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서> |
똑같은 특신급과 법마상전급에서도 예비와 정식 간에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정특이 되면, 신(信)과 서원이 서버립니다.
정법이 되면 재미가 진진합니다. 예법 때는 조금 힘들어요. 서원이 세워졌다고 해도 기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거든요. 서원이 세워져도, 업력, 습관, 욕심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법 때는 서원반조를 많이 해야 합니다. 서원반조는 바로 목적반조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예법 때 해야 하는 것이 교법 반조입니다. 인과 반조라고도 합니다.
정법이 들어가면 추가로 자성반조가 시작됩니다. 정법 때는 속 깊은 마음공부를 시작할 때입니다. ‘옆도 뒤도 안돌아보는 경지’라는 것은 자기 내부에 충실하다는 뜻입니다.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않습니다. 나 혼자 좋아서 죽었다가 혼자서 참회기도도 했다가 할 때입니다. 참회기도를 많이 하는 이유는 현실 경계에서 지기 때문입니다. 경계에 속지는 않는데 지는 것입니다. 마구니에게 지는 것입니다. 이때, 업력과 습관을 해결하기 쉽지 않구나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정법 때는 성리공부를 할 때예요.
(정특이 되면 집심(執心)은 되어요. 서원과 신심으로 형식은 채우기 때문입니다.)
정법 때는 집심에 더해서 관심 공부, 무심 공부를 하게 됩니다.
공부단계가 의외로 간단합니다.
심신과 서원이 세워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때가 정특입니다. 지식, 나이, 학벌 상관없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여태 내가 헛살 뻔했네, 즉 재색명리를 향하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게 제일인 줄 알았는데, 성불제중 제생의세라는 것이 있구나, 인과와 영생이라는 것이 있구나, 이것이 내 삶의 가치구나”라고 마음을 탁 정해버리는 것이 특신급 때입니다.
<판서> |
신은 정하는 것이고, 정하니까 고요해지고, 고요하니까 편안해지고, 편안하니까 통해집니다. 그래서 신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정법(징식법마상전급)에서는 속 깊은 공부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심리(心裏) 공부라는 표현이 있죠. ‘속 리(裏)’자 입니다. 마음 속 깊이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미지 관리하는 사람, 남 볼 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법호까지는 탈 수 있지만, 항마위까지는 못 올라갑니다. 범부에서 그칩니다.
정식법마상전급 때 귀신도 모르게 적공해야 합니다. 남이 보나 안 보나 상관 없습니다. 수행의 진경도 들어가보고, 성리공부도 밝아지고, 스승에 맥을 대고 점검과 지도를 받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스승에게 오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깊은 마음공부입니다.
적당히 체면치레하는 공부로는 항마위에 못 올라갑니다. 무결석을 해도 항마위에 못 올라갑니다.
상전급 때 진정으로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항마위에 올라갑니다. 심신상련이 되어야 합니다. 스승과 동지간에요.
특신급 때는 한 마음 결정하기, 욕심을 놓아버리기가 과제라면, 법마상전급 때는 자기 안의 형식을 던져 버리는 것이 과제입니다.
특신급은 욕심을 던져버려야 하는 때이고, 법마상전급은 나를 던져버려야 하는 때 입니다.
법마상전급에서 마(魔)는 ‘나’를 의미해요. 밖으로는 내 몸을 의미하고, 안으로는 내 욕심을, 업력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첫째는 욕심을 놓는 것이고(특신급),
둘째는 나를 놓는 것입니다(법마상전급).
욕심과 나를 놓아버릴 때 비로소 성위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 체면, 편안함, 내 쾌락, 이런 것들을 놓기가 쉽지 않지요.
법마상전급은 ‘대체고전’입니다. 대체로 고전한다는 뜻이지요.
왜냐하면 욕심을 놓아버리겠다고 마음 먹긴 했지만 욕심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습관과 업력이 나를 휘어잡기 때문입니다.
법마상전급은 그래서 심리 공부, 즉 귀신도 모르게 적공을 할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이것이 성리공부입니다.
법마상전급은 반드시 의두연마를 하게 되어있고요, 감각감상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특신급 때 일기를 쓰면 주로 심신작용 처리건을 써요, 법마상전급 때는 감각감상이 더 나옵니다.
법마상전급 때 중근을 조심해라 하셨습니다. ‘중근이 왜 걸리냐?’ 하면, 서원이 확실하지 않고 서원을 계속 반조하지 않으니까 욕심이 다시 올라오게 되고 여러 생으로 쌓아놓은 업력들, 성격들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성격을 합리화합니다. 성격이 빠른 사람은 빠른 것을 합리화하고, 느린 사람은 느린 것을 합리화하지요. 그런 습관과 성격을 스스로 합리화 하다보면 중근에 걸리는 것입니다.
법마상전급 때는 우리 법을 기본적으로 알게 되죠. 정법(정식법마상전급)만 되어도 어디가도 환영받습니다. 그리고 70~80%는 마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정도만 되면 어디가도 환영 받거든요. 정특만 되어도 눈이 살아있고요, 정법만 되면 어디가든 박수 받습니다. 교단 일도 정법 때 많이 합니다. 정특일 때는 자신이 열심히 수행하려 원불교 가자고 나팔 불 때입니다. 정법이 되면 자기 내면에 공부하는 재미도 크고, 밖을 대할 때 판단과 분석이 되다보니 교당일을 많이 할 때입니다.
법마상전급은 ‘심신교전’이라고 했습니다. 법은 心(마음)이고, 身(몸)입니다. 몸과 마음이 계속 싸웁니다.
여러분 날마다 안 싸웁니까? 몸은 더 누우라고 하는데, 마음은 일어나서 좌선하라고 하지요.
“원불교가 나죽이네 할 때”가 예법(예비 법마상전급) 때입니다. “원불교 때문에 죽겠네.” 할 때입니다. 심신과 서원이 약한 사람은 예법 때 튕겨져 나가버립니다. 경계가 많은 때거든요. 예법 때 왜 애쓰지요? 모든 게 다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예법은 자신이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요구는 잘해요. 칼날입니다. 밖으로 대승, 안으로 소승을 해야 맞는데, 예법은 나한테도 남한테도 소승으로 합니다.
상전급 때 박수도 받다보니 상(相)이 나오고 중근병에 들게 되죠. 과거 묵은 시대에는 ‘만 명이 중근병이 들면 한 명이 헤어나온다‘는 말이 있었어요. 중근병이 그만큼 무섭습니다. 우리 교당에도, 어느 교당이든 중근병이 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근병을 해결할 길은 서원과 신을 확실히 세우는 것입니다. 서원과 신을 확실히 세우는 것은 여래위까지 가서도 반복해야 할 일입니다.
특신급은 20계문을 지키는 때라면, 법마상전급은 30계문을 지키는 때입니다.
특신급을 교선이라 한다면, 법마상전급은 교정(敎正)이라 합니다. 교정은 몸과 마음이 싸우는 고정에서 바르게 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바름을 익혀나가는 때입니다. 그래서 교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4) 법강항마위
법강항마위는 세밀입니다. 항마위는 살짝 찬바람이 납니다. 디테일하게 공부합니다. 마군에 백전백승해야 하다 보니, 일체의 마군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조복’이라고 합니다. 생활의 법도가 있는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에 법도가 있습니다. 이때는 심신을 조복 받는다는 것입니다. 상전급까지는 싸우고 힘들어 죽겠지만, 항마위부터는 즐깁니다. 상전급까지는 계문 지키기가 어렵고 항마위부터는 계문을 어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마위에서는 30계문 다 떼고, 심계(心誡)를 주죠.
항마위는 육법이라 합니다. 육근이 법으로 화해서 육법이라 합니다.
항마위는 정사(正師)입니다. 바른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천도재 때, ‘정사 영가이시여’ 그러는 것입니다.
(5) 출가위
출가위는 합덕입니다. 덕에 합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가위는 ‘시방일가’입니다. 특신급의 서원이 시방일가인 것입니다.
시방을 내 집 삼는 것이 서원입니다. 특신급의 마음은 출가위와 바로 연결이 되지만 아직 욕심을 못 털어내어서 출가위가 아닌 것입니다. 출가위는 교단 일이 바로 내 일이 되고 세계일이 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출가위는 ‘심신출가‘라 합니다. 항마위까지는 ’자기‘라는 것에 걸려있습니다. 항마위는 예항(예비항마위)에서 정항(정식항마위)으로 넘어갈 때의 차이는 견성의 차이입니다. 견성을 했다는 것은 시방이 일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마음이 국한을 벗어나서, 무아(無我)가 되는 것입니다. 아까 정법(정식법마상전급)까지는 유아(有我)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항상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정법(정식법마상전급)까지는 자기가 자기를 믿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합리화하고 속일 수 있어요. 특히 법마상전급까지는 자기 자신을 믿으면 안 됩니다.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을 통해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출가위는 덕이 나오기 때문에 육덕이라 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래그래~” 하지요.
출가위를 돌아가시면 ‘원정사(圓正師)’라고 합니다.
(6) 대각여래위
대각여래위는 만능 만덕입니다. 자유자재 능소능대하고 능선능악합니다. 만능만화합니다. 그리고 심신 자유입니다. 심신이 걸림이 없습니다. 대자유입니다. 경계에 이랬다 저랬다가 아닙니다. 한마음 내면 그 경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정법(정식법마상전급)까지는 계속 싸웁니다. 나라는 것이 들어서서, 욕심, 육신이라는 것이 들어서서 참 나를 계속 이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여래위에는 한마음 먹으면 다 해결됩니다. 육능이라 합니다. 안이비설신의가 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각여래위는 대원정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법위표준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할게요.
상전급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상전급에 대해서 공부하려면, 계문에 대한 것, 그 다음 수양, 연구, 취사에 대한 것, 그리고 현상적으로는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를 어떻게 공부하느냐를 다루어야 합니다.
정식법마상전급 때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아직 정법이 아닙니다. 법마상전급 때는 집에서 통례, 가례, 교례를 실행합니다. 명절에 예전처럼 식을 하면 법마상전급이 아닙니다. 상전급은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수양을 합니다. 그리고 상전급은 의두, 성리 연마를 5분, 10분 정도는 한다. 그리고 사회 사람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듣습니다. 실천으로써 주위를 교화시키는 것, 일기 기재, 정기훈련을 난다는 것 여기가 바로 법마상전급입니다.
숫자로 이야기하자면, 만 명이 교당에 오면 8-90%는 입교도 안합니다. 입교를 해야 보통급입니다. 입교한 사람의 90%는 보통급에서 멈춰있습니다. 나머지가 예특에 올라가고 정특에 올라가지요. 특신급 넘어서 최소한 법호를 받으려면 나이가 50세가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원불교를 다닌 지가 20년이 되어야 하고, 사업성적으로 보면 보은헌공을 최소한 한 달에 5만원에서 10만원을 몇 년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법호가 겨우 나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임원을 하든가 보은봉공을 많이 해야 하죠. 그렇게 힘들게 법호를 받아도, 항마위가 아닙니다. 법마상전급 정도 되죠. 깊이 있게 스승을 모시고, 계문을 확실히 지키고, 성리 공부를 깊게 해서, 실천으로써 내 마음공부를 하면서 실제로 경계에서 마군을 이겨내는, 그 실행이 사은보은으로 넓혀지는 정도가 되어야지 비로소 ‘정법(정식법마상전급)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쉽게 생각하시는데, 법마상전급이 쉬운 게 아니에요.
계속 공부해보겠습니다.
법마상전급이라고 했습니다. 법과 마에 대한 설명은 도민 회장님께서 강연에 잘 밝혀주셨습니다.
법(法)에, 마(魔)에 왕(王)을 붙여줍니다. 법왕(法王), 마왕(魔王)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왕이 2명이 아니지요?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서 굶겨 죽이잖아요. 왜 그랬겠어요? 왕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서 형제간 싸우는 것도 왕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법마상전급에는 두 왕이 있습니다. 두 왕이 서로 체인지합니다. 하나는 법의 왕이요, 하나는 마의 왕입니다.
주로 마구니를 주게 하는 것이 첫째, 몸이죠. 둘째는 마음이고, 셋째는 인연입니다.
몸이 주는 마구니는 병마가 오기도 하고 오욕이라는 것 (재색명리식수)입니다. 마음이 마구니를 주는 것은 삼독심(탐진치) 마구니입니다. 그 마구니가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 심리의 가장 겉에 탐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뚫는 것이 법입니다. 서원이나 신으로 뚫고, 기도로 뚫고, 염불로 주송(呪誦)으로 뚫고, 봉사활동으로 뚫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각도로 탐심을 뚫어야만 합니다.
탐심의 첫째는 ‘눈’입니다. 눈을 통해서 제일 탐심이 많아집니다.
탐심 다음 단계는 진심(嗔心)입니다.
탐심을 향하다가 뜻대로 안되니까 화가 나죠.
진심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입’입니다.
말은 귀와 감정을 담당합니다. 한마디 들으니까 기분이 좋았다가, 한 마디 듣고는 화가 나는 것입니다.
진심 다음 단계가 치심(恥心)입니다.
화내면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포장합니다.
화 안 난 척 교양 있는 척합니다. 그것이 치심입니다.
탐진치, 세 가지를 삼독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대체하는 것이 삼학심이라고도 하고요.
마왕의 셋째는 ‘인연마’입니다. 결혼하고 나면 인연마 때문에 많이 강급하지요. 가까운 인연에 끌리다 보니 원근친소에 끌리게 되지요,
내 마음에 빼앗긴 인연이 있습니다. 이생의 어머니만 어머니겠습니까, 수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만난 어머니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수많은 인연들이 같이 살았습니다. 모두들 아주 가까운 인연들입니다. 지금 앉아 있는 동지 간에도 전생의 부자지간, 모녀지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정이 많은 사람은 인연에 걸려서 뜻을 이루지 못하지요.
법마상전급에 머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소선소지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성리공부를 못하면 소선소지에 만족하기 쉽습니다. 학교선생님들이 소선소지에 만족하기 쉽습니다. 봉사만 하는 사람, 공부만 하는 사람, 훈련만 나는 사람 식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하려는 사람은 소선소지에 만족하기 쉽습니다.,
항마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절장보단’ 해야 합니다.
기능적으로는 장점을 써야지요. 회사에서나 기업에서는 장점을 살려 써야지요. 그러나 자기 스스로 내부에서 장점을 존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못난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만 달려갑니다. 기능적인 부분은 성공할 수 있지만, 원만성이 떨어지면 어디든지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도가 공부에서는 절장보단이 특히 중요합니다.
대산종사님도 붓을 꺾어버렸습니다. 명필 될 것 같으니까 붓을 꺾어 버리셨습니다.
우리 목적이 뭐지요? 우리 목적이 내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우리 목적은 오직 제생의세입니다.
“어떻게 낙원세상으로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지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만나는 인연도 교화의 대상으로 만나야 하고, 내가 하는 기능도 최대한 원만성을 갖추어서 보다 큰 지도자로써 보다 큰 중생들을 반야용선에 태우자는 것이지요.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은 아니죠.
마군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 드리고 있습니다. 마를 인심(人心)이라고 하거나, 인욕지심이라 합니다. 법을 도심(道心)이라 하거나, 천리지심이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따집니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내자는 것이지요.
이것을 수행에 적용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수행의 원리와 방법을 정확히 알고 하는 것은 중하겠지만, 적은 노력의 수행으로 큰 효과를 거두자는 것은 도둑놈 심보지요.
아침좌선도 하지 않고, 심리공부를 깊이 있게 하지 않고, 스승에 깊이 있게 맥도 대지 않고 실제 경계에서 이기는 힘을 기르지 않고 큰 효과를 바라는 것은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조금만 수행할까“ 하면서 경제원칙을 적용하면 안 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이해타산을 초월하는 것이고 때로는 이해타산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묘하게 요즘, 수행에 자본주의를 적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수행에 이해타산을 적용하면 착각입니다.
마구니는 자행자지입니다.
기분 날 때만 하고, 핑계대고 합리화하고 하는 것들은 자행자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항마위에 오른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겁니다. 처음에 어렵죠. 그렇지만 자기만 어렵겠습니까? 먼저 올로 간 사람이 있는데, 왜 자기는 못하겠어요. 믿음 중 첫째는 자기자신이 부처님이라는 것인데, 내 안에 원만구족 지공무상한 자기가 있다면,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항마위에 못 올라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성(정성 성誠)이 끊어진 것입니다. 가다가 무슨 핑계를 대고는 멈춰요. 항마위, 출가위에 올라가신 분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법마상전급 때 귀신도 모르게 적공하는 부분에서, ‘지원지성(至願至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이 지극하고 정성이 지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행하는 사이에 묘하게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재미를 찾게 되고 자신감이 붙게 됩니다.
반면에 주위만 맴도는 것은 체험이 없는 것입니다. 수행을 해보면 ‘이것이 진경이구나’ ‘이것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리구나’, ‘이것이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게 됩니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형식만 떼우죠. ‘누구 교무 안다. 희사 얼마 했다’ 그런 것들만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안에 속 깊은 공부가 들어가야 합니다.
법마상전급 본문 보겠습니다.
3. 법마상전급은 보통급 십계와 특신급 십계를 일일이 실행하고 예비 법마상전급에 승급하여 법마상전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 |
‘일일이’는 ‘대체적으로’ 라는 소리입니다. 7-8할 정도 한다는 소리입니다. 100프로 다하는 것은 항마위지요.
법마상전급의 첫째 조항이 아만심입니다.
진리에 접근하는 걸림돌 중에 하나가 아만심입니다.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것은 아상(我相)의 극치기 때문에, 진리에 스스로 진입 못하는 장벽이요, 주변에서도 교만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고 지원받지 못합니다.
성위에 오르려면 첫째가 아만심을 먼저 없애야 합니다. 나를 뛰어 넘어야 성위에 올라가거든요. 나라는 것, 아(我)라는 것 도대체 무엇이냐 어떤 것이 나일까요?
상전급 때는 삼십계문을 받아 지킵니다.
다음 읽으시지요.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하고 우리의 경전 해석에 과히 착오가 없으며, |
사리연구 부분입니다.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분석한다는 소리기도 하지만, 실제 경계에서 ‘이것은 법이다, 마다’는 것을 분석한다는 소리입니다. 마에 속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습관과 업력 욕심이 아직 남아있어서 지기는 합니다.
100% 분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일이 분석한다는 것은 7-8할 정도만 분석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는 사리연구 부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실행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경전해석도 과히 착오가 없다는 말은 뭐일까요? 경전해석에 있어서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100% 맞지도 않습니다.
유인물 보겠습니다.
훓고 넘어가겠습니다.
법마상전급이 되면 항마위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교단의 체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덜 짓습니다.
원불교의 체계를 아셔야합니다. 이것이 연구조항입니다.
맨 위에 “일원의 원만한 진리”라고 나오지요. 우리는 일원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이지요.
일원주의는 대세계주의를 의미합니다.
‘삼학의 원만한 수행’, ‘사은의 원만한 신앙’, ‘사요의 원만한 봉공’이 원불교의 방향입니다.
삼학‘병진’의 원만한 수행, 사은‘보은’의 원만한 신앙, 사요‘균등’의 원만한 봉공입니다.
교단의 삼대목표가 있습니다.
삼대목표는 교화 교육 자선입니다.
교화 교육은 공부를 말하고요, 자선은 사업을 말합니다.
이것이 이사병행입니다.
삼대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4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반석이고, 지름길입니다. 원칙이 가장 지름길입니다.
주종과 본말이 순서를 잃지 않고 차서 있게 추진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산종사님 설명이신데요.
첫째는 공부위주 교화종입니다.
자기 공부가 된 만큼 교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건 선후가 아니에요, 주종(主從)을 의미하지요. 종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에요.
공부를 하면 교화는 되게 되어있다. 외부에서 묻습니다. 교화를 어떻게 하느냐고. 저는 간단하게 말합니다. “공부시킨다.”고요. 공부를 하다보면 교화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것이구나’ 공부하다보니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쥐어짠다고 교화가 되겠어요?
둘째 교화위주 사업종입니다.
교화를 하다보니까 사람이 불어나고 사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주를 챙기면 종은 따라 오는 것입니다. 교화를 하다보니까 사업은 따라오는 거지요. 사람이 얼마 안 되는데 사업한다고 난리이면 주종이 바뀌는 것이지요.
셋째, 사업위주 인류종이고,
넷째, 인류위주 사생종입니다.
사업은 인류위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요 실천입니다. 사요는 인류에 대한 불공입니다.
인류위주로 하면서, 사생에 대한 불공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중생은 고통스러운데 곤충연구만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대원칙을 지키는 것이 본립이도생입니다. 주종을 알아서, 근본을 세우니까 도가 살아나는 것이지요.
본립이도생으로 체를 삼고, 무본역행으로 용을 삼습니다.
좌측은 정산종사님이 내린 3대 지침입니다. 3대 지침을 정했습니다.
‘내실’, ‘세근’, ‘저력’입니다.
첫째, 내실은 정산종사 유촉편에도 나오는데, 교단의 경륜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내실의 첫째가 교재정비입니다. 정산종사께서 교재정비를 많이 하셨지요. 자료를 완전히 갖추자는 것입니다.
내실의 둘째가 기관확립입니다. 인재 경제 사업의 기본을 완전히 갖추는 것입니다.
내실의 셋째가 달본명근입니다. 근본에 도달해서 뿌리를 밝힌다는 뜻이지요. 사업에 힘쓰는 중에 각자의 사업만을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수양을 등한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본래 사회에 요달하라는 것입니다. 근본을 밝혀서 기본을 잊지 말고 충실해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정교동심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쌍두마차로 나아가는데, 국가 세계의 지도자들은 정치와 종교 양면으로 평화세계를 이루는데 힘쓰자는 것이지요.
정산종사님 3대지침 중 둘째는 ‘세근’입니다. 교단의 실력을 양성하자는 것입니다.
세근의 첫째는 교무를 양성해야 합니다.
둘째, 산업을 양성시키자는 것입니다.
셋째, 교단이 화합해야합니다.
넷째, 만나는 사람 사람을 교화를 한다는 말입니다.
다섯째, 교도를 증가해야합니다. 질과 양이 같이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정산종사님 3대지침 중 셋째는 ‘저력’입니다. 그것은 개인이 해야 합니다.
내실은 전체 세상, 세근 교당을 의미한다면, 저력은 개인을 의미합니다. 저력은 삼학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내수정력, 내연진리, 내정계율입니다. 이것이 무본역행으로서 용입니다. 본립이도생이 체고요.
대산종사님은 3대 운동을 내놓으셨습니다.
‘훈련’, ‘무장’, ‘부활’
첫째는 훈련입니다.
자신훈련, 교도훈련, 민족훈련, 인류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인류훈련을 하기 위해서 노년에도 하와이에 가셨죠. 훈련을 통해 불보살 되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셨습니다.
3대운동 중 무장은 정신 도덕 회상 경제의 무장입니다.
3대운동 중 부활의 첫째는 내 마음의 부활입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심으로, 서원으로 부활시켜서 대아(大我)로 거듭납니다. 그렇게 하면, 성현이 부활되고 도덕이 부활됩니다. 세상이 낙원세상으로 부활됩니다. 이렇게 하면 일원세상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 평화의 세계, 영육쌍전 이사병행 동정일여의 세계가 이런 세계지요. 진리도 세계도 인류도 세상도 하나예요. 동기연계 동원도리 동척사업입니다..
낙원세상 평등세상 도학과학병진세상이 일원세상인 것입니다.
여기에 바탕으로 좌산님께서도, 경산종법사님도 경륜을 내놓으셨습니다. 인터넷 검색하면 나와요.
경륜을 바탕해서 거기에 합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자력을 갖추는 것이 때로는 안으로 깊이 있게 성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맥을 잘 타는 것도 자력을 갖추는 것에 아주 중요합니다.
법마상전급은 교리해석에 착오가 없다고 했지요.
원불교가 이러한 교리로 구성되고,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제가 논문으로 ‘교단관 소고’라고 썼어요. 대종사님 일원대도로써 교단관에 맞는 주장을 하면, 주장이 각각이어도 크게 싸울 것이 없어요. 그런데 자기 생각과 자기경험으로 주장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에 근간해서 주장을 해야지요.
원불교 교리와 교단의 목표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연구력입니다. 법마상전급은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세간의 연구력과 출세간의 연구력은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지식과 지혜가 다르다는 것도 아셔야 하고요. 그래야 세간의 자본주의적 사고를 수행에 적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만 경계 중에서 사심을 제거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않으며, |
수양력을 의미합니다.
경계를 대할 때, 사심을 제거하는데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수양력은 욕심이 핵심입니다. 욕심을 서원으로 대치하면, 자기 분수에 편안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인과를 수용하게 되니까, 원망이나 과대한 욕심은 안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미가 붙어요.
상전급은 무관사에 동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내안에 너무나 많은 ‘나’가 있습니다. 그중에 법으로 마를 바라보고, 구슬리고, 제압하다 보니까, 밖을 돌아볼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관사에 동하지 않게 됩니다.
내안의 마군이랑 싸우는데 바쁘거든요. 내 안의 전투에서 때로는 이겨나가고 때로는 지면서, 내 안에서 고전하고 교전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하루 24시가 까닭 있게 마음을 챙겨나가는 것입니다. 경계를 대할 때 마다 공부찬스로 삼지요. 경계 안에 일어나는 탐진치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원리 속에서 녹여내는 공부를 해나가니까 재밌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큰 경계는 피경해야 합니다. 무관사에 달려들지말고요. 진퇴의 도가 있어야지요.
자기 성격대로 하지말고요.
그래서 수양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법마상전급에서 알게 됩니다. 수양이 깊어짐으로써, 자성의 지혜가 솟아오르게 됩니다. 그래야 제대로 견성을 하게 됩니다. 누구 말 듣고 견성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내 안에서 욕심이 비워질 때 지혜가 솟아오르게 됩니다.
법마상전의 뜻을 알아 법마상전을 하되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 대기사(大忌事)는 아니하고, 세밀한 일이라도 반수 이상 법의 승(勝)을 얻는 사람의 급이요 |
상전급은 실지 취사에서 경계에 반 이상은 이겨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기시나요? 합리화하고 핑계대고, 조건대면서 지지는 않으신지요?
실지 경계에서 속 깊이 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귀신도 모르는 적공입니다.
혼자 춤을 췄다가 눈물을 흘렸다가 혼자 박수치고 무릎을 쳤다가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자신만만하다가, 때로는 한없이 작아지다가 들쭉날쭉합니다.
법마상전급때 심신 교전을 잘 해야 합니다. 이때 마음의 힘이 쌓이고, 중생제도의 기틀이 쌓이게 됩니다.
정산종사님이 중생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아요.
정산종사께서 심신교전 할 때 자기 마음의 마군이, 외부의 마구니를 법으로 교전하면서 얻은 소득을 법문으로 쏟아내는 것입니다.
상전급 때는 사은 보은의 마음이 있지요. 교단에 출석만 하는 것은 상전급 아닙니다.
법마상전급은 “제가 이거 맡아서 하겠습니다.” 말하는 때입니다.
법마상전의 뜻을 안다는 것은 법마상전의 목적이나 방법을 안다는 뜻입니다.
대기사는 크게 꺼리는 일을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배은 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문을 어긴다거나, 불신탐욕나우하는 것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반 수 이상 법의 승을 얻습니다.
법의 승을 얻으면 누가 나를 미워해주든 이뻐해주든 상관없습니다. 내안에 있어지는 그 기쁨이 있으면, 누구한테 칭찬 받는 것이 아무 상관없습니다. 내 안에서 기쁨이 솟아오르거든요.
때로는 법마상전급 때 의두요목이 툭툭 풀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진경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법마상전급 때 체험이 생기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삼세제불 모시고 받들면서 동시에 삼세제불이 되겠다” “손잡고 함께 제생의세해보자”는 마음이 들 때가 법마상전급입니다.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