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 기억속으로...
설날, 모처럼 시내를 나가 보았다...
월내를 출발하여... 이번에는 울산이 아닌 부산으로 향했다.
일광, 기장, 송정, 그리고 해운대 신도시... 그리고 벡스코를 지나...
부산에서는 가장 잘나가는 동네... 중산층들이 사는 동네...
그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니... 산자락의 집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어느 후미진 동네의 골목길...
그런데... 그렇게 초라하고 후미진 골목길은 처음이었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고 하는 부산에 이런 동네가 있었다니...
아이들의 옷무새도 한마디로 남루함 자체였다.
나도 달동네에서 살았었고, 지금도 가난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 직업상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을 만나며, 일명 한정식이라고 하는 2~3인, 10만원대의 음식을 먹곤 하였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주로 중산층, 상류층이었고...
식사도 호텔이나 고급 식당, 그리고 화제도 주로 나의 가이드가 아니면...
경제이야기나... 중산층 사람들의 라이프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 였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만나다 보니, 나도 언젠가 부터 주류층과 가까워졌나 보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나의 삶이 부끄럽지 않다고 자부해 왔는데, 부유함을 부러워 하거나 동경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렸을 적 살아왔던 동네와 별반 다를바 없는... 부산의 이 동네가... 왜 이리도 낯설게만 보이는 건지...
내가 살았던 동네는 서울의 흑석동 이었다.
일명 달동네라는 곳...
그곳에서 나는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더 가깝게 달을 볼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별들을 볼수 있었는지...
가난한 형편에도 과학잡지를 사주신 어머니 덕분에 천문과학자를 꿈꾸며 보냈던 소년시절...
내가 살았던 흑석동의 산언덕의 동네에서는 매일 마다 계주 달리기로 아이들이 시간을 보냈었다.
달동네 아이들의 놀이는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저, 죽자고 뛰는 것이었다.
장난감, 인형... 그런 것 없었다... 그저 뛰고, 또 뛰었다.
가을 운동회때 청군, 백군 릴레이 대표는 다 우리 동네의 형, 동생들이 차지했었다.
나 또한 릴레이 대표 후보가 될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 실력이 중학교, 고등학교 체력장까지 이어져... 반에서 1등은 못했지만, 2등안에는 들었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뛰어 왔던 동네...
그 후미진 골목길이 왜... 내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3년 전에는...
자가용만 타고 다녀서 버스비가 얼마인지 당황했던 나...
그렇게 못난 나를 밟아가며 올라갔다.
계단... 그토록, 정말 지긋지긋했던 계단...
어렸을 적 그렇게 원망많이 했던 계단...
그래서 내가 집 사면 절대로 계단없는 집을 살거라고
맹세해서 아파트도 거부한 나...
그렇게 나는 예전의 나를 찾아 가고 있었다...
숨이 차오르는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며 올라가서 본 정상...
서민들의 고된 몸뚱아리를 뉘우고 뉘어서 쌓고 쌓은 아파트들....
서민들의 홍루를 페인트칠한 아파트가 저... 만치나 아래에 있었다...
한참을 바라 보았다.
올라갈때 흘린 땀방울 만큼... 내려올때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이 이럴진데... 다른 지역은 오죽할까...
그 후미진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내 자신을 원망하고 부끄러워 했다...
나의 호의호식이 너무나 큰 죄였음을... 나는 느끼고... 또 느끼며 걸어 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그 후미진 동네를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골목길을 나올때 본...
화장 진하게 한 미니스커트의 여자가 왜 가엾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니, 가엾은 건... 나일 것이다...
그렇게 있는 사람들하고만 부대끼며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나의 정체성을 잃고서 살아 왔으니까...
그 골목길에서...
잃어버린 내 과거를, 잃어 버렸던 나를... 되 찾은 것이 기쁘다...
그래, 나는 달동네의 소년에서... 어른이 된것 뿐이다.
월내로 돌아오는 지금... 마을버스의 시골냄새가...
나의 눈물을 억누르고 있다..
2006. 1. 30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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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해 새해를 맞이하며 보셨든 느낌들을 전해 오셨군요..., 그래요, 때론 "춘향전"의 주인공보다는 "방자와 향단이"의 역할이 더 맛깔스럽게 살아 간다는 것을 요..... 저역시 느낌에 공감을 하며 잊고 사는 삶을 되돌아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