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배우 유선희의 이름이 화제가 되었다.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갖게 된 이유도 있었겠지만 다름 아닌 그녀의 결혼식 사회자가 유재석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는 8년전 같은 소속사에 있었던 유재석에게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사회는 오빠에게 맡기고 싶다는 부탁을 하게 된다. 유재석은 흔쾌히 그 약속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는 8년후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8년 전의 장난 같은 약속을 상기시키기엔 유재석은 너무 큰 사람이 되어 버렸고 무려 십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약속이라는 것이 효용 가치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2007년 영화 전설의 고향으로 뒤늦게 데뷔한 78년생의 유선희는 많은 작품에서 주로 주연이 아닌 조역이나 단역을 맡아온 아직 대중의 기억에는 익숙함이 존재하지 않는 배우다. 그녀도 그런 자신의 입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유재석에게 과거의 약속을 지키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 유재석은 당대 최고의 톱스타이고 자신과 약속을 나눈 과거는 두사람이 아직 지금의 입지를 가지지 못했던 무명의 시절이 아니었던가. 유선희는 고민한다. 8년 전의 약속을 그가 거절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조심스럽게 입을 꺼내 사회를 봐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유선희에게 유재석은 너무나 흔쾌히 "그럼. 내가 약속했었잖아." 라는 말로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유재석은 8년 전의 약속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에 전혀 거리낌을 가지거나 불편한 말로 새신부에게 부담을 안겨주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일 유재석에게는 시간이란 천금의 가치와도 같고 8년 전의 약속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위해 소중한 하루를 빼주기엔 그에게도 많은 품을 들여야 했을 일이다. 하지만 유재석은 그 상대가 어떤 위치에 놓인 사람이건 그 약속이 무려 8년 전의 장난처럼 기록했던 한마디라고 해도 그것을 소홀하게 넘겨버리지 않았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이날 유선희는 최고의 행복한 신부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수년전 그가 결혼식을 올렸던 2008년에도 남아있었다. 무한도전에서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남산을 오르던 그는 근처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빌어 사먹게 되고 주인 아저씨에게 결혼식에 초대 시켜달라는 다짐을 받게 된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다시 그 자리를 찾아와 아이스크림 값을 계산하고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했다는 유재석의 약속은 그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년뒤 나경은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하게 되었을때 실제로 그분을 초대하여 일년 전의 약속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새신랑으로서 인맥도 대단한 그가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방송에서 그저 흘려가듯 남긴 한마디를 일년 뒤에도 기억하여 초대장을 보내고 연예인이 아닌 그 아저씨가 당황스러워 할지도 모름을 배려하기 위해 직접 길 안내를 하러 나섰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경이로운 사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주목을 받으며 떠오르는 젊은 엠씨 박재민은 자신이 유재석이라는 인물을 인생의 롤모델로 결정한 이유를 고백한다.
"롤모델은 (유)재석이 형이에요. 재석이 형이 사는 삶을 보면 인간적으로 멋있어요. 한번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데 얼굴도 작고 몸매도 근사한 사람이 저 멀리 있더라고요. 불 꺼져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랑 놀아주는데 자세히 보니까 재석이 형이었어요.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랑 시간을 보내는거죠. 이웃들한테도 잘하고, 가족에게도 잘하고, 단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항상 웃는 얼굴이예요. 모두가 좋아하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연예인 중에 한 명인데 저련 평을 받는 것 자체가 참 멋있는 것 같아요"
원하는 것을 가지기 이전의 사람은 그것을 가지게 된 다음에 대해서도 많은 약속을 한다. 그것이 신을 향한 약속이건 나 자신을 향한 약속이건 아니면 타인을 향한 약속이건. 그것을 이루게 된 다음에 나는 많은 이들에게 봉사도 하고 나눔을 베풀며 평생 초심을 지키고 살아가겠다고. 하지만 정작 소원이 이루어지고난 사람의 간사한 마음 속에는 그 간절했던 약속에 걸었던 자신의 대가는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간사한 마음을 탓할 수도 없다. 초심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찮고 지키기 어려운 존재인가를 나 역시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 가졌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낮아져야 하나? 좀 거만하고 오만하게 굴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도사리는 마음 속에 초심이란 한순간에 부숴져버리는 크래커와도 같고 과거의 약속이란 인스턴트나 마찬가지가 된 요즘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도 그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숭고하고 보배로운가. 나는 과거 토크박스에 출연하여 처음 유재석이라는 인물의 대단함을 알렸던 그 시절의 유재석이, 도대체 어디서 저런 인물이 굴러 들어왔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치 넘쳤던 수많은 에피소드나 대단한 입담 보다는 그 말을 내뱉으면서 그의 마이크가 꼭 쥐고 있던 그의 떨리던 손을 상기한다.
이 무대가 아니면 나는 죽는다는 각오로 그가 얼마나 많은 다짐을 담아 그 무대에 올라섰을지 그 아픔을 이제는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회를 가졌을때 그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을 처음의 마음. 그가 8년 전의 약속에도 흔쾌히 당연한듯 OK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기에 새삼 그와의 내기 같은 청을 들어준 신이 감사하다.
출처 닥터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