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 이언 매큐언 / 한정아 / 문학동네
소설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얼마나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이것이 무엇인지 논하는, 그림의 일부를 보고 그 그림에 대하여 갑론을박하거나, 그림을 그리라고 내어준 종이 뭉치 중의 한 장이 시커멓게 칠해진 것을 보고 그린 사람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부유한 가정의 늦둥이로 태어난 열세 살 소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에 대한 반응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깨우치게 한다.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아무리 어리더라도 용서할 수 없고, 속죄할 수 없음을,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소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작가는 소설 속에 소설을 넣어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그 어린 소녀 브라이어니를 재판정 위에 세워 놓고 판단을 요구하고 있으나 꼭 열세 살의 소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하면 잘못된 것일까?.
발단은 가정부의 아들이며 장래가 유망한 청년 로비와 주인집 딸 세실리아와 썸타는 짧은 과정과 목숨을 버리는 행동을 하면서까지 로비에 사랑을 고백했던 브라이어니가 (소녀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썸타는 과정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발생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겹쳐서.
작가는 브라이어니의 회상을 통해 로비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을 끄집어내지는 않는다. 그 장면은 왜 브라이어니가 그런 행동을 했을지 고민하는 로비를 통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린다. 아마도 브라이어니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잊은듯 하다. 사랑이란 단어의 의미란 그런 것이다.
더운 날씨, 사소한 실수, 잘못 전해진 편지, 세대 간의 몰이해 그리고 깊이 있는 오해와 주위 사람들의 편견이 부른 용서를 받지 못할 사건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 사이에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끼워 넣었다. 그냥 넣은 것일까?
소설 내에서는 그리 주목받지 않는 사람, 진짜 물리적으로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롤스로이스를 타고 화려한 삶을 즐기는데 거짓말의 주인공 브라이어니만이 속죄의 대상이 되었다.
정녕 속죄를 구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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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떤 힘을 휘두를 수 있는지, 그리고 모든 것을 오해하기가, 완전히 오해하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희미하게나마 깨달았다. 65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도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한 몰이해가 불행을 일으켰다. 67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오늘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었나? 377
인간은 모두 물리적인 존재라는 것. 쉽게 파괴되지만 쉽게 회복되지는 않는 존재. 435
"해주기나 해"라니, 용서에 가까운 뜻을 품은 말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용서는 아니었으며 아직은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499
• 그래머스쿨: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중등학교, 11세부터 18세까지 다닌다.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