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 이홍섭
아픈 몸 이끌고 찾아간 시골 약국 담벼락 아래 호박이 실하다
이 세상을 다 쌈 싸 먹어도 남을 것 같은 너른 호박잎이며
이 세상을 다 밝히고도 남을 것 같은 노란 호박꽃처럼 살지 못한 삶이 비루하다
호박처럼 펑퍼짐하게 살지 못한 삶이 애틋하다
어머니가 꾼 태몽이 들판에서 누런 호박 하나를 딴 것이라는데
내 불효의 넝쿨은 사방팔방으로 뻗어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ㅡ격월간 《현대시학》(2024,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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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푸른 용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설날을 가족과 함께 하려고 북적이는 길 위에서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머물다가 막내가 집에 왔습니다
운전하는 며느리도 멀미를 하고, 큰 손녀도 큰 고생을 했다네요
아주 늦은 점심을 먹고나자 손녀 둘은 생기를 되찾아 이 방 저 방 나비되어 날아다녔습니다
이번 설부터는 차례상을 조금 더 간단하게 차릴 것이니 며느리더러 쉬라고 했습니다
막내가 다니던 회사도 오너가 바뀐다 하고, 손녀들도 부쩍 자라 말귀가 틔였네요
새해에는 가족 모두가 펑퍼짐하게 넝쿨을 벋어나갈 겁니다
큰 손녀는 어린이집 졸업식에서 송사를 읽는다고 눈빛을 반짝이니, 응원차 올라갈 생각입니다
우리집 열 셋 가족 중에 용띠가 무려 다섯이니 올 한 해는 뭔가 빛이 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