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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95
ㅡ 삼국통일의 시대 17
('김유신'과 '김춘추' 6 - 삼국통일 영웅 김유신 2)
젋은 화랑에서 정식 군인이 된 '김유신'은 무인으로서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세우면서 스스로 입지를 다져 갔다. 그러나 김유신은 비주류 진골로서 크게 주목 받지는 못 한다. 김유신도 생각보다 '대기만성형'이었다.
김유신 나이 34세가 되어서야 629년(진평왕 51)에 고구려와 전투에서 '낭비성'을 함락하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당시 김유신은 전투에서 신라가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홀로 적진에 세 번 이나 들어가 적장 몇을 베고 그 목이나 적의 깃대를 가지고 돌아 왔다. 이에 신라군인들 사기가 올라 가 '낭비성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이 이야기가 신라백성과 정계에 전해지면서 이때부터 김유신이 크게 주목 받게 된 것이었다.
이 김유신 일화는 후에 백제와 '황산벌 전투'에서 '관창'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김유신은 34살, 조금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630년 경 김유신이 자신 여동생 '문희'를 '김춘추'에게 시집 보낸 이야기는 김춘추 편에서 자세히 정리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후에는 김춘추 딸을 김유신에게 시집을 보내 김춘추가 김유신 장인이 되기도 한다.
신라는 왕족뿐만 아니라 귀족들 까지도 이 복잡한 근친혼을 마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처럼 혼맥으로 이어진 시기부터 <김유신과 김춘추>는 서로를 지켜주는 아주 돈독한 사이가 된다.
권력가들인 이 둘 사이는 우리 역사 속에서 보기드물게 끈끈한 관계로 이어지며 김춘추가 죽을 때 까지 계속되었다. 김춘추가 죽고나서도 김유신은 김춘추 아들인 '문무왕'과도 좋은 관계로 계속 지속한다.
김유신이 군권을 완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왕을 넘어서려 하지 않았다. 이 점 또한 김유신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중 하나이다
이처럼 끈끈한 인연과 의리로 <김유신과 김춘추>는 젋은시절 각자 비주류진골 출신이라는 신분 한계를 극복하고 서로 의기투합 해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의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642년 김춘추는 절박한 신라 상황을 타개하기위해 고구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위해 떠났다. 이 이야기도 김춘추편에서 자세히 정리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김춘추와 혼인결속으로 힘을 얻은 김유신은 압량주 군주를 거쳐, 644년(선덕여왕 13) 상장군이 되었다.
김유신은 계속되는 백제와 전투 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면서 전쟁영웅으로 거듭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일화는 김유신 그러한 면모를 부각시킨다.
[3월에 돌아와 왕궁에 복명(復命)하고 집에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백제 군병이 국경에 출둔(出屯)해 크게 군사를 들어 우리를 침범하려 한다는 급보가 또 들어왔다. 왕이 다시 유신에게 이르되, "공은 수고롭다고 생각지 말고 빨리 가서 적군이 이르기 전에 대비하라" 하므로, 유신은 또 집에 들어가지 않고 군사를 조련하고 병기를 수선한 후 서쪽을 향해 떠났다. 이때 그 집의 사람들이 모두 문 밖에 나와서 기다렸는데, 유신은 문 앞을 지나면서도 돌아다보지 않고 50보(步)쯤 가다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집에서 물을 가져오게 해 마시며 "우리 집 물이 아직도 예전 맛 그대로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군사들도 모두 말하기를 "대장군이 이렇게 하는데, 우리들이 어찌 골육(骨肉, 가족)을 떠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랴." 했다. 국경에 당도하자 백제 사람들은 우리 쪽의 병력 포진을 보고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물러갔다. 왕이 듣고 매우 기뻐하며 벼슬과 상을 주었다. -
ㅡ 삼국사기 권 41, 〈열전〉 권 1, 김유신 ㅡ
이처럼 김유신은 왕의 신임과 백성들의 존경까지 한몸에 받고 있었다. 수없는 전쟁이 그를 더욱 강한지도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647년(선덕여왕 16)에는 진골 출신 상대등인 '비담'과 '염종'이 함께 난을 일으켰다.
김유신은 관군을 이끌고 반란군과 맞서 싸웠다. 처음에는 다소 불리 하게 상황이 전개되었으나 곧바로 김유신 기지로 전세가 역전된다. 결국 김유신은 반란군을 제압하고 비담과 염종을 제거하는 데 성공 했다. 이 일로 김유신은 군부 최고 지위인 '대장군'에 오른다.
비담 난 중 '선덕여왕'이 후사없이 죽자 신라왕족 중 유일하게 남은 성골인 '진덕여왕'이 그 뒤를 이어 받았다.
그러나 신라의 실제적인 권력은 이미 '이찬'(신라의 17등급 중 두 번째에 해당되는 지위) 김춘추와 대장군 김유신에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648년(진덕여왕 2) 김춘추는 당나라와 외교동맹을 맺고 돌아 왔다.
이에 김유신은 백제에게 뺏긴 '대야성'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 지난 번 대야성을 백제에 빼앗기는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김춘추 딸과 사위 원수를 갚고자 함이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은 백제 장군 8명을 생포하고 1,000명에 이르는 백제군을 섬멸하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김유신은 백제 장군 8명을 적진에 묻혀 있는 김춘추사위 '김품석'과 딸 '고타소' 유골과 맞교환해 김춘추 한을 풀어 주었다. 또한 승세를 몰아 백제의 '악성'등 12성을 함락 시킨다. 그 공으로 김유신은 '이찬'과 '상주행군대총관'의 지위를 얻었다. 이어 '진례' 등 9성을 공격해 승리를 거뒀다. 이듬해에는 신라의 '석토성'등 7성을 침략한 백제군을 물리쳤다.
한편 654년(진덕여왕 8)에 진덕여왕마저 후사없이 죽자 김춘추가 왕위를 이었다. 신라 역사상 첫 번째 진골출신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여러신하들이 당시 상대등 이었던 '알천'에게 섭정을 요청 했다. 알천은 이를 거절하고, 이찬인 '김춘추'를 추천했다. "덕망이 두터워 실로 세상을 다스릴 영걸"이라는 것이 추천의 이유였다. 김춘추 역시 처음엔 사양하다가 마침내 수락했다.
기록에는 이처럼 알천이 왕위를 김춘추에게 양보한 아름답게 표현되어있으나 실상은 군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김유신 압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660년(태종무열왕 7), 상대등 자리에 앉은 김유신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당과함께 백제정벌에 나섰다.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당나라에 직접 찾아가 원병을 요청한 이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백제를 함께 공격하기로 한 것이었다.
태종무열왕은 태자 '김법민'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남천정'에 진을 쳤다. 그리고 태종무열왕 둘째아들 '김인문'이 당나라 대장군 '소정방'과 함께 이끌고 온 13만 대군과 '덕물도'에서 합류 했다.
이렇게 합쳐진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그 사이 김유신은 5만 정예군을 이끌고 사비성으로 가는 관문인 '황산벌'을 향해 돌격했다.
김유신 부대는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이 이끄는 '오천결사대'를 만나 고전했다.
그 유명한 <황산벌 전투>였다.
김유신은 자기가 34살 때 했던 것 처럼 어린화랑 '관창'을 희생양 으로 삼아 백제 마지막 전선인 황산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 했다. 관창이야기는 교과서에도 나올만큼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이니 생략한다.
이어 나당연합군과 합세한 김유신 부대는 사비성을 공격했다.
이에 사비성에 있던 백제 '의자왕' 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웅진성' 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 공격에 무너져 멸망하고 만다.
김유신은 그 공으로 각간보다도 높은 '대각간'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백제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백제 의자왕 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661년 태종무열왕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 대업을 목전에 두고 죽었다. 그래도 김춘추는 자기 딸과 사위 비참한 죽음에 대한 원수갚음은 제대로 하고 죽었다.
무열왕 뒤를 이어 태자 '김법민'이 왕위에 올라 '문무왕'이 되었다.
이때 고구려정벌에 나선 소정방이 신라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신라는 무열왕 '상' 중이었지만 당나라 군대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김유신은 군대를 이끌고 나갔으나 백제 저항군에 막혀 '평양성'까지 가 보지도 못했다.
김유신은 그 다음 해에도 또 한 차례 당나라 군대에 전달 할 군량 을 싣고 고구려로 향해 나섰다. 그런데 이때는 소정방이 군량만 받고 철수해 버린다.
이에 김유신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 왔다. 이때 김유신 나이는 68세 고령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것은 몇 년이 더 흐른 668년(문무왕 8)이었다.
당과 신라는 연개소문 아들들 내분을 이용해 공격해 기어코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이다.
평양성이 함락될 당시 김유신은 고령으로 서라벌에 머물러 있었야 했다.
고구려멸망도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들의 내분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김유신은 고구려멸망 후 삼국통일 기반을 닦은 공을 인정 받아 '대각간' 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신라 최초로 '태대각간'(太大角干)에 봉해졌다. 이 직을 받은 사람은 신라역사에서 김유신이 유일했다.
이제 김유신에게 남은 문제는 <당나라 속내>였다.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공략할 때부터 사비성을 점령한 후 내친 김에 신라까지 공격 하려고 계획했다.
당나라 대장군 소정방은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김유신에게 뇌물을 주어 회유하려 했다. 그러나 김유신은 당나라 이러한 뜻을 눈치채고 단호히 거절했다.
김유신은 더 나아가 신라백성 에게 백제 옷을 입혀 백제인인 척 하며 당나라를 먼저 공격하자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소정방은 신라를 치려는 계획을 거두고 돌아갔다.
당시 상황을 '김부식 삼국사기' 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라왕은 "당군이 우리를 위해 적을 멸했는데 도리어 싸움을 한다면 하늘이 우리를 돕겠는가?" 하니, 유신이 "개가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운 경우를 당해 스스로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는 허락하소서." 했다. 당인들이 우리 편의 대비가 있는 것을 정탐해 알고 백제왕과 신하 93명, 군사 2만 명을 노획해 9월 3일 사비에서 배를 띄워 돌아가고, 낭장 '유인원'등을 머물게 해 진영을 설치하고 수비하게 했다. 소정방이 돌아가 포로를 바치니, 천자가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해 이내 신라를 치지 않았는가?" 했다. 소정방이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는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과 같이 하니, 비록 나라는 작지만 도모할 수 없습니다." 했다.]
ㅡ 삼국사기》 권 42, 〈열전〉 권 2, 김유신 ㅡ
비록 당나라 도움을 받았으나 그들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려 했던 김유신과 신라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유신이 당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당과 전쟁을 선택한 것은 어쩜 삼국통일보다 더 잘한 일 이고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실제로 신라와 김유신은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같은 민족 이라는 명분으로 <고구려, 백제 부흥군>을 측면에서 지원 하며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노력 했다.
신라의 이러한 저항이 없었다면 백제와 고구려 옛 영토는 물론 신라영토도 지켜내기 힘 들었을 것이다.
당 입장에서도 내친김에 한반도를 다 점령하려 했다. 아마 당은 한반도에 한나라 시절 '한사군' 같은 당나라 직속령을 만들어 통치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처럼 김유신 일생은 커다란 전쟁으로 얼룩져 있었다.
김유신(595년~673년)은 신라의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로, 삼국 통일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신라의 군사적 기반을 강화하고, 나당연합을 이끌며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는 데 중요한 공을 세웠고, 또 나아가 '나당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승리를 했다.
김유신은 김춘추보다 8살이나 더 많았다. 나온 순서는 있었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김유신은 김춘추보다 15년 가까이 더 오래 살았다.
김유신은 673년(문무왕 13년)에 사망했다. 당시 김유신 나이는 79세로, 당시로서는 매우 장수한 편이었다.
김유신이 세상을 떠나자 문무왕은 그의 업적을 기려 국장을 치르고, 흥덕사에 장례를 지냈다. 또한, 그의 묘는 경주 서악동, 신라 왕족 과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아 그의 높은 지위를 보여준다.
김유신은 사후에 신라 '태대각간'
으로서 최고 관직에 올라 왕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특히, 김유신은 '흥무대왕'(興武大王)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이는 그의 업적과 위상을 기리기 위해 추존된 것이다.
이 왕호는 고려시대에 와서야 공식적으로 붙여진 것으로, 신라 시기에는 왕의 칭호를 받지 않았다. '고려태조왕건'이 삼국 통일 영웅 김유신을 기념하기 위해 왕 호칭을 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김유신은 사후에 우리 역사 속 <민족통일 상징적인 인물>로 오래 오래 기억되고 있다.
이어서 <백제멸망과 의자왕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