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을 조건으로 해서 수(受)가 있다. 즉, 육입(六入)과 명색(名色) 그리고 식(識)의 삼자가 촉함으로써 수가 있게 된다. 내가[六入] 대상[名色]을 접촉[觸]하여 있는 것으로 의식[識]할 때 느낌, 감정[受]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대상이 실제로 ‘있다’고 여길 때[觸入處]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좋거나 싫은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법 여섯 가지 대상을 인식하고 접촉하면 좋거나[苦受] 싫거나[樂受] 그저 그런[不苦不樂受] 3가지 느낌이 일어난다. 여기에서부터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자의 접촉은 있을지언정 좋거나 싫은 느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다음에 살펴볼 애욕이나 취착으로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촉을 조건으로 해서 좋거나 싫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좋은 느낌은 더욱 취하려고 하고 싫은 느낌에서는 멀어지려고 하며 그로인해 탐욕과 성냄 등의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수는 멸해야 할 것이다. 수를 멸한다는 말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느끼되 느끼는 그 대상에 속지 않는 것이다. 느낌이 진짜가 아님을 아는 것이다. 그 느낌은 ‘촉’에서 나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십이연기에서는 수(受)만 언급되어 있지만, ⟪잡아함경⟫306경에서는 “촉에서 수상사가 함께 생겨난다”라고 함으로써 수(受) 뿐 아니라, 상(想)과 사(思)가 함께 생겨남을 설명하고 있다. 수상사는 곧 오온의 수상행(受想行)이다.
결국 촉에서는 수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想)과 행(行)도 함께 생긴다. 여기에서 오온이 생겨나는 것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