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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오지 말걸 그랬다.
-미래가 답답한 친구들에게
-세계 여행자(world traveler) 박준우
프롤로그: 하반하 세계여행학교. 학교 이름의 뜻은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하자!“야.
너희들 중 많은 애들에게는 생소한 학교 이름일 수도 있어.
우리가 어른들에게 듣는 특목고나 기술을 배우는 공고, 아니면 많은 학생들이 가게 되는 일반고 같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렇다고 학력을 쳐주는 다른 학교들과는 또 달라.
하반하는 말 그대로 여행 학교야.
부모를 떠나 10개월간의 여행을 하며 세상을 보는 학교거든.
그렇다고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편하게 캐리어를 끌고 고급 호텔들을 넘나들며 휴양하는 학교는 아니야.
그래도 하반하는 점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서 유명해지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쭉 잘 될거야.
더 많은 학생들이 듣게 될 것이고 기나 긴 고민 끝에 이 학교를 선택하겠지.
이 책에는 하반하를 고민하는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담겨있어.
나도 너희만큼 고민하고, 와서도 후회하고, 많이 힘들어했으니까 충분히 이해하는 만큼 너희의 입장에서 얘기해주고자 해. 내 말을 듣고 한 번 선택해볼래?
1. 꽃이 흔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 소개부터 하자면 내 이름은 박준우야.
가장 큰 특징부터 말하자면 난 어른들이 “양아치” “반항아”라고 불렀고, 자기 아이가 꼭 피하길 바라는 아이였어.
나는 어렸을 때는 한국에서 쭉 살고 있었어.
학교를 다니기는 하는데 공부가 너무 싫고 이 지겨운 매일 매일 속에서 벗어나 버리고만 싶었어.
결국 나는 그때부터 학교에서도, 애들 사이에서도 흔히 말해서 양아치 이미지로 찍혀버린 거야.
그래도 난 그 시선들이 오히려 더 좋았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더 신이 나서 반항했어.
그러다가 중2에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가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어.
내가 그때 중국에서 다녔던 학교의 환경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난 한국에서 놀던 거에 추가로 더 날개를 달고 놀기 시작했어.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 새 우리 동네에서 난 또 다시 나쁜 아이로 찍히게 되었어.
그래도 나처럼 생각하고 조금 더 자유로워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으니까 노는 건 외롭지 않았어.
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집은 들어가지도 않고 심지어 문신도 했어.
누구도 내 인생에 신경을 쓰지도, 기대를 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말이야 난 내가 그렇게 불리긴 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거에 대해서 딱히 후회하고 있지는 않아.
우리 모두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건 모두가 겪어야 하는 시기인거니까.
우리는 그 시기를 남들보다 더 세게 맞이하고 있는 것뿐이야.
그런데 꽃들은 너무 흔들리다보면 뿌리가 뽑혀버릴 수도 있고, 씨앗을 제대로 만들어내지도 못했는데 전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어.
그렇게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꽃이 날아 가버릴 것만 같으면 부모님들은 사회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할 거라는 불안한 마음에 나를 잡아주려고 하시고, 치마폭에 넣으려고 하셔.
사실은 그게 오히려 나를 더 땅밖으로 뛰쳐나와 버리고 싶게 만드는데 말이야.
사실 부모님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나를 보호해준다는 이름으로 제제를 조금씩 걸기 시작하면 그에 더 반항적인 행동을 하고 싶은 것이 그때의 내 마음이였으니까.
답답함을 느껴 일부러 흔들린 것은 내 사춘기가 만들어낸 결과야.
그리고 사람은 흔들려야 크는 거고.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흔들리던 때는 내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야.
다른 걸로 온 것이 아니라 건강 때문에 온 거였어.
내가 너무 몸에 안 좋은 것들만 하다보니 내 몸이 이상해진 낌새를 알아차리고 내가 부모님께 말씀드린 거였어.
의사 선생님이 말해준 내 몸 상태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좋지 않았어.
폐는 60대, 간은 이미 너무 많이 약해져버렸고, 콩팥은 한 쪽이 너무 작아져버려서 제 기능을 못할 정도였어.
성인이 되어야지 술과 담배를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이런 이유들 때문인 것 같아.
정말 너무나 쉽게 상해 죽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몸이야.
그렇게 나는 한국을 뜨지 말고 계속 치료를 받으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으면서도 나 자신을 멈추지 않고 망쳐갔어.
그러면서 집에는 잘 들어가지도 않고 더 잘나가는 애들이랑 어울렸어.
나는 사실 그 정도까지 나쁜 짓들을 할 수 있는지 몰랐어.
그러나 내가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눈 앞에서 실제로 보게 됐고, 나도 걔네랑 어울리게 됐어. 난 흔히 말하는 일진이 됐어.
사실 우리 사이에서는 어른들이 뭐라 하던 바보같이 책만 잡고 다른 애들한테 약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그런 일진이 되는 게 더 멋있어 보이잖아.
난 끝까지 그렇게 남을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날, 일이 터졌지. 뿌리가 뽑혀버린 거야.
나는 여느 날들과 다를 것 없이 친구들과 놀고 있었어.
그러다가 날밤을 까게 됐어. 날밤을 까긴 하는데 우리가 돈이 어디 있겠어.
당연히 남의 돈을 써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
애들은 차를 털어오겠다고 했어.
혹시 차 터는 게 뭔지 모를 아이들을 위해 설명해주자면 자기 차를 주차하고 문은 닫지 않고 가버린 차들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돈이나 카드, 물건들을 훔치는 거야.
혹은 운이 좋으면 비싼 향수나 옷, 심지어 차키까지 나오기도 해.
하여튼 나는 그런 상황에서 애들한테 차털이를 맡기고 피씨방에 박혀있었어.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 만나기로 한 곳에 갔더니 애들이 반짝거리는 신용카드를 들고 와서는 이미 그걸로 호텔도 예약해놨다는 거야!
그리고 제대로 놀아보자며 소고기 집으로 데려가서 엄청나게 많은 양을 시켰어.
재밌게 여자 얘기도 하고, 뭐하고 놀지 얘기도 하다가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쳤어.
그 뒤로 난 땅에서 뽑혀버린 꽃이 되었고, 혼자 남았어.
더 이상 벌들도 내 주위를 날아다니지 않았지.
난 그렇게 되기까지는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에 빠졌어.
나는 내가 이 상태로 가다가는 어느 환경에서도 잘 살지 못 할거라 생각했어.
그래도 뽑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새로 내 뿌리를 심어주고, 흙을 단단하게 덮어주며, 물을 뿌려줄 이 하반하에 오게 됐어.
2. 세상에 쉬운 게 어딨어
하반하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되고, 선생님들과 상담을 한다한 날 나는 집에서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어.
그러다가 결국 이모가 알겠다고 가지 않겠다고 말한 뒤에서야 들어왔고 병원에 가기로 했어.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단잠에 빠졌는데 눈을 떠보니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곳은 전혀 처음 보는 곳이였어.
어리둥절하는데 문이 열리고 내리라고 했어.
난 너무 당황해서 여기가 어디냐고 짜증을 냈지.
그랬더니 한 번만 올라가보라고 10분이 넘도록 다툰 뒤에서야 들어갔어.
거기서 처음 만난 분들이 바로 써니쌤, 대장님이셨어.
난 솔직히 처음에 한국에 있는 하반하 학교에 갔을 때 너무 싫었어.
그냥 사람도 아예 없고 두 분만 계시고, 굉장히 엄해보였거든.
그때 써니쌤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고 써니쌤은 공부를 중요시 하는 분이라고 하셨어.
난 그걸 듣고, 아 잘못 찾아왔구나. 싶었지.
그런 반면에 대장님께서는 노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어.
난 그냥 뭐가 됐든, 이 하반하라는 곳에서 공부를 해야된다는 것과, 이 힘들고 무서울 것만 같은 사람들과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들 때문에 짜증이 났고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폈어.
그리고 들어왔는데 대장님께서 나한테 담배폈냐고 물어보셨고 난 맞다고 대답했지.
써니쌤께서는 담배피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신다고, 담배를 끊을 것이 아니면 여행에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야.
그래도 나는 세계 여행이라는 크나 큰 스펙을 얻기 위해서라도 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대답했지.
“끊겠습니다.”라고.
그러고 하반하 여행을 시작했어.
평생동안 여행 갈 때 메본 적 없는 큰 배낭을 메고, 새까맣게 타 있는 사람들과.
난 솔직히 너무 쪽팔렸어.
멋도 안 나는 배낭에, 사람들도 다 너무 이상해서 싫었던 거지.
그렇게 첫 숙소에 도착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호화로운 호텔이나, 수영장들은 어디에도 없었고, 진짜 꾀죄죄한 곳이였어.
너무 싫었지 그것부터가.
그러나 하반하 생활도 싫었어.
밥을 먹으려면 일을 해야 되고, 우리가 사와야 되고 그러는 거야.
지금까지는 누가 요리해주고, 먹여주고, 다 챙겨줬는데 말이야.
그래서 나는 1년동안 워커를 할 때 한 번도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었어.
그냥 귀찮기도 했고, 그런 걸 해야 된다는 게 짜증났거든.
작년에 같이 생활했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박준우는 늘 어딘가 숨어있다.”라는 평들이 나올 정도로 난 일을 싫어했어.
그러나 점점 그런 경우들이 많아지다 보니 하반하에 온 거 일을 조금 배워두자, 요리를 배워두자 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임하기 시작했어.
가장 짜증났던 건 바로 정산이야.
하반하는 정산이라는 시스템을 쓰고 있어.
정산은 자기 자신이 공부를 하던, 그림을 그리던, 노래를 부르던,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 그 결과로 나오는 것들을 돈으로 매겨주는 거야.
일기, 독해, 리딩, 단어같은 필수과목들과 다른 오카리나나 스피킹같은, 선생님이 직접 가르쳐 주시는 선택과목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이렇게 외국까지 나와서 해야되나 싶더라.
그래서 하지 않으려 했는데, 나같은 애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팀정산을 하더라고.
내가 패널티를 받아오면 우리 팀들과 나누게 되는거야!
내가 안하면, 우리 팀들도 모두 피해를 입는 거지.
기왕 온 거 애들한테 피해 안 갈 정도로만 대충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난 처음 이미지가 여기서도 좀 좋지 않아서 선생님들이 정산 팀을 짤 때 자기 할 일 잘한다 하는 경험자 애들을 붙여주셨어.
아주 내가 폭탄이라 생각하셨던 거지.
난 그게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바로 엄청나게 열심히 했고, 결국 전교 1등을 계속 하게 되고, 인정받아서 정산 조장이 되었어.
내게 하반하의 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내가 16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오다가 그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야.
어떻게 사람이 자기 생활 패턴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겠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난 나 자신을 바꿔보고자 노력했어.
이 하반하에 이왕 온 거 무시받진 말고, 남들보다 못하진 말자는 마음으로 말이야.
사실 노력하긴 하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어.
그래서 난 선생님들한테 억지로라도 잘해드리고, 그런 식으로 가식적인 삶을 살았어.
그때 난 내가 대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 할 정도로 이 ‘가식’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어.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지만 여전히 내게 만족할 수가 없었어.
진짜 내가 아니였기 때문이야.
3. 적응에는 기간이 필요한 법
위에 얘기했던 것 말고 내가 하반하에서 또 싫어했던 건 운동이였어.
하반하 비밀병기에서는 10개월간 다른 종류의 다섯 가지 스포츠를 하는 게 메인 프로젝트였어.
그리고 또한 조깅 역시도 매일 하는 필수 운동이였지.
난 한국에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였어. 몸이 안 좋다보니까 뛰기도 힘들고, 숨차고, 무엇보다 귀찮았기 때문이지.
근데 이 하반하에서는 그 놈의 운동을 하루도 쉬지 않는 거야.
조깅, 농구, 축구, 심지어 씨름까지!
난 그게 너무 싫었어.
매번 조깅을 뛰면 쳐져서 뛰기도 싫어했고, 운동을 하러 나갈 사람을 구하면 슬쩍 빠져버렸지.
이런 기본 운동들 말고 메인 스포츠들 역시도 열정적으로 하지 않았어.
슬로바키아에서는 스키를 하는데 난 맨날 숨을 곳을 찾아 숲속에 들어가 쉬거나, 터키에서 윈드서핑을 할 때는 보트 위에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이집트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는 너무 피곤하니까 진짜 열정적이지 않은 모습들만 보여줬고, 인도에서 승마를 할 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해야 돼서 가끔 그냥 다친 걸 핑계로 나가지 않기도 했어.
그 나라들에서 스포츠를 더 깊게 배울 수 있었는데도 말이야.
하반하에서만 배울 수 있는 일하는 법도, 운동도 모두 빼먹고 의미없이 살고 있었을 무렵, 인도에서 나는 이렇게 계속 살다보면 한국에 가서도 똑같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어머니한테 하반하에 일 년 더 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경제적 여건이나 학교에 돌아가야 되지 않냐는 말들을 듣고 거절 당했어.
그러나 난 포기하지 않았지.
써니쌤께서 내게 제안해주신 머리 밀기.
나는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그냥 꾸미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밀어버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였어.
그러나 나는 이제 겨우 적응해서 발전하려고 하는데 끝나려고 한다는 게 너무 싫어서, 내 미래를 위해 머리를 아예 밀어버렸어.
0미리로 말이야.
내게 머리를 민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각오였고, 그런 식으로라도 유혹을 이겨내겠다는, 열심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했고 부모님꼐서는 고민해본다고 말씀하셨어.
난 너무 기쁘면서도 사실 불안했어.
내년에는 잘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다가 넘어간 인도네시아에서는 두 가지 활동이 더해졌어.
서핑, 그리고 문집. 문집을 써내야 다음 날 서핑을 타러갈 수 있었는데 나는 서핑을 타기 위해 끝까지 꾸준하게 문집을 써냈어.
문집을 써내기 위해 매일 매일 내 시간을 쪼개고 쪼갰고, 그 시간 속에 내 체력을 쏙 빼놓는 서핑까지 집어넣었지.
결국 인도네시아에서 마지막까지 서핑을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탄 사람, 그 승자는 나였어. 유종의 미를 잘 거둬낸 거야.
8~9개월간의 적응 기간을 잘 견뎌낸 덕이였지.
4. 큰 일을 치루기 전엔 몸을 풀어라
그렇게 10개월의 여행이 끝났어.
길어서 영원히 끝나지만 않을 줄 알았던 시간들이 어느새 과거가 되어 있었고 꿈만 같았지. 처음 하반하에 온 게 어제였던 거 같은데 말이야.
한국에 가서 이제는 나를 깨우는 친구들도, 소리치는 선생님들도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
본격적으로 하반하에 적응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이제는 한국에서 했던 생활들이 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반하 생활 패턴이 익숙해 져버렸는데, 그 흐름이 끊겨서 한국에 가버린 거니까 느낌이 너무 이상했어.
그래도 난 하반하에서 열심히 살았으니까 한국에 있을 3개월은 여유롭게 쉬자는 마음을 가졌어.
그래서 중국에 있는 집으로 가자마자 내 컴퓨터를 켜서 게임을 시작했어.
10개월간 열심히 했으니까 이젠 좀 쉬자,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말이야.
그때부터 내게는 천국이 시작됐지.
하반하에서는 저녁 11시에 억지로라도 자야 했는데, 이제는 그런 거 없이 컴퓨터만 붙잡고 있다보니까 어느새 아침 8시가 되어 해가 떠있었어.
그렇게 8시에 잠에 들고, 오후 5시는 넘어야 여유롭게 일어나서 다시 컴퓨터를 붙잡고 있었어.
하루 종일 먹는거라고는 새벽에 게임할 때 내가 혼자 라면만 끓여먹은 게 다였어.
그래도 하반하에서 생활하다 왔으니 바뀐 점이 없었던 건 아니야.
내가 그렇게 살면서 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어.
전에는 아무리 막 놀아도 내 생활에 대한 별 생각이 없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계속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게임을 하다가도 한 번씩 내가 썼던 문집을 들춰보거나, 유튜브로 인강을 찾아서 듣기도 했던거야.
그리고 전에는 아예 부모님과 얼굴도 보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대화도 정말 많이 하고, 엄마랑은 가끔 같이 나가서 아침도 사먹고 데이트를 했어.
그리고 가끔씩 집에서 내가 요리를 해서 엄마랑 밥을 먹기도 했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월 14일, 우리 어머니 생신때였어.
하반하에서는 생일인 아이들을 챙겨주고, 선생님도 챙겨드리는 것은 물론이며, 스승의 날이나 결혼 기념일들도 챙겨드렸었거든.
그래서 한국에 갔을 때 있었던 어머니 생신 때 어떻게 챙겨드려야 하나 엄청 고민했어.
결국 나는 그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미역국도 끓이고 같이 좋은 시간을 보냈어.
진짜 평생동안 내가 하반하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들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내가 하반하 비밀병기를 마치기 전에 그렇게 강한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면 다시 전에 놀던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기 저기 놀러 다니면서 사고를 쳤을거야.
그러나 내가 큰 일을 치루기 위해 각오를 했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정도에 맞게 놀고, 쉴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물론 내가 하반하에서 하던 일들을 계속 이뤄냈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하반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불안해졌어.
내가 또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작은 돈이 아닌데 그 정도의 값어치를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들이 생겨났고, 그렇게 생활하고 있던 게 너무 즐거웠거든.
그렇지만 나는 그걸 휴식 시간으로 남겨두고 다시 배낭을 멨어.
5. 본격적인 여행 시작
2019년 3월 17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어. 공항을 가는 길이 얼마나 싫던지.. 솔직히 그냥 뛰쳐나가서 도망가버리고 싶었어.
휴식을 휴식으로 남기지 못한 거지.
그러나 이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어.
답이 뭔지 알고 있으면서도 늘 어딘가로 피하고, 도망가려 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라도 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버스에 올라 탔어.
나는 우리 가족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야.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는 외동이라서 우리 가족에서는 내가 뭐라도 해야 하고, 다른 가족들에게 늘 불안함과 걱정들만 안겨 줬거든.
난 그 책임감을 기꺼이 같이 짊어지고 한국을 떠났어.
마지막까지 밝은 모습으로 올해도 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말이야.
그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결정으로, 내 각오로, 내 의지로 나 자신을 발전시키러 도전한 거였어.
내가 2년차로 하반하에 오니 그렇게 쉬고 오긴 했지만 하반하 생활이 익숙했어.
그런 면에서 새롭게 9기로 하반하를 접한 아이들과 꽤 많은 차이를 보였어.
나는 작년에는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른 아이였지만 그래도 그 지겨운 것들을 10개월간 봐온 사람으로서 그러지 못했던 애들과 다른 것들을 보기 시작 한거야.
진짜 간단한 일이 보이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것들을 보면서 점점 나는 답답해졌고 결국 일에 나섰어.
팔을 걷고 나서서 설거지를 했고, 요리를 했고, 마켓에 가서 장을 봐왔지.
결국 작년에는 늘 다른 워커 조장들 밑에서 오늘은 어떻게 도망가서 어디 숨어있을까만 고민하던 나는 워커 조장이 됐어.
남들을 데리고 일을 하면서, 애들한테 하나 씩 가르쳐주고, 내가 자신있게 일을 할 수 있게 된거야.
내가 달라진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였어.
전에는 학생끼리 회의를 할 때나, 학생과 선생님들이 할 말이 있을 때마다 귀찮아서 가만히 있고, 참여도 안하던 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 한거야.
정산 낙제는 우리가 정산에서 내게 되는 밥값을 하지 못해서 그 돈을 전부 잃게 되는 건데 그런 일이 생길 때면 아무도 그 해결 방안을 내지 못했고, 선생님들께 잘못을 했을 때도 아무도 나서서 사과를 드리지 못했거든.
난 같이 생활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런 걸 해주지 못하다 보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작년에는 유경험자들이 다 해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도 못하지만 올해는 내가 앞장서서 책임지고, 이끄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거야.
한 번은 그리스에서 일이 있었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애들끼리만 오렌지를 까먹고 선생님들한테는 챙겨드리지 않은 거야.
어른을 먼저 챙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늘 강조하는 하반하에서 말이야.
그때 우리는 다 같이 밥을 못 먹게 되거나, 선생님들과 관계가 전부 틀어질 수도 있었어.
그래서 회의를 하고 오라고 하셔서 다 같이 올라갔는데 아무도 의견을 못 내는거야.
내긴 해도 다들 너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에 동의하는 걸 보고 너무 답답해졌어.
나는 그런 일을 잘 해결하던 사람들과 10개월을 살아봤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내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그때 나는 “과연 작년 회장 우진이 형이 여기 있었다면, 내 롤모델 민승쌤이 여기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고민을 했어.
그 사람들이 매번 일을 잘 해결해줬으니까.
그리고 난 내 일을 그렇게 잘 해결해주던 사람들의 방법을 생각해내서 결국 잘 해결해냈어. 그 뒤로는 더 자신감이 붙어서 학생들 사이에서 나의 의견을 모두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잘 따라와줬어.
10개월간 이뤄낸 게 없어 보였지만 사실 그 사람들로부터 이런 걸 배워낸 걸 몸소 보여준 거지.
그렇게 나는 하반하 2년차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었고, 모두가 날 베테랑이라고 여겨줬어. 그렇게 뿌듯했던 적이 없다니까?
6. 난 돼도, 넌 안돼!
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열정적으로 나섰어.
문제들을 잘 해결해냈고, 어디 하나 결점이 없다고 느낄 때쯤 문제가 터졌어.
터키 페티에에서였어.
나는 작년에 페티에에서 한국에 그냥 가겠다고, 이런 짜증나는데에 왜 보냈냐며 엄마한테 다시 화를 냈었어.
그렇게 비싼 돈을 내서 보내주셨는데 그렇게 못 사는 모습을 보여드렸다는 게 너무 죄송해서 다시 열심히 하기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들만 남은 곳이였어.
작년에도 터키 페티에에서 스승의 날을 맞았었어.
나는 그때 회장이였던 우진이형이 생각해온 아이디어를 그냥 따라만 가서 결국 잘 보냈었지. 그렇지만 올해는 그걸 해줄 사람이 없는거야.
그래서 나는 너무 불안했어.
나는 선생님들께 너무 고마운 게 많았으니까 말이야.
뭐라도 해야 하긴 하는데 작년엔 형이 잘해줘서, 작년에는 잘했는데 올해는 어떡하지라는 마음 때문에 나는 열심히 계획을 짰어.
모두들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누구도 더 의견을 내주지 않았어.
그래도 난 너무 급해서 뭐라도 해야 했어.
매일 머리를 쥐어 잡고 아이디어를 짜내서 결국 영상을 찍게 됐어.
그 영상은 원샷으로,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찍기로 되어있었어.
시나리오를 전부 알려주고, 하나씩 연습시키는데 뭐라도 해야 하긴 하는데 너무 다들 열정이 없는 거야.
윈드서핑을 타고 와서 피곤하고, 할 일도 많은 건 아는데 그에 비해 나는 그 일을 끝내야 해서 신경쓸 겨를이 없었거든.
그래서 몇 번을 설명을 반복하다가 결국 참던 화가 터져버렸어.
아예 자리를 깔고 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나는 큰 소리로 쌍욕을 했고 다들 분위가 싸해졌어.
그 중에 형님도 있었는데 말이야.
결국 그렇게 나는 그 날 연습을 그만두고 방으로 들어왔어.
그러다가 누가 날 불러서 나갔어.
그랬더니 그 자리에 형님들 네 명이 있었어.
나보고 아무리 그래도 형님들한테 욕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나한테 화를 냈고, 난 내 화가 아직 삭지 않았다고 더 나쁜 말들을 했어.
“형님이면 형님답게 하셔야죠!”하면서.
결국 나중에는 다들 마음을 모아서 연극을 아름답게 잘 꾸미긴 했지만 돌아보니 아쉬웠어.
만약 내가 조금 더 기다리고, 다들 참여를 할 걸 기다려줬다면, 말을 나쁘지 않게 했다면 더 좋은 스승의 날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
이 날 후로, 나는 리더에 대해서 배웠어.
그리고 또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지.
리더는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야.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일차원적인 리더의 모습만 따라하고 있었던 거였어.
진짜 리더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진심을, 열정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해.
그러니까 결국은 억지로 사람들을 이끌려고 하면 그건 진짜 리더가 아니라는 거지.
리더는 자기가 하는 일이 남들에게도 인정받고, 그걸 같이 따라오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거였어.
그런 면에서 나는 그냥 ‘폭군’이였던 거지.
형님들과의 문제는 이 일에서 멈추지 않았어.
또 한 번은 수경이 형님이라는 형님과 문제가 있었어.
사실 수경이 형님과의 문제는 그 전부터 쭉 있었어.
왜 남의 옷을 빌려 입냐, 왜 말을 그렇게 하냐,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잘못된 거냐 등등 엄청나게 사소한 걸로도 다 싸웠거든.
서로 너무 싫어하는 짓들만 눈에 보이고 다 마음에 안 들어 했어.
매번 말다툼을 하면서도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해서 끝이 없는 전쟁이였지.
나는 앞에서 대화를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따졌고, 형님은 그러기 싫다고, 차라리 뒤에서 안 들리게 하라고 말 하면서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만 하다 보니 너무 지쳐 있었어.
그러다가 볼리비아 라파즈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전쟁은 정점을 찍었어.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인쌤이 이 일기에 왜 네 이름이 나오냐고 하셔서 누구껀가 하고 봤거든, 근데 수경형님인거야!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지 이해가 안돼서 내용을 읽어보니 더 어이가 없었어.
뒤에서 얘기를 하라 해서 뒤에서 얘기하다가 형님한테 그 얘기가 들리니까 그걸로 짜증을 낸거야.
난 그냥 무시하려 했는데 그 이야기가 써니쌤한테 전해졌고 어쩌다가 써니쌤 앞에서 대화를 해보게 됐어.
수경형님의 고자질로부터 시작돼서 난 화가 난 채로 서로 지금까지 마음에 안 들었던 것들을 털어놨어.
“형님이 그때 다른 애들 추운거는 생각도 안하고 남의 옷 빌려가지고 자기만 따뜻하게 있었잖아요. 그게 짜증이 안나요? 그리고 제가 분명히 앞에서 얘기하자니까 뒤에서 얘기한다고 뭐라하는 건 뭐예요? 저는 어떻게 해야되는 건데요?”
“그게 어떻게 뒤에서 얘기하는 건데?”
“아니 뒤에서 얘기하는 기준이 뭔데요 그럼. 앞에서 직접 적으로 얘기안하는 게 뒤에서 하는 거 아니예요?”
“진짜 내가 이래서 너랑 대화하기가 싫다니까? 아 그리고 넌 그렇게 애들한테 피해주는 거 싫어한다면서 애들이 왔다갔다 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떡 하니 버티고 앉아있어? 그래놓고 비키라니까 뭐? 애들은 아무도 불만 안하는 데 왜 형님만 불만이냐고?”
“아니 애들은 아무 소리도 안하고 잘 다니는데 왜 형님이 그렇게 불만이시냐니까요?”
둘이서 계속 소리를 높여가며 싸우는 것을 보던 대장님께서는 “너희 참 바보 같구나”라고 하셨어.
그리고 써니쌤께서 싸움을 멈추시고 말씀을 시작하셨지.
“너희 둘이 싸우는 이유는 서로가 너무 똑같아서 그런거야.”
엥 이게 무슨 소리람!
내가 왜 저런 사람이랑 똑같은 건지 이해가 안됐어.
그리고 써니쌤은 우리의 당황한 표정을 보시고는 계속 말을 이어나가셨어.
“서로가 서로의 단점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어서 그게 너무 짜증나는 거야.”
이건 더 말이 안됐어.
나는 수경 형님처럼 남이 추운 거 생각도 안하고 내 따뜻함만 추구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이랑 대화로 풀기 싫어하지도 않는 걸?
그러나 써니쌤께서 하나 하나 짚어주시기 시작했어.
“둘 다 자존심이 세고, 승부욕이 강하지, 또 고집도 세고. 그리고 애들을 이끌기를 좋아하는 주류 축에 속하고 싶어해.
내 말이 틀렸니?
그러면서도 똑같은 걸 싫어하는 거야. 남한테 지기 싫어하고, 무시받기 싫어하잖아.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란다.”
난 여전히 인정하기가 싫었어.
내가 어떻게 저런 고자질이나 하는 사람이랑 똑같다는 건데?
그러나 확실히 수경형님과 나는 닮은 점이 참 많았어.
그래서 처음에 합숙에서 만났을 때도 우리 엄청 싸울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던 거기도 하고.
써니쌤이 나한테 물어보셨어.
“너는 수경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니?”
난 잠시 고민하다가 “네”라고 답했어.
그리고 수경형님한테도 똑같은 질문이 가고 나는 답을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고개를 돌렸어.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기대했던 답변이 나오지는 않았어.
“전 절대로 싫어요.”
그게 내 자존심을 더 긁었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돼서 더 화가 나기 시작했어.
그러나 써니쌤께서 말씀하셨지.
“너가 그러면 준우를 계속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네.”
“하지만 그건 진짜 어려운 일이야.
나는 그렇게 아예 사람을 도려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너가 만약 사회에 나가서 회사에 들어갔어.
그런데 거기서도 너랑 준우랑 똑같은 상사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러면 너는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날테고, 그 사람도 너한테 온갖 화를 다 낼텐데? 그러면 너는 거기서 그냥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어떻게든 잘 지내 봐야하는 거야.”
그 자리에서 나와서 나는 나중에 내가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연습해놔야겠다는 생각으로 커피를 좋아하는 수경형님을 위해서 써니쌤이 주신 커피를 받아와서 뜨겁게 끓여서 가져다 주면서 다시 관계를 잘 해보자고 말했어.
그러면서도 여전히 수경형님이 너무 싫었어.
그러다가 내가 <데미안>이라는 책을 읽게 됐어.
그 책에서는 다양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정하게 되었었는데 거기에서 아주 중요한 대목이 나왔고 그제서야 깨달았어.
그 대목에서는 이렇게 써있었어.
“자기 자신 안에 없는 것은 나를 자극시킬 수 없다.”
써니쌤이 말씀하셨던 게 여기에 담겨 있더라고!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을 되풀이하며 그때의 나를 돌아봤어.
그랬더니 너무 창피했어.
사실 내가 내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똑같은 잘못들을 하고 있었으면서 그걸로 남한테 뭐라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거였어.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형님한테 불만했던 것들이 사실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도 얘기했던 내용들이였어.
난 이 뒤로 절대로 수경형님을 다그치고 싸우지 않도록 노력했어.
사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많이 겪게 되는 일이고 어디에 속하게 돼도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야.
어느 그룹에 들어가도 나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도, 그냥 남 밑에 속해 들어가는 사람도,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거든.
학교에 가면 공부 잘하는 애, 못하는 애, 운동 잘하는 애, 잘생긴 애 등등으로 나뉘어 지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 속에서의 갈등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지.
그렇다면 우리는 그 갈등을 그냥 겪어가면서 짜증을 내고, 화를 내야만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야.
내가 이번 일을 돌아보면서 느낀 건 사실 수경형님과 나와 너무 똑같다는 거였어.
자존심도 세고, 승부욕도 있고, 남들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종류가 비슷했지.
이 말의 뜻은 내가 결국 웅덩이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고 놀라서 짖는 강아지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던 거지.
우리는 왜 사람들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들을 찾으려 하는 걸까? 라는 고민을 했어.
근데 사실 우리는 그걸 찾으려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자극된다는 걸 알게 됐어.
이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누군가의 행동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내 눈을 찌르면 입을 열어 험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뭘 잘 못하고 있나보구나 하고 날 재정비해.
이건 정말 좋은 장치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고, 그 사람으로부터 내가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말이야.
다음 이야기는 조금 더 폭력적으로 변하게 돼.
이건 에콰도르 과란다에서 있었던 일이야.
사실 이 일이 나에게 크나큰 장치가 되어서 이제는 날 통제할 수 있게 됐어.
그 나의 변화의 시작을 만든 사건은 다른 사람들끼리 싸우는 걸 구경하다가 시작됐어.
나랑 동갑인 친구랑 민수가 싸웠는데 그걸 지켜보다가 점점 폭력적이 되는 걸 보면서도 나는 말리지 않았어.
그게 오히려 싸움 구경의 묘미라면서 더 낄낄대면서 봤을 뿐.
하여튼 난 그 둘이 싸우는 걸 보다가 점점 민수가 말을 이상하게 느끼는 걸 느끼고 갑자기 나도 같이 화가 나서 민수에게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며 덤벼들었어.
그게 형님으로서 해야 되는 정의라는 듯이 민수한테 훈수를 두기 시작했지.
당연히 이미 흥분해있는 민수한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아서 계속 같은 식으로 말했어.
나는 그게 형님한테 말하는 투가 뭐냐면서 화를 냈고 주먹을 쓰기 시작했어.
갑자기 난 방관자에서 같이 가해자가 되어버린거야.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을 줘가면서 그게 무슨 자비라도 되는 듯 얼른 사과하라고 강요를 했고 그 사과를 하지 않으면 더 때렸어.
그게 계속 되면서 나는 내가 이정도면 많이 기다려준 거 아니냐고 따지고서는 이성을 잃고 정말 심하게 때렸어.
결국 민수는 기절을 했고, 난 나왔어.
사실 그때는 조금 기뻤어.
누군가를 때렸다는 게 내가 누구한테 진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그러다가 갑자기 하반하에 오기 전에 내가 떠올랐어.
나는 사람을 막 때리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였거든.
나쁜 애들과 어울릴 때도 나는 누구를 때리는 일에는 절대 끼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가 떠오른 게 내가 중국 기숙학교에 갔었을 때였어.
그때 내가 기숙학교에서 담배를 피려면 형들한테 허락을 맡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담배를 또 갖다 바쳐야 돼서 그게 싫어서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몰래 하다가 딱 걸린 거야.
그래서 그때 정말 엄청나게 맞았었어.
그 뒤로 내가 조금씩 폭력성을 띄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누군가를 때리는 게 내게도 습관이 되어있었던 거야.
그런 내가 좀 무서워졌어.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이 했던 짓을 똑같이 하고 있었던 거니까.
날 좋아해줬던 사람들과 믿어준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나도 맞아본 사람으로서 민수한테도 너무 미안했어.
그 날 민수를 때리던 날 돌아보면 정말 너무 무서워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아.
내가 미워했던 정말 싫어했던 사람들이 하던 짓을 내가 더 심하게 하고 있었던 거니까.
나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얼음도 챙겨가서 민수를 깨우려 해보고, 멍든 데에 대주고, 매일 가서 상태를 살펴보면서도 그 마음이 가시질 않았어.
사람은 누구나 화를 낼 수 밖에 없어.
화를 내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그렇지만 그 화를 제대로 잘 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어.
이 일로 나는 써니쌤과, 그리고 나 자신과 깊게 약속했어.
다신 남들에게 손대지 않겠다고, 나를 제대로 통제하겠다고 말이야.
진짜 강한 사람은 힘이 세거나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야.
많은 청소년들은 그게 전부인 줄 알지만 말이야.
진짜 강한 건 말로, 대화로 모든 분쟁을 해결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또한 자기 감정을 제대로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여야 하지.
나는 앞으로도 내가 어느새 갖게 된 폭력이라는 습관을 없애고 쭉 절대로 폭력을 쓰지 않을거고, 사람들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거야.
그게 내가 전에 봐왔던 것들로부터, 싫어했던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방법일테니까 말이야.
이렇게 많은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어.
사실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이 일들에서 공통적으로 얻은 깨달음이 있어.
모든 일들에서 내가 옳을 수는 없어.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 다툼이 생길 수도 있지.
그렇지만 내가 그걸 어떻게 해결하냐에 따라서 내 이미지도 달라지고, 나 자신도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
물론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내가 무조건 옳고 남들은 틀렸다고 생각을 했어.
그렇지만 사실은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상황들이 아니였던 거지.
다른 거 였을 뿐이야.
그렇게 다른 사람들 속에서 문제 없이 잘 살 수 있으려면 나 자신을 다듬어 나가야 해.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된거지 다른 사람 생각까지 그렇게 바꿀 필요가 없어.
내 가치를, 기준을 다듬어가야 되는 것일 뿐.
모든 세상은 내 안에 있고 그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지, 천국으로 만들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야.
난 이런 일들을 통해 내 속을 보기 시작했어.
7. 홀로 서기
나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외동으로 태어났어.
외동은 보통, 사람들을 많이 찾고, 외로워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늘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리고, 그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면 내가 부담스러워서 많이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거든.
늘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외로워서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니라고 느꼈어.
그런데 하반하에 와서도 계속 외동 이야기를 하시면서 외동은 안 좋다고 말씀하시는 걸 많이 듣다보니까 거부감이 들었어.
외동인 나는 사람이 없어도 잘 살고 있는 걸?
그래서 작년에는 그 말에 전혀 집중하지 않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어.
작년에는 혼자 걷는 게 조금 창피하고, 친구가 없는 건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서 계속 옆에 누구를 놔두고 떠들고 싶어했고, 사람들이 내 옆에 없으면 점점 불안해 했었거든.
그래도 그게 내가 외동이라서, 사람을 그리워해서 그런 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점점 나 자신을 보게 돼고, 내가 생각을 혼자 하고 있을 때면 나를 더 쉽게 알 수 있게 되어서 내가 사람에 약한 사람이라는 걸 천천히 느끼기 시작했어.
내가 굳이 쓸데없는 시간을 사람들과 쓰면서 낭비하기도 했고, 내가 자꾸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할 때마다 내 친구들이 얘기하는 거에서는 갑자기 약해져서 의견을 굽히기도 했거든.
선생님께서는 내게 홀로 서기가 아주 중요하다.
사람에게 약해지면 안된다고 늘 말씀해오셨어.
작년에는 나 자신이 그렇게 사람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늘 고집하고 있어서 그런 건 신경도 안 썼어.
그러나 올해에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걸으면서, 누구의 걸음걸이에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여유롭게 혼자서 걷는 걸 연습하기 시작했어.
나는 작년에 내가 친한 사람들과만 딱 어울려서 그 사람들과 떨어지려 하지 않았어.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좀 거리가 있었지.
그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사귀어 온 방법이였어.
내 옆에 확실하게 있는 몇 명에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망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거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한테는 집착을 하기 시작한 거야.
그 사람이 없어지면 좀 불안하고 혼자 남은 것 같았거든.
한국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살 때의 삶들이 내게 남겨준 흔적인 것 같아.
어딘가 떨어져서 혼자 있다보면 내게 남겨진 것 가족뿐인데 부모님과는 조금 거리가 있고, 형제는 없다보니 누구 하나 곁에 남는 게 없었거든.
부모님과 싸우고 집을 나가서 있다보면 혼자는 있기 싫고 누구라도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때는 누구라도 옆에서 같이 자리를 지켜줘야 마음이 편해 질 것 같은 느낌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마음의 공백이 커진 게 아닐까 싶어.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친구들이 중요한 시점이니까 친구를 찾는데 눈을 밝히고 집중했던 것 같아.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냥 그 사람들이 내 기준을 조금 흐려놓고 나 자신을 명확하지 않게 만드는 존재들로 나 자신이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지.
하반하에 오기 전에 이런 친구관계에 집착하다가 내가 좋지 않게 된 적도 있었어.
한참 물이 좋지 않은 애들이랑 놀면서도 걔네들도 내 친구들이라 생각하고 늘 같이 다니다 보니 어느 새 나도 함께 물들어 가고 있었어.
그러다가 일이 터졌을 때, 우리는 다 같이 고깃집에서 수갑을 차고 나가게 됐고, 그렇게 나가서는 경찰차를 타게 됐어.
경찰관들이 고깃집에서 일을 보기 위해 우리를 두고 나가자, 안에서는 이런 대화들이 흘렀어.
“ 아 진짜 망했네. 또 걸렸잖아.”
“ 고기 진짜 맛있었는데 아쉽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어봤어.
“ 아니 너네는 지금 경찰서에 끌려가게 생겼는데 그런 말들이 나와?”
“ 에이 뭐 어때 한 두 번도 아닌데.”
“ 맞아, 절대 안들어간다니까?”
“ 아 박준우 너 초범이지? 다행이다 나는 이번에 걸리면 안된단 말이야.”
“ 나도야, 잘 부탁한다 준우. 우리 친구잖아!”
그렇게 난 대답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 수갑에 묶인 손으로 내게 자기들이 훔쳐온 카드들을 넘겼어.
난 그게 받기 싫어서 그냥 놔뒀었어.
그러다가 결국 경찰서에 가서도 걔네는 박준우가 그렇게 훔쳐온 거라면서 조사에 임했어.
“아 그거요? 박준우가 하자 했어요.”
“그거도 박준우가 했는데요?”
옆에서 같이 조사를 받으면서 이런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서 나도 똑같은 질문들을 받았고, 나는 대답을 하기가 너무나도 싫었어.
내 친구들이긴 했지만, 자기들이 한 짓을 나한테 이렇게 넘겨버린다고?
내가 그렇게 믿었던 친구들인데 난 너무나도 상처를 받게 됐어.
그 뒤로 계속 이렇게 불안 불안한 인간 관계를 하게 된 것 같아.
내가 관계를 하기 위해 찾은 사람들은 친구들뿐만이 아니야.
작년에 시즌이 온 뒤에 애들이 가고 써니쌤께서 나를 불러서 물어보신 게 있었어.
“넌 뭘 좋아하니?”. 나는 이 질문에 아무 생각없이 해맑게 “여자요!”라고 대답했어.
그때는 장난식으로 말한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정말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하여튼 그렇게 얘기할 만큼 나는 여자를 좋아했어.
사실 여자라는 그런 존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뭐랄까 이성이 내 옆에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아.
그게 난 좋은 건 줄만 알았고, 친구만큼이나 중요했던 거였어.
그러다보니 하반하에 와서도 여자를 찾은 건 물론이야.
작년에는 여자들이 별로 없어서 문제가 없을 줄 알았어.
그러다가 시즌이 왔을 때 우리가 이집트에서 갔던 숙소에서 외국인 여자들을 엄청 많이 만나게 된거야.
그래서 나는 그때 물 만난 물고기처럼 너무 좋아했어.
그러다가 한 동갑 여자애를 만나서 사귀기도 했지.
그게 진짜 사랑이라도 되는 줄 알고 했었어.
사실 그냥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만났던 사람들인데 말이야.
그렇지만 올해에는 써니쌤께서 똑같이 “뭘 좋아하니?”라고 물으신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었어.
더 이상 나는 관계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게 된 거야.
나는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뤄나가는 걸 좋아해요!”라고 대답했어.
이제는 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을 보는 게 가장 좋아진 거야.
여자도 마찬가지야.
내가 여자들을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준비되면 알아서 올거라는 생각이 생겼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이상형이 있어.
그런데 나는 그런 이상형조차도 완벽하게 머릿속에 만들어 두지 않았거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어.
내가 정말 좋은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를 만날 준비가, 자격들이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나는 그런 기회들을 놓쳐버리게 되는 거니까 말이야.
나는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약해지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키워 나갈 생각이야.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자석처럼 좋은 사람들이 내 곁으로 맴돌게 되는 법이니까.
8. 지금 커피 준비할까요?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야?”
“그건 사람들이 너무나 잊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야.''
”관계를 맺는다고?”
“응. 넌 아직 나에게 수많은 다른 아이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아이일 뿐이야.
그러니까 난 네가 필요하지 않아.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고.
너에게 나는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다를 바 없는 한 마리 여우일 뿐이거든.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아이가 되는 거고.
나는 너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중략)
“네 장미꽃이 그렇게 소중해진 건 네가 장미꽃에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중략)
”같은 시간에 오는 편이 더 좋았을 걸.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난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벌써 난 설레고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되는 거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찾아온다면 언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해..“ 여우가 말했다.
이 문장들을 읽어본 적 있니?
이건 <어린 왕자>라는 책에서 나오는 여우와 어린왕자가 대화하는 장면이야.
이 책에서 나오는 길들이기는 사람 사이에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야.
그런 걸 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 관계에서 아주 약했어.
사람이 없으면 불안해서 사람을 만들었지.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인간 관계에서 가식적인 나를 보여주는 게 습관이 됐어.
가짜인 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다보면 그 모습을 이어 나가지도 못했지.
그래서 사람을 얻을 만 하면 놓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어.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날 제대로 믿지 못하고 나에 대해 알지도 못했어.
그리고 나 역시도 날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그게 어느 새 사람들에게 나의 이미지가 되었고 사람이 중요하다는 지금 세상에서 내 주위에는 제대로 된 사람들이 없었어.
사람들과의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끈기가 없었어.
작년에 내가 한참 정산 1등하고 칭찬 받을 때, 우리 어머니는 ”이게 오래 가면 좋겠네요.“라고 하실 정도로 말이야.
난 그렇게 뭔가 열심히 하는 걸 오랫동안 이어나가지를 못해 왔거든.
예를 들어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뭔가 이뤄내겠다고 얘기해도 그걸 이뤄낸 다음부터는 나 혼자서 합리화하면서 쉬고, 그냥 놔버렸어.
그걸 계속 이어나가야 내 실력이 되고, 쌓이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야.
그래서 운동을 한다고 했던 작년에도, 새로운 스포츠를 만나게 되면 처음에는 신나서 즐기다가 어느새, 거기에 지쳐버려서 더 이상 즐기지 못했었어.
이게 나의 인생에서는 정말 큰 장애물이라고 써니쌤께서도 늘 말씀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게 한 번에 쫙 당겨버리고, 쉴 수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은 게 아닌가 생각했어.
끈기 없는 게 날 더 한번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여긴 거지.
그러나 이런 나의 사람들이 말해온 단점들, 나의 습관들은 내 앞길에서 또 다시 걸려 넘어질 걸 알고 있었어.
정말 커져서 날 아예 무너뜨릴 수도 있지.
그걸 알고도 나는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어.
그런 것들을 눈여겨 찾아보고 있던 중 내 눈에 멋진 사람이 하나 들어왔어.
그건 바로 진성쌤이야.
진성쌤도 나처럼 써니쌤, 대장님을 정말 좋아하시거든.
근데 나와 다른 점이라면 정말 진심으로 대했어.
내게 그 모습들이 보인 건 꽤 오래됐어.
올해 내내 진성쌤께서 써니쌤, 대장님께 늘 커피를 타 가시는 모습을 봐왔거든.
항상 정성을 다해서 깨끗하게, 맛있게 커피를 타서 가져다 드리는 모습을 보고 저런 끈기와 정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정말 궁금해졌어.
그리고 나도 그 프로젝트를 시작했지.
이름하여 <Jin’s Cafe>! 나는 진성쌤 대신 매일 커피를 타고, 가져다 드렸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진성쌤의 그런 모습들을 배우고 싶었거든.
첫 시작은 볼리비아 라파즈였어.
그때 진성쌤께서 커피를 타는 걸 옆에서 보면서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어.
그리고 드디어, 내가 혼자서 커피를 끓일 수 있게 됐어.
그렇게 커피를 타서 써니쌤, 대장님께 가져다 드리는 게 일 주일 정도 지났을 때, 아마존 투어를 가기 위해 우리는 루레나바케에 갔어.
루레나바케는 정말 덥고, 습해서, 방 밖으로 나가는 게 너무 귀찮았어.
그래서 천천히, 점점 커피를 타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내가 이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써니쌤께 듣게 됐어.
정말 사람을 길들이는 건 끈기와 정성, 진심이 필요한 것이라는 걸.
그게 길들이기라는 걸 말이야.
그리고 난 이 일로 끈기를 키워보고자 마음을 다져 먹었어.
내가 정한 시간은 아침 식사 후, 11시에서 12시 사이, 저녁 식사 후 이 세 개였어.
어떤 상황이여도 매일 매일 커피를 타 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어.
아침 일찍부터 이동을 해야 되는 날이면 내가 그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물을 미리 끓여두고 보온 병에 커피를 담아드리기도 할 정도 말이야.
그러다보니 어느 새, 써니쌤, 대장님은 내가 커피를 탈 시간에 익숙해져 있으셨어.
우리가 칠레 산티아고에서 지낼 때는 아파트에서 살아서 방이 나뉘어져 있었어.
대장님 방은 2층, 우리 방은 10층이였지.
나는 밥을 먹다가도 시간이 되면 바로 내려가서 커피를 끓여드리고 올라왔어.
끝까지 성실하게 하겠다는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말이야.
상황이 바뀌었다고 그 내가 약속처럼 찾아가던 시간을 깨는 건 아니라 생각했거든.
솔직히 그렇게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였어.
가끔은 귀찮기도 하고, 가기 싫기도 했거든.
그래도 내가 해오던 일을 깨는 건 더 싫어서 계속 나 자신과 싸우다가 내려가서 커피를 타드렸어.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내가 갈 때면 늘 대장님께서 내게 음식을 하나씩 쥐어주셨어.
심지어 나를 위해서 요리까지 해주셨어.
드디어 나와 대장님이 친구가 되는 순간이였어.
나는 대장님과 작년에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였거든.
그러나 이렇게 매일 시간과 정성을 쏟았고, 그 일들은 내 진심이 열려 있어서 더 끈기있게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진심은 이제 내가 커피를 타는 게 귀찮은 일이 아니라고 느끼게 해줬고, 그로서 커피를 끓이는 일은 내 일상이 되어 버렸어.
그리고 그렇게 내 진심이 보이니 대장님, 써니쌤도 어느새 내가 올 시간이 되면 커피를 찾게 되고, 기다려지는 거라고 생각해.
드디어 내가 정성을 쏟아 붓는 걸 끈기있게 해낼 수 있게 된거야.
그리고 그런 일들로 인해서 사람을 얻은 거고. 이게 진짜 사람을 얻는 방법이였어.
나는 여전히 커피를 타고 있고, 이런 진심을 다하는 방법을 배웠으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우선 내가 가장 먼저 시도해볼 사람은 부모님이야.
9. 황금 밀밭
부모의 얼굴은 자식이라고 해.
자식이 보여주는 모습으로 부모님이 어떤 지 알 수 있다는 거지.
나는 그걸 알면서도 부모님 얼굴에 먹칠을 많이 했어.
내가 행동하는 것들이 결국 사람들에게는 쟤는 가정교육이 이랬느니 저랬느니 얘기하게 될테니까 말이야.
학생인 자식을 갖고 있는 부모님들은 모임을 만들어서 대화를 나누시잖아.
우리 엄마는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학부모님들 모임에도 나가실 수가 없었어.
나가면 또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그 돌을 맞게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어느 날은 친한 학부모님을 만나러 가신 날이였어.
그때는 내가 손에 문신을 했을 때였는데 그 분이 그게 나인 줄 모르고 말씀하셨다는 거야.
”글세, 우리 학년에 문신을 한 애가 있대요.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그리고 우리 아빠 역시도 나 때문에 많은 곤란함을 겪으셨을 거야.
중국에서 살 때는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시던 가족들이 와서 다 같이 사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러다보니까 한국인들끼리는 서로를 알게 되는데 내가 여기 저기서 안 좋은 소문들만 만드는 거야.
그 소문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아빠 회사에도 퍼지게 되고 우리 아빠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들을 받으셔야 했어.
오죽하면 사람들 안보이게 피해 다니라고도 말씀하셨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이런 부모님들이 돌을 맞는 걸 그때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
어차피 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난 계속 반항만 하고 싶어서 차라리 그게 잘된 거라고 생각했거든.
부모님의 기대는 자연스럽게 점점 낮아졌어.
한때는 내가 전교 1등하는 게 목표였는데, 그게 그냥 공부라도 하면 좋겠고, 어느 새 학교라도 나가면 좋겠고, 사고만 안치면 되는 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다치지만 않으면 되는 걸로 줄어버렸어.
아들한테 이제 기대를 해도 거기에 맞게 내가 만족시켜드리지 못해서 그런 결과였어.
그러다 보니 부모님은 나에 대해 걱정만 늘어 가셨어.
내가 어디 나간다 하면 또 사고치러 갈까봐 나가지 말라고 하셨고,
그래서 나가서 노는 것도 싫어하셨어.
그게 내가 만든 결과인데도 나는 그게 너무 불만이였어.
그거 하나 못 믿냐고 따지기만 했지.
내가 부모님을 이미 오랫동안 실망시켜드렸기 때문에 당연한 건데도 말이야.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더 부모님이 원하는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었어.
부모님이 내 얼굴만 봐도, 나가는 것만 봐도 불안하게 만든 거야.
이제는 친구를 만난다고 해도, 전에 만났던 그런 애들을 만날까봐 늘 걱정하셨어.
그래놓고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걱정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왜 엄마 아빠는 자식을 못 믿냐고, 그게 진짜 부모님이 하는 일이 맞는 건 하냐면서 따져댔거든.
어린 왕자에서는 여우가 황금 밀밭만 봐도 어린 왕자가 떠올라서 기쁘다고 나와.
그런 거에 비해서 우리 부모님께서는 지금까지 나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울고, 싸우고, 실망시킨 것들만 떠오르실 거야.
그렇지만 하반하에 와서는 부모님과 전화할 때 늘 빈 방을 보면 어딘가 허전하고 보고 싶다고 하셨어.
내가 그렇게 사고를 치고 실망시켜드렸는데도 날 그렇게 기다려주시는 거야.
나는 한국에 돌아갔을 때, 그런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려고 했어.
하반하에서 배운 기념일을 챙기는 방법으로 처음으로 제대로 어머니 생신을 챙겨드렸어.
물론 내가 아직 요리를 혼자 할 수는 없었지만 미역국도 끓이고, 같이 데이트도 했거든.
가끔은 어머니를 위해서 요리를 해드리기도 했어.
천천히 그렇게 부모님이 나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기대들을 더 늘려 나갈 생각이야.
그냥 단순하게 다치지 말기, 사고치지 말기가 아니라 이제는 대학도 이정도는 가주면 좋겠다, 성적은 이정도 나오면 좋겠다 같은 많은 다른 부모님들이 하는 기대들도 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이제야 이렇게 내가 했던 행동들을 바로 잡으려 해서 너무 죄송해.
부모님들과 세계여행을 한다고 2년간 떨어져있으면서, 부모님이 나에게 먹여주시는 것들, 입혀주시는 것들, 재워주시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서야 집이 가장 편한 곳이라는 걸 느꼈으니까 말이야.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좋은 아들로 남고 싶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받은 것들을 다 갚아드릴거야.
10. 내게 날개가 있다고?
나는 지금까지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일들을 너무 많이 해왔어.
그렇게 벗어나는 걸 학생때 아니면 언제 해보냐고,
지금 해야 더 좋은 추억들이라는 헛소리나 하면서 말이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졌어.
그리고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하자는 마음으로 하반하에 온 거지.
사실 이 학교의 하반하 정신과는 다르게 진짜 그냥 내가 해오던 일탈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서 온 거였긴 하지만 지내보면서 그 의미가 다르다는 걸 느꼈어.
나는 사실 공부같은 게 재미가 없고 노는 게 더 재밌어서 안 한거였어.
그렇지만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지금 학생의 신분에서 해야 하는 걸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
내게는 어렸을 때부터 CEO라는 꿈이 있었거든.
그걸 이루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배경이 필요해.
지금까지는 그냥 그런 대학이고 뭐고 없어도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해놔야 이룰 수 있는 거라는 걸 배운 거지.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들어가면 3주정도 후에 바로 기숙 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서 수능을 볼 생각이야.
사실 아직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못 따서 검정고시를 쳐야 하긴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밀린 공부를 하나씩 해두려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이미 많은 양이 밀려 있어서 열심히 해야 돼.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해 지기로 했어.
집에서 공부하면서 학원이나 다니는 게 편하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나는 사람에게 약한 것도, 유혹에도 약한 것도, 끈기가 없는 것도 내가 알고 있거든. 그래서 그런 것들의 싹조차도 잘라보려고 해.
그리고 들어가서도 다른 거에 자꾸 신경쓰지 않을 수 있도록 머리를 밀고 들어갈 거야.
내가 이런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다 이 여행에 온 덕이야.
내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면 너무 싫어.
지금처럼 이렇게 꿈도, 희망도 생기지 않는 삶을 살고 있겠지.
한비야라는 분이 하신 말씀이 있어.
”하나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밀어내셨다.
그때야 알았다.
내게 날개가 있었다는 걸.“
이 문장이 내게 정말 와닿았어.
나는 지금까지 벼랑 끝에서 간당간당한 삶을 살아왔거든.
그렇지만 거기에서 뛰어내려보자는 용기가 생겼고, 믿음이 생겼어.
그래서 하반하로 뛰어들은 거였어.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말이야.
그때는 그렇게 뭐라도 하는 게 그 삶보다는 나을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내가 기대한 것을 넘어서 나는 이제 희망을 갖고,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어.
난 내가 이 2년동안의 길고도 짧은 세계여행동안 배운 것들로 어딜 가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내가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
너희도 꿈을 꿔보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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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존심이 강한 준우가 진정한 리더가 되는 법을 알게 되었구나. 많이 흔들렸지만 덕분에 뿌리는 더 깊어지고 향기는 더 좋아졌겠지. 나 자신과 화해하는 법과 남을 수용하는 법을 깨달은 매력부자 준우 화이팅!
준우 참 길고도 험한길을 돌아돌아 처음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네 우리 그자리에서 힘차게 나아가보자 일년 정말 힘들고 지치겠지만 준우 해낼거라 믿어
2년간의 하반하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잘 살아주길 바란다ㆍ
많이 흔들렸던 꽃 준우야
"꽃 한송이로 족하겠느냐
백만송이라도 피우고 피우고
또 피우리라"
너의 인생이 멋지게 빛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ㆍ
준우의 솔찍한 글에 박수를 보낸다
너무 다른 2년 동안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된다 엄청나게 성장을 이루었구나 10대의 나이는 맘대로 안되는 나이같아 어쩌면 시간이 지나야 하는 것 같기도 해 좋은 부모님 좋은 선생님을 잘 만난것도 너의 복이겠지? 고맙고 감사하다 미래에 CEO가 된 준우 기대할께♡
날개를 펼치며 훨훨
준우의 새로운 삶을 향해 힘껏 비상하길 열열히 응원한다.
다른 친구들보다 성장통을 진하게 겪어내고 지금은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게 성장한 준우와 지켜보며 기다려주고 지지해주신 준우부모님 모두 애쓰셨네요.
준우 정말 멋지게 성장해줘서 고맙다.
인생의 선생님을 만나고 길을 찾은 것 축하하고 어느 곳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 기대할께.
준우야 문집 잘읽었어~그리고 솔직하고 진심이담긴 글에 감동했단다!많은 과정을 잘 이겨내고 자신을 돌아볼줄알고 이것만으로도 넌 아주 잘하고있는거라생각해~ 멋진앞날의 준우가 상상이되는구나 사람의 각자의 개성과멋이있듯 웃는모습이 예쁜사람이있든데 바로 준우가 웃는모습이예쁘드라~이 멋진 웃음뒤에 꼭 너가 바라는걸 이루어내길 응원할께 ~
눈보라가 거센, 한겨울을 헤치고 나왔구나!
봄,여름,가을,겨울이 매년 돌아오듯,
준우 인생도 사계절이 반복 되겠지.
지금은 10대의, 겨울의 끝자락에 있으니,
몸과 마음을 단정히하고, 정신을 단련하길 바란다.
그리고 시작의 봄이 오거든, 꿈의 씨앗을,
정성스럽게 뿌리고,
하반하식 햇빛과 공기와 물 영양분을 충분히
주며, 파릇파릇, 가치있게 키워보렴.
준우 인생의, 건강하고 뜨거웠던 여름이,
황금들녁의 풍성함을 선물할거고,
폭풍한설이 무서웠던 겨울은,
편안하고, 따뜻한 안식처가 될테니~~
준우군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분들이,
응원할테니, 패기와 용기를 장착하고,
씩씩하게 도전해나가길 바란다.
준우 화이팅!!!!
하반하의 지금까지 최대 수혜자는 준우인거같다..감동적이야..수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하반하 여행을 통해 본인의 근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긍적적으로 변한 준우 정말 멋진 남자다..준우가 마음 먹으면 뭐라도 할것같은 확신이든다..홧팅~!!
질풍노도의 시기를 호되게 치뤄냈구나!~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드는구나
호된 사춘기를 보낸 준우가 만들어갈 미래가 참 기대되고 몇년후 이련 경험들이 바탕이되어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마크 저크버거 보다 더 멋진 CEO가 되어 있을것 같은 예감이~~
어린나이에 세계여행이란 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준우는 럭키가이란 것 명심하고 너의 꿈 꼭 이뤄낼수 있기를 기도할께~~
박 준 우 넌 할수있어 화이팅!!~~^^
범상치 않았던 준우의 보고서...
뒤에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구나
너무도 장하다 준우야
정말 너의 끈기있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쭉욱 끈기 있게 성장하여 훌륭한 CEO 응원합니다 ~!!
최강장미 준우, 아니 이젠 Jin’cafe CEO 라고 해야할까? ^^ 지난 두 해 동안 지켜보면서 네 성장 모습에 늘 감탄하고, 감동했던 것 같아. 긴 방황을 마치고 이제 다시 자기를 세워가려 마음을 다잡은 준우의 또 다른 성장이 기대된다. 지난 이년간의 배움과 깨달음을 꼭 붙잡고 꿈을 이루기 위한 디딤돌을 꼭 꼭 쌓아가보렴. 민수랑은 말이야, 작년부터 느끼는 거지만 뭔가 속마음을 다 드러내고 응어리를 툭- 털어버릴 계기가 있어야할 것도 같아. 언젠가 그 시간을 만날 수 있겠지..
준우는 다른 아이들이 겪기 힘든 일들을 일찍도 경험했구나. 다행이 철이 들고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른 나이에 터득했구나. 우리 부모들 세대에도 준우와 같은 소위 일진 친구들이 있었단다. 너처럼 빨리 깨우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한 친구들은 아주 멋진 친구들이 되어 있고 너무 늦게 철든 아이들은 과거를 후회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단다, 미래의 멋진 준우의 모습을 그려본다^^
준우가 엄청난 폭풍같은 시기를 보냈구나...
부모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관계에서도 두려워않고 진정한 홀로서기가 가능한 인간 박준우.
감동적이네...이런 마음으로 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길 진심으로 응원할께...!!!
지나가다 제목에 끌려 읽게되었네요. 글자하나 놓칠새라 한문장 한문장 곱씹어 읽어내려갔답니다. 정말 감동 그자체! 앞으로의 행보에 화이팅을 외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