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시루봉 아랫도리
외딴집 피아산방의 창을 열면
검은 바위 다랭이논과
울울 밤나무 가지 사이사이
함박눈은 오시는데
문수골 문수제
저 못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짐승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나는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자꾸만 함박눈은 쌓여
읍내의 약방은 멀어지는데
문수골 문수제
저 짐승의 입은 너무나 커서
소나기며 함박눈이며 낙엽이며
다 받아먹다가
회오리 바람이 일면
잠시 뒤척일 뿐
저 짐승의 혀는 너무나 커서
혀가 곧 입이요
입이 곧 내장이자 몸이니
상주처럼
흰 두건을 쓴 노고단이
저 짐승의 내장 속에서 흐려지고
섬진강 노을마저
저 짐승의 푸른 이빨에 물어 뜯기니
토지면 문수골 문수제
저 못에 무언가 전설처럼 살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 파문이 일고
달빛도 놀라 밤새 파닥거리겠는가
온갖 세상 소식이
저 못을 건너다 빠지고
우편 배달부마저 몸을 던지니
구례군 토지면 문수골 문수제
저 못에 무언가
혓바닥이 너무나 큰 짐승이 살고 있다
물의 입은 너무나 커서
사람과 승용차를 삼키고
지리산을 삼키고도
내내 함구하고 있으니
섬진강은 물의 몸통인가 꼬리인가
바다는 물의 항문인가 입인가
물의 입은 너무나 크고
물의 머리는
언제나 나무뿌리 혹은 바위틈에 있으니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나의 입은 너무나 작아져
혓바닥 하나 담을 그릇도 못 되고
첫댓글 토지면 문수골 문수제은 먹성이 좋은가 봅니다. 그 문수제에 비친 지리산 함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