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차명석 삭발한 사연
찬 바람이 옷 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는 겨울.한 겹 덧입어도 부족할 판에 그는 ‘대의’를 위해 하나를 더 벗었다.
LG 차명석(31)이 삭발을 했다.이마까지 눌러쓴 털모자 속에 드문드문 검은 머리가 돋아났다.홍성흔 정수근 최경환 등 젊은 동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회색 머리의 꿈도 내년으로 미뤘다.
사건의 발단은 그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추측을 불러일으켰던 지난 18일 선수협 총회.제주도에서 2군 선수들과 훈련하던 차명석은 총회에 앞서 열리 는 1군 투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김성근 2군감독을 찾았다.
김 감독의 강한 카리스마에 코치 이하 모든 선수들이 한껏 긴장하고 있던 싸늘한 제주 캠프.차명석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서울로 가겠 다”는 의사를 내비쳤다.김 감독은 단 한마디만 했다.“그럼, 여기 있는 사 람 모두 다 데리고 가라.”
밤새 고심한 끝에 차명석은 다음날 아침 양준혁을 만나기 위해 제주를 탈 출해 단신으로 서울행을 감행했다.그러나 제주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구단의 압력은 훨씬 거셌다.그는 팀의 선임이었다.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제주에 돌아오자 사태는 심각했다.그가 서울로 사라진 뒤 훈련은 모두 중 단됐고 냉랭한 기운이 캠프를 휘감았다.차명석은 김 감독 앞에서 고개를 숙 였다.용서을 빌었다.그러나 김 감독은 이전보다 더 짧은 한마디만 했다. “ 가봐.”
열 마디 꾸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침묵.자신의 돌출행동으로 중지된 훈련과 망가진 팀 분위기가 밤새 그를 괴롭혔고 차명석은 다음날 아침 미용 실로 향했다.최후의 수단이었다.머리라도 밀어 반성의 뜻을 전하고 어떻게든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되살려야했다.
머리를 밀고 다시 들어간 김 감독 방에서 차명석은 다시 한번 용서를 구했 다.김 감독의 차가운 눈빛이 시원하게 민 그의 정수리에 꽂혔다.김 감독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잔을 건넸다.용서의 뜻이었다.
“머리는 또 자랄 수 있어도 팀 분위기는 안 그렇잖아요.” 삭발로 제주 캠프는 무사히 끝났고 결국 그도 털모자를 눌러쓴 채 동료들과 함께 당당히 선수협 가입서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