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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램의 <칭기즈 칸>
해럴드 램(Halold Lamb 1892~1962)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역사 저술가로 왕성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특히, 중국어와 아라비아어에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사료를 수집하여 이 지역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모은 사료와 함께 뛰어난 상상력으로 역사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했다는 평을 얻었다. 주요 저술로는 『Genghis Khan and the Mongol Horde』『The Crusade: the Flame of Islam』『Alexander The Great - the Journey to World's End』『Hannibal : One Man against Roma』『Cyrus The Great - King of Persia』『Charlemagne Emperor - the Legend and the Man』등이 있다.
목차
제 1부 전설의 시작
1장 전사의 아들
2장 살아남기 위한 싸움
3장 첫 번째 전쟁
4장 샤먼의 도전
5장 굽타산에 깃발이 오를 때
6장 위대한 통치자의 서곡
7장 칸의 법, 야사(Yassa)
제 2부 세계의 정복자
8장 천자가 세운 나라
9장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으로
10장 금나라의 패망
11장 검은 모래의 도시, 카라코룸
제 3부 제국의 완성
12장 바람의 서쪽으로
13장 서역 정벌
14장 이슬람전의 시작
15장 이슬람의 본거지에 내린 신의 분노
16장 황제 사냥
17장 몽골인의 사냥 훈련
18장 신이 내린 재앙
19장 전령의 길
20장 이슬람 제국의 마지막
21장 이슬람 땅에서 개최된 쿠릴타이
22장 마지막 전투
제 4부 칭기즈칸의 유산
칭기즈칸의 후계자들
칭기즈칸에 대한 남은 이야기들
I. 대학살
II. 칭기즈칸의 법령
III. 아시아의 프레스터 존
IV. 숫자로 본 몽골군의 병력
V. 몽골군의 공격 작전
VI. 수보타이 바하두르 대 중유럽
VII. 몽골인에 대한 유럽인의 생각
VIII. 유럽 군주와 몽골인 사이의 서신 왕래
IX. 칭기즈칸의 손자와 성지
X. 중국의 현인 야율초재
XI. 자애로운 오고타이
XII. 유목민들의 마지막 왕궁
주석
책읽은 나의 소감
1. 800년 전에 살았던
칭기즈 칸의 말들
장사꾼이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수익에 운명을 거는 것처럼 몽골인은 용기에 운명을 건다
자기가 한 말을 깨는 것은 군주로서 비열한 짓이다
행동을 하면 결국에는 이루게 된다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듯이 세상에는 두 명의 칸이 있을 수 없다
내 명령없이는 적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것을 금한다
무자비함만이 적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다
적들을 정복했다고 해서 그들을 완전히 제압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항상 새 주인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2. 칭기즈칸의 신관(神觀)
야사(Yassa)는
칭기즈칸의 법령을 말한다
칸의 법
우리 말로 하면 천제(天帝)께서 제국의 모든 인민에게 내리신 지엄한 명령이다
그런데
야사(Yassa)의 첫번째 조항은 정말로 참신하다
기존 상식이 뒤집힐 때,
상상 밖으로
전혀 의외의 결과가 나올 때
'산뜻하다'고 한다
그 산뜻하고 참신한 야사(Yassa)
의 첫번째 조항을 읽어보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생명과 죽음, 부와 빈곤을 주시는 유일하신 분인 하나님만을 믿어야 한다. 그는 모든 것 위에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해럴드 램의 <칭기즈칸>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날 뻔했다
작년 여름,
어느 날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13시간>을 보았었다
총질 쌈박질 영화였다
리비아 뱅가지에서 있었던 실화를 재구성한...
우리나라 특전사 개념의 전사 6명이 펼치는 영웅담 혹은 무용담이다
그렇고 그런거로구나 하고 보고 있자니 잠시 주어진 소강상태에서 한 전사가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책은 조지프 캠벨(Joseph John Campbell(1904~ 1987)
의 저서 '신화의 힘'이었다
책 읽는 전사 뒤로 동료 하나가 지나가며 묻는다
뭔 내용이야?
어~~
신도 천국도 지옥도 다~~~
네 안에 있다고 그러네
아!
그래?
어.
영화의
그 대사를 듣고 보면서
내 마음이 또잉!
신선하네~ 그랬었는데
해럴드 램이 전해준 야사(Yassa)
첫 조항도 그랬다
그야말로
완전한 반전인 것이다
칭기즈칸은
살인자 중의 살인자다
인류 역사의 일급 특대 범죄인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제국 통치법령 제 1호가 '하나님을 믿어라'이다
난 해럴드 램이나 역자인 문선희(연세대 신학과 박사과정 출신)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나님만을 믿어야 한다"
이 문구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진다
몽골 말, 텡그리(Tengri)는 하늘이다
그러면 굳이 텡그리를 하나님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다
내가 보기엔 하느님이라고 해야한다고 본다
두 번째는 존재는 그냥 알고 느끼고 맛보고 감응을 주고 받을 뿐 믿을 수는 없다
사실이 아닌 것과 비존재를 믿는 것이지 어떻게 존재를 믿겠는가?
사과를 믿는 사람이 어디 있나?
사과라는 존재의 한 형태를 알고 먹고 맛을 음미할 뿐이다
사과를 믿는다고 하면 사과는 비사실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이다
존재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앎으로써 그냥 있음을 안다
프라 뤼브뤼키(프란체스코 수사)는 프랑스 왕의 친선 사절로 해발 평균 1,500m의 몽골 고원 카라코룸(Karakorum, '검은모래'란 뜻)으로 가서 칭기즈칸의 손자인 만구 칸을 만난다
그가 기록을 남겼다
<칸이 말했다.
“우리 몽골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을 향한 곧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분의 선물이 아니고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많은 수단을 주셨지. 그분은 너희에게 성경을 주셨지만, 너희는 그것을 지키지 않고 있다. 분명히 너희 중 누구라도 다른 이를 비판하면 안 된다고 네가 가진 성경에 쓰여 있지 않느냐?”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처음부터 폐하께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바 있습니다."
"너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다. 또한 성경에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저버려야 한다고 쓰여 있지도 않을 것이다.
......
나는 하나님이 너에게 성경을 주셨지만 네가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예언자를 주셨고, 우리는 그들이 알려준 대로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칭기즈칸은 56세에 호라즘(Kharesm) 정벌에 나선다
그는 부하라를 점령한 뒤 이슬람교도들의 메카(Mecca) 순례를 비판한다
"하늘의 힘은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어느 곳에라도 있는 것이라오"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대한 연설도 한다
"너희 황제는 죄를 많이 지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이다.
다른 많은 황제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온 하늘의 분노이자 천벌이다.
그를 보호하거나 도와주었다가는 같은 벌을 받을 것이다"
3. 몽골인의 재물관(財物觀)
페르시아와 인도의 왕들이 보물을 쌓아놓는 것에 대해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 칸이 한 마디 했는데...
"그들은 바보들이오.
재물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었소."
만구 칸의 말
"해가 모든 곳을 비추듯이 우리와 바투의 힘은 세상 모든 곳에 뻗쳐 있다.
우리는 너희의 금이나 은이 필요치 않다."
4. 칭기즈칸의 행복관
해럴드 램은 칭기즈칸을 왕 중의 왕, 가장 위대한 통치자, 만인의 황제라고 한다
칸의 명령에 따라 진행된 정벌로 인해 무참하게 파괴된 키예프는 몽골인들에 의해 무발라이로 불렸다
울음의 도시
그들조차도 시체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그 참혹한 모습을 피해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칭기즈칸은 무자비했다
또한 그 속에서 그는 행복해 했다
철저한 파괴, 살인, 약탈, 부녀자 겁탈, 방화 등등
그의 말을 들어보자
<어느 날 그는 황실을 지키는 친위대 장교에게 다소 엉뚱해 보이는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이 세상에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드넓은 초원, 사냥하기 좋은 맑은 날씨, 날쌘 말, 칸의 팔 등에 앉아 있는 토끼 사냥용 매입니다.”
그 장교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대답을 했다.
“아니다. 적을 섬멸하는 것이다. 적이 발아래 쓰러지는 것을 보고, 그들의 물건을 약탈하며, 남은 가족들이 애끓는 소리로 울부짖는 것을 듣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의 행복관은 정말 독특하다
어찌보면 그는 자신의 신념에 투철했고 그것을 관철하려는 불굴의 의지를 가져 아시아 대륙 곳곳에 병화(兵火)의 잿더미가 늘어나는 만큼 그의 행복도 비례했다
5. 나의 평(評)
난 말한다
그럴수도 있다고...
살인, 강탈이 그의 행복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는 범인(凡人)이 아니었으므로...
전쟁과 살생, 살인이 나쁨, 악이라는 것은 사람이 지어낸 하나의 규정이다
이것이 강조되다 보면 당연히
고정된 관념으로 고착화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생각은 왕자(王者)의 그릇에나 담길 수 있는 거라고 봐야한다
제왕들은 윤리를 사회에
강요하면서 한편으로는 수 많은 궁녀를 끼고 살았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생사여탈권을 활용해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했었으니 얼 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가
살인과 폭력이 누군가에게는 탄압과 침탈에 맞서는 항거이며
누군가에게는 독립투쟁의 수단이고
어떤 이에게는 복수의 기회이다
살생도 마찬가지이다
농부와 어부
그리고 산판의 일꾼들이 자신의 생업을 꾸려가면서 가래질, 그물질, 삽질 한번에 얼마나 생명이 죽어나가는가?
왕자(王者)의 그릇은 다르다
당연히
생각의 크기도 다르다
평인(平人)이 생각하는 범주를 뛰어넘고 있다
생사(生死)와 시비(是非)를 대하는 관점 자체가 틀리다
그래서
겨우
한 마디 하자면...
칭기즈칸은 살아 있을 때 행복했다
그런데 칭기즈칸이 다시 지구에 내려올까?
또 한번 더 행복한 삶을 살아보려고 말이다 ㅎㅎ
2019.2.17.일.乙酉
책 소개 하나
[고구려-발해인 칭기스칸]
29개 국어에 통달한 언어의 천재, 천재 사학자가 혼자 29개 언어로 된 사서들을 전부 독파한 후 각 사서들의 내용을 교차 체크하고 각 언어의 변천과정을 면밀히 추적한 결과 밝혀낸 놀라운 비밀; 칭기스 칸은 고구려 발해 왕가의 후손이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몽골인” 출신으로 “세계정복자”라고 알고 있는 칭기스 칸의 선조는 “고구려(高句麗) 주몽(朱蒙)의 후손 발해(渤海) 왕족이었다”는 내용의 놀라운 책이 나왔다.
지금부터 약 800년 전에 칭기스 칸(1162?~1227년)의 선조와 그 자신의 행적에 관해 기록한 사서 <몽골비사(元朝秘史)>가 있다. 이 사서는 그 첫줄에서 “칭기스칸의 뿌리는 높은 하늘이 점지하여 태어난 부르테 치노(蒼狼, 푸른 이리)”라고 했다.
그런데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외무부 유엔국 유네스코담당 자문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체첸전쟁 현장주재관을 거쳐, 미국에서 법학박사(JD)를 딴 후, 미국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했고, 귀국 후에는 고구려 발해학회 회원으로도 참가한 저자는 한·몽 수교가 이루어진 직후부터 몽골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독학 교재로 쓴 <몽골비사(元朝秘史)>를 처음 접하게 되면서부터 한 가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사서의 제목은 왜 그저 <몽골사>나 <칭기스칸사>가 아니라, <-비밀스러운(숨겨진)=秘->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저자는 그후 내내 자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 물음을 끈질기게 추궁했다. 그 결과 “부르테 치노”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오늘날 몽골족의 선조라고 하는 그 전설적 “푸른 이리”와는 전혀 다른 말로, 그것은 고구려-말갈어 “부여대씨랑(夫餘-大氏-郞, *부려-테치-농)”이라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치노(氏郞, 씨랑)”라는 말은 오늘날 씨족의 “종친회장” 격으로 고구려 시대에 쓰이기 시작하여 원(元, 1271~1368년)나라, 북원(北元, 1368~1388년)과 그 뒤에도 몽골어로 “지농”이라는 말로 계승되었다.
이 때문에 본격적 연구를 한 결과,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칸의 뿌리가 사실은 1045년에 쓰인 <무경총요(武經總要)>가 “부여별류(夫餘別類)”로 기록한 발해고왕(渤海高王) 대조영(大祚榮) 가계의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 칸이 발해 초대왕이자 진국왕(震國王)인 대조영(大祚榮)의 가계 출신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 칭기스 칸은 그 아우 반안군왕(盤安郡王) 대야발(大野勃)의 제 19대손임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저자는 또 학자들이 “철인”, “(쇠를 다루는)대장장이” 등으로 잘못 풀이해 온 “칭기스 칸”의 어릴 적 이름 “테무진(鐵木眞)”은 사실은 “테무진” 자신이 “부여별종(夫餘別種)” 가계인 주몽(朱蒙)의 손자로 고구려 3대왕이 된 “무쿠리(無恤, 무휼)”, 다른 이름으로 “마크리(莫來, 막래)”였던 “대무신(大武神)” 왕(王), 달리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의 후손임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밝혔다.
테무진의 왕호인 “칭기스 칸(Chinghiz Khan/Ghenghiz Khan)”을 라시드 웃딘(Rashid alDin)이 1310년 경에 쓴 <집사(集史)>와, 지난 세기 미국학자 해롤드 램(Harold Lamb) 등은 “왕중의 왕”이라는 뜻으로 잘못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왕호가 사실은 대조영과 그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쓴 고구려-말갈어(靺鞨語) “진국왕(震國王)”의 투르크어 식 소리 “팅기즈 칸(Tinggiz Khan)”이 바뀐 말임을 밝힌다. 칭기스 칸의 손자로 원(元)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을 1266년경 만났다고 전하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년)의 <동방견문록>에서, 폴로는 칭기스 칸의 이름을 25번이나 언급하면서 24번이나 그의 이름을 “칭기 칸(Chinghi Kane)”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바로 “진국왕(震國王)”의 당시 소리 “친구이 칸(Chinghui Kan)”과 같다는 사실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 1330년에 함둘라 카즈비니(Hamdallah Qazvini)가 쓴 <선별된 역사(Tarikh-i Gojide)>는 테무진이 나기 전까지는 그 이름조차도 없던 땅을 테무진이 통일하고는 자신이 창출한 나라 이름을 “몽골”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일부 몽골학자들은 이것이 송(宋)나라 팽대아(彭大雅)가 칭기스 칸 시대의 몽골을 방문하고 1237년에 쓴 <흑달사략(黑事略)>에 근거하여 “멍거(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몽골”은 사실은 칭기스 칸의 선조의 나라인 “말갈(靺鞨, 勿吉)”, 곧 조선시대의 학자가 “마읍(馬邑)”이라고도 본 “말[키우는] 고을(馬忽)”에 어원을 둔 말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구려(高句麗)는 수도 평양성(平壤城) 등 오늘날 성시(城市)를 말하는 여러 개의 “고을=구려(句麗)”와 “일곱 개의 말 골(말갈)”로 이루어져 커진(高) 나라 “커구려(高句麗)”였기 때문이다. 결국 테무진은 자신의 이름 “테무진/대무신(大武神)”과 왕호 “칭기스 칸/진국왕(震國王)”, 그리고 자기 나라 이름을 “몽골 / 몰골 / 말골(靺鞨)”이라고 붙임으로써 자신이 고구려(高句麗) 왕족의 후손이자, 발해(渤海) “진국왕(震國王)”의 후손이요, “말갈국왕”, 곧 새로운 “발해국왕”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결론을 얻는 과정에서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칸 일가의 후손 “칸(황제)”들이 자신들의 조상에 관해 세계 곳곳에서 남긴 <황금의 책(Altan Daftar)>에 해당하는 책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는 칭기스 칸의 뿌리가 바로 고구려(高句麗) 시조 주몽(朱蒙)의 후손인 발해 왕족 대조영 가문임을 밝힌다. <황금의 책>은 약 705년 전 일칸국 황제 가잔 칸의 명으로 <집사>를 쓴 라시드 웃딘이 “칸(황제)의 재고에는 항상 대 아미르들이 지키고 있어서... 황족이 아닌 외부인들은 절대로 보도록 허락되지 않는 책이 한 권 있다”고 한 전설적인 책이다.
이 <황금의 책>은 왜 철저하게 외부인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칸(황제) 가문의 “족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신·구 당서>, <삼국사기>, <고려사> 등 한문으로 된 고대 동방사서는 물론, <집사>, <사국사>, <투르크의 계보>, <칭기스의 서> 등 페르시아, 중세 투르크어, 타타르어로 된 서방 사서, <몽골비사>, <셀렝게 부랴트종족의 역사> 등 중세 몽골어와 부랴트어 등으로 쓰인 사서를 중심으로 최대 무려 29개 국어로 쓰인 사서들과 사료들을 서로 비교, 대조하고, 그 텍스트를 해독하여, 숨겨진 우리 역사의 비밀을 하나하나 밝혔다. 발해 멸망에 관해서는 거란의 정복설, 백두산 폭발에 의한 멸망설 등이 있다.
그러나 그 뒤 발해인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관해서는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발해 왕가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건의 고려와 금나라, 또 오늘날 우리가 “몽골제국”으로 알고 있는 나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 제국은 오늘날 몽골이라고 부르는 땅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는 물론,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시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의 반대편 홍해의 아라비아 반도, 러시아, 동구 및 오스트리아, 독일 변경까지 뻗어나간 방대한 세계제국이었다.
한 마디로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 서구 몇 나라만 뺀 당시의 “전세계”이다.
그렇다면 지난 1995년 21세기의 새로운 “밀레니엄(천년)”의 도래를 앞두고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가 20세기까지 지난 천 년간의 역사 속에서 최고의 인물로 선정한 사람이 바로 칭기스칸이었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칭기스 칸이 탄생한 지 850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 누구도 그 위대한 인물의 “뿌리”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저자는 국내외 저명한 사학자, 교수, 전문가들 가운데 그 누구도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었던 고대와 중세, 근세에 걸쳐 기록된 동·서방의 여러 가지 어렵고도 다양한 언어로 된 사서들을 해독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천재적인 추론과 법학도 다운 논리정연한 추리를 통해 칭기스 칸의 뿌리를 꼼꼼하게 한 세대 한 세대 차근차근 밝히고 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이 <고구려-발해인 칭기스칸>이다. 이 책은 668년 고구려가 망한 이래 지난 1300년간의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할” 놀랍고도 치밀한 연구 결과물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고구려는 우리요, 말갈은 우리와 관계없는 퉁구스 종족이다” 고 보는 일부 우리 국사학자들과 러시아, 중국 등 주류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저자는 놀랍게도 “고구려와 말갈은 다 같이 고구려 왕족으로 주몽의 후예”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이 글은 이러한 새 학설을 애써 무시하려는 국내외 전문가, 교수들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하나, 아니면 발해왕조의 민족적 성격에 관해 그들 사이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저자는 사라진 고구려가 발해-고려-금나라-원나라-청나라로 이어졌다는 엄청난 역사적 진실도 밝힌다.
저자는 <집사>에 “모든 콩그라트 종족의 시조”로 기록된 “황금항아리(Bastu-i jarrin)”가 몽골인들이 금(金)나라 황제를 부르는 “황금의 칸(Altan Khan)”이며, 그가 바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나오는 “금행(金幸, *황금의 칸)”임을 밝힌다. “황금항아리”는 칭기스 칸의 부인 부르테 우진(Bu'te Kujin)의 가계로 <집사>에 기록된 콩그라트(Qongrat) 종족, 또 원(元)나라 제2황후들의 가계인 예키라스(Yikiras) 종족, 그리고 칭기스 칸의 직계 선조 가문인 코를라스(Korulas) 종족 등 콩그라트 주요 3지파의 공통선조이다.
또 한 가지, 우리 일부 학자들은 금나라와 청나라 황실이 신라왕족 김씨(金氏)의 후손이라고 잘못 보아왔다. 이와는 달리, <지봉유설(芝峰類說, 1614년)>은 “후금(後金)”, 곧 청(淸)나라의 태조인 아이신교로누르하치(愛新覺羅努爾哈赤建)의 가문이 “전조(前朝)”, 곧 우리 고려(高麗)의 “왕씨(王氏)의 후손(裔)”이라고 했다. 신라 김씨가 아니라 고려 왕건의 후손이 청나라 황실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마침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명으로 지은 《만주원류고, 1778년》에서 청황실은 스스로가 발해 말갈의 대씨(大氏)와 금나라 왕가 “왕씨(王氏)”인 완안씨(完顔氏)의 후손이라고 자처한다. 저자에 따르면, 두 기록은 결국 같은 말이라는 이야기이다. 결국 저자는 “고려(高麗) 공비(碽妃)의 아들 영락(永樂) 황제의 명(明)나라를 빼더라도,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는 놀랍게도 고려(高麗), 금(金), 원(元), 청(淸)나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당(唐), 송(宋) 이래 이 두 왕조를 제외하고 지난 1000년간의 이른바 “중국왕조”들 모두가 우리 “조선민족의 왕조들”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실감나게 하는 연구결과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2004년의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충격적 사건 이래, 우리 정부는 국가적 정책으로 엄청난 재원을 동원하여, 수백 명의 직원과 연구원을 채용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기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처해 왔다.
그러나 그 연구결과는 대개 고구려 발해가 중원의 역사적 왕조와는 별개의 독립된 국가라는 정도의 외곽만 두드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한 외로운 연구가의 분투로 이를 둘러싼 한판 승부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오히려 이제 “역(逆)동북공정” 또는 “대륙공정”이라는 열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여튼 역사의 진실게임의 결과는 이제 명백해 보인다.
끝으로 저자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통해 오늘날 형체도 없는 “코리안 웨이브(Korean Waves)”를 자랑삼아 떠들면서도 방향 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나침반 없이 우왕좌왕하는 우리가 잊어버린 우리 역사의 진실을 다시 찾고, 이를 돌아봄으로써 장차 세계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에 관해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도록 우리에게 촉구한다. 과연 역사는 되풀이될 것인가?
출처;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79179322
첫댓글 테무진의 테는 철을 말하는 것이고
징기스 칸의 징도 철 입니다.
징은 철로 만듭니다. ㅋㅋㅋ
그 부분은 좀 그렇습니다.
대씨가 맞다 생각합니다.
징기스칸
징기즈칸
칭기스칸
칭기즈칸
위의 네 개 중에서
어느 것이 맞을까요?
@알타이 진기스칸도 있습니다.
다 같은 음가 이므로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찡, 칭, 징.
찐, 친, 진.
즈칸, 스칸 모두 같습니다.
@섬이 많은 곳 네~~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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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겨레의 역사는 고대사와 중세사 모두 다시 기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http://cafe.daum.net/sisa-1/f8lD/766
29개 언어 구사하는 전원철 변호사, “칭기즈 칸의 조상은 고주몽
http://cafe.daum.net/sisa-1/f8lD/768
칭기스 칸, 발해 왕가의 후손임을 잊지 않다
http://cafe.daum.net/sisa-1/f8lD/769
칭기스 칸의 ‘세계정복’은 ‘신의 징벌 전(戰)
http://cafe.daum.net/sisa-1/f8lD/770
금행이 신라인이라는 독자들의 오해에 대한 답변
감사합니다.
@무지개678
징기스칸과 동시데인 고구려 후손인 훈족의 아틸라왕은 유럽의 역사를 재편.
로마를 굴복시키고 조공을 받음.
이탈리아의 유래가 아틸라라는 말도 있지요.
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훈고리)..프랑스 등 유럽에 훈족의 후손이 많은 모양입니다.
드라큐라는 아틸라를 뜻한다고 하네요.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이죠.
이 종족들이 고구려와 많이 다투다가 북위를 점령하면서 선비족들이 수나라를 세우죠.
수나라가 고구려를 기어이 정복하려고 한 것은 만주에 에서 자웅을 겨루다가
수나라로 득세하면서죠.
결국 그 수나라의 선비족이 다시 당나라를 세우면서 고구려를 평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비족은 북방민족으로 왕통을 세운자들이 단군의 후예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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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까지 밀렸나요?
첨 듣는 이야기예요.?
무쿠리
고쿠리는 무슨 말씀이온지요?
그리고
철천지 원수가 사랑 그 자체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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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넓혀 보시길 앙망하나이다.^^
배달 겨레라는 커다란 고목에 얼마나 많은 가지가 생겨 나왔는지...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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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정신을 잃어버리고
불교에 경도된
나라와 그 백성에 대한
천벌이라고 봅니다만....^^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siddham.kr/4446
서양언어(인도-유럽어족)의 조상어(산스크리트어)는 한국어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