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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東洋畵) 보고 읽는 법
동양화의 감상에는 보는 법과 읽는 법 두 가지가 있다. 보는 법은 그림의 구도와 배치, 필치의 세련됨과 섬세함, 선의 강약과 채색의 농담, 묘사된 사물의 독창성과 정교함 등 작가의 작품솜씨를 보고 즐기는 것이며, 읽는 법은 그림이 안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여 작가가 감상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는 것이다.
그림에 내포된 의미를 파악하는 동양화의 독화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려진 사물의 이름을 중의적으로 번안해서 읽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그려진 사물이 갖고 있는 우의(寓意)와 상징을 이용해서 읽는 방법이며, 세 번째는 그려진 사물과 관련된 고전이나 명현들의 일화와 관련된 명구(名句)를 통하여 읽는 방법이다.
동양화가 동일한 소재, 동일한 형식, 동일한 구성으로 반복되어 그려지고 그렇게 해도 표절시비가 일지 않으며, 게나 가재, 박쥐와 같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사물을 소재삼아 그려지는 이유도 바로 이 동양화의 독특한 독화법 때문이다. 먼저, 그려진 사물의 이름을 한자의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중의적으로 번안해서 해석해야 하는 독화법의 예로는 향나무 그림과 박쥐 그림을 들 수 있다 향나무는 한자로 백수(栢樹)이다. 백수는 100살을 뜻하는 백수(百壽)와 음이 같다. 그래서 향나무 그림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향나무는 주로 늙은 향나무(老栢)로 그려진다.
박쥐는 한자로 복(蝠)이다. 이 복은 복록을 뜻하는 복(福)과 음이 같다. 그래서 박쥐 그림은 복록을 바라는 기복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대개 다섯 마리로 그려진다. 다섯 마리의 박쥐(五蝠)는 오복(五福)을 뜻한다.
겸재 정선의 노백도(老柏圖)와 베개 측면에 수놓아진 박쥐 문양 ▶ 향나무는 장수를, 박쥐는 복록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현상은 그림에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진다. 숫자 4(四)는 죽을 사(死)자와 음이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서 4자를 멀리하거나 꺼리는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관이나 아파트에서는 4호실이 없으며, 병원 입원실에는 4호실은 물론 4층마저 없다. 엘리베이터에도 4층은 4를 뜻하는 영어 Four의 이니셜을 따 그냥 F로 적어놓는다. 우리나라 군대에 4연대나 4사단, 4군단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동차 번호판과 전화번호도 4자는 기피대상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인들은 발전을 뜻하는 발(發)과 팔(八)의 발음이 같다하여 8(八)자를 매우 좋아한다. 동일한 의식구조가 불러온 발상에서 파생된 현상이 한쪽에서는 선호하는 숫자 양상으로, 한쪽에서는 기피하는 숫자 양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매우 이채롭고 흥미있다. 폐백 때 신랑신부에게 밤과 대추를 던져주는 풍습도 한자의 동음이의어에서 온 중의적 표현의 풍습이다. 흔히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이 풍습은, 사실은 어서 빨리 잉태하여 후손을 번성시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신랑신부 폐백 모습 ▶ 신랑신부가 부모님이 던져주는 밤과 대추를 치마폭에 받고 있다. 대추는 한자로 조(棗)이고 조는 빠르다는 의미의 조(早)와 동음이의어이다. 밤은 한자로 율(栗)이다. 우리는 이 밤 율자를 ‘율 또는 률’로 읽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설립(立)자와 같은 음으로 읽힌다. 과일은 자손을 뜻한다. 그러므로 밤과 대추가 합쳐지면 ‘조립자(早立子)’라는 글귀가 만들어진다. ‘조립자’란 속히 자손을 잉태하라는 의미이다. 그림의 우의와 상징으로 읽어내야 독화법이 풀리는 그림의 종류로는 포도 그림과 모란 그림을 들 수 있다. 동양화에 나오는 포도는 반드시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그려진다.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는 다산과 자손의 번성을 의미하며, 줄기에 매달려 있는 형상은 계속 대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대를 표현한 것이다. 모란꽃은 꽃 중의 꽃이라 할 만큼 화려한 꽃이다. 그래서 모란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상징한다. 그럼 모란과 목련, 해당화가 함께 그려진 그림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그림은 목련은 우의와 중의적으로, 모란은 우의적으로, 해당화는 중의적으로 해석해야 읽어진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뜻한다. 목련은 꽃망울이 붓같이 생긴 꽃이라 하여 목필화(木筆花)라고도 한다. 그래서 목련은 선비와 문관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최고 학문연구기관은 홍문관(弘文館)이었고, 홍문관은 옥당(玉堂)이라고 했다. 해당화의 당(堂)은 집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꽃을 함께 그려 놓으면 부귀옥당(富貴玉堂)이라는 글귀가 된다. 재물도 갖추고 학문적으로도 성공하는 가문이 되라는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 되는 것이다.
사임당 신 씨가 그린 포도 그림과 모란, 목련, 해당화가 함께 그려진 그림 ▶ 포도는 다산과 자손의 번성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모란, 목련, 해당화가 함께 그려진 그림은 부귀옥당(富貴玉堂)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리적으로 따져보면 이 세 종류의 꽃은 같은 화폭에 담길 수 없는 꽃들이다. 왜냐하면 목련은 4월 초에, 모란은 5월 초에, 해당화는 6월 중순에나 피는 꽃이고, 세 꽃 모두 개화기간이 10 ~ 20일로 짧아 개화기가 서로 중첩되지 않는 꽃들이다. 그러나 동양화에서는 단골 소재로 곧잘 쓰인다. 동양화는 실재적 현상을 묘사한 사실적 그림이 아니라 사물에 내포적 의미(內包的意味)를 부여해서 나타내는 관념적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럼 고전이나 명현들의 일화와 관련된 명구를 이용하여 읽어내야 하는 그림에는 어떤 그림이 있을까? 그것의 대표적 그림이 바로 ‘삼여도(三餘圖)’이다. 삼여도란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왜 ‘삼어도(三魚圖)’라 하지 않고 ‘삼여도’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물고기 어(魚)자와 남을 여(餘)자가 중국발음으로 동음이의어여서이다. 삼여란 세 가지의 여가를 말한다. 이 말은 위지 동이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진수의 삼국지 중 위지 왕숙전(王肅傳)에 나오는 얘기이다. 위지에 부속된 왕숙전의 동우(董遇)에 관한 일화에서 유래된 명구인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 날 한 농부가 동우에게 찾아와 가르침을 청한다. 동우는“책을 백번만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나게 되므로(讀書百徧意自見) 그럴 필요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자 농부는“농사짓느라 바빠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동우는 “학문을 하는 데는‘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그를 타일러서 돌려보낸다. 동우가 말한 세 가지 여가란 ‘밤, 겨울, 그리고 궂은 날’을 말한다. 밤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요, 겨울은 일 년의 나머지 시간이며, 궂은 날은 맑게 갠 날의 나머지라는 뜻이다. 삼여도는 면학(勉學)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난 내 서재를 내 스스로 삼여재(三餘齋)로 부르고 있다.
임전 조정규(18세기말~19세기 초)의 삼여도 ▶ 2폭의 삼여도 인데 각 폭마다 3마리의 물고기가 그려져 있다. 삼여도는 학문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새해가 되면 호작도(虎鵲圖)를 그려 붙이거나 서로 주고받았다. 호작도란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그림이다. 그럼 이 호작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호작도는 잘못된 그림이다. 새해 아침에 호작도를 그려 벽에 붙이거나 연하도로써 서로 주고받는 풍습은 중국에도 있었다. 아니, 중국에서 건너온 풍습이다. 그런데 중국의 호작도는 우리와 약간 다르다. 우리 호작도에는 호랑이가 있지만 중국의 호작도에는 표범이 있다. 중국의 호작도는 호작도(虎鵲圖)가 아니라 표작도(豹鵲圖)이다. 그럼 중국인들은 왜 표범을 그려 넣었을까?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이며, 표범 표(豹)자와 알릴 보(報)자는 중국 발음으로 동음이의어이다. 그러므로 신년에 그려진 표작도(중국에서는 보희도(報喜圖)라고 한다.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을 알리는 그림이라는 뜻이다.)는 새해에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신년희보(新年喜報)라는 글귀가 된다.
그런데 그런 고찰 없이 단순히 풍속만 전해지다 보니 표범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표범을 호랑이로 잘못알고 벽사(辟邪)의 주재자인 호신신앙(虎神信仰)과 융합되면서, 좋은 소식은 까치가 전해주고 사악한 것은 호랑이가 막아준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달아 민간에 널리 퍼진 풍습으로 보인다.
우리 호작도(민화)와 중국의 표작도 ▶ 까치와 호랑이가 그려진 호작도는 까치와 표범의 잘못된 그림이다. 까치와 표범이 그려진 표작도(豹鵲圖)는 새해에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신년희보(新年喜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작년에는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였다. 올해는 경인년(庚寅年), 호랑이의 해다. 소해를 보내고 호랑이해를 새로 맞았다. 새해를 맞으며 올해 역시 호작도를 주고받은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모르고 그런 거야 할 수 없는 일이고, 알고 그랬다 해도 수백 년이나 이어 내려온 전통의 세시풍속 좀 따랐기로 무슨 흉이 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와전된 풍습인지를 알았다면 뒷맛까지 개운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럼 호작도 대신 다른 연하도(年賀圖)를 그려 의미를 부여한다면 어떤 그림이 좋을까? 다른 해라면 몰라도 호랑이해만큼은 보내는 소해의 소 그림과 당면한 호랑이해의 호랑이 그림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거기에 호시우행(虎視牛行)이란 의미를 부여함이 어떨까 싶다. 호시우행이란, 판단은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하되 행동은 소처럼 신중하고 끈기 있게 하라는 말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늘 곁에 두고 마음에 새겼다는 이 말은 송광사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비석에는 우행호시(牛行虎視)로 각자되어 있다고 한다. 호시우행과 우행호시가 어떻게 다를까? 잘은 모르겠지만, 같은 듯 약간 다른 교관겸수(敎觀兼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차이처럼, 짐작컨대 두 분 다 교선일치(敎禪一致)를 내세웠으면서도 교관겸수로 교종적 색채를 느끼게 했던 대각국사 의천과 달리 정혜쌍수를 주장하며 선종적 색채를 느끼게 했던 지눌 스님의 실천적 수행정신이 강조되어 나타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눌스님은 호시를 교종적 수행 태도로 우행을 선종적 수행 태도로 본 것 같다.
작년 한해를 돌아보면 올 한해는 또 어떤 한해가 될지 조금은 두렵고 조심스럽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공자님의 말씀이 실감난다. 마지막 날인 어제까지만 해도 새해 예산안을 놓고 벌인 편법과, 꼼수, 그리고 날치기....... 그야말로 몰상식과 파렴치의 극한을 보여주기 위해 작심들을 한 듯하다. 올해는 제발 큰 사건과 시끄러운 일 좀 안 만들어 국민들 신경 쓰게 하는 일 좀 없었으면 좋겠다. 모든 분야가 다 순리대로 흘러가고, 가정경제도 넉넉해져 집집마다 활기가 넘쳐흐르고 건강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들을 이루는 그런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0년 호랑이해, 우리는F 가족 모두에게 글로나마 '호시우행'이라는 의미를 실어 호우도 한 장씩을 그려 보내니 호랑이 같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황소 같은 뚝심과 실천력으로 목표하는바 모두 이루어 성공적인 해로 만들어 가시기 바란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세 마리의 소 그림
수목화와 수묵담채화,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수묵화
▶ 수묵화의 표현 기법
[포마 노경상의 수묵화(일지병풍)] ○ 수묵 담채화
[박순철 작 수묵담채화] ○ 진채화(후채화)
[작가미상의 진채화]
장계인의 그림산책에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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