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다. 어마어마한 섬광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번뜩였다. 다니모토 목사는 아직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섬광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시내에서 산 쪽으로 움직였다. 거대한 태양이 빛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1945 히로시마/존 허시-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에놀라 게이'라는 이름을 가진 B29 비행기에 실려 온 '리틀 보이'라는 원자 폭탄이
세계 최초로 핵폭탄 효과의 실험 대상이 된 히로시마 상공 500m 지점에 떨어졌다.
그리고 3일 후인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에 또 한 방. 그 이후의 상황 보고가 이 책이다.
피폭 지역에서 가깝든지 멀든지 즉사자, 점진 사망자, 눈이 녹아내린 자, 살가죽이 벗겨진 자, 날아가 처박힌 자,
심각한 화상자, 원자병으로 앓다가 죽어가는 자 등에 대한 자세한 실태 보고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전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이었다.
모든 전쟁은 처참하다. 히틀러가 지하 벙커에서 권총 자살하기까지 독일은 전쟁을 부추기고 상대국을 저주했으며,
일본 왕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 선언을 하기까지 일본은 승리 망상에 취해 있었다.
거창한 명분으로 국민을 속이면서 국가를 파멸로 이끌어갔고,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 국민들은 미국에 대한 원망과 저주로 일관했다.
정치지도자들의 더러운 탐욕에다가 대의명분이라는 설탕을 발라놓은 독약을 국민들이 받아먹은 것이다.
이차대전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자들 중에 자기 죄를 인정하는 자는 없었다.
일본 전범자 중 자기 죄를 인정하는 자 또한 없었다.
전쟁에 패하자마자 수많은 전범자들이 이름을 고치고 숨거나 도주했다. 떳떳했다면 왜 숨거나 도주했겠는가.
막상 체포된 후에도 그들은 뻔뻔하게 상부의 명령이라든가 공무상의 책임감 등을 운운하면서
죽은 자에 대한 반성이나 자기 죄악에 대한 회오가 없었다.
내가 아는 한 나라를 위해서라느니 대의를 위해서라느니 천황을 위해서라느니 선동하면서
살인과 수탈을 일삼은 수많은 전범들이 전쟁 마감 후 전쟁 패배 전 같이 당당히 자신의 지론을 펼쳤던 인간은 없다.
자기들의 악행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된 아히히만. 그는 수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나치 4인방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교수형에 처해지던 날에도 자기에게 죽음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회오나 미안함이 없었다.
어째서 하나같이 그들은 무죄를 주장할까? 극악범이기 때문이다. 뻔뻔하기 때문이다.
양심이 죽어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에게 삼켜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악이 인간성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이 되었기 때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 발은 피흘리는 데 빠른지라(롬3:10-15)"
이 성경 구절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선행을 하거나 합리적인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선량한 사람, 너그러운 사람, 교양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간의 영적 사망과 근본적 부패성을 지적함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죽어있고, 그래서 하나님 없는 마음에서 인간의 악은 만개하는 것이다.
수많은 전쟁의 참상을 겪었으니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까? 다시는 전쟁도 흉악한 전범도 없을까?
머리 빈 철학자들의 주장처럼 인류의 교육 수준이 최고에 달하게 됐으니 범죄도 전쟁도 없어질 것이란 말인가?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자들이 시골 촌부였던가?
그 살인귀들은 최고의 지성으로 무장된, 가정에서 훌륭한 아빠나 남편들이라고 일컬어지던 자들이었다.
지성의 가면을 쓴 악인들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 수천 배 위력에 달하는 폭탄을 날리는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의 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의 은혜로 치료되며,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된다.
2025. 1. 7
이 호 혁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