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일그러진, 일그러질 우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 작가의 한국현대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된 작품이다. 작품 속 주 배경은 자유당 정권의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때,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즈음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당시 독재의 한국 현대사를 국민학교 5학년 반으로 압축시킨 그림을 그려냈다.
영화는 어른이된 주인공 한병태가 자신의 5학년 때를 회상하며 시작한다. 한병태는 5학년 해에 지방으로 좌천된 아버지를 따라 자랑스러운 서울 학교를 뒤로 하고 시골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다. 병태가 보기에 시골 학교의 반은 이상했다. 학급의 급장이었던 엄석대가 아무리 보아도 부조리 했던 것이다. 엄석대의 역할은 거진 선생님의 역할과 맞먹었다. 소란 피우는 아이들을 벌하고 청소구역 배정하고 아이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는 등 선생님이 해야할 일들을 엄석대가 하고 있었다. 엄석대는 선생님과 맞먹는 권력으로 반 위에 군림해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엄석대를 옹호하는 듯 보였고 과일을 바치거나 물을 떠다주는 등 아부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선생님들 또한 엄석대를 바람직하고 통솔력있는 급장으로 우대했다. 그 누구도 부조리함을 깨닫지 못했다.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이를 본 한병태는 엄석대를 꺾어보려 시도한다. 공부로 꺾으려 했으나 엄석대는 항상 전교 일등이었다. 엄석대의 잘못된 행동을 선생님께 말해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고자질쟁이가 되었다. 결국 병태는 엄석대의 권력에 굴종한다. 엄석대에게 잘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엄석대의 아래로 들어간다. 엄석대가 준 권력의 맛은 달콤했다.
그 후 6학년이 되고 새로운 단임선생님이 등장하며 이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된다. 새 단임 김선생님은 진실과 자유를 토대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김선생님은 담임이 되자마자 학급의 부조리를 알아챈다. 엄석대는 그동안 다른 아이들과 시험지를 바꿔치기 하며 전교 일등을 했었고 체육부장을 비롯해 자신보다 높은 학년까지 자신의 아래에 두어 나쁜 일들을 시켜왔다. 이를 알아챈 김선생님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엄석대를 체벌한다. 그리곤 아이들에게 엄석대가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들을 모두 말하라고 했다. 한 둘씩 말하기 시작하더니 아이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껴 후에는 욕설까지 섞어가며 엄석대를 욕했다. 한병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엄석대는 다신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에 갈수록 더욱 충격이었다. 특히나 엄석대의 체벌에 돌변하는 아이들은 더 큰 부조리로 보였다. 뒤바뀐 판세에서 아이들은 공공의 적을 만났다는 듯이 모두 욕하기 바빴다. 그 순간 모두가 일그러짐을 느낀다. 그 가운데 영팔이라는 아이가 울분에 찬채 한마디를 토해낸다. “니네들도 나빠!”
평소 지적 장애가 있는 듯해 무시 당하던 영팔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는 어른이 된 한병태가 5학년이었을 때 단임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학급 아이들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누구는 택시기사가, 누구는 농부가, 누구는 졸부가 되어있었다. 그 장면에선 또다시 돈이라는 권력 앞에서 일그러지는 사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사회로 나온 뒤 다시 만난 아이들이었지만 사회는 그저 그시절 5학년 학급의 확장판일 뿐이다.
가장 반전인 것은 김선생님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채 장례식장에 온 김선생은 제자들에겐 대충 대하고 높은 사람들에게는 굽신거리는 행동을 보여준다. 이를 본 아이들도 “변해도 너무 변했어. 출세가 뭔지…“라고 이야기한다. 당시 진실과 자유를 아이들에게 가리키고 민주주의를 외치던 선생님마저 변화했다는 사실이 실망을 자아낸다.
엄석대는 커다란 화환만을 보내왔다. 이를 본 한병태는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권력을 잡고 다시금 일그러진 영웅이 되어있을 엄석대를 말이다.
인간이 너무나 얄팍하다. 이젠 모르겠다. 딱히 선한 사람도, 딱히 악한 사람도 안보인다. 선하다가도 악하고 악하다가도 선하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우리가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실망스럽다. 우리는 언제든 일그러진 영웅이 될 수 있다.
기억하자, 우리는 언제든 일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