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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지자의 기름부음
※ 성령의 뜻대로
선지자(예언자)의 기름부음에 대해 몇 가지를 유의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예언자의 직무 같은 하나의 직무에 몸담고 있으면 계속해서 그 일만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제대로 읽지 않기 때문에 기름부음이 없는데도 직무를 수행하려 하는 과오를 범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육적으로 살면서 예언하여 하나님의 일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어떤 목사는 예언의 직무를 감당하는 사람이므로 항상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면서 돌아다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어떤 목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기름부음 받은 것을 내가 의심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많은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자신의 예언자의 직무를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은 항상 예언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그 사람을 만났을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는 30분 안에 주님으로부터 받은 열두 가지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씀들 중에 한 마디도 옳은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 얘기들은 교훈적인 가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나는 예언자의 직무를 감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내가 항상 예언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를 만나보려고 거짓말까지도 서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다른 지방에서 말씀을 전했는데 새벽 4시에 우리를 깨웠습니다. 긴급한 장거리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친척 중의 어떤 분이 세상을 떠났던지 하는 등의 전화인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은 어떤 여자였습니다.(가끔은 남자이기도 합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해긴 목사님, 이렇게까지 하기는 정말 싫었지만 목사님과 통화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었습니다."(그것은 얄팍한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계속하여 "저는 기도를 하면서 목사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목사님께서 저를 위해 한 마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해줄 수 있다마다요"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할 만한 배짱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목회자가 원하는 대로 예언의 능력을 껐다켰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언을 하게 하는 기름부음은 잠재적으로는 항상 임재해 있으나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항상 준비하고,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영에 순종할 때에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기름부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신 한 번 조용히 생각해 봅시다. 만일 당신의 직분이 교사라고 하고, 항상 가르치는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하루 24시간을 가르쳐야 하며 그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 가르치다가는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부르심이 있고, 잠재적인 기름부음이 예언을 하게끔 임하셨다 해도 예언자의 직무를 실지로 하루 24시간 수행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그렇게 오랫동안 견딜만한 정도의 영적인 힘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지자라 하시며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실례를 얘기해 주셨습니다. 선지자 엘리야의 얘기인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로만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를 통해 기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병에서는 기름이 계속 나오고, 통에서는 밀가루가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왔습니다(왕상17:14). 그렇지만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 집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말씀이 없으면 직분을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다른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며(눅4:27), 엘리사도 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명성이 있었음에도 문둥이 중의 한 사람도 고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한 이스라엘에서 온 작은 소녀가 자기 주인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왕하5:3)
이스라엘의 문둥병자 중 단 한 명도 치료받지 못했으나 시리아의 나아만만이 유일하게 문둥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우리 자신이 직접 기름부음을 조절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익혀야 하며, 또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선지자의 기름부음을 사랑합니다.
엘리야도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엘리사는 엘리야가 받은 기름부음의 두 배를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하도록 받았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본 대로, 같은 직무를 행하더라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음악은 기름부음을 촉진시킨다
선지자는 직분을 수행하는데 음악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3장을 보면 선지자 엘리사의 직무 수행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오로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만이 각기 그들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시지 않는 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관한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일이 있으면 선지자를 통하여 물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의 직무는 오늘날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두 개로 분열되어 있던 이스라엘 땅에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이 다른 두 왕-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에돔 왕-과 상의를 하였는데 이 다른 두 왕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타락한 왕들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왕하3:11)라고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 중의 한 사람이 엘리사에 관한 얘기를 하자 세 왕은 엘리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열왕기히 3:13-14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 가소서 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의 얼굴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선지자 엘리사도 여호사밧의 얼굴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 백성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십니다. 여호사밧은 이 임박한 전쟁의 결과에 관해 예언을 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엘리사가 거문고 연주자를 부르자 기름부음이 촉진되었습니다.
열왕기하 3:15-16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주님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하시니]
16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
엘리사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승리의 소식을 말해주었습니다. '주님의 손이 그에게 임하시니.'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주님의 손'이란 성령님이며 또한 기름부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도 자신이 원하는 때에는 언제든지 예언을 시작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그는 '거문고 탈자를 불러 오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주님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하셨습니다.
음악은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열거한 은사 중 돕는 은사에 속합니다. 찬양 사역은 돕는 은사 중 가장 큰 은사의 하나입니다. 찬양의 직무를 수행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상합니다.
성경은 찬양을 예배와 관련시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집에서 기도를 할 때나 성경을 공부할 때 좋은 찬양의 음악이 있으면 큰 차이를 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할 때 사울 왕을 괴롭히던 악령이 떠났습니다.
음악은 모는 은사의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칩니다. 음악은 모든 은사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기름부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음악은 모든 직분의 사역자들 - 반드시 선지자(예언자) 뿐 아니라 - 을 돕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역자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직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음악과 노래는 교사가 더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음악은 다른 어떤 직무 수행보다 선지자의 직무 수행과 더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는 성령님의 하시는 일에 가장 민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연주하자 '주님의 손', 즉 기름부음 이 선지자 엘리사에게 임하여 엘리사가 예언을 하기 시작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예언자의 직분을 감당하라는 기름부음이 너무 강력해서 나는 아무런 도움도 필요 없이 바로 예언을 할 수 있는 경지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엘리사처럼 나도 다소간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찬양단이 연주하고 노래하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잘못된 노래를 하면 오히려 기름부음과 예배를 망쳐버리고 맙니다. 가사와 곡조와 리듬은 적절할지 몰라도 노래가 부적절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이 나로부터 떠납니다. 성령님은 마치 새가 날아가 버리듯 가버리십니다. 아니, 성령님이 믿는 자인 내 안에 거하시기를 그만 둔다는 뜻이 아니라,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시는 기름부음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기름부음에 영향을 줍니다. 거문고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 음악가들은 자신의 책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악가들은 돕는 직무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돕는 직무를 감당합니다. 음악가들도 설교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도하고 기름부음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가들은 성령님에 대한 민감성을 길러 성령님광 함께 움직일 줄 알아야 합니다.
노래하는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서서 노래만 하면 그만인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도 기름부음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가대도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래로 사역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그저 웃고 얘기하며 교회로 들어섭니다. 물론 우리에게 교제가 필요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세속적인 것일 뿐 전혀 영적인 생활이 못됩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노래로서 직무를 수행하기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거낭 모두 함께 기름부음을 받도록 기도할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경험으로는 음악가들이 진정 성령님과 함께 움직이면 그들의 음악은 내가 예언자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기름부음이 더욱 강하게 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거문고가 연주될 때 주님의 손이 움직이셨다고 말할 때 나는 그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올바른 음악을 들었을 때 예언자의 직무수행에 깊이 빠져 무려 세 시간 동안 예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예언이 그냥 내게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그런 식의 예언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어느 정도의 기름부음을 받아 예언의 직무를 수행한다 하더라도 내가 받는 기름부음은 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올바른 찬송
1958년 캔자스(kansas) 시에서 개최된 포스퀘어(Foursquare) 교단 총회에서 나는 주제 발표 강사로 초대되었습니다. 그날 밤 예언의 영이 내게 임하셨습니다. 예언의 영을 내게 임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영이 내게 임하실 때 나는 그 영에 순종하고 음악이 나를 도와줍니다.
그 총회에서는 다른 여러 교회에서 모인 사람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예언자의 기름부음이 내게 임하시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좀 연주를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에이미 샘플 맥퍼슨(Aimee Semple MacPherson)이 작곡한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라는 곡을 연주했습니다.
기름부음이 내게 임했고 나는 그 기름부음 아래서 밤 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 세 시간 동안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아, 얼마나 감격스러운 예배였던지! 나는 영광 가운데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절반 동안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방 전체에 마치 몽롱한 구름이 끼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그 날 내가 무엇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나는 단지 기름부음이 임한 때와 사라진 때만을 기억할 뿐입니다.
음악가들이 잘못된 찬송을 연주했다면 모든 것을 다 사라져 버리게 했을 것입니다.
찬양하는 사람들이나 연주자들도 사역자만큼이나 성령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음악 하는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편이 예배를 더 잘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끔 내가 아무 노래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다른 요소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기름부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가끔 선지자의 영이 내게로 임하다가는 무엇인가에 의해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환경 탓이거나 어떤 특정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엘리사는 '만일 여호사밧ㅇ이 아니었으면 너희 다른 두 왕과 관계되는 일인 한 나는 당신들을 보지도 아니하였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타락한 상태에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엘리사도 약간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라고 엘리사는 말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