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란 자신들의 본질을 부정하라는
모욕과 같았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덕경' 2장에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만물을 기르되 소유하려 들지 말고,
공을 이뤘으면 그 자리에 머무르지 말라),
부유불거 시이불거
夫唯不居 是以不去
(오직 그 자리에 머물지 않기에,
그 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라는 말을 남긴다.
'공성신퇴 천지도
攻城身退 天地道
(공을 이뤘으면 몸을 빼는 것,
이것이 하늘의 도리다)'라고
흘러간 영광을 붙들고 늘어지지 말라고 재차 당부한다.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If we want things to stay as they are,
things will have to change)."
혁신을 외칠 때면 항상 등장하는 소위
'람페두사(Lampedusa' Principle)의 법칙'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는 살리나 공작은
조카 탄크레디와 새 정부 관료들에게 일관되게 대답한다.
"시칠리아인들은 변화를 원치 않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깊은 잠에 빠지는 것'뿐이지.
그들은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믿기 때문에
변화를 요구하는 자를 증오하네."
살리나 공작은 이어서 '깊은 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한다.
"그들이 원하는 잠은 '죽음보다 더 깊은 잠'일세.
그들은 그 잠을 깨우려는 자를 철저히 증오하지…
그들이 말하는 옛 영광, 예술, 풍광…
이 모든 것은 사실 그들을
'기분 좋은 마비와 망각상태(voluttuosa letargia)'로
밀어넣기 위한 도구일 뿐이네."
영미권 비평가들은 이
'기분 좋은 마비와 망각상태'를
'Sicilian stupor(시칠리아적 인사불성)'라는
주석을 달아 분석한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문서나 인공물 형태로 남겨진
현재에 살아 있는 과거'다.
한 조각의 역사적 증거는
그것의 의도된 목적을 유추할 수 없을 경우
무의미해진다는 점에서
'모든 역사는 사유(思惟)의 역사'다.
의도된 목적을 유추해내는 과정은 상상력을 발휘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약이 필요하다.
역사적 지식은 자기가 연구하는 역사를
머릿속으로 재연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와 현재를 병치하는 것에서부터 생겨난다.
'역사적 지식은 과거의 사유를 반박하여
현재의 사고 맥락 안에서
다르게 정의한 과거 사유의 재연이다.'
따라서 역사가와 비역사가의 관계는
노련한 산사람과 무지한 등산객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무지한 등산객은
"여긴 나무하고 풀밖에 없잖아"라며
그냥 지나치는 곳에서
산사람은
"저기 봐, 저 풀숲에 호랑이가 있어"라고 말한다.
즉 콜링우드는 역사가 과학적 법칙과 전혀 다른 무언가,
한 마디로 '통찰'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역사적 통찰의 진정한 기능은
'과거, 즉 과거의 표면적인 주제가 현재의 맥락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 현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역사 연구 주제의 선택과 관련하여, 콜링우드는
케임브리지 동료 교수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가
'현재 중심적 사고(present-mindedness)'라고
비난한 대상에 전혀 잘못된 점이 없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역사적 문제는 실질적인 문제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적 상황을 더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실제' 삶의 영역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참고해야 할 것이 바로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