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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소용돌이치는 저희들의 삶의 길속에서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시다가 오늘도 주님의 거룩한 날 주의 전에 나와 예배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저희로 하여금 이 시간 드리는 이 예배가 의식이나 의무가 아닌 진정과 신령의 감격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산 제사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힘과 복이 필요하지만, 앞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향한 간구와 감사의 찬양이 먼저 저희들의 필요에 앞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나라와 그 나라를 먼저 구할 때 저희의 지치고 상한 영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가 아버지여 저희들의 찢기고 상한 마음을 씻어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이물질의 부요와 방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시대의 사람들 속에서 저희들에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허무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신령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저희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바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예배하는 영광 돌리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 말씀은 이사야서 9장 6∼7절 말씀입니다.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아멘.
여러분도 보신 적이 있겠지만 이탈리아 피렌치의 한 교회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유명한 성화가 있습니다. 그 성화의 내용은 이러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여러 위대한 인물들 에놉, 노아, 모세, 다윗, 예레미아, 에스겔, 이사야, 미가 같은 사람들이 죽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과 태도들은 다양한데 그 사람들의 얼굴 방향이, 다시 말해서 눈이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들 어떤 사람은 누워있고 서있고 어떤 사람은 비스듬이 기대어 있는데 다 같이 바라보고 있는 한곳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그 건너편 벽에 그들의 시선이 몰리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아기 예수가 구유에 누워있는 그림을 볼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그림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모두 다 기다리고 있는 것이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예수님을 위해 일을 하였고 모든 인물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하는 이사야는 아기 예수가 탄생하기 800년 전에 오늘 말씀 이렇게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평강의 왕이라”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여러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이 아기의 다른 이름이 무엇이라고 하냐면은 기묘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이 아기를 설명하는 다른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은 모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신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아기의 이름이 기묘자라 모사라 하는 것까지는 혹시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아가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신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아기를 말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기도 하지만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의 놀라운 진리와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아기의 5가지 다른 이름 속에 성탄의 깊은 의미와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진리가 있음을 알고 이 5가지 이름을 한번씩 살펴보며 우리의 신앙을 견고히 하며 성탄의 의미를 우리가 확실히 알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이 아기의 이름을 기묘자라 하였습니다.
기묘자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번역이 기묘하게 되었습니다. 기묘자라고 하는 이름이 하도 어려워서 영어 성경을 보았더니 원더풀이라고 써있었습니다. 원더풀의 뜻이 무엇입니까? 와 하고 놀라는 뜻입니다. 놀랍다는 뜻입니다. 이 아기 예수의 이름이 이 아기의 존재가 정체가 참으로 귀하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아기를 사람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아기를 놀랍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아십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아시면 우리는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고 예수를 다 알면은 우리는 다 구원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아십니까?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그 분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그분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이해할 수가 있습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이사야 선지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기묘자라 놀랍구나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분의 삶에 대해서 아십니까? 그분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마술사 같지 않습니까. 그분은 말씀 한마디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의사 아닙니까.
그분은 앉은뱅이도 일으켰고 문둥병자도 깨끗이 하셨고 심지어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신 분입니다. 그분이 계시는 곳은 가시는 곳은 모든 귀신들이 모두 요동을 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참으로 그분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서 기묘자라 놀랍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분의 놀라운 삶은 그런 기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말씀과 윤리는 더 놀랍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세상의 윤리 법칙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이로 찬 것은 찬 것으로, 더운 것은 더운 것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폭탄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사상의 전환이라고 말을 합니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너의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대라, 너의 겉옷을 달라고 하거든 속옷도 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윤리와 이 응보의 사상은 여러분 정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일대 정신사의 혁명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석가도 인생이 죽음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물었을 때 불가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공자도 도를, 묻는 길을 묻는 제자에게 내가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도마가 물었습니다.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진리가 무엇입니까. 물었을 때 예수님은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길이다 내가 진리이다 내가 생명이다”
여러분 참으로 세상의 뛰어난 사람도,뛰어난 초능력적인 사람도 내가 진리이다 내가 생명이다라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끔 혹은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미치광이입니다. 아주 더러운 못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들에게 제자신에게 호소하고 결단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어중간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내가 길이다 내가 진리이다라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는 진짜로 길이든지 진리이든지 아니면 사기꾼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바울은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예수가 우리의 구주가 아니라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로다 그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만약에 예수가 거짓으로 내가 길이다 진리이다라고 말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분의 삶을 아십니까.
그분은 아무 흠도 티도 없이 사시다가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처절하게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십자가에서 하신 놀라운 말씀을 아십니까.
그분은 말로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때리고 발로 치고 침을 뱉고 찌르고 한 자들을 보시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이 몰라서 그렇니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실로 실천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놀라운,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세상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기묘자라 원더풀이라 이렇게 이사야는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을 본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많은 간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 물어 가로되 이는 어쩜이뇨. 이 어쩜이뇨도 원더풀 참으로 놀랍구나.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예수를 본 사람들의 증거입니다.
마가복음 7장 37절에 보면 사람들이 “심히 놀라 물어 가로되 그가 귀머거리를 다 듣게 하는도다. 벙어리도 말하게 하는도다.”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5장 26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심히 두려워 하며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히한 일을 보았도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를 만난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만 본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한사람은 인생에 기묘한일 놀라운 일들을 다 경험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사람뿐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 중에도 내자신 역시도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믿는 자의 삶속에 놀라운 기묘한 참으로 기묘하도다.
참으로 놀랍도다 하는 역사가 누구든지 다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만나십시오.
그러기만 하면 여기의 기묘자라는 원더풀이라는 우리의 삶의 우리의 인생에 이런 원더풀 하는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이 아기가 누구 입니까?
이 아기가 그져 태어난 아기가 아니라 원더풀 놀라운 기묘자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둘째로 이아기의 이름을 모사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한글 번역에 한문으로 어렵게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사라는 말을 영어성경에서 찾아 보았더니 영어 성경에 두 가지로 하나는 카운슬러라고 하는 컴패년이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카운슬러라고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상담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컴패년이라고 하는 말일 무엇입니까.
친구라는 말도 있고 동반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마 이 계혁성경 번역 당시가 1953년 이었으니까 우리나라 그때 당시 상담이라는 말이 없어서 또 그당시 동반자라는 말이 그 당시에 별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모사라고 번역을 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말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얼마나 상담자가 절실이 필요합니까.
누가 나의 깊은 마음을 다들어 줄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자기의 마음 가장 괴롭고 어렵고 두려운 말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정말 누가 나의 부끄러운 약점을 다알고도 나의 친구가 나의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세상에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한데로 20년을 살고 있는 아네가 갑자기 먼 남처럼 고독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럴 때 가장 내속에 큰 깊은 것들을 함께 나눌수 있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내 인생에 함께 동반하기를 누구든지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때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또 주님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인이 자기 젖을 먹는 아이를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이 여기지 아니 하겠느냐. 그러나 그들은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희를 내 손바닥에 세겼다.”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여러분 정령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깊은 고뇌를 우리의 부끄러움을 우리의 뼈아픔을 어려움들을 우리 주님은 다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것이 고쳐질 줄을 어떻게 해야 문제를 풀어 갈수있을 줄을 주님은 다알고 계시는 모사 상담자 동반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희 쉬게 하리라.”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분은 그 길과 방법만을 우리들에게 상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여러분들의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준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내 인생의 고난의 길들을 함께 가주십니다.
주님은 내 인생의 막장까지 함께 가시는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보면 남편이 실직하였다고 아내가 집을 뛰쳐 나가 버리고 아내가 교통사고 나서 불구가 되었다고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아내를 얻고 이런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실직을 하였어도, 우리가 불구가 되어도 주님은 너와 함께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끝날까지 너희가 요단강을 건널때까지 함께해 주시겠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약속을 하신 분입니다.
미국 남부 부림님 섬에 영국에서 온 한 귀족부인이 남편을 잊고 딸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딸이 사춘기가 되자 학교를 고만두고 가출을 하였습니다. 소문을 들으니까 히피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술집과 율락가에서 헤메며 거기서 돈을 벌며 삶을 건건히 이어간다고 소식이 들려 옵니다. 이 여인은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 여인이 딸을 찾아 나섰는데 보통 우리는 딸을 찾기 위해 딸의 사진을 붙이면서 이름을 써서 곳곳에 붙여 놓는데 이 여인은 자기 사진과 이름을 붙여 놓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감직한 술집과 율락가에 어머니의 사진을 붙이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줄을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딸의 사진을 붙이지 아니하고 자기의 사진을 붙여 놓았을까요?
다른 사람이 모르도록 딸만이 알도록 딸을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도록 딸의 부끄러움을 감싸줄려고 그리고 누가 딸을 붖잡아 오지아니하고 딸이 어머니를 생각해서 돌아오기를 바래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2주만에 딸이 찾아와서 울면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진을 보는 순간 어머니께서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의 모든 더러운 것을 덮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울면서 딸은 어머니의 품에 돌아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모든 것을 알고도 덮어주기를 원합니다. 자기의 부끄러
움은 생각도 하지않고 딸의 부끄러움은 가려주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딸의 막판 까지 함께 갈수 있는 동반자가 어머니입니다. 여러분 어찌 그 어미가 자기 배에서 태어난 자식을 잊겠습니까.
그런데 혹시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다고요.
그러나 “혹시 그들은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우리는 주님을 잊고 살고, 세상에서 빠져있고 주님을 귀찬해 하고 있지만 주님은 우리를 한없이 잊지 않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끄럽게 찢겨진 몸으로 돌아 올때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감싸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짐 맏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구인지
시험 걱정 모든 괴로움 없는 사람 누구인가.
부지럼 없이 낙심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한 친구 찾아 볼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과 같이 되실려고 오신 동반자 컴패년 우리 하나님의 사랑 이신것입니다.
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죄를 회계하고 충성하고 목숨까지도 내놓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바로 이사랑에 감격해서 이 은혜가 놀라와서 깨끗이 살기를 결심하고 충성하고 목숨까지도 바칠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외로움 속에 고독속에 절망속에 있습니까.
상담자 이신 모사이신 여러분 또 여러분의 끝까지의 동반자 이신 주님을 찾으 십시오. 주님께 나오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우리의 어떤 죄도 덮어 주시고 상하고 찍힌 우리들의 영혼을 치료하여 주시고 우리들에게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을 해결하여 주시는 여러분 참으로 우리의 친구 되실 것입니다.
셋째로 이아기의 이름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될 수가 있습니다. 이해로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세상의 법칙으로는 이해가 않됩니다. 자연 법칙으로는 이해가 않됩니다. 그래서 놀랍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기로 오셨다는 사실을 못믿는 사람이 있을수 있을 것입니다만. 만약에 하나님이 천군을 데리고 하늘의 천사들을 데리고 오신다면 믿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다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오셨다면은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만나 볼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분의 이름을 불러 볼수가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 만나기도 거의 불가능하고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기 예수로 오셨습니다.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말구유에서 태어 나셨습니다.
이름 없는 목수의 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누구나다 그분에게 가까이 올 수가 있었습니다.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그분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그분하고 상대할 수가 있고 만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저 멀리 있는 하나님, 일년에 한차례 제밥만 먹으로 오는 귀신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누구나 가까이 할수 있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여러분 이 깊은 하나님의 지혜 이 깊은 사랑 이 깊은 뜻을 이해하고 받아 들일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아기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같이 우리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요 또한 하나님의 전능의 정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말씀은 우리가 믿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귀한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제
정말 이 아기는 말구유로 오셨지만 세상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아기는 세상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예수는 저의 왕입니다. 진실로 저의 왕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김대중씨가 어떤 말을 하면 저는 거절을 할 수 있습니다. 그와 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의 어떤 말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거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죽으라면 저는 그냥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 서울대 교수가 한분 있었는데 자연 과학대학입니다. 전라북도 전주고 출신인 진기범이라고 제가 전도사를 하던 에덴 교회의 집사 였습니다. 자기 동생이 정신이 조금 이상해서 갖은 병원에서 고쳐 보았지만 못 고쳤는데 교회에 나와서 깨끗이 고쳐졌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가족들이 와서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저와 이분하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저를 서울대를 구경 시켜준다고 데려가서 어느 높은 건물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신앙 이야기를 하다가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아무 이유 없이 이 건물에서 떨어져라고 하시면 그냥 이 건물에서 떨어지겠습니다. 라고
장난 말이 아니라 자연과학자란 분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을 하던 것 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분의 고백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저도 눈물이 왈칵 솓아질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는 그분에게 왕 이었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높은 데서 떨어져라고 하면 떨어지겠다는 순종하겠다는 왕입니다.
여러분 저도 그분이 왕입니다.
오늘날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 중에서도 이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왕으로 섬기고 그분의 말씀 따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위대한 왕들이 위대한 영웅들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에게 경배와 찬양과 인생을 받쳤습니다. 후회 하지 않았습니다.
감사 했습니다.
이세상의 가장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계시는 그분은 바로 말부유에 오신 이아기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다압니다.
그분은 왕 그분은 주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자 역사는 두 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이 오신날을 기점으로 B.C 와 A.D로 나누어서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분이 오신지 2000번째 정확히 말을 하면은 1999번째입니다. 역사의 계산이 잘못 되었습니다 만은 1996번째의 해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탄절에 태어난 아기는 왕이십니다.
진정한 왕이십니다.
그런데 지배하고 강건하고 위협하는 왕이 아니라 사랑의 왕 생명의 왕 영원의 왕이라는 사실을 여러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이 아기를 나의 왕 나의 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법이 천국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이 아기를 영존하신 아버지라고 합니다.
처음에 기묘자라 모사라 왕이라 그랬다가 이제는 무엇이라고 하냐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점점 이아기에 대한 이름이 전입가경입니다.
여러분 아기가 아버지로 되셔서 오셨다는 아이러니를 아시겠습니까? 역시 이해가 안되서 앞에서 기묘자라 놀랍다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아기를 왕으로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자는 아버지라고 하여도 놀리에 차질이 없습니다.
물론 아버지라는 뜻은 우리가 말을 하는 육신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토합해서 더 넓습니다. 생명의 창조라는 뜻이요
나아가서 육신의 아버지 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를 양육하시는 분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그냥 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차이는 빛과 어둠처럼 생명과 사망처럼 다름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기도 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기도를 합니다.
그 아버지에게 잘못 하였다고 회계를 합니다.
여러분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바아버지여, 영존하시는 아버지여 나를 나아서 기르시는 육신의 아버지는 가버리지만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은 나와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입니다.
내 육신의 아버지는 3,4,50년의 아버지 이지만은 이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되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죽어서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마지막으로 평강의 왕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보면은 성탄절날 천사들이 이렇게 노래를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는 기뻐하심을 얻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흔히 이말을 사람들은 요약해서 하늘의 영광 땅의 평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해석은 잘못되었습니다. 왜냐 하면은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주님이 오셨다고 이 세상에 다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헤롯같은 이는 분쟁과 전쟁의 고통을 격어야만 했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더 싸움이 벌어진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평화는 누구에게 있습니까?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하였습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이 주님이 오심에 기뻐하는 자들에게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이 성탄은 진정으로 기다리며 기뻐하며 하나님의 이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의 이 사랑을 믿는 자들에게는 평화가 임합니다. 여러분 이 예수를 이아기를 기묘자로 믿는 자는 놀라운 모사로 믿는 자는 왕으로 믿는 자는 아버지로 믿는 자는 그 마음속에 큰 평화가 임한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그렇게 믿으십시오.
예수를 나의 왕으로 나의 모사로 나의 기묘자로 나의 아버지로 믿으십시오. 그렇게 믿어야만 평화가 오지 교회에 왔다가 간다고 평화가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왔다가 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받아 들일 때 예수의 권세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의 기도가 응답 됩니다. 다 교회에 다닌다고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믿는 자에게 기도가 응답됩니다. 그렇게 믿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가실 때 귀신이 물러간 것처럼 모든 귀신들이 물러 가는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가 끈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로다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성탄절이 오고 있습니다.
이 성탄절은 우리에게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탄절에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날에 특수입을 늘인다고 말을 하고 어떤 이는 귀한 성탄절에 죄악이 가장 많이 벌어지는 날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오신 날이 왜곡되고 잘못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탄절에 오신 이아기 예수를 누구 이신지를 우리는 알아야 되고 그 아기 예수를 진실로 기뻐하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영접할수 있어야 될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 평안이 복이 은혜가 기쁨이 건강이 여러분 속에 넘치게 될것입니다. 주님을 아기예수를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모사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받아들일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권합니다.
기도 하시겠습니다.
주님 거룩한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천한 저희들을 구원 하시려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생각할 때 죄송하고 감사 합니다.
내 부끄러운 죄를 덮어 주시려고 용서하여 주시려고 내 고장난 인생을 고쳐 주시려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님 오신 줄을 믿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저희들이 받아 들이게 하여 주시옵서소.
세상으로서는 믿을수 없는 일을 저희들이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성탄의 빛이 성탄의 기쁨이 우리 속에 우리가정에 우리 인생에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왕 우리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출처: 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