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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공동체와 성도의 삶
에베소서 4:1-32(신p.313) 찬송 218장 / 찬송 213장 20150101
오늘도 에베소서 4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교회와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초대교회들에게 교회론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는 동안 복음을 통해 예수를 믿고 세상에서 구별된 존재, 교회가 무엇인가? 깊이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교회가 사람들의 모임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교회를 구별하신 것은 교회에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가?
지난 시간에 에베소서 3장에서는 바울이 깨달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은 바울 자신이 이방인에게 처음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이제 교회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예수를 알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 사람이 강건하게 되어 예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높고 깊은지를 깨닫기를 원한다”고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4장에 와서는 이 땅에 교회 공동체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는 세상사람들과 다른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 공동체 속에서 성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4:1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로,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한 행함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합니다. 삶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바울이 이야기 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으로 예수를 깨닫게 되고 믿었으니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라고 말씀합니다.
2-3절을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용서, 평안”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갈라디아서 5:21절을 한 번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바로 앞에 갈라디아서가 있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욕심을 따르지 말고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의 열매는 이런 것이다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22절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용서, 평안”을 비교해 보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각자에게 성령을 통해 예수를 믿게 하시는 목적이 뭐냐? “서로 다른 우리가 한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써 지키라,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해라”이런 뜻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 성격, 자기 집안, 자기 자존심 때문에 하나되기가 쉽지 않지만 “성령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노력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저절로 다른 사람이 용납이 되고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통해 “겸손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고 용서하고”자꾸 노력할 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써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나는 나다”하면서 “나를 따르라”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목사들, 장로님들, 직분 자들이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왜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를 당위성을 설명합니다.
4-6절에 보면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 주도 한 분 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는 “몸도 하나, 성령도 하나, 소망도 하나, 주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 하나님도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을 믿고, 한 주님을 따르고, 한 성령을 통해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방향이 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있다면 다른 영을 받았거나, 다른 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 속에서 뭔가 하나 되지 못하고, 갈라지고 나눠지고, 다투고, 싸우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를 채야 합니다”그리고 그런 일에 동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바울은 성도 각 사람에게는 “자기 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은혜와 은사를 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7절에 보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선물의 분량대로, 어떤 성경에는 믿음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각자가 다 다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서로 다르면 못 견딥니다. 이것을 전체주의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같아야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잘 되도 다 잘되고, 망해도 다 망해야 편하지 한 쪽은 잘 되고 한 쪽은 안되고 하면 불안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남이 장에 가면 거름지고 장에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데 서로 다른 것을 우열을 가려가지고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고 이런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게 될 때 좋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욕심”입니다.
은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기 때문에 내게 맞는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도리어 내가 어떤 것을 잘 할 수 있는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은사가 무엇인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도와 주는 것이 바로 은사 입니다.
11절-12절에 은사와 목적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은사를 말씀하면서 “사도”사도는 “주님께 보냄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한문으로 “따르는 무리”라고 표현을 했지만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일꾼입니다. 선지자는 말씀을 해석해주는 사람이고 복음을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는 전도나 양육을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주로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로마서나 고린도전서에 보면 더 다양한 은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긍휼을 베풀고 구제하고 섬기는 은사, 여러 가지 재능과 지혜의 은사 다양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게 주신 은사로 성도를 섬기고,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나도 복을 받고, 다른 사람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은사가 바로 쓰여지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가 잘 못 사용되면 “나는 잘 낫고, 내가 최고다”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이 못하는 것을 도와 주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부족함을 채워주게 될 때 교회는 함께 자라고 함께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15절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게 되는 것이 교회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느 한 사람의 똑똑함이나 잘남 때문에 성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다 같이 서로 섬길 때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은사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선지자, 목사 교사”는 다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교회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이는(왜냐하면)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이런 예수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지 않으면, 온갖 지식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바른 말씀의 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이게 좋다 하면 이거하고 저것 좋다 하면 저거 하고 성도들이 똑 같은 일을 반복하다가 서로 지쳐가지고 성숙하는 게 아니고 서로 어린아이들처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게 된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한다고 했다가, 두 날개 한다고 했다가, 아버지 학교 했다가, 어머니 학교 했다가, G12, D12, 알파 했다가 성도들도 힘듭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고 이런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려면,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 되시는 예수님처럼 자라게 될 때 온 마디가 연결되어 제 기능을 하게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15-16절에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빨리 하고 급하게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늦더라도 바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대구샤론교회를 개척을 하고 정말 이곳 저곳 한 눈 팔지 말고, 하나님의 주신 이 66권의 말씀을 바로 배우고 바로 알아서 이리 저리 요동하며 흔들리는 교회가 아니라 여전히 그 곳에 변함없이 서 있는 교회, 성도들이 언제든지 와서 함께 복을 받고 행복을 누리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내게 주신 은사를 따라서 서로 섬김으로 누구든지 교회 와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 사랑을 나눌 때 자기 분복을 받아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다양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오늘 바울의 말처럼 내 믿음의 분량대로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를 깨달으셔서, 각자가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길 때 자기도 복을 받겠지만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17절-32절까지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조금 깊이 있게 살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다음 시간에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말하는 교회 공동체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 깨닫게 하시는 것을 내가 힘써서 노력해야 됩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와 은사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내게 주신 은사가 뭔가 깨달으시고, 그 은사를 통해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김으로 함께 성숙하고 성장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서,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교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풍조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고, 교회 오면 사람이 변하고, 교회 오면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은혜와 복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힘있는 교회 능력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