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이병천은 동방박사가 나라 잃은 동이족이었다는 파격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소설 ‘90000리’(다산책방)를 써냈다.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가는 동방박사의 여정을 담은 이 장편소설은 탄탄한 구성과 수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실재했던 하나의 역사 속으로 초대한다.
동방박사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더욱 매력적인 사건이 되고, 각색되어 무대에 오르곤 했다. 과연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이끈 건 어떤 힘이었을까? 또 왜 사람들은 동방박사를 조명하고 싶어 안달할까.
작가는 시비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동방박사 그들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고? 그게 도대체 어디?”냐고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들 스스로 기껏해야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설왕설래 궁금증만 커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동방박사가 동이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다. 지도를 펼치고 손가락으로 중국과 인도 그리고 페르시아를 따라갔다. 그는 더 동쪽을 봤다. 유대의 땅에서 동쪽으로 90000리 떨어진 곳에서 그의 눈길은 멈췄다. 그곳은 고조선이 자리 잡았던 땅이었다.
소설 ‘90000리’에서 고대 우리 선조 한 무리는 중국 하북성 동쪽 소재 갈석산 인근에서 베들레헴까지 두 발로 걸어갔다. 직선거리로 대략 7,200km라고 하니, 산 넘고 물 건너 길을 열고 찾아 만들면서 가야한다면 적어도 그 다섯 배 거리, 36,000km 이상을 걸어야 했을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다시 리(里) 단위로 환산해보면 90,000리 길이다.
‘구만리.’
꿈에서도 그려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득한 거리. 이병천 작가는 까마득한 그 거리를 고조선 유민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신을 찾아 떠난 머나먼 대장정 ‘구만 리 대서사’로 형상화해냈다.
이병천이 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그의 주변 사람들은 조선 건국과 예수라니 소가 하품을 하겠다고 일축했다. 구만리라는 아득한 거리에 지레 겁을 먹었고, 신성 모독을 언급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병천은 고조선이라는 구슬, 홍익인간 구슬, 묵가 구슬, 스스로를 천손이라 믿었던 우리 선조들의 신앙 구슬,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라는 구슬, 몽금척 구슬, 요셉이 목수였다는 구슬, 동방이라는 모호한 지명 구슬까지 이것들을 꿰고 묶어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단지 단순 일용직 기술자나 수공예업자에 지나지 않았다고.
‘90000리’여정은 BC 1년 한 제국의 수도 장안에서 시작한다. 이 시기는 고조선이 한 제국에 의해 멸망한 지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로, 고조선 유민이 남하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때다. 한 제국의 영토는 나날이 확장되어갔다.
작가는 ‘90000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고조선이 멸망할 무렵에 부흥운동을 펼쳤던 이들의 후손으로 설정했다. 이들이 사는 곳의 지명은 ‘여우난골’이다. 이는 작가가 평소에 좋아하는 백석의 시에서 지명을 따온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동이족들은 온갖 핍박을 견디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긴 시간 노력한다. 한 제국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기에 언제나 특별한 감시를 받고 살아간다.
아사달, 아침의 땅 조선은 하늘이 내린 나라이자 하늘의 자손들이 다스리는 나라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백년 전에 싱겁게 망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게 하늘의 뜻인가? 만약 그렇다면 새 별의 탄생 역시 하늘의 뜻이어야 하리라. 다만 하늘이 그 빛을 풀어 어느 곳을 비추는가가 중요했다. 유감스럽게도 그게 조선 옛 땅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 자신들의 땅에서 별의 탄생이 훤히 바라보인 건 도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소설 ‘90,000리’ 중에서
소설 곳곳에는 천손임을 의심치 않았던 고조선 유민의 절망과 슬픔이 묻어난다. 그들이 믿었던 하늘의 나라가 멸망당하는 일을 겪으며 이들은 나라를 되찾으리라는 열망을 품는다. 그리고 열망은 새 별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며 그들은 망설임 없이 별을 쫓아가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들의 열망을 가슴에 품어 동방박사로 탄생시켰을 뿐이다. 그의 파격적인 상상력이 역사를 왜곡하고 신을 모독했다고 비난할 것인지. 고조선 유민 12명의 바람을 담은 ‘90000리’가 그래도 정말 불손한 것인지.
“쇠불 박사, 저 별빛의 머리가 가리키는 곳은 예서 얼마나 멀까요?”“가보시렵니까?”“예서부터 제까지 삼만 리, 제서 저기까지도 삼만 리, 저기서 거기까지 또한 삼만 리, 도합 구만 리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살 길은 하나뿐이다”-소설 90,000리’중에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들의 구만 리 여정. 그들은 길 위에서 서로를 향해 칼날을 벼리기도 동행을 선택하기도 한다.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가 하면 어느 순간 적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작가 이병천은 인간의 존재는 길 위에서 나약할 뿐이며 목적을 향해 걷는 인간의 고행을 90,000리라는 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별이 가리키는 그곳으로 가는 길과 과정이 중요한 것임을 나라를 잃은 동이족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90,000리 대장정을 떠나 예수를 만난 고조선 유민들은 끝내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지 못했다. 그들은 목숨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만 리를 걷는 동안 구원을 얻었다.
이병천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이족을 보여주면서, 버겁고 버거워 인생이 구만리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그 버거움이 바로 구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신을 만나러 가는 길, 인간은 신을 닮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