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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경계능선을 마침내 다 넘다!
I.
2월의 첫 토요일, 나는 서울과 부천을 가르는 서울의 경계능선을 걷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캡8기 동기들과 함께 대관령 옛길을 걷고 있어야 하는데, 다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대관령 옛길을 걷겠다는 동기들이 별로 없으니 애써 세웠던 계획은 좌절될 수밖에... 괜히 버스 예약금만 날렸다. 하여 모처럼 방콕(방에 콕콕)만 하고 있을까 하다가 이 기회에 내가 미처 걷지 못한 서울의 경계 능선을 마저 밟자고 길을 나선 것이다.
다시 시계 바늘을 지하철역을 나서던 때로 돌리자. 나는 한걸음씩 우장산역 계단을 밟고 올라 지상으로 나온다. 우장산이 곁에 있어 우장산역이다.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에 세 번째 기우제를 드리러 올라가는 날에는 비가 오기에 이 날 산에 오를 때에는 비옷(雨裝)을 준비해야 한다 하여 우장산이다. 우장산이 바로 길 건너편에 보이나, 이미 나는 진작 그 산을 올랐기에 이번에는 반대편 수명산을 오르려 한다.
수명산은 서울의 경계능선은 아니고 서울시 강서구와 양천구의 경계능선이나 저 앞의 서울시 경계능선인 능골산으로 가기 위해 여기 수명산부터 오르련다. 수명산 들머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셔본다. 서울의 산은 주택들이 둘러싸서 산을 보호(?)하고 있기에 그냥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자 산으로 올라타지 못할 경우가 많다.
그래도 그동안 경험상 산 밑의 아파트 단지의 경우에는 대개의 경우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산으로 길을 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번에도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단지 뒤로 가니 산길이 있다. 역시... 12:50경 그 길을 따라 오른다. 그런데 어? 길은 오르다말고 다시 돌아내려가네! 이런! 길 위로 빤히 수명산이 보이기는 하나, 울타리가 둘러싸여 있다. 예전에도 이런 울타리 타고 넘어간 기억이 있기에 이번에도 그럴까 하다, 지나다니는 아파트 주민들 눈초리가 의식되어 다시 아파트를 물러나오기로 한다. 산을 따라 계속 돌다 겨우 들머리를 찾아 오른다.
1:13경 주택가 야산이라 정상은 금방 나타나는구나. 수명산은 예부터 이 동리 사람들이 이 산에서 동제(洞祭)를 지내면서 수명장수를 빌었다 하여 수명산(壽命山)이다. 안내문을 보니 수양대군 때문에 이 산이 한 번 울었단다. 무슨 말인고 하니 수양대군이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말을 타고 통진 쪽으로 다녀오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이 산 근처 발산동 광명리에서 하루를 쉬게 되었단다. 수양대군은 이곳에서 하룻밤 쉬면서 이곳 사람들이 어른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모습에 감화를 받아, 도성으로 돌아가자 이곳 마을사람들의 효성을 축하하는 경문(慶門)을 세워주었단다. 그러자 수명산이 기뻐서 울었다는 것. 그으래? 그렇게 효성을 알아보는 수양대군도 권력 앞에선 아버지 세종의 유지도 무시하고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구나.
수명산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밥 주발을 엎어 놓은 모양이다. 하여 발산(鉢山)이라고도 한다. ‘외발산동’, ‘내발산동’이 바로 이 ‘발산’에서 유래된 것이지. 수명산에 올라 남쪽으로 능골산을 향하여 전진하려는데 군부대가 가로막는다. 바로 옆이 김포공항이라 군부대가 있는 것이겠지. 그러고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김포공항의 활주로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비행기를 받기 위해 쭉 내달리고 있다. 할 수 없이 군부대 담을 따라 아까 헤매던 반대쪽으로 내려가려 한다.
가만있자... 지금 군부대가 수명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아까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내가 무리하게 울타리를 넘어 수명산으로 오르려고 하였다면... 아이쿠! 나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군부대 침입자로 체포될 뻔하였다. 후유~ 가슴을 쓰다듬으며 밑으로 내려오니 예수님이 성당 지붕 위에서 팔을 벌리시고 어서 오라 빙그레 웃으신다.
골목길을 벗어나오니 큰 길은 남부순환로. 길을 따라 가면서 보니 수명산은 남부순환로에 의해 두 동강이 나있고, 군부대는 잘려나간 양쪽 수명산을 다 점령하고 있다. 군부대 입구에는 ‘天下第一’이라고 써놓은 위에 독수리가 한껏 날개를 펴고 지금이라도 날아오르려고 한다.
조금 더 전진하니 4거리가 나온다. 가만있자. 여기가... 그렇구나! 내가 부천의 부모님 댁에 갈 때 바로 이 4거리를 오가지 않았던가? 차로 오가던 거리를 나는 지금 걸어서 횡단하는구나. 계속 전진하다보니 오른편에 서울금융고등학교가 있다. 금융고등학교? 금융고등학교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네. 옛날 상업고등학교가 이름을 이리저리 바꾸다보니 금융고등학교라는 이름도 생겨났구나. 금융고등학교라면 졸업생들이 금융권으로 많이 갈 것 같은데, 그렇다면 금융고가 옛날 상고에 제일 가까운 것 아닐까?
신월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편으로 튼다. 촘촘한 주택들 뒤로 이제 내가 가야할 능골산이 보이누나. 이곳 역시 능골산 들머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에스오에스(SOS) 어린이마을이 있다. 이는 또 무슨 마을인가? 에스오에스 마을은 내 예상대로 친부모 밑에서 클 수 없는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이다. 그런데 단순한 국내조직이 아니라 전세계 132개국에 에스오에스 어린이마을이 있단다.
한국 에스오에스마을은 1960년 하 마리아 여사가 20명의 구두닦이, 넝마주이 소년들을 모아 함께 생활함으로서 출발하였다는군. 그리고 하 마리아 여사가 1962년 국제 에스오에스 어린이마을 창시자인 헤르만 그마이너씨에게 제안하여 국내에도 마을을 창설하게 되었는데, 하 마리아 여사는 우리나라 쌀 한말을 오스트리아에 들고 가 ‘쌀 한 톨 캠페인’을 벌여 그 기금으로 먼저 대구에 에스오에스 마을을 설립하였단다. 에스오에스 어린이마을이라... 오늘 또 새로운 단체 하나 알게 되었다. 답사의 즐거움이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덤으로 하나 더 알게 되는 것에도 있지.
이제 드디어 서울시 양천구와 부천시 오정구의 경계를 이루는 능골산을 오르는데, 김포공항에 내리려는 여객기가 바로 머리 위로 바싹 붙어 내려가고 있다. 당연히 바퀴는 착륙준비를 하고 있고, 그렇게 밑으로 내린 바퀴의 줄무늬까지 내 눈에 들어오는 듯 하다. 머리 들어 부쩍 커진 비행기를 보다 다시 머리를 내리니 앞에는 옛 선조의 묘소다. 누구의 묘소일까? 다가가보니 인조 때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낸 변삼근의 묘소이다. 부천시 오정동도 바로 이 변삼근의 아호에서 나왔다고 하지.
2:17경 능골산 위에 오르니 이곳은 동네 사람들 운동기구들이 차지하고 있다. 강장골산이라고도 하는 능골산은 능(陵)이 있는 골짜기의 산이라는 뜻인데, 이 산에 세조 때 이시애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또 성종 때 여진족 침범도 격퇴하여 정2품까지 올라간 변종인(1433-1500)의 무덤이 있어서 생겨난 산 이름이란다. 원래 ‘陵’이란 명칭은 왕이나 왕비의 무덤에만 쓰는 것인데 신하의 무덤이 있는 곳에 이런 산 이름이 붙으면 잘못하면 불경죄로 큰일 날 텐데, 그래도 별일은 없었나보지? 그러고보니 수주삼거리 근처에 수주 변영로 선생의 동상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동네가 변씨들 집성촌이었구나.
주위를 돌아보니 좀 전에 머리 위를 지나가던 여객기가 지금 막 김포공항의 활주로에 발을 딛고 있고, 상공에선 또 하나의 비행기가 공항으로 내려가려 하고 있다. 국제항공의 대부분이 인천공항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이곳에는 끊임없이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있구나. 눈을 동북쪽으로 돌리니 저 건너편에 봉제산이 보인다. 재작년에 우장산에서 내려가 저 봉제산으로 올랐었다.
능골산에서 계속 서울시 경계를 따라 전진하니 능선은 건너편 안산(증산)으로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하는데, 바로 앞에서 경인고속도로에 의해 능선은 잘려나갔다. 경계선상의 고속도로에는 서울시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크게 서 있다. 그런데 길 건너편 건물에는 사우나가 있는 모양인데 사우나의 이름이 낯이 익다.
허심천이라... 그렇지. 내가 80년대 부산에 근무할 때에 동래 온천장에 재일교포가 허심천이라는 온천장을 새로 열었었지. 허심천에서는 온천욕을 하고 가운을 입고 나오면 남녀가 같이 만나서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눌 수 있었지. 지금이야 모든 찜질방이 다 이런 식으로 영업을 하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지. 그 때 부부끼리 허심천에 갔을 때에 가운 속에는 아무 것도 안 입고 다른 부인들을 보려니 묘한 기분이 들던 것이 생각이 나는데, 그 허심천의 이름을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뜻밖이다.
능선을 이렇게 무참하게 잘라놓은 것이 안 되었는지, 고속도로 위로 다리도 놓여 있고, 차들도 다리 위로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나는 3년 전에 저 건너편의 서울시 경계 능선을 돌았기에,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몸을 서쪽으로 돌려 고강동 저 건너편의 장기말산의 선사유적공원으로 향한다. 선사유적공원은 공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곳이다. 단순히 청동기 유물만 발굴된 것이 아니다. 적석환구유구(積石環溝遺構)라는 발굴터가 흥미를 끈다. 가운데에는 돌을 쌓았고 제기형(祭器形) 토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제사나 의례가 이루어진 곳으로 보이는데, 그 둘레에는 지름 30m 내외로 고리 모양으로 도랑이 형성되어 있었단다. 신성한 제례지를 도랑으로 둘러 보호하려고 하였던 것일까?
이런 신성한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옆에는 천제지단(天齊之壇)이 세워져 있고, 머리 위로는 나무 위에 많은 오리 조각들이 올려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오리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사자 역할을 한다고 믿었지. 그래서 그 옛날 신성한 땅 소도 입구에 세워놓는다는 오리들을 여기에도 이렇게 많이 올려놓은 것이겠다.
설명을 보니 마을 중심부에 이러한 적석환구유구가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는데, 그래서 예전부터 음력 7월 초하루에는 이곳에서 부락민의 안녕과 마을 수호를 기원하는 제례를 올렸단다. 설명 말미에는 이런 설명을 쓴 이가 이름은 밝히지 않고 단지 원주민 변씨라고만 새겨놓았다. 역시 이곳 변씨 일가중에 한분일 텐데 이름도 밝히지 않고 겸손하신 분이구나.
이곳에 이런 선사 유적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95년 홍수 때에 산의 토사가 흘러내려 유물들이 드러나면서 2005년까지 7차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단다. 그리하여 돌칼, 돌화살촉, 토기 등의 유물 외에 적석환구유구가 드러나고, 또 당시 이곳 마을사람들의 주거지도 발굴되었단다. 그래서 부천시에서는 이곳을 앞으로 역사테마공원으로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구하고.
이곳도 경인고속도로 위로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다리가 놓여있다. 예전에 내가 저 건너편까지 왔을 때에는 이곳으로 건너올 수가 없어서 하릴 없이 이쪽만 쳐다보다 돌아갔었는데, 그 사이 부천시가 신경을 많이 썼구나. 다리를 건너 나무 계단을 오르는데, 안내판에는 부천둘레길중 향토유적숲길 가는길이라고 쓰여 있다. 헛헛! 요즈음 둘레길이 유행하다보니 부천시에서도 이곳을 둘레길로 개발하였구나. 그래서 이렇게 다리까지 놓아준 것이고...
계단 위로 오르니 정자가 놓여있고 정자 앞으로는 많은 나무 장승들이 줄지어 서서 경인고속도로를 내려다보고 있다. 역시 우리나라 장승은 해학이 있어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도깨비 역시 험상궂은 중국과 일본의 도깨비와는 달리 무언가 친근하고 따스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호랑이 그림 역시 그렇고... 이게 우리의 멋이다. 사실은 무서운 대상일 수도 있는 것을 우리네 사람들은 유머와 해학으로 표현하고 있는, 바로 우리만의 멋! 옆에는 돌탑도 쌓아놓았다.
앞에 고속도로가 지나가니 김포공항이 보다 깨끗하게 눈에 들어오고, 공항 뒤로 역시 우장산 오기 전에 제일 먼저 들렀던 개화산도 잘 보인다. 그뿐인가? 그 뒤로 한강 건너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 그 오른편으로는 안산과 인왕산 너머 북한산까지도 잘 보이누나. 그리고 왼쪽 저편으로 우뚝 선 계양산도 또렷이 보인다. 그 왼편으로는 계양산까지 달려온 한남정맥의 능선들도 모습을 또렷이 하는데, 계양산 오른편으로는 한남정맥의 능선들은 김포평야의 넓은 품에 푹 빠지면서 겨우 지표면 위로 윤곽만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는 앞의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책도 보라며 ‘숲속의 작은 책방’이라는 서가도 세워져 있다. 책 목록을 보니 ‘사색기행’, ‘결혼과 연애 사이’ 등 총 28권의 책이 이곳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안은 텅텅 비어있다. 이런! 이곳의 책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쯧! 쯧! 책값이 얼마나 된다고...
위로 오르니 청룡산(장안사산)의 정상. 이곳에서도 역시 선사 유적이 발굴되었다. 그러니까 그 옛날 선사시대 선조들은 이곳과 저 건너편 장기말산을 능선을 따라 왔다갔다 하였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길을 낸답시고 싹둑 능선을 잘라버렸구나. 여기서 능선은 능골산에서 바로 건너오는 안산으로 연결되어 와룡산(지양산), 까치산으로 이어지지. 3년 전에 사촌동생 형식이와 저 능선을 따라 부천의 원미산까지 산행을 하던 것이 바로 얼마 전 같이 느껴지는구나.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나는 여기서 바로 밑의 작동으로 내려간다. 작동의 ‘작’은 까치 ‘鵲’이다. 예전에는 이곳을 까치울이라고 불렀는데, 어떤 먹물이 까치울이라는 예쁜 우리말 땅이름을 작동(鵲洞)으로 바꿔놓았다. 에라이! 무식한 놈들 같으니... 작동은 이곳과 저 건너편 능선 사이로 들어온 골짜기에 들어선 아늑한 마을이다. 이 아늑한 마을에 내 아버님, 어머님이 사시고 계신다. 3:53경 청룡산을 내려와 아버님댁으로 향한다. 이제 내가 밟아야 할 서울시 경계 능선은 구로구 항동과 부천시 소사구의 경계를 이루는 범박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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