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냄새가 희미한 오전 [심재휘]
내게는 두부도 없이 이틀째 겨울비가 내린다 혼자 있으니
집은 빈집을 겨우 면한 저녁이 되어 달걀을 삶는다 창밖의
나무가 흔들려 그곳에 바람이 부는 줄 알겠지만 물이 끓어
도 달걀이 익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오래된 삶은 오래된 짐
작 적당히 삶은 달걀을 찬물에 식힌다
껍질을 까면 표정도 없이 말간 밤이 온다 나는 물에 간장
을 푼다 내일을 향한 나의 다정에 색이 올라오도록 너무 멀
쩡한 달걀을 넣고 힘껏 졸인다 창밖에는 비가 오는 소리가
있고 창에는 내가 있고 두부를 생각할수록 내일은 아무데
서나 온다
껍질 까는 소리도 없이 그것은 와서 낡은 담벼락 그림자
를 먼저 마당에 누이고 말없는 볕으로 집안 살림을 들춰내
면 달걀을 먹는 오전이 된다 빈집을 면하도록 집에 퍼지는
희미한 간장냄새는 그러니까 어두운 독에서 우리고 우린 참
독한 질문 그러니 나는 두부가 먹고 싶은 것이다
-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 문학동네, 2025
첫댓글 두부 조림을, 두툼하게 두부를, 넓적하게 잘라서는 양념을 얹고는- 잊어 버리면 완성되는, 그 두부조림이 생각나는 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