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8월22일(일)맑음
초록보살님 공양 청으로 비란치아에서 점심 먹다. 강주연못 로터스에서 방금 서울에서 내려운 지월거사와 함께 차담 나누다. 저녁에 함께 정진하다.
2021년8월23일(월)비
지월거사 새벽에 함께 정진하고 아침 공양하고 떠나다. 점심때 향인과 현정보살님 와서 공양 준비하다. 때마침 혜광거사와 하산거사 그리고 연경보살, 하심보살 와서 함께 공양하다. 차 마시며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환담을 나누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비는 시나브로 내린다.
2021년8월24일(화)비, 차차 맑아짐
오전 10시 고려병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맞다. 점심 공양하고 쉬다. 태풍이 지나간다.
저녁 무렵 하늘이 푸른색을 되찾으니 두루미가 남쪽으로 날아간다. 남강에 물이 불어 든든하게 흐른다. 송계거사 퇴근길에 들러다.
2021년8월25일(수)흐림 가끔 비
지월거사가 양재천 산책하면서 느낀 소감을 보내며 시를 지어달라 해서 지었다.
川邊散策 천변산책
開雲天光復, 개운천광복
川邊遊逸鶴; 천변유일학
艸頭靑靑夏, 초두청청하
凉風感季促. 양풍감계촉
구름 걷혀 하늘 다시 빛나고
학은 한가하게 시냇가를 노닌다,
풀잎마다 여름이 아직 푸른 데
서늘한 바람은 계절을 재촉하네.
2021년8월26일(목)맑음
모처럼 화창하다.
소위 ‘지금’이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표현에 의하면 ‘그럴듯한 현재’인데, 사실상 3초간의 간격이다. 바로 그 짧은 사이에 우리의 뇌는 도착하는 감각 데이터를 짜 맞추어서 통일된 경험을 만들어낸다.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시간의 강은 급류 구간도, 완만한 구간도 있을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듯하다. 즉 자신의 흐름 속에서 싫든 좋든 우리 모두를 실어나른다. 거부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게 우리는 초당 1초의 엄격한 비율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거가 우리 뒤에서 존재 밖으로 미끄러져 나가면, 한때는 미지의 불가사의였던 미래가 마침내 늘 서두르는 ‘지금’에 굴복하면서 우리 앞에 자신의 평범한 현실을 드러낸다.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2021년8월27일(금)보슬비, 맑아짐
아침에 보슬비 살짝 내리다. 화단 구석진 곳에 잡초 한 포기가 미안한 듯이 서 있다. 왜 잡초는 미안해야 하는가? 화단을 관리하는 사람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되지 못하기에, 사람의 미적 기준에 미달한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화단을 구성하는 화초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로 잡초는 제거될 때까지 임시로 거기에 빌붙어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주인의 눈길에 거슬리는 즉시 냉큼 뽑혀서 햇볕에 던져졌다가, 말라 비틀어지면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다. 화초와 잡초의 구별은 인간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인간의 삶에 얼마나 유용한가라는 기준이 자연을 둘로 나눈다. 인간 마음이 벌이는 이런 짓을 분별 vikalpa이라 한다. 非實在의 假立이다. 실재하는 것이 아닌데 이름으로만 있는 임시로(거짓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이건 자연을 인간의 편의에 얼마나 유용하느냐로 재단하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이다. 이것이 회복가능성이 의심될 정도의 환경재앙을 만들어낸 원인이다. 모든 화초가 이름 붙이기 전에는 무명의 잡초이었다. 어느 날 인간의 눈에 든 잡초는 이름까지 얻어서 화초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화초든 잡초든 다만 풀일 뿐이다. 자연은 인간의 관심을 끌어서 특별 대우를 받으려고 거기 있는 게 아니다. 자연은 다만 스스로自 그러할然 뿐이다. 그러기에 自然은 法이다.
오전에 요가하고 점심 공양하다. 저녁에 지월거사 와서 함께 정진하다.
2021년8월28일(토)맑음
오전에 하산거사와 연경보살 와서 커피 마시며 시사 문제를 이야기하다. 점심 공양하고 시우에서 생강차를 마시고 헤어지다. 오후에 포항에서 지월거사 여동생 배덕화와 그의 부군이 찾아왔다. 裵德化는 불면증과 강박증으로 인해 불안하다. 차담을 나누며 속사정을 토로하게 함으로써 강박을 내려놓게 하고 호흡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다. 명상 말미에 자기에게 하는 기도를 안내하다.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갔다.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고 살았는데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된 지금 자기 몸의 일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불편함이 생기자, 낫지 않고 이대로 갈 것 같은 불안과 뭔가 잘못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좌절, 그래서 이렇게 사느니 죽고 싶다는 강박감으로 힘들어한다. 전형적인 한국인 중상류층 50~60대 여성의 고통이다. 이제는 삶을 통제하려는 의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좀 가볍게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서 애쓰다가, 너무 애써서 삶이 힘들게 되었다면 그 애씀이 무슨 소용인가? 나팔꽃은 애쓰지 않아도 아침마다 피어나고, 구름은 애쓰지 않아도 가벼이 하늘에 떠 있다. 자연적 조화의 흐름에 맡기면 만사가 저절로 되어가는 수도 있다. 지금 여기 모든 것이 완전하지 않은가! 雲在靑天水在甁. 운재청천수재병. 하늘엔 구름, 병에는 물!
2021년8월29일(일) 한때 천둥 소나기
아침 먹고 지월거사 서울로 돌아가다. 점심 공양 후 천둥벼락 우르릉 꽝 번쩍 쏴쏴 소나기 한차례 곧 소강상태가 되다.
수학자의 악몽: 버트란드 럿셀
“썩 꺼져라, 너는 편의상 만든 기호일 뿐이니!”
2021년8월30일(월)맑음
오후 7:30 가을학기 개강하다. 9명 참석하다. 연경보살이 김희숙 불자를 새로운 법우로 모셔왔다. 쌍계사 금당선원에서 저녁 포행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강의를 시작하다. 무위법과 유위법은 지금 여기에 중첩되어 있다. 의도를 가진 행위의 영역(무위법)과 의도를 내려놓은 존재의 영역(무위법)은 양방향으로 소통가능하다. 행동할 때 의도를 확실히 자각하라. 최고의 의도는 보리심이다. 의도가 흐리멍덩하면 결과도 흐리멍덩하다. 지금 당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 당신의 몸과 마음, 당신의 성격과 정서는 당신이 평소에 사용한 의도-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간에-의 결과이다. 의도를 가지고 살되, 의도를 내려놓는 여유를 가져라. 일체의 의도 없이 그냥 존재하라, 그러면 열반이 현전하리라. 열반은 지금 여기 누구에게나 무조건적으로 가능하다. 말은 유의의 세계에 빠진 사람들을 무위법으로 인도하는 방편이며 도구이다. 말은 열반을 가리키고 있지만, 열반을 직접 맛보여 줄 수는 없다. 말의 한계와 가능성에 착안하라. 언어이전의 소식은 이미 여기에 들리고 있다. 말을 잊으라, 새로운 지평이 열려오리라. 이름 붙이기를 멈추라, ‘살아있음’의 축복이 밀려오리라. 생각은 쓰고 버릴 것이지 붙잡아 둘 물건이 아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쓸 뿐, 생각에 빠지지 말라. 그렇더라도 생각이 있든 없든 문제가 없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음을 상기한다. 법문이란 가슴에서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과 같아서 청중의 반응에 화답하여 울려난다. 따라서 법문은 법사와 청중이 화합하여 울려 나오는 진리의 음악이다. 그것은 일회성이며 반복가능하지 않기에, 오직 법회에 참석했던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그러나 불참자들을 위하여 동영상으로 녹화하여 다움카페에 올린다.
2021년8월31일(화)맑음
구참수좌 고우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다. 모래 봉암사에서 영결식과 다비식이 엄수될 것이라 한다. 수행시대를 대표할만한 두 분, 적명스님과 고우스님도 이렇게 가시는구나! 오래된 숲을 지켜왔던 고목이 쓰러지니 빈자리가 허전할 것이지만, 빈자리가 본래 자리인지라, 인걸의 가고 옴은 다반사이다. 오히려 그 빈자리에 쓸데없는 것들이 빌붙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首座脚下淸風拂, 수좌각하청풍불
寂明逝後古友遷; 적명서후고우천
羲陽山頭茶毘火, 희양산두다비화
萬古光名輝大天. 만고광명휘대천
수행자의 발아래 맑은 바람 불어
적명스님 가신 후 고우스님도 떠난다,
희양 산머리에 다비 불꽃 피어오르니
만고의 광명이 대천세계를 비추는구나!
오후1시 동초스님을 동행하여 봉암사로 가다. 오후 5시 도착. 쌍계사 금당에서 하안거 함께 났던 진현스님이 남훈루 16호실을 잡아주어 쉴 수 있었다. 동초스님은 일월암(암주 법종스님, 서암스님 상좌)에서 일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