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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과의 전투에서 후퇴하는 등 전장에서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군인들을 처형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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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여전히 공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 달 안에 전술적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
존 커비 미 백악관 NSC 전략소통조정관/사진출처:페이스북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26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논평했다.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지 않았으니, 장담할 수는 없으나, 커비 조정관이 먼저 우크라이나 상황을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발언중 어떤 대목을 꼭 집어 기사화할 것인지는 각 매체의 선택에 달렸다. 언론 매체가 지향하는 노선에 따라, 또 국적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커비 조정관이 논평하고자 한 바는 왜곡되지 않고 전달되어야 한다.
현장 기자들은 통상 언론 용어로 '기사의 야마'(일본어로 산이라는 뜻)'를 잡은 뒤 기사 작성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여기서 '야마'는 발언의 핵심 또는 기사 작성시 가장 중요하고, 제목으로도 반영될 만한 내용을 뜻한다. 그리고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게 앞뒤 문맥의 연결이다.
커비 조정관 논평을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연합뉴스 등 국내 언론은 '공격을 거부하는 러시아 군인의 처형'을 '야마'로 잡았다. 국내 최대 뉴스 통신사 연합뉴스가 워싱턴 특파원발(發)로 그런 톤으로 전했으니, 네이버에 등록된 거의 전 매체가 이를 받아쓴다고 보면 된다.
우크라이나 매체는 '야마'를 달리 잡았다. 러시아군이 새로운 공격을 가할 것이며, 몇달 안에 전술적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미 국무부로부터 1억5,000만달러(약 2037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 안보 지원 발언이 나왔다.
커비 소통조정관의 논평을 다룬 연합뉴스(위)와 스트라나.ua. 미 백악관은 러시아가 몇달안에 전술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웹 캡처
두 매체의 보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연합뉴스는 "커비 조정관이 '러시아는 전장에서 계속해서 자국 군인의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군이 명령 이행을 거부하는 군인들을 실제 처형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우리는 러시아 지휘관들이 군인들에게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에서 후퇴하려고 하면, 부대 전체를 처형하겠다고 협박한다는 정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군은 여전히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장비가 부족하며 전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러시아군은 작년에 실패한 겨울 공세 때 그랬듯이,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다수 군인을 전투에 그냥 던지는 이른바 인해전술을 활용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반면, 스트라나.ua는 "커비 조정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논평했다"며 "러시아는 여전히 일정한 공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 달 안에 전술적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커비 조정관은 "우리는 러시아의 새로운 공격을 예상하고 있으며, 큰 충돌이 될 것"이라며 "러시아는 여전히 일정한 공격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은 (격전지인)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와 다른 전선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 계속 군인들의 생명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두 매체의 차이는 앞 뒤 문맥에서 갈린다.
스트라나.ua를 보면, 커비 조정관은 러시아가 아브데예프카 등을 점령하기 위해 새로운 공세를 가할 것이며, 전술적 성공을 거둘 능력도 갖고 있다고 인정한 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모한 '인해전술'적 작전도 계속할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반면, 연합뉴스는 러시아의 무모한 인해전술식 작전만을 아주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러시아는 새롭게 공세를 취할 것이며 전략적 성공을 거둘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뺐다. 인해전술식 무모한 작전을 먼저 거론했다면, 그런 식으로 러시아는 아브데예프카 등의 지역에서 새로운 공세를 가할 것이며, 몇달 안에 전술적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고 커비 조정관은 말했다고 써야 정확할 것이다. 앞뒤 문맥의 연결이 툭 끊긴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내 정치 관련 보도에서 자주 목격한 바 있는, '제목만 보면, 서로 다른 기사'인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는 거의 매번 이런 식이다.
다행히 아브데예프카 전장은 비가 내리는 가을철 날씨로 러시아군의 공격 강도가 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