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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31
#.1 씬. 유원지 일각(낮)
강석 : (단아 앞에 서서 바라보는)
단아 : .....
강석 : (끌어안는) 알잖아? 당신도? 우리 연극이 아니었다는 거?
그래서 나.....당신을 붙잡아야 할 거 같아.
단아 : 가야 할 길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당신?
강석 : (떨어지면서, 단아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는)
단아 : 멈출 수 없는 사람이잖아요?
강석 : 못 가겠어.
단아 : .....
강석 : 이 악물고, 뒤돌아보지 않고, 가보려고 했어.
그게 내 천성이니까, 같이 물에 빠져죽을 줄 알면서도 찌를 수밖에 없는 게 내 천성이니까.
그것만 생각하려고 했어. 난 그런 놈이다. 난 인간이 아니라 싸울 줄 밖에 모르는 미친 짐승이다.
그런데.....
단아 : .....
강석 : 사는 게 너무 힘이 들어. 하루도 술을 안 마시면 잘 수도 없어. 아니, 그래도 잠을 잘 수가 없어.
당신 안에 누가 있든, 어떤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가든, 상관없어.
그런 당신이라도 난 옆에 둬야겠어. 그래야 살아질 거 같아.
단아 : 나.....당신 옆에 있어줄 수 없는 사람이란 거 잘 알잖아요?
강석 : 상관없다고 했잖아.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살아도 돼. 내가 잡은 손만 뿌리치지 말아줘.
단아 :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뿌리치고 뒤로 돌아서서 걸어가는)
강석 : (어깨를 잡는)
단아 : .....
강석 : 날 좀 살게 해줄 수는 없나?
단아 : (눈물을 흘리면서) 얼마나 간절히.....당신 손을 잡고 싶은지 모를 거예요.
그렇지만, 그럴 수 없어요. 그 사람이 너무 가여워서....
강석 : (자르며 톤 높여서) 가지고 가라고 했잖아.
(돌려세우며) 그 사람 기억. 그거 빼놓고 내 옆에 있으라고 하지 않아. 그냥 같이만 가줘. 제발.....
단아 : 날 위해...죽은 사람이에요. 날 살리기 위해, 그 짧은 순간 아무 망설임 없이
달려오는 트럭을 향해 핸들을 돌린 사람이에요.
(오열하는 심정으로) 그런 사람을 어떻게 잊어요? 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강석 : (끌어안으며) 잊지 마. 잊지 말라구. 그냥 가져 가라구. 그러니까 나만 버리지 마.
단아 : (강석의 등에 손을 올리면서) 우리 같이 갈 수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아무리 우리가 같이 가고 싶어도, 이미 그렇게 될 수는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강석 : (두 손으로 단아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내가 해결해. 당신하고 같이 갈 수만 있으면 뭐든 할 거야.
당신 없이 살아가는 거....못할 거 같으니까, 뭐든 하겠다구.
그러니까 당신은 그냥 그러겠다고만 해. 그러겠다고만.....
단아 : 내가 어떻게 봐요?
강석 : ......
단아 : 얼마나 힘들지 아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봐요?
강석 : 대답해. 그러겠다구. 당신은 그 말만 하면 되는 거야.
단아 : (보다가, 고개를 떨구는)
강석 : (입을 맞추는)
단아 :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추고 있는)
#.2 씬. 학교 교정.(밤)
강석, 차를 세우는, 그 옆에 단아.
단아 : 왜 이리로 와요?
강석 : 쉬고 싶어서요. 너무 오랫동안 잠을 못 잤어요.
단아 : (측은하게 보는)
강석, 단아, 차에서 내리는데.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현규.
현규 : (강석과 단아,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괴로운 심정으로 서있는)
#.3 씬. 남교수 사무실.(밤)
강석, 단아 들어오는.
강석 : (의자에 앉는) 나 잠시 눈 좀 붙일게요.
단아 : 쉬어요. (책상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면)
강석 : (단아의 허리를 두 팔로 당겨 안고, 얼굴을 묻는) 몰랐어.
혜주 그 자식이 현규란 놈 보면서 숨도 못 쉬고 그러는 거. 어떻게 저럴 수 있나, 그랬는데.
그동안 내가 그랬어. 당신 다시 못보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니까 숨 쉬는 게..... 정말 힘이 들었어.
단아 : (강석의 머리에 손을 올리는)
강석 : (눈을 감으면서) 아, 이젠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4 씬. 커피숍. (밤)
현규, 멍하니 앉아있는. 혜주, 불안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현규 : (일어나는) 나 먼저 갈 테니까, 정리 좀 하고 가요.
혜주 : 어디 가요?
현규 : (그냥 나가는)
혜주 : .....
#.5 씬. 술집.(밤)
태영, 술 마시고 있으면, 말순 걸어와 앞에 서는.
말순 : 뭐야? 치사하게 먼저 시작한 거야? (앉으며) 회사 일 아직 해결 안됐어?
태영 : (술만 마시는)
말순 : 그 쪽제비 때문에 많이 골 아파? 그 자식은 진짜 왜 그런다니.
(하면서 태영 앞의 술잔을 가져다 마시려고 하는데)
태영 : (말순의 손을 잡고) 넌 마시지 마. 아직 몸도 성치 안잖아?
말순 : (물끄러미 보는데)
태영 : (술잔 가져다 술 따라서 쭉 마시는) 우리 회사 그 쪽제비 자식한테 다 넘기기로 했다.
말순 : 정말이야? 왜?
태영 :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시겠단다.
말순 : 세상 뭐 이러냐. 그런 도둑놈은 배부르게 살고.
태영 : 나 곧 실직자 된다, 말순아. 어쩌면 나 앞으로 너한테 밥 사주고 그러는 거 힘들어질지도 몰라.
말순 : 진짜 미치겠네. 끝까지 싸워보지 그랬어?
태영 : 말했잖냐? 난 그럴만한 능력 없는 놈이라구. 아무리 물어뜯고 싶으면 뭐하냐, 이빨이 없는데.
말순 : 나 곧 승진 시험 있어.
태영 : (보고)
말순 : 승진 하면 월급도 많아질 거야. 그럼 내가 너 밥 사주고 그럴 수 있다구.
태영 : 벼룩이 간을 빼먹겠다.
말순 : (버럭) 넌 이렇게 큰 벼룩이 본 적 있냐?
#.6 씬. 수영의 사무실. (밤)
수영, 일하고 있는데, 진아, 뜨개질 들고 벌떡 일어나는.
진아 : 아, 난 천재야, 천재.
수영 : (놀라서 보는)
진아 : (목도리 보여주면서) 드디어 해냈어요.
수영 : (미소 짓고) 장해요.
진아 : (다가와서) 일어서 보세요.
수영 : (일어서는)
진아 : (목에다 둘러주는데, 올이 술술 풀리는)
수영 : (웃음이 나오고)
진아 : 어, 어, 이게 왜 풀리지.
수영 : 천재는 아닌가 봐요.
진아 : 매듭 확실하게 졌는데, 어디서 잘못 된 거지.
수영, 진아 앉아있는.
수영 목도리 들고 실 풀어주면. 진아, 울상이 되서 실 감고 있는.
진아 : 이건 진짜 아닌데.
수영 : 난 이게 더 재밌는데요.
진아 : (보고)
수영 : 예전에요. 우리 어머님 뜨개질을 참 잘하셨어요.
겨울엔 털실로 식구들 옷을 떠 입히시고, 여름엔 가는 실로 시원한 런닝 같은 거 떠주곤 하셨어요.
몇 해 지나면 옷들이 작아져서, 그걸 풀어서 또 새 옷을 떠주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동생놈이 꼭 실 푸는 걸 도맡아 하는 거예요. 그게 어찌나 부럽던지.
진아 : 나도 해보겠다고 하시지 그랬어요?
수영 : 그런 숫기도 없었거든요. 꼭 동생 시샘하는 못난 형 같아 보일까봐서.
진아 : 그러니까 그렇게 못해보고 사신 게 많죠. 성격에 큰 문제 있는 건 아시죠?
수영 : 나 성격에 문제 있어서 그런 말에 상처 받거든요.
진아 : 강하게 키우려고 모질어진 거거든요.
수영 : (웃는) 살살 다뤄줘요. 나 너무 심하게 다루면 삐딱선 탈지 몰라요.
진아 : 또 반항하신다.
수영 : (웃으며) 어쨌든 진아씨 덕에 어렸을 때 원한까지 풀게 되네요.
#.7 씬. 남교수 사무실.(밤)
강석, 팔짱을 낀 채 잠이 들어있는. 그 앞에 앉아있는 단아.
강석 : (눈을 뜨고) 계속 그러고 앉아있었어요?
단아 : 불편하지 않아요? 그러고 자는 거?
강석 : (기지개 켜면서 시계 보면서) 와, 두 시간이나 잤네. 오랜만에 제대로 잤군.
단아 : 커피 마실래요?
강석 : (일어서며) 내가 타줄게요.
단아 : (일어서며) 제가 해요.
강석 : (팔 잡으며) 이제부턴 내가 잘 보여야 하잖아요? 그래야 딴 소리 안할 거 아닙니까?
(단아 의자에 앉히고) 앉아있어요.
단아 : (앉는)
강석 : (테이블 앞으로 가서 포트 전선 꽂으며 돌아선 채로) 앞으로 우리 많이 힘들 겁니다.
단아 : .....
강석 : 그래서 난 당신한테 많이 미안해하게 될 거구.
단아 : .....
강석, 단아 앞에 찻잔을 놓아주며 앉는.
강석 : 이제부턴 딱 한 가지만 해줘요.
단아 : ......
강석 : 다른 누구 말도 듣지 않고, 내 말만 믿어주는 거.
단아 : 난 언제나 여기 있을 거예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언제나 여기 있을 거예요.
언제든 보고 싶으면 와서 볼 수 있어요.
강석 : 무슨 뜻입니까?
단아 : 예전처럼 밥 같이 먹고, 노래방도 같이 가고, 길에서 손도 잡고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예요.
강석 : 그래서요?
단아 : 아무 것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할아버지 이미 강석씨 제안 받아들이셨으니까 강석씨랑 아버님이 원하시는 대로 될 거예요.
그럼 나와 부모님 같은 저울에 올려놓지 않아도 된다구요.
강석 : 말하고 싶은 게 뭐예요?
단아 : 꼭 굳이 같이 가려고 들지 말라는 거예요.
언제든 찾아오면 볼 수 있는 사람과 애써 같이 가려구.....
강석 : 나란 놈이 부끄럽습니까?
단아 : ......
강석 : 가족들한테 나, 이 놈 짝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부끄러운 거냐구요?
단아 : 그런 거 아니란 거 알잖아요?
강석 : 또 한번 그런 말 하면 난 그렇게 받아들일 겁니다.
단아 : 우리 그냥.....
강석 : (자르며) 나 당신하고 결혼 합니다.
단아 : .....
강석 : 세상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당신과
예전처럼 그러면서 사는 걸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단아 : 난 그럴 수 없어요.
강석 : (보면)
단아 : 내 마음 속에 온전히 한 사람만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 사람의 기억이 남아 있어요.
그걸 알면서, 강석씨랑 함께 가겠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강석 : 내가 상관없다고 했어요.
단아 : 내가 상관있어요.
강석 : 모른 척 하겠다구요. 당신 마음속에 누구의 기억이 남아있든.
단아 : 그럼, 나 강석씨한테 죄를 짓는 거잖아요? 나, 그거 하고 싶지 않아요.
강석 : 지어요, 그 죄.
단아 : .....
강석 : 날 위해서 지어 달라구요.
단아 : .....
#.8 씬. 종가 앞.(밤)
강석의 차 다가와서 멈추는.
강석 : 당신 아프다는 얘기 혜주한테 듣고, 이 앞에 와서 밤을 샜어요.
단아 : (보고)
강석 : 당신한테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려고 휴대폰도 꺼냈지만, 전화 못했어요.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해서. 또 며칠 술 먹고 허우적거리는데, 현규 자식이 찾아왔더군요.
단아 : .....
강석 : 한번만 그 사람이 돼달라고 했다면서.
당신, 기억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희미해지는지 모르겠다면서 울었다고.
난 그걸로 족해요. 더는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 마음속에 온전히 나만 있는 게 아니라도. 나만 그러면 되니까.
단아 : (고개를 숙인 채) 기다려줘요.
강석 : (보면)
단아 : 내 마음 속에서 그 사람 다 빼낼 때까지.
강석 : .....
단아 : 가세요. (내리려고 하면)
강석 : (단아의 손을 잡고) 너무 오래 기다리겐 하지 말아요.
단아 : (보면)
강석 : 기다리다가 숨 막혀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9 씬. 단아의 방. (밤)
단아, 책상 앞에 앉아서 진하의 사진을 꺼내는.
단아 : 더는 오빠 붙잡고 있지 못할 거 같아. 오빠한테 미안해서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기다리는 그 사람한테 미안해서 못할 거 같아. 그러니까 나 미워해, 오빠.
#.10 씬. 길.(밤)
술에 취해 앉아있는 현규. 혜주 다가와 옆에 앉는.
현규 : (보고) 약 사온 거면 빨리 주고 가.
혜주 : 추워요. 내 차에 타고 있어요.
현규 : 추운 줄도 모르겠다.
혜주 : 또 잠들면 어쩌려구 그래요?
현규 : 왜 이렇게 괴로워 미치겠는 걸까?
혜주 : .....
현규 : 포기 했다고, 끝났다고 수 없이 다짐했는데,
그런데도 왜 아직도 이렇게 가슴이 갈갈이 찢기는 걸까?
혜주 : 왜 포기해요?
현규 : .....
혜주 : 그러지 않았잖아요?
현규 : 왜냐구? 왜냐하면 말이지. 그 사람이 네 오빠를 사랑하니까.
혜주 : (굳어지고)
현규 : 그 사람이 네 오빠 때문에 우니까. 그럼 보내줘야 하는 거잖아.
혜주 : ......
현규 : (일어서며) 누군가를 사랑하면 보내줄 용기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머리 속엔 그 사람 생각만 가득해서 미칠 거 같다. (걸어가는)
혜주 : (안타깝게 보는)
#.11 씬. 길.(밤)
혜주의 차 안. 혜주, 운전석에 앉아있고, 그 옆에 앉아 잠 들어 있는 현규.
현규 : (눈 뜨는)
혜주 : 이제 술 좀 깨요? (약 건네는)
현규 : 이제 깼어.
혜주 : 그래도 마셔요, 속이 편해질 거예요.
현규 : (약 따서 마시는) 너한테 받아마신 약 값 다 갚으려면, 알바 하나 더 해야겠다.
혜주 : (미소 짓는) 그런 말 하는 거 보니까 진짜 술 깼나 봐요.
현규 : 넌 춥지 않니?
혜주 : (보면)
현규 : 매일 술 취해 길에서 죽치는 나 따라 다니려면 너도 추울 거잖아?
혜주 : 잘 모르겠어요. 그쪽 추운데서 잠들면 어쩌나 걱정 하느라.
현규 : (보는)
혜주 : 왜요?
현규 : 그날 말이야. 네가 벚꽃 나무 밑에 서서 웃고 있던 날 처음 봤던 날.
그땐 이미 내 마음속엔 다른 사람이 있었어.
혜주 : .....
현규 : (시선 외면하면서) 그렇지 않았으면 어쩌면. 나도 널 알아봤을지 모르는데.
저기, 아주 순하게 생긴 여자 아이가 날 보고 있다.
혜주 : ......
현규 : 친구만 해주겠다고 하면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지?
혜주 : 친구니까, 무슨 말이든 다 해도 돼요.
현규 : 아니, 니 마음에 담아둘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야.
어쩌면 너한테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인간은 나인지도 모르겠다.
혜주 : 아마 죽을 때까지 그쪽 그건 못할 거예요. 나한테 나쁜 인간이 되는 거....
#.12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순진, 천갑, 연속극 보며 앉아있는.
순진 : 난요, 이모부, 쟤 진짜 싫어요, 코맹맹이 소리 하는 거.
천갑 : 나두, 나두.
영자 : (순진, 흘겨보면서 전화 중) 언니? 갑자기 애를 올려 보내면 어떡해?
순진 : 어머, 어머, 미쳐, 미쳐, 저 이쁜 척 하는 꼴 정말 못 봐 주겠죠?
천갑 : 너도 그렇지?
영자 : 조용히들 좀 못 봐. 내 새끼들도 시집 장가 못 보내서 애가 타는데,
내가 조카새끼 결혼까지 책임 져야 해?
서울에 있다고 다 좋은 신랑감 만나는 거 아니라니까 언니. 내일 내려 보낼 테니까....언니? 언니?
(수화기 내려놓으며 화가 나서) 순진이, 너 내일 집으로 내려가.
순진 : 안된다니까요, 이모. 저 때문에 동네 젊은 애들 패싸움까지 났잖아요.
영자 : 뭐?
아줌마, 인터폰 누르고 있는.
아줌마 : 아드님 들어오세요.
순진 : 이쁜 게 죄죠 뭐. 저 하나 놓고 얼마나 치고받고 난리들인지.
오죽하면 엄마가 이모 집으로 피신을 시켰겠어요?
영자 : 네가 너무 이뻐서 동네 남자애들이 패싸움까지 했다구? 서로 너 가지라고 싸운 게 아니라?
순진 : 이모. 요즘은 저 같은 글래머가 대센 거 모르세요?
천갑 : 조용들 좀 해라. 쟤들 만났다.
순진 : 어머, 정말 또 만났네, 이제 머리끄댕이 잡을 거예요. 이모부.
천갑 : 그지? 쟤들은 만났다만 하면 그 짓이잖냐?
강석, 들어오는.
순진 : (벌떡 일어나 호들갑스럽게 달려가서 강석의 팔을 잡는) 오빠, 오빠.
강석 : 어, 순진이 왔구나.
순진 : 아니, 오빠, 얼굴이 왜 이렇게 망가졌어? 이모, 오빠 얼굴이 왜 이래요?
영자 : 그래도 오늘은 술 안마시고 들어왔다.
강석 : 네. 간이 못 견디겠어서 자제 하려구요.
순진 : 아니, 왜 술을 그렇게 마시고 다녀?
강석 : 올라갈게요. (2층으로 움직이려고 들면)
순진 : 무슨 고민 있어? 나한테 얘기해봐, 오빠.
천갑 : 머리끄댕이 잡았다.
순진 : (화들짝하면서 달려와 앉는) 어머 오늘은 지대로 잡았다. 매다 꽂아, 매다 꽂아.
천갑, 순진 박수 치면서 난리 났다.
영자 : 연속극 귀신이 하나 더 늘었네.
#.13 씬. 강석의 2층 거실.(밤)
혜주, 올라오는. 강석, 방에서 나오는.
강석 : 왜 이렇게 늦어? 아르바이트 끝날 시간 훨씬 지났잖아? 운전하고 다니는 거 힘든 거냐?
혜주 : 그 사람 많이 괴로워해.
강석 : (보면)
혜주 : 그 사람 하교수님 포기했대.
강석 : 나 그 사람하고 결혼 한다.
혜주 : (멍하니 보고)
강석 : 미친 싸움꾼으로 사는 거 오빠 그만하고 싶어졌어.
혜주 : 그럼, 그건 안하는 거야? 하교수님 집 회사?
강석 : 방법을 찾아야지. 들어가서 자라.
혜주 : 오빠?
강석 : (보면)
혜주 : 마음이 놓여. 옛날에 나 업어주던 오빠로 돌아온 거 같아서.
강석 : (미소 짓고) 그 녀석, 많이 괴로워 할 거다. 잘 다독여줘라.
그럼 언젠가는 널 봐줄지도 모르니까.
혜주 : 그런 거 안 바래.
강석 : .....
혜주 : 날 봐줄지도 몰라서 지켜보는 게 아니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
강석 : (혜주 어깨 잡고) 그 말 예전엔 못 알아들었는데, 이젠 오빠도 조금은 알 거 같다.
#.14 씬. 강석의 방.(밤)
강석, 들어와 앉는. 핸드폰 꺼내고.
#.15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데, 핸드폰 신호음.
문자, 잡니까?
#.16 씬. 강석의 방.(밤)
강석 : (문자 보는. 아니요. 통화 버튼 누르는) 왜 아직 안자요?
단아E : 그냥요. 왜 안자요?
강석 : 오늘 할 일이 끝나지 않았거든요. 오래 기다리지 않으려면 자꾸 보채야 할 거 아닙니까?
나 많이 없어 보입니까?
#.17 씬. 단아의 방.(밤)
단아, 미소 짓고 있는.
강석E : 왜 대답 안합니까?
단아 : 없어 보인다고 하면 삐칠 거잖아요?
강석E : 이런 거 못해서 미치는 줄 알았네.
단아 : .....
#.18 씬. 강석의 방.(밤)
강석 : (전화) 사람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더라구요.
문자 보내고, 전화 하고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중독성 있는 건 줄은 몰랐거든요.
아, 그리고 뭐 하나 알려줄게요.
단아E : 뭐요?
강석 : 하루하루 그냥 기다리면서 보내게 하면 싸대기 저 자식 매일 밤 두들겨 팰 겁니다.
주인은 차마 못 때리겠으니 어쩝니까? 저 자식한테라도 화풀이 해야지.
애 골로 보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해주길 바랍니다.
#.19 씬. 단아의 방.(밤)
단아 : (전화, 미소 짓고 있는데)
삼월E : 아직 안자?
단아 : (전화) 끊을게요.
#.20 씬. 강석의 방.(밤)
강석, 멍하니 핸드폰 보면서.
강석 : 전화 툭툭 끊는 이 못된 버릇. (싸대기한테 주먹 날리면서) 왜 맞는지 알지?
#.21 씬. 단아의 방.(밤)
삼월, 들어와 앉는.
삼월 : 얘기하는 소리 들리던데?
단아 : 아니에요.
삼월 : 아직도 그러는 거야?
단아 : (보면)
삼월 : 진하 사진 붙잡고 말하는 거?
단아 : (순간, 어두워지고)
삼월 : 그만해. 산 사람이 떠난 사람한테 자꾸 말 시키고 그럼 떠난 사람 편히 못 쉬어.
단아 : 할머니?
삼월 : 응?
단아 : 정말 그럴까? 내가 붙잡고 있으면 그 사람 정말 편히 못 쉴까?
삼월 : 그걸 말이라고. (단아 머리 쓰다듬으면서) 어쩐 일일까, 우리 단아가, 삼월씨 말에 귀를 다 기울이고.
단아 : .....
#.22 씬. 강석의 방.(밤)
강석, 침대에 누우려는데. 울리는 신호음.
강석 : (얼른 일어나서 책상 앞으로 가서 핸드폰 드는)
문자, 전화 툭 끊었다고 싸대기 쥐어박았죠?
강석 : (미소 지으며 통화 버튼 누르는) 내 방에 몰래 카메라 설치했죠?
#.23 씬. 단아의 방.(밤)
단아 : (미소 지으며) 앞으론 전화 먼저 끊는 거 안 할게요.
강석E : 정말입니까? 웬일이래요? 그런 선심을 다 쓰고.
단아 : 기다리게 하는 죄가 커서요.
주정 : (문 열면서) 단아야?
단아 : (당황해서) 네. (하면서 핸드폰 끊는)
#.24 씬. 강석의 방.(밤)
강석 : (끊긴 전화 보면서) 뭐야? 이 여자야. 열 받게 하려고 작정 했지, 지금. (통화 버튼 누르는)
#.25 씬. 단아의 방.(밤)
주정 : (방문 앞에 서서) 혹시 담궈둔 술 어딨는지 아니?
단아 : 술 드시게요?
하는데 울리는 핸드폰.
단아 : (난감해 하면서 받는) 네.
주정 : 말만 해. 내가 찾아먹을 테니까.
강석E : 지금 장난 하십니까?
단아 : 교수님, 잠시만이요. 제가 다시 전화 드릴게요. (전화 끊고)
할머니, 광에 있는데 제가 찾아드릴게요.
주정 : 아니야. 급한 전환가본데 해.
단아 : 잠 안 오세요?
주정 : 18년 헛살고 나니까 정리하는데 아무래도 알콜이 좀 필요한 거 같다. (문 닫는)
단아 : (통화 버튼 누르는) 불가항력이었어요.
#.26 씬. 강석의 방.(밤)
강석 : 누가 들어오셨던 겁니까?
단아E : 네, 고모할머님이요.
강석 : 그 양반은 왜 안주무시고 밤에 돌아다니신 답니까?
그리고 그런 불가항력적인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저번에 하는 거 못 들었습니까?
형, 내가 나중에 전화 할게요.
그럼 이쪽에서도 아, 누가 들어온 모양이구나 하고 이해할 거 아닙니까?
단아E : 미안해요, 순발력이 부족했어요.
강석 : 하여간 반성 하난 겁나게 빨리 하지. (핸드폰 들고 침대에 앉으며)
순발력 부족해서 순간 열 받게 한 죄로, 계속 떠들어 봐요. 나 잠들 때까지.
단아E : 누가 먼저 잠드나 내기 하는 거 아니었어요?
강석 : 그냥 내가 지고 살기로 했습니다.
단아E : 왕궁은 왕궁에서 100리 안쪽에 써야 했으나 태실만큼은 거리제한을 두지 않았다.
강석 :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27 씬. 단아의 방.(밤)
단아 : 계속 떠들어보라고 해서 책 읽는 건데요.
강석E : 퍽.
단아 : 네?
강석E : 지금 싸대기놈 맞고 기절하는 소립니다.
단아 : (미소 짓고)
#.28 씬. 종가 전경.(아침)
#.29 씬. 부엌.(아침)
삼월, 영인, 조만, 단아 아침 준비하고 있는.
조만 : 웬일이실까요? 회장님이 식구들 상 다 마루에 보라고 하신 게?
삼월 :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보지.
영인 : (상에 접시 올려놓다가 놓쳐서 깨뜨리고)
단아 : (놀라서) 다치지 않으셨어요?
영인 : 응. 괜찮아. 왜 이렇게 자꾸 미끄러지는지 모르겠네.
조만 : 접시 자꾸 깨고 그러면 집안에 불길한 일 생긴다고 하던데.
영인 : 뭐야? 내가 접시 자꾸 깨먹어서 집안에 안 좋은 일 생긴다는 거야?
삼월 : 저 애가 워낙 생각 없이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래요. 조만이 넌 제발 그 놈의 입 좀.
영인 : 할머니도 그런 거 아니세요?
삼월 : 네?
영인 : 저 들어오자마자 회사도 넘어가게 생겼으니
사람 잘못 들어와서 그런 거다, 하시는 거 아니냐구요?
삼월 : 아니, 무슨 말을.....
석호, 들여다보면서.
석호 : 여보? 잠깐 나와 봐요.
#.30 씬. 석호의 방.(아침)
석호, 영인 들어오는.
석호 : 왜 그러니? 영인아? 삼월 할머니한테 왜 예민하게 그래?
영인 : 몰라. 나 자격지심인가 봐.
석호 : 네가 자격지심을 왜 가져?
영인 : 나도 어쩔 수 없이 촌스러운 구석이 있는 거 같아.
아무도 뭐라고 안하는데, 괜히 혼자 주눅 들고 그래.
석호 : 왜 주눅이 들어?
영인 : (주저앉으며) 나 처음 결혼 했을 때.
석호 : (앉으면서 보는)
영인 : 그 사람 고시 준비 했었잖아?
석호 : 알아.
영인 : 결혼해서 5년 동안 계속 떨어지더라구.
석호 : 머리 좋은 친구여서 금방 패스 할 줄 알았는데.
영인 : 시어머니가 사람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구 눈치 주는데 정말 죽을 맛이 었어.
그 전에 성격 차이로 몇 번이나 이혼하고 싶었는데, 오기 때문에 못했어.
고시 패스 하는 거 보고 보란 듯이 이혼하려구.
석호 : 참 성격도.
영인 : 그런데, 그때는 억울하고 죽을 맛이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주눅이 들어.
내가 이 집안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해서.
석호 : (영인 어깨 잡으면서) 세련된 걸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영인이
이 하석호 만나서 별 촌스러운 생각을 다하는구나.
근데 어쩌냐? 영인아. 난 그런 네가 너무 고맙고, 이쁜 걸.
영인 : 귀엽지는 않구?
석호 : (웃는)
#.31 씬. 마루.(아침)
식구들 모두 각자 상 받고 앉아있는.
만기 : 회사 문제 때문에 다들 기운 빠져 있는 거 같아서 오늘 아침은 다 같이 모여서 먹자고 했다.
세상일이라는 게 좋을 때도 있으면 나쁠 때도 있는 거 아니겠냐?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우리 식구들 모두 건강하니,
그것만 감사해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도 슬기롭게 넘겨보도록 하자꾸나.
주정 : (박수 치는)
모두, 주정을 보면.
주정 : 나답잖아? 오빠?
만기 : 그래.
주정 : 18년 허송세월하게 한 오빠 용서 안 해드리고 싶지만,
제가 워낙 성격이 좋은 관계로 넘어가드릴게요. 그러니까 앞으론 제 눈치 보지 마세요.
만기 : (미소 지으며) 고맙구나. 다들 어서 먹자.
#.32 씬. 강석의 집 식당.(아침)
천갑, 영자, 강석, 혜주, 순진 식사하고 있는.
영자 : (밥 먹는 강석 보면서) 밥맛이 돌아온 거야?
강석 : 네.
영자 : (천갑 보면서) 진작 좀 애 말 좀 들어주지 그랬어. 일 해결되고 나니까 밥 잘 먹는 것 봐.
천갑 : 골프 나갈래?
강석 : 저 약속 있는데요.
영자 : 그동안 술 마시고 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왜 쉬는 날까지 약속을 잡고 그래?
순진 : 혜주야?
혜주 : 응? 언니?
순진 : 너 컴퓨터에 있는 그 남자애 누구야?
혜주 : (굳어지고)
천갑, 영자, 이게 무슨 말인가 싶고.
순진 : 진짜 잘 생겼드라. 농구 선수야?
혜주 : (일어나서 나가는)
강석 : 순진이 너 왜 남의 방엔 들어가고 그러니?
순진 : 컴퓨터 좀 쓰려고 들어간 거야. 사촌지간에 그런 것도 못해?
영자 : 우리 혜주 컴퓨터에 남자애 사진이 있단 말이야?
순진 : 진짜 좋아하는 앤가 봐요, 아주 사진으로 도배를 해 놨드라니까요.
천갑 : 아니, 혜주 저 자식 연애 하는 건가?
#.33 씬. 강석의 2층 거실.(아침)
강석, 방에서 나오는데, 영자, 순진, 혜주 방 앞에 서있는.
순진 : (방문 손잡이 돌리면서) 어머, 얘 잠궈 놓고 갔어요, 이모.
영자 : 아줌마. 혜주 방 열쇠 좀 가지고 올라와요.
강석 : 저 나가요.
영자 : (건성으로) 응. 그래. 아줌마, 빨리.
#.34 씬. 강석의 집 거실.(아침)
강석, 내려오는데, 아줌마 열쇠 들고 올라가려고 하면.
강석 : 아주머니?
아줌마 : 네.
강석 : 열쇠 없다고 하세요.
아줌마 : (보고) 네.
#.35 씬. 강석의 2층 거실.(아침)
영자, 순진, 서있으면, 아줌마 올라오는.
영자 : 열쇠. 열쇠.
아줌마 : 아무리 찾아도 혜주 방 열쇠가 없네요.
영자 : 아니, 왜 열쇠가 없어?
아줌마 : 어디다 잘 둔다고 둔 거 같은데.
영자 : (순진에게) 얼마나 잘 생겼어?
순진 : 겁나게 잘 생겼어요.
영자 : 운동선순 거 같아?
순진 : 농구하는 사진이 많드라구요.
영자 : 에이. 운동하는 남자앤 안 되는데.....
#.36 씬. 천갑의 방.(아침)
영자, 들어오면, 천갑, 옷 입고 있는.
천갑 : 사진 봤어?
영자 : 문도 잠궈 놓고 가고, 열쇠도 못 찾아서 못 봤어. 근데 운동 하는 남자앤 거 같어.
천갑 : 운동?
영자 : 운동선수 좀 그렇지 않나? 젊어 한때 직업이잖아? 순진이 말로는 농구 선순 거 같대.
천갑 : 괜찮아, 농구 선수. 농구단 하나 인수해서 감독 시키면 되지 뭐.
#.37 씬. 마루.(낮)
삼월, 조만, 단아, 놋그릇 닦고 있으면.
영인 : (서서) 설 제사에 이 그릇들이 다 쓰이는 거예요?
삼월 : 네.
영인 : 이런 걸 여자들만 하면 안되죠. (돌아서는)
#.38 씬. 마루.(낮)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동동, 삼월, 조만, 단아, 놋그릇 닦고 있는.
주정 : 그럼 명절 준비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해야 제 맛이지.
조만 : 그럼 고모 할머니도 하셔야죠.
주정 : 난 고문관이잖니? 조카댁?
영인 : 네.
주정 : 태영이 건성으로 닦는 거 같은데요.
영인 : (태영 보는)
태영 : 아버지?
석호 : 왜?
태영 : 전요, 제가 팥쥐라는 생각이 듭니다.
석호 : 팥쥐는 계모가 데려온 딸이다.
태영 : (갸우뚱)
주정 : 콩쥐라고 해야지. 넌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앞뒤가 안 맞냐?
단아야? 네 방에서 휴대폰 울리는 거 같은데.
#.39 씬. 단아의 방.(낮)
단아, 들어와서 핸드폰 번호 보고 받는.
단아 : 네?
강석E : 집입니까?
단아 : 네.
강석E : 괜히 헛걸음 했잖아요. 맨날 박물관에 있길래 당연히 거기 있을 줄 알고 갔었잖아요.
집 근처로 갈 테니까 나와요.
단아 : 저 설 준비해야 하는데요.
강석E : 따라 해요. 어머, 교수님.
단아 : .....
강석E : 따라 하라니까요.
단아 : 어머, 교수님.
강석E : 지금요?
단아 : 지금요.
강석E : 네, 지금 나갈게요.
영인, 방문 앞에서.
영인 : 단아야, 나랑 장보러 가자.
단아 : 네, 교수님, 지금 나갈게요.
강석E : 참 잘했습니다. (전화 끊기는)
영인 : 왜 학교 나가봐야 하는 거야?
단아 : 네.
#.40 씬. 길.(낮)
강석, 차 세우고 차에서 내리는. 단아 서있고.
강석 : 기분 어때요?
단아 : 네?
강석 : 전화 먼저 툭 끊기니까 기분 어떠냐구요?
단아 : 아무렇지도 않던데요.
강석 : 하여간 사람 묘하게 약 올리는 데는 타고 났어요. (문 열어주는)
단아 : (차에 올라타고. 강석 올라타고. 단아 안전벨트 매려고 하면)
강석 : (매주는) 이거 하고 싶어서 병까지 나려고 했었으니까 질릴 때까진 해볼 겁니다.
단아 : .....
강석 : 내가 너무 치대는 거 같습니까?
단아 : (미소 지으며) 이젠 또 많이 웃겠구나, 그 생각했어요.
강석 : (단아의 손을 잡는) 묘기 보여줄게요. 한 손으로만 운전하는 거.
단아 : 위험해요.
강석 : 같이 죽기 밖에 더 하겠습니까?
#.41 씬. 욕실. (낮)
태영 : (핸드폰 중) 나한테 1분 있다가 전화해라.
#.42 씬. 말순의 집.(낮)
말순 : (핸드폰 들고) 뭐라구? (끊긴 전화 들고) 뭐야?
진아 : (뜨개질 하면서) 아, 코 또 빠졌다.
#.43 씬. 마루.(낮)
석호, 수영, 동동, 삼월, 조만, 영인 그릇 닦고 있는.
태영 : (화장실에서 나와 옷 추키며 앉는)
영인 : 작은 아드님? 화장실 너무 자주 다니시는 거 아니에요?
태영 : 왜요? 아주 시간도 재시지 그러세요?
영인 : 재고 있거든요.
울리는 태영의 핸드폰.
태영 : 어. 찬수야? 뭐? (벌떡 일어나며) 아니, 언제? 아니, 어쩌다 그런 일이.
어느 병원? 어, 어, 그래. 그래,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전화 끊고) 어쩌죠. 어머니. 친구 아버님이 돌아 가셨다네요.
영인 :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서) 하과장, 친구 아버님들 사이에 전염병 돌아요?
태영 : 네?
영인 : 자꾸 돌아가시니 말이에요?
태영 : 아, 그때 철수 아버님은 병환으로 돌아가신 거구.
수영 : (쿡쿡 찌르며) 민태.
태영 : 어? 그래, 민태 아버님. 친구 아버님들께서 자꾸 돌아가시니 이젠 이름도 막 헷갈리네.
이번에 돌아가신 어른은 교통사고시거든요. 저 좀 다녀올게요.
석호 : 그래, 어서 가봐라.
영인 : 수상해요, 하과장.
태영 : 아, 수상하면 신고하세요.
#.44 씬. 태영의 방.(낮)
태영,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동동 들어오는.
동동 : 뻥이지?
태영 : 아냐, 임마.
동동 : 저번에도 뻥이었잖아? 다 알아. 일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거?
태영 : 아니라니까.
동동 : 나 할머니한테 가서 저번에 뻥이었다고 한다. (돌아서려고 하면)
태영 : 너, 왜 이러냐? 부자간에 의리 없이.
동동 : 그럼, 게임팩 하나만 사줘.
#.45 씬. 말순의 방.(낮)
말순, 공부하고 있고, 진아 뜨개질 하고 있는.
진아 : 아, 정말 미치겠다. 목도리 하나 뜨는 게 이렇게 힘든가.
말순 : (보고) 있지, 진아야?
진아 : 네.
말순 : 그걸로 이불 뜨려면 얼마나 걸릴까?
진아 : 네? 이불이요. 목도리 하나 뜨는 것도 벌써 몇 주 째 이 모양인데
이불 뜨려면 몇 달 걸리지 않겠어요? 아니, 몇 달이 뭐야, 몇 년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말순 : (혼잣말로) 뜨개질 그 인간 눈에 안 띠게 해야겠네.
진아 : 네?
말순 : 아, 아니야. (핸드폰 울리고) 왜?
태영E : 나와라, 자장면 사줄게.
말순 : 나 공부해야 하는데.
태영E : 자장면 먹고 들어가서 하면 되잖아.
말순 : 안돼. 공부할 거 많단 말이야.
태영E : 그럼, 느네 집 가서 시켜먹지 뭐.
말순 : 아, 아냐, 나갈게.
#.46 씬. 중국집 룸.(낮)
태영, 말순 탕수육 시켜놓고 앉아있는.
말순 : 짜장면 사준다면서?
태영 : 나중에 실업자 되면 이런 것도 못 사줄지 모르니까 사줄 때 많이 먹어라.
말순 : 그래서 승진하려고 죽어라 공부하는데 왜 불러내?
태영 : 요즘 대인관계 너무 안했더니 놀아줄 사람이 너 밖에 없단 말이야.
말순 : 또 누구 돌아가셨다고 하고 도망 나온 거야?
태영 : 아들놈이 눈치 채고 게임팩 사주는 걸로 협상하자고 해서 그러겠다고 하고 겨우 빠져나왔다.
진짜 아는 놈이 더 무섭다니까.
말순 : 동동이가 게임팩 사달래?
태영 : 그렇다니까, 안 그러면 할머니한테 고해바친다고 협박까지 하드라.
말순 : 먹고 게임팩 사러 가자.
태영 : 공부 하러 들어가야 한다면서?
#.47 씬. 마트. 또는 게임기 대리점.(낮)
게임팩 올려놓고 있는 태영. 지갑에서 카드 꺼내려고 하는데.
말순 : (밀치면서, 자기 카드 내놓는) 이걸로 계산해주세요.
태영 : 야, 네가 무슨 돈 있다구?
말순 : 다음달에 수당 받을 거 있어.
태영 : 됐다니까, 벼룩이 간 빼먹을 일 있냐.
말순 : 그 벼룩이 소리 자꾸 할래? 빨리 계산해주세요.
태영 : 너 정말 왜 그래?
말순 : 사주고 싶어. 동동이가 가지고 싶다고 하는 거.
태영 : (뭔가 느껴지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48 씬. 훼밀리 레스토랑.(낮)
수영, 진아 앉아있는.
수영 : 다음엔 나도 동생놈 수법 써먹을까 고민 중이예요.
진아 : 동생 분 하시는 거 너무 따라하시는 거 아니에요?
수영 : 나 어려서부터 은근히 그 놈 부러워했거든요.
진아 : .....
수영 : 10분 차이 쌍둥인데, 그 놈은 나하고 많이 달랐어요.
왠지 나는 사람답지 않은데, 그 놈은 진짜 사는 것처럼 사는 거 같아서 부럽고, 샘나고 그랬어요.
진아 : 그 말씀도 처음 해보시는 거죠?
수영 : (미소 지으며) 네. 이런 말 막 하구 다니면 쪽팔리잖아요.
진아 : (웃으며) 그런 말도 하실 줄 아세요?
수영 : 내 동생 놈이 잘 쓰는 말이거든요.
진아 :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아빠, 엄마, 아들 단란하게 식사하고 있는 가족이 눈에 들어오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영 : (진아의 표정과 진아가 보는 가족을 번갈아보고) 몇 살 때 고아원에 가게 된 거예요?
진아 : (보고, 슬프게 미소 지으며) 산부인과 병원에서 바로 보내졌대요.
수영 : .....어떤 분들인가 궁금하죠? 부모님이?
진아 : 아니요. 원래부터 없었으니까 그러려니 해서 그런지 궁금한 줄도 모르겠어요.
수영 : 나중에, 기회 닿으면 한번 찾아보도록 해요. 고아원 없어졌다곤 하지만,
여러 기관들 거쳐서 알아보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진아 : 하기 싫어요. 저 키울 수 없어서 버렸을 테니까 굳이 찾고 싶지 않아요. (미소 짓고)
수영 : (보면)
진아 : 어려서 제 장래 희망이 뭔지 아세요?
수영 : 뭐였는데요?
진아 : 엄마.
수영 : .....
진아 : 비오는 날이면 우산 들고 학교 앞에 서 있어주고, 아침마다 도시락 챙겨 주면서 남겨오면 안돼 그러고,
시험 못 봤다고 울상 짓고 있으면 다른 애들도 못 봤을 거야, 그래주고,
감기 걸려서 잠 못 자고 뒤척이면 밤새 옆에서 안타까워해주는 그런 엄마요.
수영 : ......
진아 : 장래 희망 너무 소박했죠?
수영 : (애잔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49 씬. 부엌.(낮)
병도, 삼월, 조만 서있는.
병도 : 섭섭하네요. 잘 좀 챙겨 먹여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삼월 : 챙겨 먹이려고 했는데, 요즘 주정이가 약 먹을 정신이 없었거든요.
병도 : 하긴 제비한테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조만 : 제비요?
삼월 : (약 탕기에서 약 따르며) 덥혀졌네.
조만 : 근데요?
병도 : 네.
조만 : 이거 정식 한약방에서 지으신 거예요? 면허 있는 한의사한테서 지어 오신 거냐구요?
병도 : 그거야 당연하죠.
조만 : 제가요, 어려서 면허도 없는 돌팔이 한의사가, 아니지, 그냥 할아버지지.
그런 분이 지어준 한약 먹고 혀가 굳은 사람이라서..... (그 말 하다가 울컥하고)
제 운명의 비극은 바로 거기부터였거든요. (울면서 뛰쳐나가는)
병도 : 슬픈 얘긴 거 같은데, 꼭 무슨 연극 보는 거 같으네요.
삼월 : 그게 저 애 운명의 비극이라우.
#.50 씬. 주정의 방.(낮)
주정, 낮잠 자고 있으면, 병도 잡아 일으키는.
병도 : 일어나라, 좀. 무슨 낮잠을 코가 삐뚤어지게 자냐?
주정 : 너, 언제 왔냐?
병도 : (약사발 주정의 입에 대주는) 마셔.
주정 : 이게 뭔데?
병도 : 뭔 건 나중에 알면 되니까 어서 먹어. (억지로 마시게 하는데)
주정 : 아 써, 무슨 약이냐?
병도 : 애 잘 낳는 약이라드라.
주정 : (왝하고 토하는)
#.51 씬. 남교수 사무실.(낮)
강석, 커피 타고 있는, 단아, 책 찾고 있는.
강석 : 나 커피 타게 만드는 데 재미 붙였죠?
단아 : 하겠다면서요?
강석 : 점심 먹고 영화라도 보자니까 겨우 이리로 끌고 와서 커피나 타게 만듭니까?
단아 : 여기 싫으면 박물관으로 갈래요?
강석 : (어이없어서 웃고) 거기나 여기나. 하여간 행동반경 무지 단조로워요.
단아 : 그러니까 여기 저기 헤매고 찾아다니지 않잖아요?
강석 : (보고) 나 찾아다니기 쉬우라고 여기 아니면 거긴 겁니까?
단아 : 기다려주는 사람한테 그런 거라도 해야 하잖아요?
강석 : 사람 묘하게 감동 주는 것도 타고 났어요.
시간 경과.
강석, 단아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단아 : 커피 타는 솜씨가 날로 발전하네요.
강석 : 이렇게 발전하다간 커피숍도 차릴 거 같네요.
단아 : (미소 짓는)
강석 : 회사 인수하는 거 철회 할 겁니다.
단아 : (보는)
강석 : 와이프 회사 접수한 놈은 되지 말아야 하잖아요?
단아 : .....
강석 : 왜 이런 말 하는지 알아요?
단아 : .....
강석 : 부담주고 있는 겁니다. 빨리 그러겠다고 해라.
당신이 계속 기다리게 하면, 나 회사 인수 철회하겠다고 하는 거 우스워질 수 있어요.
단아 : .....
강석 : 이 여자랑 결혼할 테니 양보해주십쇼, 하는 게 명분이 서잖아요?
단아 : 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
강석 : (보면)
단아 : 하고 싶었던 일까지 포기할 만큼?
강석 :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닙니다.
단아 : (일어서서 외면 한 채)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몸에 큰 흉이 생긴 거 보면서, 다행이다 그랬어요.
살면서 어떤 남자 앞에서도 여자가 되지 않아도 되겠구나. 안심이 됐어요.
강석 : .....
단아 : 우리 이대로 그냥 만나기만 하면..... 나 자신조차도 보는 게 힘든 그 흉 보지 않아도 되는데.....
강석 : (일어서서 단아 돌려세우는) 어쩌면 여자인 당신한테는 그것도 문제가 되겠군.
단아 : (눈물이 고인 눈으로 보는) 그 흉 보면서 내가 겪은 일을 떠올려야 할 거예요.
강석 : 안심이 되는군. 그런 생각까지 하는 거 보면, 조금씩 나한테 가까이 오고 있다는 거잖아?
단아 : (눈물이 흘러내리는)
강석 : (눈물을 닦아주면서) 당신이 온몸에 흉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남들이 보면서 얼굴을 돌릴 정도로 드러난 흉터로 덮여있다고 해도, 난 결국 당신을 붙잡았을 거야.
날 사람으로 살게 해줄 사람이 당신밖에 없다는 거 깨달았으니까. (조심스럽게 끌어안는)
단아 : .....
#.52 씬. 커피숍. (낮)
혜주, 손님 앞에 쥬스, 케잌 놓아주고 있는데.
현규, 친구들 들어오는.
성민 : 이사는 간단히 해치워서 좋은데, 왜 하교수님 집 근처로 안간 거냐?
강하 : 그쪽으로 이사를 가야 동네에서라도 쭉 부딪칠 텐데.
현규 : 이사들 해주느라 수고 했다, 가봐라.
성민 : 친구, 혹시 그 미친 사랑의 노래가 드디어 끝난 건가?
현규 : 공성전 시간 다 됐잖아?
강하 : (시계 보면서) 어, 맞다. 자네의 그 쓰라린 실연기는 그럼 나중에 듣겠네.
성민 : 실연기는, 저 미친놈이 그렇게 쉽게 포기하겠냐?
구시렁거리면서 나가는.
혜주 : 이사 했어요?
현규 : 네, 학교 앞에 원룸 하나 얻었어요. (핸드폰 울리고) 네? 형? 알았어요, 지금 학교로 올라갈게요.
(전화 끊고) 조금 더 혼자 해줘야겠네요. 선배 형이 대학원 시험 족집게 노트 준다고 해서 가봐야 해요.
혜주 : 다녀와요.
#.53 씬. 학교 교정.(낮)
강석, 단아 걸어오는.
강석 : (단아의 손을 잡는)
단아 : (당황하면서 주위 살피고) 학생들 봐요.
강석 : 임자 있는 몸이라는 거 알리는 거 겁납니까?
단아 : 저 이 학교 선생이에요.
강석 : 그래서요?
단아 : 저 마귀할멈이 연애까지 하네, 그런 소리 듣기 싫거든요.
강석 : 마귀할멈 소리까지 듣습니까?
단아 : 원한 많이 사고 산다고 했잖아요?
강석 : 아, 맞다, 그래서 오래 살 거라고도 했지. 그럼 더 잘됐네.
저 재수덩이가 어떻게 저렇게 멋진 남자를 문거야, 배 아프게 만들어 주자구요.
(하면서 단아와 웃으면서 손을 잡고 걸으려고 하는데. 걸어오는 현규와 눈이 부딪히고)
현규 : .....(단아의 손을 잡고 있는 강석을 보면서 어두워지는)
강석 : (단아의 손을 놓고) 먼저 차에 타 있어요. (차키 눌러주는)
단아 : (현규를 보고, 미안하고 복잡한 심정이다가 차에 올라타는)
강석 : (현규 앞으로 걸어오는)
현규 : .....
강석 : 네가 아니었으면 꽤 오래 헤맸을 거다. 고맙다.
현규 : 저 사람 웃는 거 보기 좋네요. 가서 더 많이 웃게 해주십쇼. (걸어가는)
강석 : ......(차에 올라타는) 고마워요.
단아 : .....
강석 : 저 놈하고 연적이 되지 않게 해준 거.
저 놈한테 먼저 마음을 줬으면, 나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54 씬. 커피숍.(낮)
현규, 들어와 힘없이 앉는. 혜주 다가와 서는.
혜주 : 학교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요?
현규 : 그 사람, 그쪽 오빠하고 손잡고 걷드라구요.
혜주 : .....
현규 : 다시 만나기로 한 거겠죠.
혜주 : 오빠....결혼하겠대요. 하교수님이랑.
현규 : .....결혼하겠대요? 두 사람?
혜주 : 네.
현규 : 사람 인연이라는 거 있긴 있나보네요. 난 4년을 들이댔는데 씨도 안 먹혔는데.
그쪽 오빠는 몇 달 되지도 않아서 해낸 거 보니.
혜주 : 가요.
현규 : (보면)
혜주 : 술 마시러.
현규 : (피식 웃으며 일어서는) 이따 밤부터 마셔도 되요. 대낮부터 마시면 진짜 폐인 모드잖아요.
#.55 씬. 종가 앞.(밤)
강석의 차 멈춰 서있고. 강석, 단아 서있는.
강석 : 가서 전화 할게요. 아주 길게 전화 붙잡고 있을 겁니다.
단아 : (보면)
강석 : 새로운 방식의 고문입니다. 잠 못 자게 하는 게 제일 독한 고문이라면서요.
단아 : 그 고문 하면서 그쪽도 못자잖아요?
강석 : 지 발등 지가 찍은 놈이 별 수 있습니까?
단아 : (미소 짓는데)
강석 : 전화 붙들고 있으면서 싸대기 계속 발로 걷어찰 겁니다.
인간 너무 치졸하게 만들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항복해줘요.
단아 : .....
f.o.
#.56 씬. 종가 전경.(낮)
#.57 씬. 마루.(낮)
삼월, 전화 중.
삼월 : 알았어, 하사장. 단아 집에 있는데 단아 시켜서 보내줘도 되는 거지?
#.58 씬. 단아의 방.(낮)
단아, 외출 준비하고 있는데, 삼월 방문 여는.
삼월 : 단아야?
단아 : 네.
삼월 : 학교 가는 길에 회사 좀 들러서 이 서류 하사장한테 좀 전해주련?
단아 : (서류 받는)
삼월 : 이번에 내 주식도 함께 넘겨야 한다나보다.
난 회장님 진지도 차려드려야 하니 네가 좀 전해주거라.
단아 : 네.
#.59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책상 앞에서 일어서는. 수영, 태영, 난감한 표정으로 서있는.
석호 : 전상길이 나섰다니?
수영 :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서겠다고 조금 전에 주주들에게 연락을 했답니다.
태영 : 우리가 이천갑한테 지분 넘기기로 한 거 알고, 손해 보는 장사 아니란 계산이 선 거라구요.
석호 : (의자에 힘없이 앉는)
수영 : 우리 지분 구조가 미약하다는 게 드러나서 주주들을 설득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60 씬. 강석의 사무실.(낮)
천갑, 강석 서있는.
천갑 : (흥분해서) 내가 뭐라고 했냐? 한번 물러나면 두 번 물러나는 일 생길 거라고 했지?
강석 : (난감하고)
천갑 : 주가가 바닥인 이때가 적기라고 판단한 거야.
더구나 우리가 하회장 지분을 두 배로 사들이기로 했다는 거 알았으니,
최악의 경우에 우리한테 사들인 지분 넘기면 된다 그거구.
강석 : .....
천갑 : 이젠 어쩔 거냐? 전상길 그 인간은 우리하고 같은 족속이야.
돈 되는 일이면 물 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인간이라구.
이 참에 아주 집어삼키려고 들지도 모른단 말이다.
강석 : 대책을 찾아볼게요.
천갑 : 그러니까 왜 괜한 짓을 해? 내가 이런 일 생길까봐서 그렇게 안 된다고 했던 건데.
강석 : 제가 만나보겠습니다. 전상길.
천갑 : 그 인간이 만나주기나 할 거 같냐?
강석 : 대성 아무한테도 안 넘어갑니다. 절 믿으세요, 아버지.
천갑 : 그 인간, 거간꾼으로 소문난 놈이야. 큰 손들하고도 줄이 닿아있고.
강석 : 제가 처리할게요.
천갑 : 어떻게? 돈이 얼마나 처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이 됐는데?
강석 : 막아낼게요. 막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
천갑 : 믿어도 되겠냐?
강석 : 네.
천갑 : 알았다, 그럼 난 가서 우리 쪽에 서겠다고 한 주주들이나 단속하마. (나가는)
#.61 씬. 회사 로비.(낮)
단아, 걸어오는데, 뒤에서 걸어오는 영인.
영인 : 단아야?
단아 : (보고) 어디 다녀오세요?
영인 : 응. 홍보 대행사 사람들 좀 만나고 오는 길이야.
우린 떠나지만 앞으로도 잘 좀 부탁한다는 말하러.
단아 : 네.
영인 : 회사엔 웬일이야?
단아 : 삼월 할머니 주식 서류 심부름 왔어요.
#.62 씬. 회사 복도.(낮)
강석, 진호 걸어오는.
진호 : 요즘 매일 들러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한정식집이 있습니다.
강석 : 알았다.
하는데, 태영, 수영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태영 : (강석의 멱살을 잡는) 네 놈이 일만 벌이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영인과 단아.
태영 : 네 놈 때문에 미친개들이 너도 나도 뜯어먹자고 달려들게 됐다구.
영인 : (놀라서) 무슨 일이예요? 하과장?
태영 : 이 자식 때문에 우리 회사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구요.
진호 : 이러지 마십쇼.
태영 : 넌 빠져 있어.
강석 :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단아를 보고, 암담해지는)
단아 : .....
태영 : 우리 할아버지가 이 자식한테 다 양보하면서 지키려고 한 우리 회사,
엉뚱한 놈들한테 넘어가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돼 버렸다구요.
영인 :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수영 : (태영의 손을 잡으며) 놔라. 이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냐?
태영 : 이 새끼가 우리 회사 집어삼키려고만 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은 되지 않았잖아?
수영 : 놓으라니까.
태영 : (하는 수 없이 손놓고 화가 나서 걸어가는)
영인 : (따라가면서) 상황이 어떻게 변한 거예요?
수영 : 조용히 떠나주려고 했는데, 일이 이 지경에 이르는군요.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봅니다. (걸어가는)
단아 : .....
강석 : .....
#.63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수영, 태영, 영인 암담한 상태로 앉아있고.
단아 : (서류 내려놓고)
석호 : 수고 했다, 가 보거라.
단아 : (인사하고 나가려고하는데 들려오는 소리)
태영 : 그 개새끼가 결국 우리 회사 산산조각 내고 말거라구요.
#.64 씬. 종가 전경.(밤)
#.65 씬. 단아의 방.(밤)
단아, 태영에게 멱살이 잡혀 있던 강석을 떠올리고 괴로운 심정으로. 울리는 핸드폰.
단아 : 네.
강석E : 집 앞입니다.
#.66 씬. 종가 앞.(밤)
강석, 차 옆에 서있고, 단아 나오는.
강석 : .....
단아 : .....
강석 : 당신 대답만 기다리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럼 하나하나 해결 해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당신 큰 오빠 말대로 결국 욕심이 화를 불러들였군.
단아 : 우리 회사 다른 사람한테로 넘어가는 건가요?
강석 : 막아보는 데까진 막아볼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아무 것도 장담할 수는 없어요.
최악의 경우가 되면, 당신하고 나, 안되는 거겠지?
단아 : ....
강석 : 당신 집안에 나 웬수놈이 되는 걸 테니까.
단아 : (안타깝게 보는)
강석 :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당신을 붙잡으려고 했다는 겁니다. 갈게요. (차에 올라타고 떠나는)
단아 : .....
#.67 씬. 단아의 방.(밤)
단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목에 목걸이를 풀어놓는. 진하의 사진을 보면서.
단아 : (두 손으로 목걸이와 진하의 사진 위에 포개 놓는)
#.68 씬. 남교수 사무실. (낮)
단아,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단아 : (핸드폰을 꺼내 누르는) 어디예요?
강석E : 회삽니다.
단아 : 만날 수 있어요?
#.69 씬. 학교 교정.(낮)
단아, 벤치에 앉아있는. 강석 걸어와서 옆에 앉는.
단아 : 10년 동안 풀지 않았어요. 제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
강석 : (보는)
단아 : 어젯밤에.....풀어놨어요.
강석 : .....
단아 : 청혼 하던 날 그 사람이 준 반지였어요.
강석 : .....
단아 : 아직 다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순간순간 미안하고.
내 사랑이 이토록 허약했나,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반지를 목에 걸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강석 : .....
단아 :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우리 집안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든,
그래서 원수가 된다고 해도. 놓지 않을래요.
강석 : .....
단아 : 어떻게 같이 가야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갈래요.
강석 : (일어서는)
단아 : (올려다보는)
강석 : (손을 내미는)
단아 : (손을 잡고 일어서는)
강석 : 가야 할 데가 있어요.
단아 : .....
#.70 씬. 진하의 묘 앞.(낮)
단아, 강석 서있는.
강석 : (처 하단아란 묘비를 바라보는)
단아 : (울먹한 심정으로 서있는)
강석 : 이강석입니다.
단아 : .....
강석 : 당신의 아내였던 이 여자를 사랑하는 놈입니다.
단아 : .....
강석 : 당신이 먼저 사랑했고, 이 여자를 위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당신과 싸울 수 없다는 거 압니다.
그래서 이 여자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란 것도 압니다.
한 때는 이 여자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당신을 질투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질투는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여자를 살려줬으니까.
살아남은 이 여자를 만나, 이 여자를 사랑하고 사람으로 살고 싶게 만들어줬으니까.
단아 : ......
강석 : 당신을 놓는 게 미안해서 오래 망설였을 이 여자,
내가 허우적거리는 게 가여워서 오늘 날 붙잡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와, 이 여자를 살리기 위해 죽은 당신에게 약속하려고 왔습니다.
이 여자가 죽은 다음엔.... 당신 옆으로 보내주겠습니다.
단아 : (눈물을 흘리는)
강석 : (눈물이 흐르는)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이 여자, 제 곁에 두겠습니다.
그렇게 서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