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고조선편, 엉터리 번역
현행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과 관련하여 『삼국유사』의 「고조선」 조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의 8조법이 사료로 소개되어 있다. 물론 원문이 아닌 번역문이다. 그런데, 인용된 사료의 번역이 부정확하거나 오역이 적지 않다. 먼저 리베르스쿨 교과서에 ‘환웅의 신시 건설’이라는 제목 아래 소개된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부분이다.
하늘의 제왕인 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환웅은 천하에 뜻을 품고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였다. 이에 환인은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 세 개를 주고 뜻을 펴기에 적당한 삼위태백에 내려가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3,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그때부터 환웅천왕은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인간 세상을 교화하였다. -삼국유사- <리베르스쿨, 23, 2014년 발행, 이하 같음>
이 사료는 『삼국유사』라는 출전을 명기한 이상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교과서에 수록된 번역은 대부분 의미 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지나친 의역이나 원전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삼국유사』 해당 부분의 번역문과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옛날에 환인(桓因:어떤 본에는 桓國으로 되어 있음)의 서자인 환웅이 있었는데, 자주 하늘 아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며 가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니, 이를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목숨, 질병, 형벌, 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인도하였다.
‘하늘의 제왕인 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환웅은 천하에 뜻을 품고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였다.’에서 ‘하늘의 제왕’은 원문에 없는 글이며, ‘천하에 뜻을 품고’에서는 ‘자주[數]’라는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였다.’는 번역에 해당하는 ‘貪求(탐구)’는 ‘탐내어 구하다’라는 뜻으로 ‘다스리고자 하였다.’는 번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에 환인은’이라는 문장은 원문대로 ‘아버지는’으로 하는 것이 부드러우며, 이어지는 문장인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 세 개를 주고 뜻을 펴기에 적당한 삼위태백에 내려가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는 문장에서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빠졌을 뿐만 아니라 문장 전체가 오역이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며 가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로 분명하게 나누어 옮겨야 정확한 의미가 전달된다. 또, ‘그때부터 환웅천왕은’이라는 부분은 앞의 문장과 연결하여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니, 이를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고 단락을 마무리하여야 한다. 원문에는 ‘그때부터’에 해당하는 글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을 교화하였다.’는 부분은 ‘다스려 인도하였다.’고 번역하여 ‘다스리다’는 뜻에 해당하는 ‘이(理)’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
이어서 ‘환웅 부족과 곰 숭배 부족의 통합’이라는 제목의 인용 사료와 해당 부분의 『삼국유사』 번역을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환웅에게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에 환웅은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호랑이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지냈다. 금기를 지키기 시작한 지 삼칠일(21일) 만에 곰은 여자가 되었지만,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혼인할 상대가 없어 늘 신단수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사랑을 나누었고, 웅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가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리베르스쿨, 23>
이때에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神) 환웅(雄)에게 기도하되 화(化)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에 신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百日)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어, 기(忌)한지 삼칠일(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양 단수(壇樹)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혼인하였다.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하였다. 당(唐)의 고(高)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으로,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처음으로 조선이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지냈다. 금기를 지키기 시작한 지 삼칠일(21일) 만에 곰은 여자가 되었지만,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라고 한 문장은 ‘곰과 호랑이가 그것을 받아서 먹었다. 삼칠일을 금기(禁忌)한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금기하지 못하여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로 번역하여야 한다. ‘쑥과 마늘만 먹으며 지냈다’고 한 번역은 원전과 다른 번역이다. ‘이에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사랑을 나누었고’는 ‘환웅은 이에 잠시 변하여 혼인하니 잉태하였고’로 번역해야 한다.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고 한 부분에서 원문에는 ‘국호’라는 단어가 없다. ‘처음으로 조선이라 하였다’고 번역해야 한다.
옛날에 환인과 그의 아들 환웅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므로(홍익인간, 弘益人間)…… 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령스러운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가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형벌 등 인간에게 필요한 360여 가지를 주관하며 사람들을 다스렸다. 그때 곰과 호랑이가 환웅신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 그 중에서 곰은 삼칠일 동안 금기를 지켜 여자의 몸을 얻었다. …… 이에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았으니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비상교육, 23>
이 교과서의 인용 사료는 사료를 충실하게 번역하여 소개하기보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토대로 축약하여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중간 중간 중요한 내용들을 생략함으로써 본래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면이 있다. ‘환인과 그의 아들 환웅이 있었는데’는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있었는데’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신령스러운 박달나무’는 풀이할 것이 아니라 ‘神壇樹(신단수)’라고 그대로 써야 한다. 삼국유사에는 ‘단(檀:박달나무)’이 아닌 ‘단(壇:제터)’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몸을 얻었다’에 해당하는 원문은 ‘得女身(득여신)’으로 이때의 ‘得’은 ‘能(능, 가능)’의 뜻이기 때문에 ‘여자의 몸이 될 수 있었다’로 해석해야 자연스럽다. ‘이에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는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라는 내용이 들어가야 본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 아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였다.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신성한 나무) 아래에 내려왔다. 환웅은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였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았는데, 늘 사람이 되기를 환웅에게 빌었다. 곰은 삼칠일(21일) 동안 몸을 삼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그렇지 못하여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환웅이 임시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였다. 그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단군은 요임금(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 째가 되는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천재교육, 15>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였다’는 ‘인간 세상을 탐냈다’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는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로 번역해야 한다. ‘신성한 나무’는 원문에 ‘神壇樹(신단수)’로 되어 있어 잘못된 번역이며,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는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로 번역하여야 한다. ‘檀君王儉’은 『삼국유사』에 있는 대로 ‘壇君王儉’으로 써야 하며,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는 ‘처음으로 조선이라 하였다’로 옮겨야 한다. 원문에 ‘나라 이름’에 해당하는 글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8조 법에 대한 사료 인용이다. 먼저 『한서』 「지리지」의 번역문을 살펴보고 각 교과서를 확인하기로 한다. 조선 백성의 범금 8조는, 살인하면 바로 살인으로 갚는다. 상처를 입히면 곡식으로 갚는다. 도둑질 한 자는 남자는 몰수하여 가노(家奴)로 삼고, 여자는 비(婢)로 삼는데, 배상을 하고자 하는 자는 일인당 50만을 내야한다. 비록 죄를 면하고 백성이 되더라도 풍속[민간]에서 수치로 여겨 혼인하려 해도 짝을 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그 나라 백성은 마침내 도둑질 하지 않아 문을 닫는 일이 없었으며, 부인들은 정신(貞信)하고 음벽하지 않았다. -한서 지리지-
금성출판사의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그 집의 노비로 삼으며(31)’라고 한 문장은 ‘남자는 몰수하여 그 집의 노(奴)로 삼고, 여자는 비(婢)로 삼는다.’로 번역해야 한다. 몰수에 해당하는 ‘몰입(沒入)’이라는 글이 ‘남(男)’자의 뒤에 있기 때문이다. 리베르스쿨의 ‘당시 풍속에 따라 부끄러움을 씻지 못하여(23)’는 ‘풍속[민간]에서는 여전히 부끄럽게 여겨’로 풀이하여야 하며, 교학사의 ‘이러해서 백성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아 대문을 닫고 사는 일이 없었다(21)’는 번역문은 바로 앞 문장의 중복이다.
위 내용에는 없으나 천재교육의 ‘군을 설치하고 초기에는 관리를 요동에서 뽑아 왔는데, 이 관리가 백성이 문단속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장사하러 온 자들이 밤에 도둑질하니 풍속이 점차 야박해졌다. 지금은 금지하는 법이 많아져 60여 조목이나 된다.(17)’고 한 인용 사료에서, ‘군을 설치하고 초기에는’이라 한 문장에 해당하는 원문에는 ‘설치’를 뜻하는 단어가 없으므로 ‘군(郡)에서 처음에는’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또, ‘장사하러 온 자들이’는 ‘장사하러 간 자들이[賈人往者]’라고 번역하는 것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중국 입장에서 기록한 조선(朝鮮)에 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사료로 출제된 지문이 잘못 번역되어 국사편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민원 담당 연구원과 전화로 대화한 적이 있다. 필자의 지적에 연구원은 정답에 영향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비록 정답에 영향이 없더라도 국편에서 주관하는 시험에서 지문으로 제시된 사료의 번역은 정확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돌아온 답변이 가관이다. ‘우리 역사는 사료의 정확한 번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해석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소한 번역의 오류는 문제 될 것이 없다.’라는 것이다.
국편 연구원의 답변이라 하기에는 믿기지 않아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우리 역사는 현대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90% 이상이 한문 원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료에 나타난 한문을 한 글자라도 놓치거나 두루뭉수리로 해석하는 순간 우리 역사 서술은 엉뚱한 길로 빠져든다. 그것이 바로 서술 오류가 되고 역사 왜곡이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김병헌/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