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맹인의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나에게는 무슨 뜻일까?" 신명기 27장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새삼 "은혜"에 대한 말씀을 기도 가운데 해 주셨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어느 찬양의 가사가 저절로 기억이 났다.
"은혜" 아닌 것이 과연 단 하나라도 있을까?
요즘 나는 부쩍 내 "나이"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다. 나는 가끔 아래와 같은 말을 내 설교시간에 한다.
"내 나이 59세인데 나는 얼릉 60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60이 되고 싶은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세월 지나 가고 보니 40에 몰랐던 하나님을 내 나이 50에 알게 된 하나님이 있습니다.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제 60이 되면 이렇게 말하게 되겠지요? 50에 몰랐던 하나님 60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면 저는 얼른 70이 되고 싶다고 말할것이고 70이 되면 60에 몰랐던 하나님을 70에는 이렇게 또 알게 되었네요!" 라는 고백을 할 것 같아서 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일까? 나 역시 육체적으로 노화 현상이 나타나는 "나이 들어감"이 반갑지는 않다. 그러나 노화 현상을 보게 되는 외모보다 더 반갑고 감사한 일은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날로 날로 더 새로와 진다는 것이다. 이 일이 때로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나는 이전에는 전도서를 읽을 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이 말씀을 대하면서... 뭐가 도대체 이렇게 헛되다는 것일까? 열심히 잘 살면 나중에라도 이런 고백은 하지 않겠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요즘은 "무엇이 과연 헛된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서 어제 아침 기도 시간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요즘 기도 시간에 "주님! 제 나이에 맞는 "성숙함"이 필요한 것 같애요! 저로 하여금 제 나이에 맞는 성숙한 깨달음들을 허락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드리는데 어제 주님이 "헛된 것과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생각을 주셨다.
"모든 것이 은혜인데 내가 살면서 그것이 나의 잘함이던지 못함이던지간에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한 모든 것이 다 "헛된 것" 이었구나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된다.
내가 잘 한 것이 있다고 하자! 나도 기뻤고 주위 사람들도 다 기뻐해 주었다고 하자! 그런데 내가 그것이 하나님이 해 주신 "은혜"인 줄 모르고 감사치 않았다면 내가 잘한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헛된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 적용이 조금 더 나아가게 된다면 "은혜"인 줄 알았던 것은 모두 감사로 고백을 했을 터이니 아~~ 그러면 내가 감사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헛된 것"들이었구나까지 접목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한 삶의 모든 영역이 결국은 "허무하고 헛된 것"들이라고 하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어제 아침 기도 시간이 얼마나 "숙연" 해 지던지....
"은혜!! 은혜!! 모든 것이 은혜이구나!!" "은혜 아닌 것이 단 하나도 없구나!" 주어진 매일의 삶을 헛되게 살지 않으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매시간 잊지 않아야 하는구나!
신 명 기 27 장
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Cursed is anyone who leads the blind astray on the road.” Then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자" 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어제는 사역을 나가려고 막 준비하는데 문자 하나를 받았다.
그동안 아프셨던 분 같은데 이제 많이 나으셨다고 한다. 이제는 많이 나았다는 말이 감사했는데 많이 나으셨다는 말 다음에 주신 문자의 내용은 내가 섭섭했다는 것이다. 내가 당신이 좀 어떠냐고 물어보기를 기대했는데 내가 그런 문자를 보내 주지 않아서 많이 서운했다는 문자였다.
나는 얼른 사과의 말씀을 문자로 드렸다.
나는 이분이 누구인지 모른다. 내 묵상을 읽고 있는 분인지는 알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분이니 사실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분이다.
그런데 당신 아플 때 안부 묻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말을 듣고 사과의 글을 보내면서 아.. 이 분은 나에게 서운한 마음을 문자로 보내실 수 있는 분이었지만 많은 다른 분들이 나에게 섭섭한 마음들이 있는데 말을 못하신 분들도 많이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일일이 다 안부(?)를 여쭐 수 없는 많은 사람들..
이 분이 이렇게 당신이 섭섭하다고 말을 한다면
내 중보기도방에 약 1,000명이 있는데 그 분들 중에는 아파서 당신의 아픈 상황을 기도 부탁으로 올리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 분들의 기도를 내가 꼼꼼히 다 해 드리지는 못한다. 내가 하루 종일 "중보기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실 "중보기도방"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내가 선교사인지라 내가 중보기도가 필요하다고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만들어 놓은 카톡 단체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방에 초대되고 그 분들의 기도 제목이 많아서 이제는 그 방이 나를 위한 중보기도방이기 보다는 기도가 필요한 모든 분들! 그 분들이 누구라 하더라도 그 방에 초대 되면 기도를 받을 수 있고 또한 다른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해 주는 방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방의 기도 용사들의 기도로 인하여 많은 기적들이 체험 되어지고 있기도 한 방인 것이다.
그러나 그 방에 기도 제목이 올라오는 분들의 95%? 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이다.
그분들이 아프다 할 때 내가 그분들을 모른다 해도 좀 어떠시냐고?? 많이 나아지셨냐고? 이렇게 물어 보면 이분들이 더 큰 힘과 용기와 격려가 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내가 당신 아픈 것에 대하여 안부를 묻지 않아 섭섭했다는 어느 분의 문자를 읽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 묵상 구절은 맹인에 대한 것이다. 영어로는 이 구절이 이렇게 쓰여 있다.
“Cursed is anyone who leads the blind astray on the road.”
한국말로 번역하면 "맹인을 길에서 잘 못 인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라!" 이렇게 된다.
맹인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른다. 지팡이를 보통 가지고 길을 걷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맹인이 길을 걷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맹인이 어떤 장애물을 피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인도 해 주기도 하고 내가 그 맹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얼릉 내 몸을 옆으로 피해서 맹인이 막힘없이 걸림 없이 길을 똑바로 가도록 배려를 해 주고자 할 것이다.
우리 삶에 "맹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맹인에게 "왜 당신은 맹인이냐"고 ? 왜 당신이 맹인이라서 내가 당신 가는 길에 나 때문에 걸려서 넘어질까 봐 왜 내가 피해야 하냐고? 이렇게 맹인을 탓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가능한 도와 줄 수 있다면 그 맹인이 가는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내가 옆으로 비켜 서던지.. 가는 길을 잘 가시라고 신호등이 빨간 불이라면 내가 그 맹인에게 신호등이 빨간 불이니 잠깐 기다리시라고.. 초록색으로 바뀌면 아마 나는 길 건너까지는 적어도 그 맹인의 손을 잡고 건너 주는 배려는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나는 많은 분들이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 주시기도 하지만
섭섭하다.. 그런 인사말도 적잖이 듣는 편이다. 거의 다 내가 모르는 분들이기도 하고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은 사실은 섭섭해도 내 마음이 어려울 까봐 나에게 그분들의 "섭섭한"마음을 말 안 하는 분들이 있을 것도 같다.
나 한국 오면 나랑 친한 내 친구들이 있다. 아무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ㅎㅎㅎ 내가 얼마나 남들 도와 주느라 바쁜지 알아주기 때문이다.
그 친구 중 하나는 "너! 항상 바쁘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으니... 나중에 너 나이 들어 아무도 너를 찾지 않는 때 있으면 연락해라. 나 이 자리 항상 있으니..." 이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다.
나를 섭섭히 여기는 사람들이 "맹인"들의 배역을 맡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나로 인하여 어떠한 이들의 감정이 건강하고 기쁘고 감사하기 보다는 그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서
섭섭함, 미움, 원망 이런 길에서 헤매이게 만드는 요인들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만약에 나 때문에 내가 그들이 갖지 않기 원하는 감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 감지 된다면
거기에 대한 내 반응은 "억울하다! 왜 내 탓을 하지?" 이렇게 반응하는 것 보다는
그 상대편이 "맹인"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맹인"처럼 내 마음을 잘 모를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내가 그 사람이 가는 길에 거침이 되지 않도록 얼릉 피한다거나 그 사람을 향하여 인내와 이해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 묵상 구절을 읽으면서 이러한 "삶의 적용"을 해 보게 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더라도 "감사한 존재"가 되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심"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는 제 인생에 저의 "안부"를 하루도 빠짐없이 물어 봐 주시고 저를 염려해 주심에 대한 표현을 잊지 않아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감사하게 됩니다!
24시간 동안 단 1초도 저를 섭섭하게 하신 적이 없는 하나님이라 감사 드립니다.
항상 저의 감정의 길에서 "길 잃음" 없이 저를 잘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이제 곧 "목회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게 된다는 두 청년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하는 길에 대하여 여러 질문이 있어서 만나자고 하는 것 같은데 꼭 들려 주어야 하는 말들을 잘 들려 주고 잘 들어 주어야 하는 말들을 잘 들어 주는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