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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이 무너지던 날 하루 438mm의 폭우가 쏟아졌단다. 가는 길 곳곳에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되어, EDL에서는 안전문제로 만류하였지만 서부발전의 구호활동팀과 합류하기로 하고 팍세 행 비행기를 탔다. 이륙하자마자 메콩강을 건너 태국영공을 관통한다.
곳곳에 폭우로 침수지역이 보인다. 라오스 최남단 대도시인 팍세 역시 메콩강을 끼고 있다. 강 건너 서쪽은 태국이고 강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시판돈(4000개의 섬)지역과 맞닿은 캄보디아 고도를 낮추고 있는 비행기의 창 너머로 침수된 농지가 보인다. 흙탕이 된 메콩의 수위가 무섭다
. 피해가 심하지 않은 아타프의 주도에서 서부발전 구호팀과 합류해 숙박 후 아침 7시 반에 싸남싸이 수재민 캠프로 출발, 30km 남짓거리를 1시간 20분 걸려 도착했다. 학교 운동장에 커다란 텐트들이 쳐있고 교실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한 교실에 한 5, 6세대 정도가 함께 유숙하는 거 같다. 옷가지 같은 구호품들이 교실 한 쪽에 쌓여 있고 교실 바로 밖에서는 숯불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좋은지 마냥 즐겁다. 예상보다는 깨끗한 편이었다. 서부직원들 말로는 처음에는 쓰레기와 소의 배설물로 엉망이었는데 우리 구호팀이 계속 청소를 하고 쓰레기 봉투를 나눠주고 솔선수범을 보인 결과라고 한다.
오늘은 이발봉사를 한다. 매주 20명씩 보내고 있는 서부발전의 구호팀이 이번이 다섯번째인데, 상황에 따라 구호활동이 달라진단다. 초기에는 주변청소와 옷과 생수, 빨래 줄 설치 같은 기본적인 삶과 위생에 관한 지원이었는데 이발봉사로 바뀐 것은 그만큼 상황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나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아이들 머리도 깎아주고 구호 팀이 한국서 가져간 줄넘기를 나누어 주고 시범을 보였더니 바로 놀기 시작한다.
언론에서 얘기하던 한국사람들에 대한 증오나 적대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 동안 SK와 서부발전, KOICA나 한국의 여러 NGO들이 진심 어린 구호활동으로 편한 관계를 구축해 놓은 덕분일 것이다. SK는 사고직후에 임시 이재민 숙소를 짓기 시작해 140가구의 첫 번째 단지를 이번 주 완공 이주시킨다. 한달 만에 지은 숙소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현재까지 공식 집계된 인명피해는 사망 40명과 실종 96명이다. 6개 마을에 1,372가구가 피해를 봤고 이재민의 숫자는 4,592명이다. 초기에는 수 천명의 인명피해를 숨기고 속이고 있다고 소문이 돌았으나 이제는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히려 실종되었던 사람이 다른 지방에서 돌아오는 등 몇 명씩 줄고 있다. 총 130여명의 희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개인 및 대물 피해 조사는 9월말을 목표로 되어가고 있고, 관심의 초점인 댐 붕괴 원인의 조사위원회를 조직하여 진행 중이며, 붕괴된 보조 댐의 지반조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원인조사결과에 따라 책임의 향방이 갈리니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이 전전긍긍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의 사업방식은 전형적인 Project Financing 컨소시움 형태이다. 약 11억불의 사업비용 중 70%는 태국의 Krungsri은행을 주축으로 한 대주단에서 투자를 하고, 나머지 30%의 자기자본을 SK26%, 서부발전25%, 태국 Ratchburi 25%, 라오스의 LHSE(Lao Holdings State Enterprise)가 24%를 분담하는데 라오스의 지분(총 비용의 7.2%)은 우리 K-EXIM에서 EDCF 차관을 해 주었으니, 태국이 77.5%를 직접 투자했고 우리측은 차관공여를 포함해서 22.5%를 투자한 셈이다.
순수 재무투자자(Financial Investor)인 태국의 대주단을 제외한 Share Holder들은 각자 역할분담이 있어 사고 원인에 따라 책임도 다르리라 본다. 본 사업의 주체는 4개 사의 컨소시엄인 PNPC(xePian xeNamnoi Power Co.)이다. PNPC에서는 이 분야 세계굴지의 Tractebel사를 Owner's Engineering사로 고용하여 기술적 총괄을 맡겼고, SK는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를 맡아 내년 2월이 준공목표로 시공 중이었다.
서부발전은 모든 설비가 시험을 마치고 준공이 되면 인계를 받아 27년 간의 양허 기간 동안 O&M(Operation Maintenance ; 운전, 유지, 보수)을 하도록 계약이 되어 있고 이미 현지직원들을 채용하여 훈련을 거의 끝낸 상태이다. 태국의 Ratchaburi Electricity는 CM (Construction Management)를 맡아 태국의 건설사를 고용하여 건설관리를 시키고 있었고, 라오스지분 관리조직인 LHSE는 사업 인허가를 담당해 왔다. 이렇게 복잡한 사업구조이니 사고원인에 따른 책임소재 구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음 날 낮에는 볼라벤 고원 상부 댐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밑에서 볼 때는 마치 병풍같이 펼쳐진 볼라벤 고원, 우리에게는 2012년 8월 막대한 피해를 준 태풍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밀림이 우거졌던 곳곳에 산사태의 흔적이 보이고 전에 없었던 폭포가 많이 생겼단다.
특히 가는 길가에 위치한 후에이호 발전소는 인출 송전철탑의 경과지가에 벌건 흙이 보이니 큰 비가 또 내려 사태가 나면 발전기까지 묻힐 것 같다. 수 억년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고원, 만약 올해 같은 홍수가 매년 있었다면 다 깎여 오래 전에 없어졌을 것이다. 기후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일까 ?
무너진 댐 현장에 도착하니 댐은 간 곳이 없고 없었던 강이 생겼다. 아직도 주변의 지반이 붕괴가 진행 중이라 1km 이하 접근이 불가능하다. 땅이 생각보다 무르다. 바닥에 들어난 지반을 보지도 못한 채 세남노이 본 댐으로 향했다. 세피안강을 막은 메인 댐까지 본 댐이 2개 중간중간 낮은 계곡을 막은 보조 댐이 5개인데 보조댐들은 흙과 돌로만 쌓았다.
길이 1.6km의 본 댐에 도착했다. 한창 공사 중이던 3년 전에 와봤던 곳인데 완성된 것을 보니 규모가 예상보다 크다. 사고 일주일전에는 만수위였을 것이 수억톤의 물을 흘려 보내고 나니 잠겼던 나무들의 회색 빛이 서럽다. 무너진 댐 근처 상부에 다행이 좋은 위치가 있어 공사재개를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지근무 직원들 모두 주말을 반납하고 밤낮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올 겨울 건기에 댐을 완성하고 담수를
시작해도 올해 같은 폭우가 오지 않으면 내년 우기철에 다 채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술적인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라오스 정부, 아타프 주민들의 양해와 동의가 중요하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도 급하지만 투자국인 태국도 조속한 공사재개를 위해 힘쓰고 있을 것이다. 원인조사 결과를 본 후 공사재개가 원칙이긴 하나 이번 건기를 놓친다면 공기는 더 길어진다. 설득력 있는 댐설계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