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따라 골목따라] '수정'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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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썰어횟집· 돼지뽈수육집
연신 썰어댄다.
푸줏간에서 잔치고기 썰 듯 손에 칼바람 나게 신이 올랐다.
한쪽에선 광어,우럭,숭어 등 잡어를 계속 잡아대고 그 옆에는 껍질 벗겨 포를 뜨고,
옆 사람은 회를 썰어 대나무 접시에 보기 좋게 담는다.
회 한 접시 장만하기까지 채 5분이 안 걸린다.
그 신기에 가까운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하니 그 분들이 펄쩍 뛴다.
그 모습마저 싱싱하니 보기 좋다.
수정시장은 수정동 산복도로 주민들과 오랜 세월,애환을 같이해 온 시장이다.
여타지역과 달리 산복도로 주거문화가 발달한 부산에서도
초량산복도로 주변은 시장이 서민생활의 공용공간이자 문화소통의 장소였다.
그래서 산복도로 밑 수정시장은 철저한 서민시장이며 서민들의 마음을 데워주는 먹거리 중심의 시장이다.
어느 곳에 앉아도 부담 없이 저렴하고,무엇을 먹든 간에 배부르게 양이 많다.
산복도로 위,집에 가기 전 잠시 술 한잔 걸치고 가는,서민의 정취가 강하게 남아있는 시장인 것이다.
수정시장은 규모에 비해 횟집과 돼지수육집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 중에도 횟집촌은 부산 곳곳에서 찾아 올 정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가격에 비해 양이 푸지고 싱싱하며,회 값도 아주 싸다는 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중론이다.
횟집은 시장골목과 시장건물 안에 걸쳐 30여 곳이 성업 중인데,골목에는 전문횟집이,
건물 안에는 식당형태의 횟집이 영업하고 있다.
실컷 회를 맛보고 싶다면 전자를,이것저것 시켜서 편안하게 고성방가(?)스러운 술자리를 가지려면 후자가 알맞다.
전문횟집에는 회를 수북하게 썰어주는 수정시장형(?) 막썰어횟집과
곁들이 안주가 로바다야키 수준으로 제공되는 실속형 횟집이 있다.
동행의 많고 적음과 식사를 겸하고 안 하고 등에 따라 골라 앉으면 된다.
건물 안 식당형태의 횟집은 회 만원어치만 주문해도
시장에 있는 모든 음식을 여러 가지 자유롭게 시켜 먹을 수 있다.
물론 자릿세는 없다.
특히 이곳의 회국수는 술안주로도 좋거니와 술꾼들의 해장에도 안성맞춤이다.
횟집들과 더불어 수정시장의 또 하나 자랑거리가 바로 돼지뽈수육집들이다.
시장 골목에 20여 집이 밀집해 있는데,그날 잡은 돼지머리를 뼈만 발라내고
남은 머리고기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낸다.
돼지머리고기는 10여 가지의 다른 맛을 낼 정도로 맛깔스럽다.
특히 뽈살수육을 묵은 김치에 싸서 먹으면,입 안 가득 고이는 고소하고 깊은 맛이 젓가락을 놓지 못하게 한다.
물론 큰 가마솥에서 은근한 불로 끓여낸 돼지국밥도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먹거리들이 있는데,
동해산 흑고동을 포항에서 직접 공수해 맥반석에 구워먹는 흑고동구이집,
동태찌개에 막걸리 한잔이 일품인 동태찌개집,
포항 꽃새우와 보리새우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오도리집,
10년 단골은 명함도 못 내미는 수정시장 터줏대감 소문난할매김밥집 등이
수정시장의 또 다른 한 면을 채우고 있다.
이런 수정시장에 앉아 도다리뼈회와 회국수에 막걸리 한잔,
그리고 돼지뽈수육에 투명한 소주 한잔을 더하면,
새삼 같이 있는 지인들이 더욱 아름답고 귀하게 여겨진다.
모두들 아름다운 귀가를 꿈꾸며 마음의 허기 대신 사랑을 담아가는,
우리 마음의 주유소 같은 곳.
그래,수정시장은 멀리 집의 불빛이 깜빡일 때,잠시 자신을 추스르는 휴게소 같은 시장이라고 해두자.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