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기도하니 감사와 평안으로 응답
나는 남편과 함께 아들 둘을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1978년생인 둘째가 6살이었을 때 갑자기 경기를 일으켰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어도 또 경기를 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뇌파, 심전도, MRI까지 모든 검사를 다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니 결국 받게 된 병명은 간질이었다.
얼마 후 둘째 아들의 소식을 들은 사촌동생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때 나는 타종교를 믿고 있었는데 동생은 언니가 믿는 그 신이 살아있느냐 물어보면서 이제는 예수님을 믿어보라고 했다. 아이를 위해서 남편과 나는 상의를 했고 우리 가족은 다 같이 교회를 갔다.
처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 규모와 많은 사람들에 놀랐다. 놀람도 잠시 무조건 하나님을 만나고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교회를 다니던 중 치료를 잘한다는 한의원에 갔다. 아이 상태를 보던 의사는 이 아이는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면 아무런 병이 없는 거라면서 예수님을 꼭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하니 그러면 열심히 다니라는 당부를 했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몸이 약해져 나도 같이 등교를 하고 선생님의 배려로 교실 한쪽에 의자를 놓고 수업 내내 아이를 지켜봤다. 병원을 오가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현실이었지만 예배를 드리면 우리 아들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교회 목사님과 전도사님, 성도들은 우리 아들의 치료를 위해서 작정 예배를 드려주고 계속 우리 집에 와서 아들을 위해 기도해주셨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는 다니던 대학병원 의사가 아이를 진료하더니 이렇게까지 차도가 없으면 더 어려운 상황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오히려 나는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날 받은 약부터 모든 약들을 버리고 철저하게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이사야 41장과 이사야 53장에 ‘담대하라, 치료하겠다’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에 매진했다.
이 후 아들은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게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대학교 입학과 졸업도 마쳤다. 군대를 다녀온 후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결혼해서 예쁜 딸도 낳고 며느리와 오순도순 살고 있다.
둘째 아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된 우리 가족은 무조건 매달리는 기도를 배웠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렸다. 아들 덕분에 기도하면서 살다 보니 하나님이 회사만 다니던 남편 고석보 안수집사의 사업의 꿈도 이뤄주셨다. 조용기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종이에 다 쓰고 그려서 기도하니 결국 사업체를 갖게 됐다.
사업도 축복을 받아 건물을 살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그곳에 영등포대교구 7교구 기도처를 세우는데 헌신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새벽은 물론 밤에도 언제든지 기도처에서 기도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모두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전도한다.
정리=복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