(키로프셀라-cheiropsella-나 마니킬리아), 혹은 정강이받이(포도프셀라 혹은 칼코투바)로 보호받았으며, 일반적으로 스플린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들은 대부분 철제인데 가죽이나 목제, 펠트제도 때때로 사용되었다. 길쭉하고 네모나게 발가락이 있는 장화도 비잔티움 군인의 표준 장비 중 하나였고 방어용도로 가치가 있었으며, 이중으로 만들거나 패드를 댔다.
손은 가죽 건틀렛을 끼기도 했고, 중기병의 경우는 메일 건틀렛을 사용했다. 투구는 큰 원피스 헬멧이 나타나는데 여러 그림에서 찾아 볼 수 있고, 주로 철제며 목 보호대와는 분리되어 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당시 저 정도 급료면 생활 수준이 어떻게 됐을까요?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었으려나요 ^^;;
1 노미스마를 대강 15~20만원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그 정도로는 한 달 생활비로는 택도 없습니다만, 테마 병은 대신 토지를 지급 받으니 식비와 주택비가 저 급여에서 나가진 않죠. 단.....확실히 중산층은 아닙니다.
데헷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