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센텀에 있는 알라딘중고서점에 들러 책 몇권을 샀다.
중고서점에 가면 신간은 아니더라도 한 번도 펴 보지 않은 새책 같은 것도 있는데 값은 새책에
비해 훨씬 싸다.
프론트에서 계산을 하고 나니 프레미엄으로 다이어리와 만연필을 할인가격에 드린다면서
한 번 보고 결정하시라고 했다. 내년 다이어리는 이미 구입하였으므로 필요가 없었고
만년필은 어떤가 싶어 살펴 보았더니 마치 8각형 연필모양으로 생겼는데 뚜껑을 열고
메모지에 글자를 써보니 펜촉끝에서 가는 잉크가 묻어 나왔다. 디자인도 예쁘고 쓰기에도
괜찮은 것 같아서 값을 물어보니 7500원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집에도 안쓰고 아껴둔 만연필이 있어서
사지 않고 그냥 나왔다.
요즘 볼펜이 잘 나와 웬만한 곳에는 볼펜으로 필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어린시절 국민학교(초등)때는 공책에 연필로 썼는데
연필도 심이 잘 부러지고 진하지 않아 가끔 침을 묻혀서 쓰기도 하였다.
연필갂는 칼도 지금처럼 전동연필깎기나 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접이식 칼집이 있는 딱개칼이 있으면 최고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낫 부러진 동가리로 연필을 깎았다.
연필심을 감싸는 나무도 결이 좋지 않아 연필깍을 때 힘을 주면 뭉툭뭉툭 떨어져 나갔다.
중학교에 가서야 펜을 쓰기 시작했는데 책가방에 잉크병을 넣어다니면서
잉크가 흘러나와 가방과 책이 잉크로 오손되기도 했다.
내가 볼펜을 처음 본 것은 중3때(1963)였는데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모나미였다.
만년필도 아닌 것이 잉크를 재충전하지도 않고 글자가 그냥 줄줄 써졌으니 신기했다.
만년필을 쓰기는 대학때였나 보다. 실습때 외국에 나갔다가 중공제 영웅을 사 온 친구들도 많았다.
나도 배를 타다가 귀국할 때 공항에서 몽블랑 만년필을 샀다. 당시에 제법 큰 돈을 주고 샀는데
앞으로 좋은 목적으로 쓰일 곳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
만년필외에도 프랑스 라로셀에 입항하여 상륙했을 때 산 노트가 아직 한 권이 남아있다.
당시에 문구점에 들러 노트를 펼쳐보니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노트와는 디자인도 다르고 무엇보다
종이 질이 달랐다. 어릴 때 공책도 제대로 사지 못했던 어려운 시절이 생각났고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 배를 타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 노트를 값지게 쓸 날이 올것을 기대하면서
각기 다른 다자인으로 된 노트 3권을 샀었다. 그 중 한권은 뒤 늦게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 사용하고
아직도 한 권이 남아있다.
원목선을 타면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원목을 싣고 인도양과 수에즈운하를 거쳐
유럽 여러 항구를 들러면서 양하를 하던 때였다. 벙커링은 도중에 싱가폴 외항에서 했는데 이 때 선원들은
잠시 시내에 나가서 필요한 물품도 사고 부식도 구입을 하였다. 당시 싱가폴 시내에서 선원들이 자주 가던 곳은 피플스 파크였다.
그곳에는 시계,카메라등 전문점들이 3층까지 꽉 들어찬 곳으로 선원들이 찾는 물건은 없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악어가죽혁대를 하나 샀는데 주인이 나를 보고 "왜 하나만 사냐?"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그러느냐고 내가 다시 묻자 주인왈, 한국사람들은 여기 오면 수백개씩 사더라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밀수를 하기 위해 샀던 모양이었다.
안경점에 들러 당시 최신유행인 자동컬러(밝은데서는 빛을 차단하고 어두운 곳에서는 발게 보이는)색안경을 사려고 했는데
안경테까지 맞추려면 최소 하루는 걸려야 한다기에 시간이 없어 안경알만 사고 말았다. 그 안경알을 40년이나 방치하고 있다가 얼마전에 안락동 어느 안경점이 리모델링한다며 세일한다기에 갖고가서 안경사에게 보였더니 너무 오래돼서 유리에 입힌 코팅이 일부 떨어져 나갔다면서 쓸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리고 어차피 덤으로 쓸 색안경이라면
코팅일부가 벗겨져 나갔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어 싸구려 안경테를 하나 주문했다. 안경알이 꼭 40년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