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화학교육과 강성범
직관경험담 에세이 작성
이 경험을 이렇게 글로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오래된 일이지만 머리속에 나름 선명히 자리 잡고 것으로 봐서는 그때 당시에 상황이 긴박하긴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2004년 군복무 시절 경험한 이야기가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직관적으로 행동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에세이로 작성해 보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8월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입대했다. 논산에서 5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주특기를 부여받고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된다. 훈련병들은 여러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탔다. 버스를 타고 출발을 해도 목적지를 알려주지를 않아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가는 기분으로 버스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이동했다. 도착할 때 즈음 목적지는 대전의 어느 곳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한 곳은 대전에 위치한 국군의무학교였다. 국군의무학교는 일반사병을 의무병으로 교육시키는 곳이다. 이곳에는 국군간호사관학교도 같이 위치하고 있다. 나는 의무병(일반의무병, 약제병, 치위생병) 중에서 약을 다루는 약제병 이였다. 군대에서 가서 5주동안 공부를 했다… 군대가기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군대가면 머리를 하도 안 써서 머리가 다 굳는다고 들었는데…. 5주동안 나름 빡시게 공부했던 것 같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17사단 100연대 의무중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병장을 달아서 편한 군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대대에서 ATT(Army Training Test)훈련을 하는데 의무병이 부족하다고 해서 의무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나는 짬이 가득 찬 병장이라서 복귀 행군중에 앰뷸런스를 타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의무병은 각 중대에 파견 형식으로 나가서 보병이랑 똑같이 행군으로 복귀를 하고 있었다. 앰뷸런스에는 환자가 발생할 시 빠르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 본부중대 통신병이 한 명 타고 있었다. 행군중에 중대 통신병 한 명이 행군중에 퍼지는 바람에 앰뷸런스에 타고 있던 통신병이 퍼진 통신병 대타로 해당 중대로 가게 되면서 통신장비를 내가 담당해야했다. 군대에서 쓰는 무전기는 한번도 다뤄본적이 없는데 급하게 사용법을 배워서 통신대기를 하고 있었다. 한시간 정도 지났나… 갑자기 군의관한테 핸드폰으로 전화가와서 대대장이 왜 앰뷸런스 통신이 안되나며, 노발대발하면서 의무병 당장 나있는데로 튀어오라는 것이다. 분명히 통신장비는 아무런 신호가 안왔는데… 대대장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앰뷸런스에서 내려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대대장을 찾아다녔다. 한 30분쯤을 땀을 뻘뻘 흘리며 대대장을 찾았다. 대대장은 왜 통신을 받지 안느냐고 화를 내길래 통신장치에 아무런 신호가 오지 않았다고 하니까 통신병 보내서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 확인해 보니 배터리가 다 나가서 작동을 안했다고 하더라. 진짜 그때 얼마나 열이 받던지… 지친 몸을 이끌고 앰뷸런스에 다시 탑승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몇시간 후에 이등병 한 명이 퍼져서 더 이상 행군이 불가능하다고 앰뷸런스 타고 이동한다고 했다. 몸이 안 좋다고 하니까 중간중간 살피면서 가고있는데 갑자기 “컥컥”소리가 나서 얼굴을 쳐봤는데 코에서 피를 흘리고 숨을 제대로 못쉬고 있는 것이다. 너무 놀래서 군의관을 불렀는데 다른 곳에서 환자 발생해서 잠깐 나갔다고 앰뷸런스 운전병이 이야기 했다. 이거 군의관 찾으러 갔다가 환자 숨 넘어가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운전병한테 군의관 찾아오라고 시키고 나는 환자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아서 바로 하임리히법을 실시했다. 한 1~2분 정도 복부를 압박하니까 목에서 뭔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피로 범벅이 되어있어서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까 껌이었다. 껌이 기도에 걸려서 숨을 못 쉬었던 것 같다. 일단 숨은 트였는데 갑자기 숨을 너무 빠르게 쉬는 것이다. 이건 또 뭐지 하며 생각을 했다. 왜 이런걸까.. 그때 갑자기 머리로 스치고 지나간 단어가 있었다. “과호흡증!!!” 이 증상이 있는 환자는 숨 쉬는게 조절이 안돼서 들이마시는 산소를 줄이는 조절을 인위적으로 해줘야 한다. 보통 과호흡증이 있는 환자는 종이봉투를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어서, 병사 건빵 주머니를 뒤져보니까 은행에서 쓰는 종이 봉투가 들어있었다. 바로 코와 입을 봉투로 막으니까 2~3분 사이에 숨이 정상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환자가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군의관이랑 대대장이 함께 돌아왔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봐서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군의관님은 응급조치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고 대대장도 고생했다고 말을 해주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원칙적으로는 의무병이 군의관 지시없이 진료행위와 처치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거 괜히 내 마음대로 했다가 큰일 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눈 앞에서 숨을 못 쉬고 있는 사람을 보니까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만약 군대 규칙을 준수하고자 환자를 응급처치 하지 않고 군의관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책임이 나에게 올지 군의관에게 갈지는 잘 모른다. 그 순간 나에게는 그런 것을 따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눈 앞에서 숨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병원에서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나에게는 그 시간이 환자에게 있어 중요한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했고, 직관적으로 그런 응급처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최선의 처치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룻밤 사이에 억울하게 30분동안 밖을 뛰어도 다니고, 숨 넘어 가려는 사람을 살리는 일도 경험한 긴 밤이였다. 부대에 복귀해서 다음날 일과를 하고 있는데 주임원사님이 오시더니 어제 누가 앰뷸런스에서 환자 봤냐고 하시길래 병장 강성범 하고 대답했더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다” 하고 가시더라. 무슨 소리지….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몇일 뒤에 대대장님이 4박5일 포상휴가증을 주셨다. 대대장님 욕을 엄청나게 했는데.. 휴가증을 받으니까 그동안 했던 욕이 쏙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ㅎㅎㅎ
교육공학 강의을 들으면서 합리주의와 직관(창조)주의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합리주의가 왜 올바른 사고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지에 대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창조주의가 더 미래사회에 더 적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합리주의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사고의 전환을 쉽게 할 수는 없겠지만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앞으로의 시대를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댓글 강선생님~ 드라마 한 장면을 보는 거 같이 생생하고 재밌는(당사자는 당시 엄청 급박한 상황이었겠지만) 에피소드 잘 봤습니다.
이 에피소드야 말로 응급상황에서 직관을 아주 제대로 활용한 상황같아요.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매뉴얼 대로가 아니지만 과호흡과 하임리히를 떠올리고 행동하여 위험한 상황을 잘 극복한 직관의 좋은 예 같습니다.
중간중간 병장이라 편하게 앰뷸런스를 탔는데(결국은 편하지 않았던....ㅎㅎ) 또 통신이 안되어 대대장에게 깨지는...결말을 향해가는 빌드업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글을 재밌게 잘 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