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1일~12일 양일 동안 샌프란시스코 미 연준은행에서 “일본의 버블, 디플레이션, 그리고 장기침체”라는 제목으로 대규모 국제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경제사회조사연구소(ESRI), 일본 정부, 시카고 경영대학원, 콜럼비아 경영학과가 공동개최한 국제회의로, 현 일본 경제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 정책적 전망을 공유하고자 기획된 회의였다.
이 국제회의는 아베노믹스의 시행의 단초가 마련된 국제회의이다. 아베노믹스의 사령탑인 하마다 고이치 하버드/동경대학 명예교수와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대학교재로 쓰이고 있는 국제경제학 전문가인 모리스 옵스펠트 버클리 대학교 교수등이 참가한 국제회의였다.
일본 경제의 문제에 대한 샌프란시스코 미 연준은행 국제회의가 도출한 결론은 “엔고”였다. 즉 이 국제회의의 목적은 “엔다카 휴코우(円高不況)”라고 불리는 엔고 불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새로운 엔저 정책을 도출해 내는데 있었다.
“엔다카 휴코우”가 품고 있는 뉘앙스는 1980년대 미일 무역마찰과 이를 자기 입맛대로 조정하려는 미국이 자행한 일련의 조치로부터 1990년대 이래 지금까지의 불황이 야기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일본인들이 이해하는 사정은 다음과 같다. 1980년대가 되면 일본은 ‘1할 국가’가 된다. 독일과 더불어 미국과 경쟁하는 국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저자세로 일관하였다. 1980년대 내내 일본은 미일 무역마찰에서 미국의 불합리한 요구를 거의 모두 수용한다.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마쓰시마 자위대 기지를 방문, 731 부대를 연상시키는 '블루 임펄스'에 탑승해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모습.ⓒ사진출처=산케이신문
1985년 플라자합의와 1987년 루브르 합의에 따라 일본은 미국의 수출에 유리한 환율정책을 막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양보해주었다. 그리고 소위 자발적 수출규제(VER)라고 불리는 ‘대미 수출을 자제하고 미국 수입품을 많이 소비해주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의 사례가 그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국과 일본은 특별한 관계의 나라이다. 1853년 페리 제독의 쿠로후네(흑선)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이후, 약 90년 후인 1941년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하였다. 거의 100년을 통해 이룩한 경제를 단 4년만에 송두리째 날려버린 것이다. 일본은 1945년 8월 미국에 조건없이 항복하였다.
아이러니하게 미국은 이런 일본의 성장을 돕는다. 일본의 경제발전은 오오쿠라쇼(대장성:재무성)와 통산산업성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오쿠라쇼가 동경대학 법학부 재원들의 머리로 움직였다면, 통산산업성(MITI)은 전범들의 집단이라 불리만한 곳이다. 통산산업성의 대부분 핵심관료들은 193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여 괴뢰정권 만주국을 세웠을 당시, 그곳에서 일하던 전시경제체 관료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후 급속한 일본 경제발전의 핵심은 미국의 용인하에 전개된 전시경제체제의 연장이라는 일각의 평가가 그리 야박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일본 전문가인 찰머슨 존슨은 통산산업성을 통해서 일본 경제기적을 해명한다.
이렇게 성장한 일본은 전전 부국강병으로 침략국가에서 평화국가로 전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1970년대 일본은 PHP 선언을 한다. PHP 는 “번영을 통한 평화와 행복”이란 뜻으로 곧 경제적 부흥을 전쟁이나 침략의 발판으로 삼지 않겠다는 선언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경제성장의 목표가 침략이나 전쟁이 아닌 평화와 행복이라는 평화국가라는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계속되는 경제적 양보는 이러한 맥락에서 빗어진 것이다. 이러한 양보는 1980년대 플라자, 루브르 합의나, 대미 자발적 수출 규제 같은 일련의 조치에 대한 한 해석이 될 수 있다.
日 평화국가 기조에 이상 징후...양적완화는 동아시아 겨냥한 정책
그러던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으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아베노믹스는 자국의 수출경쟁력을 회복하고 환율을 인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경제성장(자본생산성)에 기인한 결과가 아니라 화폐적 조치를 통해서 달성하겠다는 것이 특이할 뿐이다. 아베 신조의 무제한적 통화공급은 양적완화를 의미하는데, 이는 일본이 미국과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조치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엔다카 휴코우 여파인 1992년부터 근 10년간 지속된 헤이세이 공황의 와중에 일본은행이 단행한 조처이다. 이것을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가 조금 고쳐 쓴 것이다. 원래는 일본이 오리지날인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부분에서 여러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경제성장을 통한 수출경쟁력확보와 여기서 비롯된 엔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실물경제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얼마 가지 못할 것임에 불보늣 뻔한 일이다. 물론 이 불보듯 뻔한일이 몇년을 더 계속될 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한 가지 염두해야 될 것은,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노리는 엔저는 원화의 절상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원화의 절상은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을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미국은 지난 몇년동안 계속해서 중국의 위엔에 더불어 원화의 절상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2011년 2월 4일 미국 재무성이 의회에 제출한 ‘국제경제 및 환율정책에 관한 의회 보고서(Report to Congress on International Economic and Exchange Rate Policies)’는 한국을 직접 언급하면서 “환율에 ‘강하게(heavily)’ 개입하는 국가”로 지목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원화가 지나치게 평가절하되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2010년 12월 말 현재 원화는 2007년 고점보다 여전히 24% 절하된 상태이며 위기 전 고점보다 실질환율 기준으로 25% 절하된 상태이다.”
또한 우리는 유럽의 사정도 봐야 한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앨런 멜쩌는 유로존의 해법으로 다음과 같은 처방을 제시하였다. 남부유럽 국가들은 독일이나 프랑스 보다 낮은 노동생산성 국가다. 따라서 동일한 유로화를 사용할 경우, 독일의 제품이 훨씬 더 수출이 잘될 것이기 때문에, 일단 수출생산품 경쟁력을 확보하고 재정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라도 유로존에서 나가 있는 이른바 소프트 커런시(soft currency) 해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해법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들 남부 유럽국가들이 수출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장으로 동아시아를 꼽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멜쩌는 동아시아의 평가절상이 유로존 남부유럽국가들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노리는 엔저, 미국의 평가절상 압력, 유로존의 동아시아 평가절상 압력은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을 겨냥한 정책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점만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아베노믹스의 엔저 정책은 제조업위주의 투자와 고용창출을 외면하고 있어, 성과가 나면 날수록 그 끝이 불안하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위기를 극복하는 각 나라마다의 독자적인 활로마련 정책이 결국 나라 간 충돌을 불가피하게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는 자본의 대안만이 주목되는 논의의 구조속에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