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민족전쟁 발발한지 69년 되는 날인 6월 25일 입니다. 지난 4편에 이어 5편에선 둘째 형님이 (1932~2007)몸소 겪은 전쟁 이야기 중 거제도 수용소 2년 간의 이야기와 만세삼창 후 국군으로 3년간 만기 복무한 이야기를 작성 하기로 했는데 필자가 수집한 자료가 아직은 미흡하여 다음 편에 소개하기로 합니다.
대신 이 편에선 민족전쟁을 겪으며 온 가족이 인민군 과 미군에게 다 피해를 입은 철원할머니 댁 이야기를 합니다. 이 야기는 박찬온 할머니의 구술을 바탕으로 9년 전 필자가 신사동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매일 새벽에 들렸던 할머니 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작성한 글 임.
★전쟁 발발시 철원 38선 이북에 있었던 가족 이야기로 민족전쟁으로 6명의 직계가족이 돌아 가셨다.
1.증조할머니: 1950년 4월
2.할머니 : 1950년 6월
3.아버지납치 : 1950년 10월 경[인민군에게 잡혀서 이북쪽으로 끌려가심. 생사를 몰라 생일 전날을 제삿날로 정함/(음)9월4일]
4.남동생 : 1950년 10월 경으로 사는 집을 미군이 폭격을 하는 바람에 산화됨.
5.할아버지 : 전쟁통에 가족들이 죽고 납치되고 뿔뿔이 헤어지는 것을 감내. (증조모님의 병환으로 피난을 못감)하시다가 홧병으로 사망.
1951년 9월에 돌아가시자 철원군 묘장면 살던 집 주변에 가묘 해 드리고 서울로 피난 (어머니, 본인, 남동생 3명)와서 상도동 숙부집에서 기거함.
민족전쟁에서 이렇게 많은 직계가족을 잃은 경우도 아마 없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구술을 받아 그 당시 이야기(1950년~1953년) 를 소개 하며 필자의 시를 나라를 위해 몸 바친 호국영령들께 바칩니다. 20190625. 민족전쟁 69주기 날 씀.
●민초 꽃 / 백하 한신섭
누가 너를 민초 꽃이라 불렀느냐 잊혀진 이름 민초 꽃이여 작은 몸짓 절규하는 너의 침묵 뜨거운 외침 꽃잎으로 말한다. 사랑의 눈이 아니고는 찾아지지 않는 꽃 너 민초 꽃이여 잊혀진 아픔 흙 심장에 뿌리박고 이슬 눈물 머금고 기다림에 피는 꽃 민초 꽃이여 바람 부는 우리 산하에서 오늘도 마지막 남은 씨앗 흙 심장에 흩날린다.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호국 선열들을 기억하며 정말 작은 마음이지만 감사의 뜻을 국화꽃에 담아 전합니다. 나라사랑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호국 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 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사)대한기자협회 임직원 및 전국 기자들과 함께 추모합니다. (사)대한 기자협회 중앙회장 김필용
칼과 총알은 눈이 없습니다. 칼집과 총대는 군인들이 매지만 그 또한 명분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모두 당시 정치상황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경제든 사상이든 종교든 최종결정권자인 정치가들의 판단일 것입니다. 민초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가 칼과 총을 앞세우게 하고 민초는 힘없는 노인과 아무것도 애기까지도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지나간 전쟁에서 귀한 생명을 잃은 모든 분들의 영령을 위로합니다. 좋은 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북한이 민족에 지은 역사적 죄악을
통일과 화합이란 미명으로 6.25순국자들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이 정부에 바랍니다
칼과 총알은 눈이 없습니다. 칼집과 총대는 군인들이 매지만 그 또한 명분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모두 당시 정치상황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경제든 사상이든 종교든 최종결정권자인 정치가들의 판단일 것입니다. 민초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가 칼과 총을 앞세우게 하고 민초는 힘없는 노인과 아무것도 애기까지도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지나간 전쟁에서 귀한 생명을 잃은 모든 분들의 영령을 위로합니다. 좋은 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