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보수적인 측면과 진보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화 예술분야에서도 그렇다. 보혁 갈등은 단순히 정치적인 용어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측면에 바로 이 보혁 다시말해 보수와 혁신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과 대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보수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흐름을 가급적 바꾸지 않고 이어가려는 성향이며 진보적이란 것은 뭔가 개혁적이고 변화의 물결을 선호하는 입장일 가능성이 높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기존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편한 것이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키는 것은 정말 힘든 과정을 수반한다. 또한 엄청난 저항에 부딪히기도 한다. 마치 미치거나 어리석은 생각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것이 새로움에 대한 대체적인 반응이다. 이런 상황은 모든 사안에 그대로 적용된다.
미술 사조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조류가 바로 인상주의 화풍이다. 하지만 이 화풍은 등장하자 마자 그야말로 엄청난 비판과 놀림을 받아야만 했다. 기본도 안된 저질 그림이라며 쓰레기같은 물건이니 태어나서는 안되는 그림이니라는 말까지 들었다. 현대인이 보면 그렇게 좋아보이는 작품이요 그 가격만 해도 수백 수천 억을 호가하는 작품이지만 당대에는 휴지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한 시대을 풍미하던 문화나 관습을 조금 이라도 바꾸는 것은 엄청난 저항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세시대 미술에서 르네상스 미술로 넘어오면서도 엄청난 변화와 혼돈을 겪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바로크 미술로 넘어가면서도 마찬가지다. 바로크라는 이름자체도 상당히 부정적인 면을 담고 있다. 보기 흉한 진주라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주류의 시각에서는 기분 나쁘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 등장한 것이 로코코 미술이다. 당시 대단한 지배력을 가졌던 귀족들이 자신들만의 미술을 갖고 싶어 추진한 것이 로코코미술이다. 하지만 이 로코코는 프랑스를 시작으로한 혁명으로 인해 붕괴된다. 노동자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중산층인 부루주아 층의 힘이 강성해진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신고전주의 미술이다. 신고전주의 미술은 르네상스의 화풍을 이어받는 것이어서 저항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새로운 화풍으로 향하는 예술의 도도한 흐름을 신고전주의가 막지 못했다. 프랑스 혁명의 흐름속에 문학과 예술도 그자리에서 머물 수가 없었다. 프랑스 혁명에 직접적인 관여는 하지 않았지만 당시 젊은 화가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가득차 넘쳤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인상주의 화풍이다.
앞서 언급한 르네상스나 바로크 로코코 미술때에는 언론이라는 것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활자가 발명되기 전이었고 발명되었지만 널리 활용되지 못했던 시절이니 무슨 언론과 비평이라는 것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인상주의 화풍이 태동할 무렵에는 언론도 비평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언론은 대부분 기득권 세력이었으며 당연히 보수적인 색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새로운 조류에 대해 더욱 날카롭고 원색적인 비판이 가해졌다. 감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악담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언론의 영향으로 일반 관객들도 새로운 화풍에 대해 악감을 가지게 됐다. 새로움에 대한 저항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비슷한 것이었다. 일단 새로운 것 그리고 처음 보는 것에 대한 익숙하지 못함이 새로운 풍조나 흐름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런 혹독한 시련이 한동안 계속됐지만 결국 새로운 물결을 막지는 못했다. 아니 그 도도한 흐름속에 옛것들은 이제 뒤로 밀려나는 그런 수순을 겪게 된다. 세계 미술계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인상주의로 인해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주의 그리고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의 화폭 흐름이 탄생한 것이나 다르지 않다.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것은 실로 엄청난 위험과 도전을 수반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기존의 형태와 조금 틀린 모습과 행동에 가해지는 몸짓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기득권의 세력들의 경우 더욱 그런 양상을 보인다. 자신들의 세계가 침해당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정치판은 물론이고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모든 면에서 그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새로움은 기존의 양상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습관화된 마스크를 벗는 것도 쉽지않고 계절이 바뀌고 옷을 갈아 입는 그 단순한 것도 사실 조금 힘든 면이 있는데 기존 질서와 사고방식에서 차이나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사고방식이 그래서 등장하기가 힘든 것이다. 자칫 미리 등장해 숱한 지적과 손가락질을 받아 조기에 꺾이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지금 활발하게 개발되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벌써 인공지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층이 많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30%에 머문다고 한다. 인공지능을 유용하게 이용하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이끌 도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발전을 방해하고 인간의 역할을 빼앗아갈 경쟁자로 판단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다시말하지만 새로운 것, 새로운 풍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가 참으로 힘든 세상이 아닌가 생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3년 3월 1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