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있는 그림] 하느님 사랑의 방식 마사초, <성 삼위일체>, 1426년경, 프레스코, 667x317cm, 산타 마리아 노벨라, 피렌체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한쪽 벽에 그려진 마사초의 프레스코화는 깊은 벽감(壁龕) 속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다. 하느님과 십자가의 예수님, 그 앞의 성모 마리아와 요한, 그 아래 부부의 배치는 모든 인물 사이의 비율을 유지하면서 공간적인 깊이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인물들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피라미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맨 앞쪽 제단의 계단 위에는 이 그림을 기증한 봉헌자와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자신감에 차 있다. 그 아래에는 무덤 위에 누워 있는 해골이 보인다. 사실 이 그림의 주제는 ‘성 삼위일체’이다. 마사초는 12세기 이래로 잘 알려진, 즉 성부 하느님이 무지개나 옥좌에 앉아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 삼위일체 도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대 로마의 영향을 받은 개선문의 아치 구조 안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달려있고, 하느님은 뒤에서 상체를 높이 드러내어 양손으로 예수님의 두 팔을 붙들고 있다. 하느님과 예수님 사이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한 마리의 비둘기가 날고 있다. 둘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당하실 때마다 힘과 위로의 원천이신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 아래, 제단 밑 해골 안쪽의 직각으로 움푹 팬 그늘진 곳에는 ‘나의 어제는 그대의 오늘, 그리고 나의 오늘은 그대의 내일’이라고 쓰여 있다. 예수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해골은 아담이 골고타에 묻혔다는 중세인들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담의 해골은 뱀의 꼬임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서 시작된 원죄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 피로 깨끗이 씻겨나간다는 의미이다. 곧 십자가의 수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의 서막인 셈이다. 이미 개선문의 아치 구조에서도 십자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와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 석관에 쓰인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인간의 숙명적인 ‘죽음을 기억하라’는 강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인간은 속세에서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운명이지만, 여기 봉헌자들의 기도처럼,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전구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성모 마리아는 우리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어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동작으로 우리를 십자가 위 예수님께 인도하고 있다. 십자가 위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예수님께서 당신 십자가를 지신 것과 같이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 같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수난과 죽음의 길을 피하지 않으셨듯이, 우리는 각자의 십자가의 무게가 어떠하든지, 그 고통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2015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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