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 나무여 , 리기다 소나무여!
늦게까지 성경을 보든 마누라는
침대에서 반듯이 누워 곤히 잠들어 있다. 살며시 안아도 잔다.
조용히 챙겨 놓은 배낭을 들고 집을 나섰다.
어두운 노란색을 뛴 그믐달이 동쪽 먼 산 우측으로 기울어져 떠 있고
그 옆에 유난히 반짝이는 작은 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믐달과 샛별이 샛 파란 하늘에 떠있다
동화책에서 본 듯 하다.
달빛과 샛별이 비치어 보이는 부엽토를 조심스럽게 밟고 걸으며 흙에서 생명을 사유한다
풀이나 나뭇잎 따위가 썩어서 된 흙이 부엽토다.
여기에서 식물들은 새로운 생명을 조용히 싹 틔우고 있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森羅萬象이 그러하듯 永遠回歸의 과정에 따라 흘러가는 일이다.
흐르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기도 하고,
흘러가는 소리를 듣기도 하며,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
조선 중기의 문신 金麟厚가 지은
시조이다.
그냥 절로 자라서 자연과 더불어 절로 늙다가 때가 되면 절로 자연으로 돌아가면 된다.
" 즐겁고 유쾌하게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 구두 ~딱 ! 구두 ~딱 ! "
소리 쳤던 골목길이 그립다.
천방지축을 몰랐던 시절이 너무 길었다.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는 오늘날 대중들 사이에서 '천한 성씨'로 알려진 7개의 성씨를 이르는 말로알고 있는데 이는 낭설이다.이에 따르면 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지관, 축(丑)은 소백정, 마(馬)는 말백정, 골(骨)은 뼈백정, 피(皮)는 가죽백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역사상 백정이란 " 돌아다니며 사냥, 도축을 하는 화척(양수척)" 이나 "가죽신발을 만드는 갖바치," " 버드나무 가지로 바구니 만드는 고리백정 "등을 말하지 7개 성과 인과관계가 없다.
天方地軸 안다는 것은
흘러가는 만물의 이치를 안다는 것이고
이는 일의 순서와 때를 안다는 것이다
"갈 때 가고 , 물러설 때 물러 서고"남보다 먼저 때를 안다는 것이다.
개미가 큰바윗돌을 굴리려는 셈인지 모르겠지만
객토하기로 결심을 하고 둑 옆 산 등성이를 판 흙을 이랑 위에 덟기 시작했다.
산등성이를 30cm 정도 파 들어갔을 때 소나무 뿌리가 뻗어 있다.
이 뿌리의 주인은 1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수고가 4m 정도 되었다.
솔잎이 3개인 '리기다 소나무 ' 였다
뿌리를 제거해야 했다.
'리기다 소나무'는 '아까시나무'와 함께 충실히 이 땅을 다시 푸르게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다른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토종 소나무나 곰솔과는 달리 줄기의 여기저기에서
맹아가 많이 나와 여간해선 죽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나무다.
비옥한 땅에서는 물론 폼 나게 잘 자랄 수 있지만
아주 극한적인 한계 여건에서 버티려니 더부룩하게 맹아가 나고,
삶이 편편하지 않으니 우선 자손을 먼저 퍼트릴 궁리를 하여 '솔방울을 많이 달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썩 좋게 보지 않는다
아카시 나무! , 니기다 소나무!.에게 우리 모두"고맙습니다" 해도 손해볼 것 없다
모든 식물은 지상에서 형성하고 있는 모습만큼 뿌리도 식물체를 지탱하기 위해 깊고 넒게 퍼져있다.
흙을 파낼 때마다 보이는 뿌리를 제거해야 연장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무모한 짓을 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가는 뿌리를 잘라낼 전지가위, 굵은 뿌리를 뽑아 낼 손도끼,흙을 파낼 곡갱이,흙을 담아 낼 삽 등은 필요시
그때그때 구하기로 작정하고
우선 곡갱이로 파낸 흙을 한군데 모았다.이를 쓰레기 장에서 구해 둔 뼁기통에 담아 밭에 뿌린다.
"나막신 신고 얼음 지치기하는 꼬락서니다"
목수 김 씨가 온다. " 김 씨! 지금 뭐하는 거래여 " 말투가 비꼬는 투다
몇 번 앞 고랑을 넘지도 않았는데
손 등과 허리를 제대로 펼 수가 없다
해는 아직 남았더란 말인가
전붓대에 졸듯이 앉아 있는 까치의 느긋한 몸짓이 나를 화나게 한다
일광 바다를 불태우던 아침 해는 서산에 걸려 한적한 학리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고깃배를 비추고 있다.
서산에 지는 해는 절대로 아침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과 같을 수 없다.
작업하다 보니 앞에 흐르는 물줄기가 옆 야산 골짜기에서 발원된 것이었다.
물 줄기를 뒤 덟고 있는 낙엽과 쓰레기를 걷어내고 퇴적물을 파내니 물줄기가 제법 맑아지며 흐른다.
텃밭의 신사인 옥수수가 심어진 밭 둑 너머로 운동복 모자를 쓰고 등산조끼 입은 중늙은이가 보인다
내가 처음 텃 밭을 했을 때 만난 산지기다
내가 산등성이를 파 들어가는 작업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한 짓이
"산지기가 산을 안 지키고 민간에 내려가서 행음을 하고 "
" 중이 불공은 안 드리고 술추렴" 을 하는 짓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모든 것이 그러하듯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는 것이 좋다
그래야 로마가 제대로 보이고 알차게 체험할 수 있다
나는 솔직히 이야기했다
" 수 년간 놀렸던 땅이라 지력은 괜찮겠지만 그래도 작물을 심기가 찝찜해 객토를 하기로 했고
기름진 흙이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전라도 해남의 황토를 가지고 올 수도 없고 해서~"
산지기는 미소를 띄며
" 자네가 서있는 곳 지번이 일광면 삼성리 00 번지다 " 라고 가버린다.
통기타의 울림이 가슴에 스며들 듯 감이 왔다. 부산 울산고속도로 접도 지역 . 산업폐기물 등을 감안하면
정부에서 늘 그랬듯이
" 말 똥 차듯이 차버린 국유지".가 틀림없다
낙엽이 부딪히며 내는 바스락하는 소리를 듣고
떼 지어 날아가는 고추잠자리를 본다.
"살다 보면 납작 엎드려야 할 때도 있고, 견디기 힘든 것을 견뎌내야 할 때도 있다"
라고 하며 땅에 붙어 무수한 발길에 꽃도 열매도
밟히는 질경이 같은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이정도 노가다는
囊中取物(낭중취물)이다
반딧불이 사라진
움막 지붕엔
너무나 아름다워 오히려 두려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나리자의 자태로
나의 하얀 박꽃이 피어 있다
움막 주변에는 유치원생들이 조잘 조잘거리며 손잡고 등원하는
모습인 들깨꽃이 피었다
박꽃은 일가화, 단성꽃이고
들깨 꽃은 총상화서(總狀花序)다 . 순백색은 닮았지만 크기와 꽃 줄기는 확연히 다르다.
들깨는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깻잎쌈이나 깻잎부각·깻잎김치·깻잎장아찌 등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낙엽이 부딪히며 내는 바스락 하는 소리를 듣고
떼 지어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를 본다.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 않고,안 하는 것은 쉽고 하는 것은 어렵다.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며 양분을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므로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높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뎌 온 사람에게는 옆에 가만히 서 있어 주 듯이
채소밭의 한 모퉁이에서 재배되고, 길 가쪽 몇 고랑에 심어서 가축들에 의한 작물의 피해를 막았다
억새를 제거한 밭에 고랑을 깊이
파고 이랑을 만들었다
남아 있을 지도 모를 억새 뿌리에 대항할 작물은 들깨뿐이다
" 조 씨 어른! 들깨 씨앗 있었면 좀 주세요"
들깨 씨앗은 웬만한 텃밭에는 다 가지고 있다.
내 밭에서 가장 양지바르고 내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움막 앞에 들깨 파종 이랑으로 정했다
두둑은 옆 두둑보다 2cm 높이 하여 흙을 채로 쳐 덮고 썩었다
작년 이만쯤이었다 내 밭 밑 저쪽에서
" 집에 있었니 '우울증에 걸리겠다 ' 리고 하며 나타난 강원도 양반이 있었다
이 양반은 강원도 홍천이 고향인데 나도 강원도가 제천관리처 관할이라
홍천 변전소에 가본 적이 있어 반가워 길섶 두릅나무가 서있는 밑에 농사짓도록 했다
내가 그곳 토박이에게서 느낀 점은
" 강원도 사람은 말씨에서는 '순진하다고 느껴지지만'
한편 '독특하게 투박하고 강한 기질이고 까타롭기까지도 하다'라고 느꼈다 "
"어찌하여 이곳까지 흘러왔어요
"뭐 하고 있습니까"
녹두를 따고 있다고 한다 . 파종하는 줄도 몰랐다 처음 만나면 무슨 작물을 심을 것인가 묻는 게 인사다
그때도 곡물을 재배할 것이라 했다
이 양반이 화전민 출신인가
"우리 강원도에서는 여기와 달리
참기름 보다 들깨 기름을 더 쳐준다"
라고 중얼거린다
와이고 !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늘 들깨 터러 본 사람을
만나다니 ...
" 들깨 털 줄 알아요 "
" 그럼요 50 대 50 합시다"
작업비로 수확량의 50%를 달라는 것이다
" 아무렴 어때 "
손으로 슥슥 비닐봉지에 쓸어 담아 주었다
며칠 만에 양 손바가지 정도
가지고 왔다
수확할 때에 맑은 날엔 종실이 땅에 떨어지기 쉬우므로
흐린 날 아침이나 저녁에 수확한다.
농사에는 필요 없는 것이 없다. 나무 막대기 하나가 농자재다.
주워다 둔 '버려진 천막"을 밭에 깔고 '베어 둔 들깨 다발'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든 막대로 '엎어치기 뒤집어 치기'로 설설 치면 들깨가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인 줄 알았는데 털린 들깨가 모이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강원도 아저씨에게
내 들깨가 "부럽기도 하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고향' 을
들깨가 '속절없이 '떠 오르게한" 것 같다.
현대인은 마음의 고향을 잃은 채 살고 있다.
풍구가 없으니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 줄 만한 바람이라 느껴지면
털은 들깨를 바가지에 담아 바람이 오는 방향으로 조금씩 뿌리면 쭉정이, 티끌,먼지는 희한하게 날려가고
알갱이가 조금씩 모이기 시작한다.
들깨 잎으로 무엇이든지 싸서 먹기를 좋아하고
국에 들깨를 풀어먹었던 내가
감히 , 하얀 눈에 덮여있는 듯한 들깨 꽃 밭을 보았다
9월 상순에 피는 하얀 꽃들이 한 줄기에 옹기종기 달려 있는 모습이 내가 그리워했든
이웃끼리 정겹게 사는 시골의 한 동네 같다.
내가 화가라면 이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지~
저 순백색을 그려 낼 물감이 있을까~
아마 들깨 꽃을 따서 차돌멩이로 찧어 채색해야 될 거야!
종실 들깨의 수확기는 줄기와 잎이 누렇게 변하고 줄기를 흔들면
" 보슬비 오는 소리" 를 내며 종실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이다
수확할 때에 종실이 땅에 떨어지기 쉬우므로 흐린 날 아침이나 저녁 에
"불후의 샹송 가수인 최양숙의 ‘황혼의 엘레지'
이미자의 ' 황혼의 블루스'를 들으며"
들깨를 거두어 들이면
노인이 알뜰하게 " 가을을 수확했다"
라고 하겠다
바쁜 살림에 늙는 줄 모르고 보낸 세월이 望八 이라니...그럼 어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