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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과 자연관
한국의 전통적 자연관
한국고대미술의 자연관에 대한 논의는 크게 자연환경과 사상적인 근간으로 나뉠 수 있다. 먼저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첫째 기후적인 요건으로 아시아 북부지역의 기후와 사계절이 분명한 온대지역으로서 대륙성과 해양성이 공존하는 대륙적이며 반도적인 기후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청명하고 해맑은 공기와 삼한사온 등 다변하는 성격을 보여주며, 두 번째로 지형적인 조건으로서 대륙과 반도적인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점이다. 이는 고대 한민족의 강역이 사방 수천리에 달하는 대륙지역과 반도형태로 삼면이 바다이며, 북서쪽으로는 대륙에 접한 지형적인 구조를 중심으로 들판과 산지로 형성되어있다는 점과 반도의 非山非野의 완만한 구릉형산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환경적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반도의 물줄기들은 400km이상의 긴 강이 6곳이나 되며, 넓은 곡폭과 완만한 경사를 갖고 있는 노년기의 평형하천적인 성격으로 구불구불하게 흐르고 있어 부드럽고 유연한 형태를 띠고 있어 완만하면서도 水麗한 자연조건을 지니고있다.
한편 우리의 미술에 반영된 이와 같은 자연환경적인 요소들은 그간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는데, 대표적인 학자들로서는 고유섭, 윤희순, 조지훈, 김원룡, 최순우, 조요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연구를 간추려보면 우리의 자연환경과 제반 조건이 전통건축과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의 공예품을 비롯하여 회화나 일상생활의 의식구조, 복식이나 색채학 등 거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자들은 한결 같이 우리의 강역을 반도 내에서만 국한시켜 당시 일본에 의한 반도 사관의 따른 것이라 보아진다. 또 그들의 학맥이 일본의 사학자들에 닿아 있음을 고려해 볼 때 그 한계를 짐작케 하며, 우리의 역사에서 고대의 주축이 아닌 삼국시대를 주 시원으로 미술과 자연관을 말하는 우를 범하였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색감에 대하여서는 尹喜淳의 저서'朝鮮美術史硏究'에서 우리의 푸르고 맑은 하늘빛을 「天玄」이라고 표현하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색채적 근원으로 보고 있다. 그는 여기서 맑고 건조한 한국의 하늘빛이 幽玄의 玄으로 淸淨無垢의 청초함으로 청자도 하늘빛을 동경함으로서 나타난 색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조선백자는 멀리서 바라본 中天의 鴉靑 하늘빛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기록은 중국의 화론을 근거하여 표현된 말이겠으나, 崔南善과 宋恒龍 등이 언급하였듯이 흰색을 陽光과 연결하여 볼 수밖에 없다는 민족색채의 자연근원설과 연결되면서 우리미술의 색채가 얼마만큼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白은 곧 거룩하신 太陽님의 妙相이요 神光이요 聖德의 發表이시다. 太陽에서 나오는 이 白光이 있기도 하며 이 世界가 淸淨도 하고 光明도 하고, 그리하여 平康하고 悅樂 하기도 하는 줄 믿었던 것이다". 송항용 교수의 이 문구에서도 흰빛과 태양이 직접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건축에 있어서도 이와같은 사상은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自然親和的인 배치와 구조, 재료, 기법 등 모든 부분에 걸쳐 적용되는 陰陽의 조화와 風水 역시 거슬러올 라가 보면 이와 같은 미의식과 신화상 전래되었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은 신화를 통한 고대의식의 유추이지만, 사상적인 차원에서 자연이 미의식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것으로 단군신화를 들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는 고대 서양의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절대자로서의 神이나 원죄론적인 그리스도교적 개념과는 달리 상징적인 의미에서 부여되는 자연의 주제자로서의 신으로 해석되고 있어서 人神, 神人的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곧 天人合一이라는 개념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함유하면서 형성되어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근거이다. 한편 김원룡은 한국미술의 특징을 “대상을 그대로 파악하려는 자연주의요, 철저한 我의 배재”라고 하여 온대지역 천혜의 자연 환경적 조건에서 자연과의 친화가 이루어진다고 하겠으나 신정일체의 세계를 살아온 민족의 특성상 신정하 '우민정치'의 대표적 요인이라 생각된다. 또한 高裕燮이 말하고 있는 자연성 즉, 「無作爲의 作爲」「無作爲」「非整齊性」등 도가적 사고방식과도 연결되는 정신성과 기법으로 진전된다. 이는 자연적 환경이나 조건이 그 주제나 형식에 있어서 色彩와 線條, 形態 등에 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의식적인 측면에서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 생활 그 자체 마져도 있는 그대로의 純朴,質朴하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미의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일본인 야나기를 위시한 여러 사람들의 이론에서도 수없이 강조되고 있어서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미의식의 자연적 요소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야나기 등의 사람들은 가급적 우리의 신정적 요인은 감추고 이를 '자연적'이라 해석하고 있는바 보다 정확한 개념요소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대의 개국신화에서 나타나는 卵生說話는 최남선이 주장한 「밝안사상」과 연계하여 태양빛을 가장 신성한 대상으로 여김으로서 백색에 대한 개념이 민족적인 색채로 생활화되어왔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이외에도 원시무속사상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삼극 사상은 신채호가 중국의 기록 '시기'에 쓰인 삼황(三皇)을 우리 삼국시대 전신인 삼한(三韓)으로 본 것이나, 최치원이 '난랑비문에'제시한 천, 지, 인의 용어나 삼교(불교, 도교, 유교)가 이미 우리 근본사상에 포함되어 있다. 란 말을 보더라도 우리의 자연관이 어떠했으리란 것을 알 수 있겠다. 이러한 神觀은 후대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습합된 陰陽五行的인 祈福信仰的 사상으로 진전되어 五方神과 색채, 四神的인 개념을 형성하는 근원이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도리어 우리의 자연스러운 기본 삼극사상이 퇴색되고 삼국시대 이후 근대에 까지 본래의 우리의 것이 없어지는 문화의 공백상태가 지속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근원은 우리의 역사가 뒷받침해 주는데, 우리의 구석기 편년을 50만 년 전으로 잡는 것이나 신석기 BC8000 의 유물이 계속 출토되고, 특히 앗선(단군조선)이 (BC2333-BC108) 개국이 말해주고 있는데, 중국이 말하는 하,(BC2000-1600),상,은(BC1600-1046),주(BC1122-256) 보다도 먼저 선 나라여서 그 삼극 문명이 반드시 '앗선'에서 하, 상, 은, 주로 흘러가 삼황으로 불린 것이며 강역 또한 황하유역을 위시하여 만주까지 아우르는 것이라 이지역 여러 매장 유물 발굴을 통하여 계속하여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관이 없었던 일제 말 학자들은 우리의 미술을 말할 때 막연한 자연관으로 '앗선'의 신정(神政)을 말할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이 현재까지 정립되지 못하는 원인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에서도 이렇게나마 자연적 환경과 자연관의 사상적 형성이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한민족의 대표적인 미의식으로 자리 잡아 오면서 대상으로서의 자연, 즉 소재로서의 자연적 개념과 의식으로서의 자연적 개념이 동시에 형성되어 생활의식 저변의 민예적 소산들 뿐 만이 아니라 가옥과 의복, 공예품, 회화 등 전반에 걸쳐서 가장 핵심적인 근원이 되어 왔다.
특히나 공예의 경우는 人爲를 거부하고 마치 자연에서 탄생되어진 것처럼 무위적인 경지를 추구하여 담백, 소박한 미감을 반영 하였으며, 청자나 백자의 경우는 기층민들의 민예적 미감과는 달리 고도의 정신적 고양이 반영되어 품격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니는 자연미의 극치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한반도의 자연환경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우리미술에 반영되어졌는데, 특히 무작위적인 미감과 백색주의, 곡선의 선율과 담백, 질박함 등은 조형예술 전반에 걸쳐 고루 나타나게 된다.
한국근대미술의 자연관
근대에 와서 자연관을 중심으로 한 우리미술의 경향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관조하는 심미의식으로서의 자연」과「소재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사대부들에 의해 유희되어왔던 경우로서 문인화나 산수화, 화훼화 등이 중심이 되어온 소재의 성격상 이미 그 대상의 선택이나 구성만으로도 자연적인 경향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詩文과 철학적인 사상을 통해서도 무한한 자연의 찬연이나 궁극적 이상향을 자연으로 귀의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이는 이미 심미대상으로서의 자연과 미의식으로서의 자연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으며, 회화에서 자연을 주제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인 산수화에서 그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산수화는 중국 당나라 '장언원'이나 '형호'의 화론을 빌리자면 '화'의 기원을 '역'에 두고 있는데, 그 역의 기원에는 그림과 글의 시작을 같이 보고, 하도, 낙서, 갑골 등 소위 중국의 고대국인 상, 은, 주시대로 소급하고 있고, 이 시대에 함께 존재하였던 고조선의 실체를 역사에서 삭재 한 관계로 당시 이후 역사서의 부분 부분에 기록된 당시의 상황을 유추하여 볼 때 당시의 상, 은 시대는 고조선의 속국이였거나 간섭을 받던 나라였고, 주나라대에 고조선과 균형을 이룬 나라로 보아진다. 그러므로 중국의 역사, 문화의 시원을 말하는 기록마다 이 상, 은, 주의 삼황의 시대를 막연히 신정을 하였던 관념적인 나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화가들의 화론에는 그러한 이상향 즉, 신정(神政)과 인정(人政)의 조화로운 이상세계를 '삼황오제'의 이상향으로 말하면서 '산수화'란 이러한 이상향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였으며, 그러한 것을 그리는 의의나 방법이 '육필'로 쓰여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후대 송나라대의 수묵화의 등장도 이러한 예술창작 의욕을 인간역사의 부정형으로 반성과 신정의 복고에 있는 추상충동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국의 산수화는 우리의 조선후대 '진경산수화'가 등장하기 이전 까지는 모사의대상이 되였으며, 일종의 모화사관이 겠으나, 당연시 되어 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국 화가들이 그린 산수화가 곧 우리의 신정을 상징하는 그림이며, 그림에 등장하는 신들 또한 우리의 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유로 우리의 산수화와 중국의 산수화의 구분이 모호하고 일견 우리의 것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그 옥석 가리기에는 방대한 학제간 연구가 뒤 따른다 하겠다. 근대 한국산수의 중요한 역할을 한 제1세대 趙錫晉과 安中植의 산수화와 당시 그들의 제자이거나 그 연령층에 속하는 제2세대인 이상범, 변관식, 허백련, 노수현, 박승무 등 이른바 6대가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작가들의 경우는 위의 소재적, 내용적인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한 바로「관조하는 심미의식으로서의 자연」을 구가하였던 작가들로서 유명하다. 그런데 이들의 자연관은 제1, 2세대가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조선조후반 까지의 慕華思想의 한 지류로서 중국 南宗文人畵類의 경향과 기법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관념적 사조에 가까운 제1세대의 조석진과 안중식의 자연관은 「觀念的 自然觀」에 경도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실제 한국적자연을 심미대상으로서의 자연으로 묘사하거나 소재로서 다루었다기 보다는 중국적인 자연을 모사하거나 상상으로 「관념적소재화」하였던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연에 대한 이상향을 추구하면서도 이를 형식에 의거한 기법적 傳受에 의해 자연관을 구현하려는 경향을 띠게 됨으로서 일단의 도식적인 경향의 관념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하여 후자인「소재적 대상」 으로서의 자연은 1910년대 중반 이후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 백남순, 임용련, 이종우를 비롯하여 이인성, 도상봉 등에 의해 유화가 도입되면서 형성된 현상으로서 자연대상에 대하여 사의적인 性情이나 사변적인 이데아를 크게 부여하지 않았으며, 이를 여타의 소재와 평등하게 취급하면서 전통회화에서는 극히 보기 드믄 사실인 인체를 도입하고 자연이 인체의 배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을 새롭게 형성하였다. 그 가장 좋은 예로서 김관호의 졸업작인 「나부」를 시발로 들 수 있으며 나혜석과 이종우의 인물들은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근대는 이처럼 서양미술의 도입이 초기상태에 속하기 때문에 자연은 서구적인 해석론보다는 관념적심미의식이 주류를 이루는 시기였으며, 현대 서구사조의 모더니즘이 도입되면서 본격화되는 50년대 이후에야 인간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과 사회적, 예술론적, 철학적, 심리적 조명이 투여됨으로서 자연이 그 자체만으로도 미적 가치를 지니는 풍경화적인 경향을 보이거나 현대사회의 기계문명과 사회심리적인 요소들과 동등한 소재로서 물질적인 매체로서의 단계까지 진전되어진다.
1950년대 이후 본격적인 서구미술의 수용과 함께 우리미술의 의식구조는 전반적으로 많은 지각변동이 있었지만 자연관에 있어서는 위에서 살펴본 전통적인 심미대상으로서 관념적 자연주의 대신 보다 간접적이라고 볼 수 있는 독립적인 소재 그 자체로서의 자연과 함께 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전통적인 관념적 이데아의 세계를 적절하게 수용한다. 여기에 물질적 매채화가 이루어지고 더욱더 진전되면 이를 극에 달한 인간성의 황폐화와 후기산업사회의 현실발언적인 의미로서 자연을 해석하는 등 어느 정도는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어 근대와는 분명히 다른 국면으로 전개된다.
이는 물론 근본적으로는 동서양미술이 갖는 이질적인 사상적 근원으로부터 쉽게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현실에서 양자를 적절히 혼합하려는 본능적인 시대사조를 반영한 한국미술계만이 갖는 특유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불과 7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와 같은 서구사상의 도입 이후 물론 과거의 전통적인 관념성과는 그 기법과 방법론은 다르지만 한동안 유채나 여타의 복합매체를 재료로 사용하면서도 그 내면에서는 전통적인 자연관이 미의식 깊숙히 자리하는 경향들을 많이 대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단순히 소재만으로서 자연이라기보다는 위에서 살펴본 양대 경향 모두를 어느 정도씩 혼용한 소재와 심미의식으로서의 자연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의식이 진전되면서 현대의 김환기에서 볼 수 있듯이 고도의 단순화된 추상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서도 자연은 여전히 그 무한한 잠재적인 지표로 남아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이처럼 한국의 근, 현대미술에 있어서 각기 다른 의식과 방법론을 구사하면서도 여전히 자연관에 대한 짙은 관심과 그 미적 반영을 시도하였던 주요경향을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는 전통적인 관념소재의 의미에서 반영되어진 동양화의 산수화나 화조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물론 옛부터 내려오는 天人合一的인 의식에 근거하여 자연친화적 관념산수에서도 볼 수 있는 이상향적인 개념으로서의 자연관을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제시기와 70년대 이후에는 한국적인 實景을 바탕으로 한 鄭선畵派式의 경향이 등장하였고 그후에는 여기에 일부 서구적인 원근과 투시법이 적용되는 회화론적 변화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로는 서구미술이 유입되고 난 후부터 등장한 풍경으로서의 자연주제는 사실성을 띤 서양화에서 주로 풍경화(landscapepaing)개념으로 정착되어졌다. 이는 르네상스시대의 다빈치나 A. 뒤러 등 이후로 바르비종파나 인상파에 이르면서 형성된 일원적 원근법과 투시법 등이 수용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미 서구의 미술사에서 인지되듯이 기존의 전통 동양화에서의 이상향적인 관조나 사유를 통한 사상적 반영 대신 풍경을 단지 객관적인 대상으로 해석하려는 의식을 바탕으로 하였다.
세 번째로는 抒情性과 이미지로서의 자연을 들 수 있는데, 감상적인 자연미감과 정취를 소재로 하거나 기법적으로 채용하는 경우로서 한국적인 생활저변에서부터 자연의 이미지, 그 詩意性, 상징적인 기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향에 반영되어진다.
네째로는 대상으로서의 자연관 뿐 만이 아니라 미의식에서 출발하여 간접적표현이 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한 현대미술 전반적인 경향으로서 다양하게 다루어졌다. 이는 대체로 구상성이 무너져가면서 야기된 추상적이거나 실험적인 사조와 자연사물을 오브제로서 物性化하려는 의도나 나아가서는 자연 그대로를 연희의 대상으로 해석하여 대지미술(Earth Art)과 환경미술(Enyironment)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연결하여 도시환경과 자연, 인간과의 역학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을 구사하게 된다.
여기에서도 자연이나 그 서정성은 여전히 그 주제가 되었으면서도 과거와 같이 그 1차원적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내지 않고 간접적인 색채나 기호화, 점과 선, 면의 기초적인 조형성에서 은유거나 차용되는 경우가 주류를 이루었다. 추상회화의 경우에 있어서 김환기나 유영국과 같은 작가는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정형화된 범위로서는 규정하기가 힘든 경우로서 복합적인 상당수의 작가들에 의해 전위적인 사조에 다각적으로 반영되거나 신구상성으로 진전되면서 자연은 급기야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원과 우주론적인 논의까지 포괄하게 된다.
다섯째로는 모더니즘적 경향으로 등장한 無爲的사유로서 자연의 근원을 향한 非人爲性, 非物質化를 중심으로 한 모노크롬의 경향을 들 수 있다. 이는 거시적인 자연관으로서 70년대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수용과 함께 한국적인 자생적 사상과 예술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드러나게 된 자연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道家의 철학적인 경지를 반영하여 人爲性이 극도로 절제된 개념적인 세계관이 등장하며 「無作爲의 作爲」라는 고유섭의 미학적인 사상과 연결되어지는 秘意性을 구사하면서 동서간, 고대와 현대의 극적인 랑데뷰를 시도하게 된다. 이는 곧 무위적인 차원으로 직결되어 자연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려는 사조로서 단색주의의 모노크롬(Monochrome) 나타나게되며, 이어서 그린버그가 논했던 매체순수주의와 환원주의 미학에 자극되어 일본의 모노파(物派)가 나왔고, 어느덧 한국적인 모더니즘의 한 구조를 이루어갔다.여섯째로는 현실발언적인 시각으로서 기존의 유미주의와 달리하는 민중적, 역사적인 삶의 미학체계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일련의 경향을 들 수 있다.
관념적 소재로서의 자연
동양미술에서의 관념은 그야말로 寫念과 意念의 단계를 넘어선 최후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념은 형상성을 띄면서도 일차원적인 형상이 아니며, 자연의 대상을 표현하였으면서도 단순하게 유희된 형상적인 지지체 만으로서의 일차원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의 독립적인 가치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자연의 표현과 접근이 극히 玄學的이며 그 내면적으로 추상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한국 근현대미술에 있어서 자연적 관념은 바로 이와 같은 특징을 내재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의 근대적사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상황과 이를 다시금 한국화단의 실정에 알맞는 상황으로 전이되어지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서 산수화의 경향에서도 다소 여러 부류의 관념적 경향이 대두된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면 안중식과 조석진의 관념적인 산수화가 중국의 淸代 四王吳운 이후 법칙적인 관념산수에 치중했다고 하면, 이상범과 변관식 등에 의해 형성된 산수는 한국적 자연과 그 자연미학적인 서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관념산수를 구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부드러운 淡彩를 곁들인 그 새 시도들은 1950년대 중엽 이후에 전개되는 전형적인 한국의 山野와 계류, 외롭고 가난한 農家, 그리고 그속에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靑田 예술의 전형적 絶頂 단계를 유도한 것이다. 그 유도란 다소 생경했던 초기의 시도가 차차 깊은 野趣 분위기와 청신한 大氣感을 갖는 풍부한 水墨 경지의 필치와 淡彩의 효과적 조화로 연결된 것을 말한다. 이구열이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전형적인 한국의 산야나 계류를 소재화 하였으며, 이와같은 靑田과 小亭의 철저한 한국산수의 서정성의 면모는 제 1세대들과는 분명히 다른 경향으로 진전된 것이며, 30년대의 시발을 거쳐 해방이후 70년대까지 계속되어진다. 근년에 들어서 小亭 卞觀植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상향조정되고 있는 것은 그의 기법적 경지만이 아니라 積墨法과 拙巧의 경지를 이루는 무기교적인 朴拙性을 비롯하여 바로 우리의 자연을 가장 한국적인 관념적 서정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비롯된다. 물론 청전 또한 같은 맥락이기는 하지만 小亭 만큼의 한국성이 부여될 수 없는 기법적 문제점과 지나치게 일관된 소재의 한계성이 있다. 또한 허백련이나 박승무, 이용우, 배렴 등 일련의 산수화가들은 이와는 다소 다른 자연관으로 해석하고는 있지만 결국에는 그 전통적인 武陵桃源式의 관념성을 바탕으로 하여 이를 어떻게 한국적 자연과 서정에 부합하는 경향으로 전이시킬 수 있는가를 부단히 시도한 작가들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후의 제3세대인 장우성, 이응노나 김기창, 성재휴, 박노수, 서세옥, 이열모, 이영찬, 김동수, 김원, 송영방, 송수남, 임송희 등으로 이어지는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독자적인 해석은 위의 관념적 대상으로서의 산수화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인적인 함유와 상징으로 이어지는 내함적인 경향이나 서구사조와 혼합된 해체가 시도되고 기호화한다든가 전통적 개념의 산수라기보다는 풍경이라는 보편적인 대상으로서 상징성을 구가하고 더욱 철저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한 자연관 등을 형성하였다. 특히 장우성과 박노수, 서세옥, 이종상 등에 의한 문인화적인 자연관의 전개는 전통회화 부분에서 새로운 탈출구로서 제기되는 가능성을 부여하였으며, 서구사조의 유입 이후로도 동양회화가 갖는 관조적인 특징과 무한한 철학적인 사변을 통한 자연친화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이들에 이르러서 급기야 武陵桃源式의 전통적인 관념산수의 정형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어가지만 크게 보면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인 자연관이 뒤바뀐 것은 여전히 아니다. 다만 회화에 있어서 자연의 의미를 보다 거시적으로 해석하고 본질적으로 탐닉하려는 의식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였을 뿐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매재인 筆墨과 종이가 원천적으로 갖는 玄學的인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원인이 있겠지만 자연과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文人精神이나 道法自然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70년대 이후로 등단한 작가들로 이어질수록 상당수의 작가들에게서는 적어도 관념적자연관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게 전개된다. 점진적으로 자연적 관념주의가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그 두 가지만을 이유로 들면 하나는 어쩌면 유교적인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옛부터 유전되어오는 자연에 대한 崇古的인 사상에 너무나 깊이 빠져있어 전통적인 기법이나 형식을 지나치게 정형화하거나, 그 형식에만 치우친 나머지 가시적 가치로서만 해득되는 정반대되는 부정적인 시각의 관념으로 흘러버린 경우이다.
두번째는 보다 철저한 자연사상에 의거한 동양정신의 탐구와 명멸하는 시대사조에 적극적인 대처를 게을리 해 왔던 것도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특히 인본주의의 물결이 급격하게 명멸하게 된 우리 현대사회의 변천에 기인하여 야기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현대는 지나치게 고매하고 비약적이기까지 한 형이상학적인 관조의 경지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철저한 실증적인 단계적 실증과 합리적 사유와 관념, 합리적 자연의 접근이 도래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한 증후군으로서 나타나는 결과물이기도하다. 최근의 청년작가들에게 있어서 이와같은 문제점은 바로 文房四寶, 그것이 바로 전통화의 표징인 것처럼 여기는 극단적인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풍경화로서의 자연
고희동과 김관호, 나혜석, 이종우, 백남순 등에 의해 서양화가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대표적인 자연관의 변화는 자연이 철학적 이상향으로서 품격과 철리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때에 따라서는 고도의 현학적인 우주관을 음미하고 은유하려던 전통적인 사상과는 달리 하나의 평범한 심미적 대상으로서 간주되었거나 단순히 인간을 표현하는 배경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경우는 19세기 인상파에서처럼 고전주의나 사실주의시대를 넘어서서 자연이 갖는 원초적이고 절대적인 미적가치와 대상으로서의 해석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는 또 다른 수동적인 측면이 부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미술사의 명암으로 남게 된다. 해방이후의 많은 풍경화적 경향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하게 되지만 그 과도기에는 동양적 전통과 맞물린 산수화적인 풍경화가 등장하게 되고 이른바 풍경화적인 산수화가 등장하여 혼재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단계적인 변화를 보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백남순의 「낙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명료하게 관념적 구도와 공간배치에 이상향을 꿈꾸는 무릉도원식의 전통적인 산수풍을 구사하고 있다.
백남순의 낙원은 일견 동양적 유토피아로서 무릉도원(武陵桃源)과 서양적 유토피아로서의 에덴동산이 기묘하게 융화되어진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과 물과 다리와 폭포 등 산수의 경관은 관념산수의 전통적 소재를 그대로 따오고 있는 반면, 풍경 속에 점경되는 여러 인물의 설화적 설정은 다분히 에덴의 낙원을 연상시키게 한다. 오광수의 표현대로 서양화의 일련 경향들에서는 에덴동산과 전통적인 산수와의 소재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구사하고 있었다. 특히나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유입된 초기의 서양화에서는 일본을 통하여 유입될 수 밖에 없는 경로를 거쳐야하였기 때문에 인체중심의 문학적이거나 현실적인 리얼리티로부터 전이되어지는 경향이 아닌 일본식 아카데미즘에 기인된 형식적인 유형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제2세대라고 볼 수 있는 오지호, 도상봉, 이마동, 이병규, 박고석, 이대원, 김원, 최덕휴, 이종무, 손일봉, 임직순, 박득순 등에 이르러서는 이와 같은 문제들이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고전주의와 인상주의를 비롯한 서양의 전통적 경향이 자아적으로 이해되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오지호의 한국적 자연에 입각한 빛과 색채적인 연구는 그의 '현대회화의 근본문제'에서 잘 다루고 있다. 그는 여기서 한국의 대기는 투명 명징하여서 거의 원근을 구별하기가 힘들며 물체의 내외부가 투명하고 명징한 색조를 발휘하며 선명, 미묘, 섬세함을 이루고 있다는 등의 이론을 말하는 등 보다 심도 있는 색채학적 접근을 통해 한국적 풍경으로서의 자연관을 유채로 표현해내는 계기를 이루게 된다.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이기는 하지만 박고석과 같은 경우는 1974년 개인전을 기점으로 하여 그의 전형적인 산시리즈가 강하고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적인 정서를 논하기 이전에 작가자신의 개성과 자연친화적인 세계관의 천착과 함께 형성된 화풍을 구사한 것으로서 보다 독자적인 자연관을 찾아가게 된다. "그 즐거움은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의 경험이 매우 행복했다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닐까요. 내가 계속 그리고 있는 나무 연못은 어린 시절 그곳에서 뛰놀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처음 눈떳던 나의 우주였읍니다." 이대원의 이 말은 박고석의 산시리즈나 황염수의 장미, 김영재, 최근 김종학의 산, 김경인, 허계의 소나무와 같은 의미로서 이미 하나의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생명력을 부여하는 집중적인 관류를 말해 주고 있다. 이처럼 풍경화로서의 자연은 서양화가 도입되어지면서 동양적 현학의 세계관 대신 단지 보편적인 대상으로서 인식되어질 수밖에 없는 의식적 변화를 거치게 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한국적인 자연과 그 서정에 천착해 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서정성과 이미지로서의 자연
특히나 미술에 있어서의 서정성은 대단히 넓은 의미를 포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구상과 추상, 재료적인 의미를 넘어서 작가를 막론하고 이미지로서의 접근 방식과 맞물려서 어느 정도는 잠재적으로 거치게 되는 과정으로서 간주될 수 있다. 더욱이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자연적 서정을 논하게 되면서 제기되는 것은 어느 민족보다도 우리의 경우가 비단 미술 뿐 만이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등에서 고대부터 자연친화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자연적 서정이 짙게 배어져 있음으로서 현대미술에서도 광범위하게 작용해왔다. 비교적 서정성과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가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박수근이나 이인성, 윤중식, 최영림, 박창돈, 이대원 등 과 같이 비교적 사실성을 구사하면서도 그 서정성을 구사하고 있는 경우와 김환기를 위시하여 추상과 구상성을 망라한 일부경향을 들 수 있으며, 또한 장욱진, 이왈종과 같이 유희적인 느낌으로 녹아있는 예도 볼 수 있다. 이 중 박수근의 抒情은 우선 한국적인 서민들의 채취가 물씬 풍기는 質朴하고도 가장 일상적인 평범한 소재나 그에 부합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劉俊相은 이를 “문명적인 것이 아닌 古拙的인 것”으로 비유하고 있지만 그의 세계는 한국의 자연과 그 자연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가장 평범한 장면들을 표현한 경우로서 재질감까지도 그야말로 질박한 고졸적인 미감을 구사하고 있다. 한편 이에 비하여 윤중식이나 최영림은 지극히 문학적인 내용으로 童話的인 화면을 구사하여 장욱진의 유희적인 서정성과도 연결되는 구상성을 전개하였다.
바람, 해와 달 그리고 별, 말없이 서있는 나무, 새들 그리고 가장 선의에 찬 아동만이 그의 인간선의를 배반하지 않는 친구였었다. 여기에 가장 신비로운 장욱진의 자연숭배 사상의 바탕이 있다." 이경성의 이와 같은 표현은 그가 얼마만큼 원초적인 자연친화적인 작가였는지를 쉽게 대변해주고 있다. 경우는 다소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손동진, 이세득, 박재호, 강대운, 홍정희 등의 작업에서도 자연의 이미지가 숨쉬고 있다. 그것이 자연의 근원적인 색채나 형상의 본질탐구라는 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던, 문학적인 詩意性을 동반하고 있던 서정적인 감성을 근거로 한 일루전(illusion)적인 추상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된 의미로서 접근된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구상적 소재로서의 자연이라기보다는 회화적 隱喩, 즉 그 메타포(metapho)로서 추상적 포말과도 같은 감성언어들로 서정성이 표현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는 김환기의 한국적 자연서정의 세계로도 확장되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적 정체성과도 만나게 되는 純素한 색채나 공간감, 투명성과 明澄이 거론될 수 있는 단편을 형성하게 된다.
이세득이 비교적 서정적 추상으로서 단청이나 색채미학적인 인상을 주로하는 은유를 반영하고 있다면, 박재호는 오랜 동안의 「자연이미지」시리즈를 통해 추상적 기호로서 구조화되면서도 자연의 순수성을 연상케하는 투명한 색채에 의해 비교적 직접적인 이미지를 은유하여 왔으며, 홍정희가 탈이미지로서 해채된 단면적 화면을 구사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 흐르는 정서로서 자연을 느끼게 된다.
김환기의 傳記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가 얼마만큼 한국의 자연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수많은 뉴욕시대작업에 녹아있는 한국적인 색채와 점묘들은 그가 오랜 동안 즐겨하던 백자의 곡선을 연상케 하는 線描의 미감이 渲染되어가면서 뉴욕시대의 절정기에 도달하게된다. 이처럼 김환기와 한국적 자연은 50년대의 「산」과 「하늘」「날으는 새」씨리즈로 60년의 달, 새 등의 소재를 거쳐서 「무제」와 70년대에서 보여준 완전추상으로 이르는 뉴욕시대까지 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술세계의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던 것이다. 한편 유병엽과 김경인, 한풍렬, 허계, 황창배, 정종해, 박종해, 김호득, 김병종 등 최근 작가들의 일부 또는 대체적인 경향이 각각 구상성을 동반하여 자연서정과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 중 유병엽의 질박한 재질감은 고도의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면서도 일면에서는 질박한 한국적 구상성을 엿보게 하며, 박종해의 초월적인 자연관류에서는 무한한 자연의 자유 여행을 맛보는 속도감과 생동감 있는 氣息의 정신세계를 내재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서정적 미감으로 와닿는 작가와 경향을 정리해보았지만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자연서정과 이미지는 이미 그 본질적 탐구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론적인 언어구조에서만 다를 뿐 상당수의 작가들에게 잠재적으로 내재된 요소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서정성과 이미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표현방식이나 의식구조에 있어서 모더니즘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던 이후 첨예한 정보화시대에 돌입하면서 物神만능주의에 의지하려는 절대성이 등장하게되고, 동양, 한국적 패러다임이 퇴조함과 동시에 현실세계에서의 불안과 감각적인 가상매체에 대한 몰입, 자아정체성의 몰락이 야기되면서 개념적 物性을 매체로하는 사조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명멸하는 현실발언과 물질언어로서의 휴머니티가 자연정서를 대신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추상, 미적 기호, 복합언어로서의 자연
이미 30년대 이후 추상의 도입과 함께 자연관의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어졌고 그와 함께 자연을 조형적인 기호로 전이시키면서 보다 복합적으로 대입하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대지미술이나 행위미술적인 주요 매채나 대상으로 사용하거나 오브제로서의 물질적매재나 상징체계의 언어형태로 보는 예도 탄생하게 되어 보다 다의적인 해석에 불을 붙였다. 그 중 추상회화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면 金煥基와 劉永國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자연이 갖는 미의식의 세계를 현대화한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을 수 있다. 물론 김환기를 서정적추상이라고 한다면 유영국은 차거운 추상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천착해보면 이들에게 있어서 이 양자는 그 분류가 불필요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만큼 이 두 작가는 전 생애에 걸쳐서 그 형식에 있어서 초극적이며 내면적으로 뜨겁게 흐르고 있는 한국적 자연의 미감을 강하게 세례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김환기의 50년대는 유채로 그린 현대적 문인화의 면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묵선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후 많은 과슈작업에서도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70년대의 점 시리즈에서 그는 수묵화에서 가장 즐겨쓰는 渲染기법을 이용하여 水性質的인 潑色으로 기하학적 기호로 반복되는 화면의 단조로움과 유채의 재질적 구조를 차별화하고 色点의 기호에 의해 연출되는 무한한 대우주의 세계를 창출하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尹喜淳이 말했던 맑고도 투명한 한국의 공기와 하늘에서 비롯된 쪽빛 푸른색을 비롯한 순소한 자연의 색채를 연출하는 자연의 유산으로서 위의 두사람 이외에도 많은 작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이같은 김환기의 서정성의 일면에서는 특히 70년대의 점묘시리즈에서 기하학적인 질서가 내재되어있으며, 그 질서의 내재율에 의한 수평적인 통제와 함축으로 나타나는 기호학적인 정서에 의해 우리는 구체적 형상을 초월하여 오히려 그 보다 더욱 감동적인 자연의 진한 색채를 세례 받게 된다.
이것이 김환기의 미의식적 자연세계이며, 동시에 서정주의적 추상의 세계이다. 이에 비해 유영국은 50년대와 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추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자연을 화면의 기하학적 언어로서 해득하게 된다. 그렇지만 유영국은 극도로 제한적인 선의 사용과 그의 눈부실 정도로 강렬한 색채미학을 통해 날카로운 면분할에서 야기되는 충돌을 보완하며 오히려 화면을 뜨거운 抒情으로 전환하는 추상적인 풍경화를 선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영국의 세계에서도 우리는 차거운 추상으로서만이 아닌 뜨거운 서정성이 근저에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작가를 통해서 우리는 50년대 말의 신추상(New Abstraction)이나 하드에지(Hard-Edge)와는 완연히 구분되는 현대적 한국의 자연주의를 구가한 독자성을 발견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보면 추상이면서도 자연의 구상적 세계를 구사한 서정성이 느껴지게 된다.
위의 두 작가의 경향 이외에도 자연을 미의식으로 해석하고 주제나 내용으로 하는 예는 그 방법적으로는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지만 최만린, 이종상, 홍석창, 정명희, 배동환, 박동인, 안병석, 김천영, 이영희, 김병종, 이철량, 노은님, 지영섭, 이종목, 정종미, 이민주, 김선두 등과 이외에도 정형화된 계열로 규정할 수 없는 상당수의 작가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다수가 서정적 정취를 동시에 구사하면서도 신구상, 문인화, 도가적인 우주론과 등 다양한 경향에 바탕을 두고 있다.
天, 地, 陰陽, 氣, 生, 日月, 點, 胎 등으로 나타나는 존재의 생명과 자연관을 반영하는 동양철학적인 입장의 최만린은 생명의 형태와 자연 사이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지공간의 점으로서 자연과 일체화된 관계를 형성한다. 한편 이종상은 그가 주창하는 現代眞景의 사상을 구현하는 과정으로서 源形象시리즈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곧 가장 한국적인 조형을 요구하는 자연으로서
풍수학적인 背山臨水의 형태를 갖춘 조형미를 선택하여 일관된 주제로 전개해왔던 경우이다. 이러한 경향은 서세옥이 추구해온 무위자연의 道家的인 관념이전의 근원탐구와 이어지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이철량의 神市시리즈나 민화의 해학을 보는 듯한 자연유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선보여온 김병종과 함께 모두가 그 방법론은 다르지만 자기해석의 과정을 거쳐서 현대적 미의식으로 해석된 경향들이다. 김천영의 옴니버스시리즈에서 보여주는 星座를 중심으로 하는 만다라적 조형기호와 도상학적인 해석 역시 모두 좋은 예이다. 한편 오브제로서의 자연적 차용이나 메타포로서의 의미는 특히 나무나 돌, 물과 흙 등 원초적인 소재들이 모더니즘작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구사되었는데, 이는 조각가들과 미니멀리스트들을 중심으로「物性의 재발견」이라는 대명제하에 이루어진 새로운 국면의 자연관으로 연결되었다. 또한 다수에 걸쳐 시도되어왔던 자연 속에서의 행위, 환경예술과 최근까지 자연미술제를 개최하여온 청년작가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을 화포로 해석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유기적인 조화를 꾀하려는 행위적인 소산으로 풀어나가는 일련의 그릅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모더니즘의 無爲的 자연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모더니즘을 「자기한정과 비판, 환원」 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듯이 미니멀리즘의 수용이후 한국미술계의 커다란 기류로 등장했던 것이 바로 모노크롬(Monochrome)의 백색주의였다. 이는 회화가 일류전적인 요소들을 배재하고 평면적인 환원과 물성의 본질을 탐색하는 관류와 개념의 사유가 지배적으로 팽창하였던 70년대의 모더니스트들의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으며 동시에 동양적, 한국적인 정서의 자연철학적인 정체성으로 회귀하여 그야말로 자기 환원을 추구하게 되는 직간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이우환의 모노파적 파장과 연대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박서보, 정창섭, 윤명로, 윤형근, 심문섭, 이동엽 등은 서구적인 미니멀리즘이나 일본의 모노파와는 다른 차원의 독자적인 성격의 모노크롬을 전개하게 된다.
그 가장 중요한 정신적인 자양분이 되었던 것은 바로 「無爲정신」과 「백색」으로 이어지는 자국적인 전통사상이었으며, 그것은 곧 개인적인 또는 연대적인 정체성으로 이어지면서 과거의 자연적 해석과는 전혀 다른 국면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다만 극단의 간결성과 단순화, 개념적 경향으로 치닫던 미니멀리즘의 특징에서도 차별화되는 자생적인 문화의 현대적 해석으로 연결되는 독자적인 철학과 방법론을 병행하면서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비추어졌다. 이윽고 이는 종이작업의 시도에서도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관류되는 발견과 실험이 계속되는데, 그것은 마치 긴 외지의 여행을 거치면서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성장해왔던 토양에 대한 무한한 변용과 가능성으로 회귀하는 듯한 모더니즘의 단면이었다.
형태도, 색의 대비도 벗어버리고, 콤포지숀도 포기하며 마침내는 자신의 作業手段을 모노크롬의 마티에르(바르는 일) 와 검정 연필의 반복되는 스트로크(線을 긋는 일) 만으로 환원해 버리고 말았다. 이같은 박서보에 대한 미네무라 도시아끼(峯村敏明)의 표현은 구조화된 반투명성을 논하는데서 극명하게 드러나며, 이동엽과 정창섭이 나의 백색화면은 意自然의 세계를 제시한다. 존재의 根源的지대,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공간이나 눈에 보이는 가시적 공간을 넘어 존재하는 정신의 대지이며 자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60年代에 나는 서구적 앵포르멜의 양식을 동양적 미의식의 논리로 수용하려 하였다. 그러면서 70年代에 오면서는 더욱 東洋的 「時空」 속에서 어떻게〈그림〉이 자연스러운 內在的 韻律을 지닐 수 있을까에 더 주안 하였던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일체의 형상과 이미지들의 일루전(illusion)을 탈피한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지만 김복영이 권영우의 작업을 「白紙委任」이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근본적으로는 그야말로 정신의 대지로서, 내재적인 운율을 추구하는 환원적인 투명성으로서 역사적인 유산으로 계승되어왔던 무위자연의 세계로 향하는 근원의 탐닉으로 전환되어졌던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다소 차이를 지니지만 이와 같은 경향은 박장년, 이강소, 박석원 등과 함께 접근방식을 달리하고는 있지만 권영우와 배륭, 김형대, 송수남의 일부작업과도 연결되는 한 사조로서 현대적인 자연관의 해석을 시도하였던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권영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종이 그 자체를 표현수단으로서 媒材化하고 전통종이가 지니는 물성을 이용하여 긁고 자르고 베어나오는 자연스러운 潑色을 통해 극도로 절제된 세계관을 구사하고 있다. 배륭과 같은 경우는 윤회되는 자연의 餘韻과 여백을 투명한 먹의 농담을 통해 자신의 존재양태로 환원하여 표현하고 있다. 심문섭은 「現前」시리즈를 통해 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향기, 즉 물성의 본질과 재료의 맛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스러움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으며,「木神」에서는 선조들의 생활과 함께 해왔던 도구로서의 절대 존재로서의 神話的 해석이 곁들인 단순화에서 위의 모노현상들과의 연대적인 의식을 발견 할 수 있다. 또한 김형대가 한국의 전통가옥이나 나무 결의 자연스러움 그대로에 관심을 집중해 온 것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향들은 80년대에 와서 지나친 독자성의 자기 도그마(dogma)적 요소가 대두되어지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그 후속적인 논리나 그 연속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할 정체적미학의 심도에 깊이를 지니지 못한 채로 관념적 반복만을 거듭하게 되는 현상을 야기하여 후속적인 전개에 일단의 한계를 보이게 된다.
현실 발언적 자연
90년대에 급속하게 분화되어지는 여러 현상과 함께 민중미술로 지칭되는 일부작가들에게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서 삶을 반영하는 현실발언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이는 그간 唯美主義나 心象的인 이상향에만 치우쳐 있었던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반문을 내던지면서 자연이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닌 삶의 중요한 터전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주로 농민들의 삶과 가리워졌던 서민들의 현실 그대로의 생활과 그 서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그 소재가 농촌의 들녁이나 도회의 뒷골목과 같은 음지가 등장하였고, 서정적인 표현 못지 않게 그야말로 최민이 임옥상을 표현하면서“매우 커다란 목소리로 웅변하는 듯한”강한 이미지의 현실고발성작업들이 등장하였다. 또한 구상성을 띠면서도 우리민족만의 정서와 감각이 바탕이 되는 전혀 다른 개념의 소재나 흙을 직접 사용하는 등 질료의 마티에르 등이 무채색을 동반하면서 質朴한 민중적인 정서로 형성되어졌다.
김정헌, 손장섭, 임옥상, 손상기, 강요배, 이종구 등 일련의 작가들이 민초들의 현실과 직결된 작업을 많이 남겼으며, 과거 살롱식의 전형적인 규범과 인상파이후의 심미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해왔던 경향과 그 의식구조와 방법론을 전혀 달리하면서 청년세대의 새로운 자연관에 적지 않은 자극과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나 김정헌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유미주의적인 심미대상이기 보다는 민중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수단으로서 소외된 농촌의 현실을 기록하기 위하여 관리되고 지배되어진 땅으로서 의미보다는 농부들의 가장 소중한 터전이며, 가장 원초적인 대명사로서의 흙의 의미를 보다 전면적으로 부여한다. 그러므로서 질갱이처럼 끈질기게 영위해가고, 또 스러져가는 민초들의 애환을 농부들과 함께 대비시키는 등 삶의 터전으로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들이 보여준 비판과 역사의 창과 같은 삶의 함성이라고 볼 수 있는 세계관은 나아가 분단의 비극을 그려내는 이데올로기의 역사성을 시사하는 단계로까지도 진전된다. 이는 모더니즘의 물결이 주류를 이루던 7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일루전적인 幻影에 입각한 이상향적이고 순수미로서의 상징성을 서정적으로만 표현해오던 자연관과는 전혀 다른 경향을 선보이게 된다. 강렬한 한국적인 향토성과 자연을 객관대상으로 드러내면서 신비감과 관념적 찬미에 치우쳐있던 형식적인 요소들을 보다 직접적인 주관을 가미한 삶의 메타포로서 녹아 흐르는 삶의 길을 구현하였던 것이다. 위와 같은 일련의 작업들은 정치적으로 자유를 억압받았던 암울한시기의 소산으로서 현실적 풍경들이 갖는 투박하고도 거칠은 타블로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기한 경우로서 또 한 페이지 현대적 자연관의 새로운 면모를 구축해가게 된다.
결론
이밖에도 70년대부터 시도되어온 자연에 직접 나아가 환경미술이나 설치, 행위미술로서의 의미를 부여해온 공주자연미술제, 바깥미술제, 강변미술제 등의 경향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자연과 미술의 동행적관계를 전제로 하여 자연 그 자체를 하나의 화폭으로 간주하는 슈퍼캔버스의 개념을 설정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최근 급속히 진전되고있는 조각공원들이 갖는 자연친화적 요소들이나 사이버공간에서 다루어지는 가상적인 자연적개념, 도시공간 그 차체를 자연의 의미로 해석하는 등 이들 모두가 현대미술에서 다루어지는 자연적 요소들로서 간주되어진다.
위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정리될 수 있는 점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근대의 전통회화에서 현대의 생존작가들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지만 결국은 작가들의 년령이 많아질수록 한국적인 이미지와 상징적 기호, 색채, 형태, 기법적인 특징을 사유하고 직간접적인 반영을 해왔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적인 이미지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백색이나 곡선, 명징하고 투명한 색채, 질박한 무위적인 맛으로 발효되어진 자연적인 요소들이 가장 많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한국인들의 의식과 무의식속에 자연관이 중요한 의미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서 전통미의 현대적 계승과도 많은 상관관계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연령층에서는 자연을 보편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는 현상과 함께 청년세대들에게 접어들수록 인간이념이 주류를 이루면서 물성적 개념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다각적인 표출이 주류를 이루면서 탈자연 현상이 두드러지게 대두되어진다. 이를 표현하는 방법론 역시 평면적인 기법을 탈피하여 다양한 레디메이드나 오브제를 포함한 복합매체의 등장과 함께 영상물이 시사하는 가상매체로서의 기능까지 등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자연에 대한 해석과 접근이 아직도 협의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미술계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최근의 생물학, 심리학, 우주론적인 차원으로까지 진전되어지는 자연과학적인 변화에 부합하는 미의식의 확산과 폐쇄된 도시공간에서의 자연이 갖는 근본적인 페러다임의 변천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접근과 해석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이 분야에 대한 중요성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열악한 연구성과였다. 이는 보다 다의적인 차원으로 자연의 본질을 응용하고 해석하는 작업현장의 자양분을 공급하지 못함으로서 야기되는 문제점으로 연결되어졌다. 70년대의 모노크롬에서 후속적으로 제기되었어야 할 한국적인 자연관과 현대적 변용의 미학적 제시는 그 좋은 예로서 모처럼 가장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미학을 모토로 하고 자기환원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0년대에 와서 그 본격적인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바로 그 이론적 접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과 자국적인 전통미학의 깊이와 실체를 현대미술에 반영시키지 못한 오류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넷째로서는 청년세대에 이르러서 야기되는 탈자연현상이다. 이제 포스트모던 이후의 해체적인 사조가 첨단 정보화를 통한 가상공간으로 무대가 확장되어짐으로서 관념적인 자연관과 같은 전통적 미의식이나 가치관은 마치 사전류의 박물학과 같이 쇠퇴해가고 있다. 진정한 수묵화의 사조가 급속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는 정형화된 근대적 산수화의 법칙이나 인상파시대의 서구적인 자연관까지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 대신 모두가 고도의 산업사회에 젖어들면서 화려하고도 매력적인 감각으로 빠져드는 매채의 왕국에서 인간이 오직 인간을 중심으로 창조하고 내용논리를 제기하는 감각적 가상적미학을 탐닉하고 인공적인 물신에 몰입해 가고있다.
이제 청년세대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구세대적인 소재로서 자신들의 세계관을 표출하기에는 너무나도 먼거리에 있는 듯한 일상적인 소재로 간주된다. 그들에게는 이제 흙과 나무, 하늘, 바람과 구름이 갖는 과거 수 천년 동안의 자연적인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20세기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궁극적인 목적과 관심을 정신현상학이나 분석학적인 인간이념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인 이념으로 전환해 왔다. 그들은 이제 인간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로 간주하고있으며, 인간이 이루어낸 산물들인 사회학적인 소외나 결핍, 불안과 충동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현상들이나 모든 산업사회의 기성품들과 콘크리트와 철골구조물, 그것이 또 하나의 인위적인 자연의 모습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세대들의 해체적인 현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정보화물결의 새로운 매카니즘으로서 또 하나의 우주라고 여기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정보사냥에 몰두해감으로서 다시 한 번 자연을 관조하고 그 관조를 통한 자연 그 자체대로의 찬연과 해석을 이루었던 조형적인 정서나 세계관은 이미 급속히 궤를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철학이 없이는 삶의 경험이론이 불가능하고 자연의 철학없이는 인간의 철학이 불가능하다”는 플레스너의 말처럼 최근 실종되어가고 있는 우리미술사조의 자연이념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과제요, 딜레마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반갑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