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우의 특성에 있어 식물은 언제나 모형보다 우월하다. 그리고 의식이 의미하는 바를 히브리서 기자는 명백하게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깨끗하게 하고"(히 9:13-14).
선택된 제물처럼 그리스도는 점도 흠도 없었다. 동정녀 탄생의 기적과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그는 원죄로 더럽혀지지 않으셨다. 그의 순결함은 본질적이고 타고난 것이었다. 흠이라는 말은 비판의 신인 모무스(Momus)로 부터 나온 말이다.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그는 심한 비판을 받았었지만 "그에게는 죄가 없다"(요일3:5)는 것을 드러냈다. 죄의 멍에가 어깨 위에 결코 놓인 적이 없었으며, 구속(拘束)의 멍에 아래도 있었던 적이 없으므로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물이 되실 수 있으셨다. 그의 희생은 전적으로 자원하신 것이었다.
제물처럼, 그리스도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히 13:12)는데, 이 곳은 문둥이와 더럽혀진 사람들이 늘 출입하는 곳이었다. 그들의 죄는 제물에게 전가되었다-영문 밖에서 영광의 주님의 비할데 없는 겸손의 행동에서, 하나님의 끝없는 용서의 사랑이 나타났다. 장막 앞에서 피를 뿌리는 것은 그 자체로는 오염된 사람을 정결케 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없었고, 그들이 정결케 되기 전에 속죄제가 있어야만 했다.
붉은 양털을 묶은 백향목과 우슬초를 태우는 것은 죄많은 자아의 삶(self-life)인 "옛 사람"이 매력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든 불쾌한 모습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것을 불 속에 던져 버리고, 신약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의미한다(롬 6:6). 만일 우리가 자아의 삶을 죽음의 자리에 두지(롬 6:11) 않는다면 언제나 부패하고 더럽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려달라는 옛 사람의 애원을 단호하게 무시해 버려야 한다.
재는, 희생이 드려진 증거인데, 제물의 주요한 부분이 농축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부패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의 희생의 효력이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상징이다. 깨끗한 장소에 저장된 재는 주 예수님 안에 있는 공로의 저장을 나타내며, 죄로 인한 날마다의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영구적으로 보존된 것이다. 가장 적은 분량의 재를 가지고도 죄를 깨끗케 하기에 충분하다. 유대인의 전통체는 유대 전 역사 가운데 단지 6마리의 암송아지가 요구되었을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일...암송아지의 재가...하물며 그리스도의 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