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목사
‘더 내려놓음’ 이라는 책의 저자는 이용규 선교사입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바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몽골로 가라는 명령을 그의 마음에 주셨습니다. 명령에 순종한 그는 몽골 선교사로 자원하였으며 몽골 국제대학교의 부총장직까지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내몽고 쪽에 신입생들을 모으러 가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에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십니다. “지금 북경에서 코스타(KOSTA)가 열리고 있지 않느냐? 그곳에 가서 말씀을 전해라” 코스타(KOSTA)란 외국에 있는 한인 유학생들을 위한 선교집회입니다. 깜짝 놀란 이선교사는 말합니다. “아니! 하나님! 초청도 못 받았고 강사도 아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강한 부담을 주십니다. “너는 북경에 가서 말씀을 전해야만 된다” 그는 핑계를 댔습니다. “하나님! 북경에 가려면 기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합니다. 더구나 노동절이란 명절이기에 표를 예약할 수도 없습니다.”
“아니다. 내가 도와 줄 테니 가라!” 그래서 기차역에 갔더니 마침 표가 있습니다. 두 번, 세 번 갈아타고 북경에 도착하여 코스타가 열리는 장소에 갔으나 아무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학생들 틈에 앉아 있는데, 자기를 알아보는 목사가 “선교사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 제가 내몽고 쪽에 일을 보고 돌아가려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코스타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는 강사들을 모아놓고 의논합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오셨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시간을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결국 30분 특강을 하도록 시간을 허락받았습니다. 코스타 집회 사상에 그런 일은 없었답니다. 계획에 없던 강사가 소개되었는데 얼마나 은혜를 끼쳤던지 수많은 유학생들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며 인생의 문제들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용규 선교사는 하나님께 대한 순도 100%의 순종을 강조합니다. “사람의 뜻이 1%라도, 불순물로 낀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다습니다. 대개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의 음성이 들리면 순종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잘못된 접근입니다. 순종할 때에 들립니다. 즉 순종해야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 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 수많은 전파들이 지나가는데 전파를 잡으려면 주파수를 맞춰야 합니다. 즉 채널을 맞춰야 합니다. 이 채널을 맞추는 작업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적 태도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기에서 ‘그리하면’ 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분명히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지도하시리라’ 의 원어상의 의미는 ‘길 없는 곳에도 길을 내신다. 막힌 길을 닫힌 길을 열게 하신다’ 는 강한뜻입니다. 하나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태도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인상 깊은 대형광고간판이 보이는데 거기에는 두 문장만 있습니다. "Jesus loves you. 고려은단" 이 간판의 유래는 이러합니다. 국내 최대의 은단 생산업체, 비타민 C제품 생산업체인 고려은단은 1955년에 세워진 회사입니다.
창업주 조규철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새벽기도까지 나갔지만 담배를 끊지 못하는 골초였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께 인사를 하다가 담뱃갑이 주머니에서 떨어진 챙피를 당한 이후 은단을 씹으며 담배를 끊는데 성공했습니다. 1943년 일본인이 경영하던 은단 공장을 인수한 그는 해방 후 개성에 은단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6.25가 터져 사업이 실패하였지만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으로 일어나 1955년 서울 제기동에 고려은단제약회사를 세웠습니다.
조규철 회장에 이어 장남 조창현 회장이 경영 전반을 총괄하면서 회사가 민족 복음화를 위해 어떻게 쓰임 받을 수 있을까 기도하던 끝에 "Jesus loves you" 라는 대형 광고간판을 고속도로 곳곳에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은단은 전직원 80%가 기독교 신자들로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아침예배후 일과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매출은 200억-300억 원 정도이며, IMF위기 후에도 감원 없이 오히려 인력을 50% 정도 늘린 건실한 회사입니다. 소리 없이 북한 등지에 의약품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선행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의 복 받은 증거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의뢰하다는 ‘바타흐’ 로서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긴다는 뜻입니다. 마치 중환자가 의사에게 맡기듯이, 신부가 신랑에게 앞날을 맡기듯, 비행기에 자신을 맡기고 탑승하듯 하나님께 맡기고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의뢰하는 태도는 ‘마음을 다하여’ 입니다. 절반 정도가 아니라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입니다. 1%라도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요동하지 않는 태도로서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욕심이나 생각까지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도를 온전히 받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내 계획과 내 생각을 고집하며, 내 욕심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소크라테스(Socrates)의 친구가 델포이 신전에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신탁의 말씀을 듣고 소크라테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뿐이라며 몹시 의아해 했습니다. 아테네를 두루 다니며 자기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 왜 그런 신탁을 내렸는지 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롭다고 소문난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가장 지혜롭다는 정치가를 찾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얻은 결론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잘 안다고 착각하며 정책을 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권력을 얻었기 때문에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망한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시인을 찾았습니다. 시인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얻은 결론은 자신이 썼던 시의 내용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시가 가장 많이 읽히고 있기 때문에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망한 그는 정교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장인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오랜 작업 끝에 얻은 작은 지혜를 가지고 모든 것을 다 깨달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이유는 상대적 지혜로움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어떤 부분에서 지혜로움을 인정받게 되면 모든 부분에서 다 지혜로운 줄 착각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보다 지혜로우면 자기가 모든 사람들보다 지혜로운 줄 착각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계기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명철이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의 도움이 임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여기의 ‘명철’은 “이해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해력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자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이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명철을 사용하되 그것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의지하는 것과 사용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여기의 ‘의지’ 라는 단어는 “지팡이, 혹은 팔이나 손과 같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기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팡이가 부러지지 않는다고 신뢰하여 의뢰하는 자는 지팡이를 의지하며 다닙니다. 지팡이를 생각할 때마다 평안함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인도자시라는 신뢰 속에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 기대어 살며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평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철을 의뢰하여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명하십니다. 명철을 의지하는 자는 고통이 따르며,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짚고 일어나려는, 걸어가려는 그것, 즉 내가 이해한 그것은 결국에 부러져서 내 어깨를 상하게 하며, 내 허리를 흔들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지하는 명철을 버리고 여호와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명철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여호와를 인정하라.
기독교 심리학자 폴 투루니에(Paul Tournier) 교수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신앙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쉰 살이 넘도록 자신의 신앙은 지성인들의 일반적인 경향처럼 지적인 신앙체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신앙에 또 다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매일의 구체적인 삶속에서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주 가까운 사이의 지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기도를 마치더니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내가 할 일은 백지의 하단에 서명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소. 하나님이 뭐라고 쓰실지 모르지만, 어째든 난 오늘 서명을 마쳤소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백지 계약을 맺은 것과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을 맡긴 것과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 이런 전적 위임의 자세가 필요하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는 모험이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반대일 경우 한 걸음만 옮기려 해도 힘든 것이 됩니다. 따라서 모험의 동기와 결과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정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너는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즉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있음을 의식하고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항은 언제나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공동번역은 ‘너는 범사에 하나님께 여쭈어보라’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여쭙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주도권을 인정하고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내가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것 아니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길을 하나님이 지도하여 주십니다. 인생을 여호와께 맡기는 자는 성공적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다윗의 생애가 축복받은 이유는 하나님께 여쭙는 데 있었습니다. 반대로 사울 왕이 실패자가 된 것은 여호와께 묻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교만이며 어리석음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세계적 도너츠 상표를 개발한 던킨 도너츠(Dunkin Donuts)의 창업주인 로젠버그(William Rosenberg)는 자신의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과 교육부재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주셨습니다. 성공이란 사람의 지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실 우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쓰시기 합당한 그릇이 되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여 주십니다. 부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여호와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삶을 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