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계절이 무르익고
앞서간 시아버님의 인생 여정도 한때는
꽃피는 봄날이련가 싶었던 날들로 가득 인 듯 하여도
그새 황혼길을 접어들어
그 뒷자락 말미에
세상 저편의 유혹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후에
이승과의 작별을 감행하시니
그로부터 49일이 지났다.

마지막 재를 지내기 위해 대구로 향하던 시각
도저히 앞으로 전진 할 수 없을 만큼
하늘에서 비가 퍼붓고

도처에 넘치는 물과
도로를 점령한 비 덕분에
재 지내는 시간 안에 도착할 수나 있으려나 싶었더니
웬걸 충주 쯤에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 싶게 하늘은 개이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 징하도록 강력한 빗발을 뚫고 나온 것 만도 고마울 이나
대구로 들어서는 길목마다
언제 비 왔느냐 는 도로와 하늘이다.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인
대한민국, 좁은 땅덩어리가 이래도 된단 말인가...

어쨋거나
막재를 지내야 할 시간,
북지장사로 올라서니
이미 두 분-진주 극락선원 금당스님과 북지장사 주지 벽와스님- 스님께서
일정을 조절하고 계시는 중이다.

서울 경기 일원에서 오는 사람들이야 난리굿을 했던지 말았던지 간에
대구는 멀쩡하다 못해 푹푹 찌는 날씨로 객들을 맞이한다.
그런 까닭에
도저히 법당 안에서 재를 지낼 수 없음이요
멀리
진주 극락선원에서 초청되신 금당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도
북지장사의 뜨락으로 낙점된 셈이다.




일단은
멀리서 오신 객들과 상주들의 시아버님 영전의 인사를 시작으로
시아버님의 영가를 극락왕생 시키기 의한 천도제가 진행되고

그로 부터는
금당스님의 법문과 함께 49재의 일정이 시작된다,



지독히도 더운 날
대구에서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경기, 서울 일원에서는 침수 피해와
안성천은 범람 직전이라...미친듯이 울려대는 핸드폰에는
무설재를 염려하는 전화와 문자가 수북히 쌓였음이나 절대 전화거절이다.

의식이 끝나고
시아버님께서 좋아하던 북지장사를 한 바퀴 돌면서
다시한번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뒷뜰에 마련된 화장장에서의
살아생전 좋아하시던 많은 것들을 함께 보내드리기 위한 절차와

가시는 걸음마다
시아버님의 흔적이 함께 따라갈 것을 염원하는 순간에도
온 가족의 애끓는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본인의 의지대로 잘 살아내신 시아버님이시기에
가시는 길조차 평안 그 자체이니

마지막까지
객관적 입장에서의 스님 말씀을 빌리자면
"효자녀, 효부, 효서랑-사위-, 효손들의 표본이라
의성김씨 문중에 길이 남을 일" 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무설재로 돌아오는 시각...선산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을 보는 순간에 다시 장대비가 내린다.
할 수 없이 시아버님의 산소에는 못 들르나 싶어
문경 휴게소에서 비를 피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길을 오르니
기절하고도 남을 일이요
이때만큼은 시아버님의 특별 배려가 아닐까 싶도록
문경 터널에서 문경 휴게소 초입으로는 비가 한 방울도 안내렸다.
해서 다시 운전대를 시아버님의 상석이 모셔진 곳-문경군 마성면 오천리-으로 돌리고
지난 주에 초토화 시킨 풀들을 확인하고
시아버님께 인사를 마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의
바로 그 현장이 아니더냐.

어쨋거나
그 잠깐동안 한 방울의 비도 허락하지 않으신 시아버님의 놀라운 능력인지
기상이변의 징조인지 몰라도
인사를 드리고 돌아나와 차에 오르기 시작하니
그때로 부터 다시 비가 쏟아진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요
그 장대같이, 억수같이, 미친듯이 퍼부어대는 비를 뚫고
무설재로 돌아오니
다행스럽게도
무설재의 견공들과 장독대와
무제와 무설재 뜨락 일원이 몽땅 무사하다.
그쯤에서야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쓰린 위장을 달래니
하루가 참으로 길고도 길었음이나
수면 한자락으로 감당하고
금요일 하루, 군대 간 아들 녀석의 준비물을 챙기면서
토요일의 만남을 기약한다.
...............그러고 보니 여름감기란 놈이 아직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함께 즐기자는데 이를 어째?
첫댓글 그랬군요 가신 어른님의 완전한 생을 반추 하시고 장엄하고 엄숙한 49재를 드림에 위로와 비록 가셨지만 남겨진 분들을위한 배려가 충만함을 느낍니다
신검은 잘 하셨나요> 벌들에게 헌납하신 실들은 괜찮으시구요? 어쨋거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100탈상은 추석 전날 무설재에서 치르게 됩니다. 전날과 추석날 이츨의 제사상....
고생하시었소. 산자의 길보다 망자의 길을 종종 생각해 보는 연륜이 되었나 봅니다.
우리도 벌써? 조금 더 새월이 흐른 뒤에 생각해 보소서...
보내드리는 절차가 불교식 의식은 무척 길고 다양한 절차로 남는군요~! 암튼 비속을 잘 다녀 왔다니 다행입니다.
이승 사는 것 보다 저승 가기가 더 어려운 가봐요.
길목의 친구는 폼으로 두셨소?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씩 지나던 길을 이제 조금 뜸해지겠네요. 목마름을 채워줄 친구는 못되어도 허기진 배을 채울 친구는 되는걸로 알았는데......
ㅎㅎㅎ 그것이 아니구요. 남성천이 무너지기 직전이라는데 어느 강심장이 집 걱정 안하고 노닥거리겠습니까? 빗길 속에서도 미친 듯이 달려오니 삼죽면에는 산사태 났다고 주유소 에서 알려 주지 완전 초죽음 이었습니다. 이해 하소서..그래도 신선은 조상 관리 혼자 다 하는 사람 모양 자주 문경에 갈 겁니다. 칼국수 부탁혀요...
시간의 흐름이 화살보다 빠른 듯 합니다. 더위에 고생하셨습니다.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좋구요...^^
맞아요...비 올까 싶어 노심초사 했더니만 다행스럽게도. 잘 계시죠?
생과사에 길목을 부지런히 넘나더시던 49제 무사히 마치시고 본마음으로 돌아가신 모든 분께 두손모음니다. 대구에서 미지에 얼굴 뵙고 싶어는데...그리움을 다음 기회로...항상 맑고 밝은 좋은 날 되소서...^*^
고맙습니다.많은 분들의 염려 덕분에 무사히 49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죠. 그동안 무설재도 많이 소홀했으니 오늘 면회로 아들도 잠시 잊고 무설재에 전몀해야죠. 언제든 날아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