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서 흐르는 물(겔47장6-12)
출 처| 박종순목사
성경은 물에 관한 언급이 많습니다. 창세기 1:6-7을 보면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도 함께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물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더러운 것을 씻고 세탁하는데 물을 사용했습니다. 물은 음료수로 사용했고, 농사짓는데도, 그리고 세례를 줄 때도 사용했습니다.
물은 상징적 의미로도 사용되곤 했습니다. 요한복음 4:14에서 주님은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고, 에스겔 47:1-12을 보면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이르는 곳마다 땅이 치료되고 식물이 살아나고 열매가 맺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전세계 지하에 매장된 물은 점점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21세기가 끝나기 전 전세계적으로 물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며 지구촌 도처에서 물전쟁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킬리만자로에서 시작된 나일강은 이집트에 이르는 전장 6,670km의 긴 강입니다. 이집트를 통과하는 나일강의 길이는 1,500km입니다. 나일강 상류 좌우에는 케냐, 수단, 탄자니아 등 여러 나라들이 자리잡고 나일강 물을 먹고 삽니다.
그런데 나일강 상류에서 비가 오지 않는다든지 가뭄으로 물부족 현상이 벌어지게 되면 케냐나 수단이나 탄자니아 등이 나일강 물을 가로막고 내려보내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중동의 오일 전쟁보다 더 심각한 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은 식량보다 지하자원보다 석유보다 더 중요한 생명유지의 조건이 됩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 때문에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마실 수 없는 바닷물은 점점 그 수면이 높아지는가 하면 지하수는 점점 고갈되어 마실 물이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은 물이 넘쳐 흐르는 풍성한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2절을 보면 그 우편에서 물이 스미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그 물이 성소에서 흘러내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 근원이 어딘가를 밝혀 줍니다. 그 물은 성전에서도 가장 중심부가 되는 성소에서 흐르고 스미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린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른 땅을 적시고 시들어가는 나무를 살리고 메마른 나뭇가지에 열매가 맺고 그리고 목말라 죽어가던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어디서부터 흘러내렸는가? 다시 말하면 생명을 살리는 물이 어디에서부터 스미어 나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곳은 왕궁이 아닙니다. 귀족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아닙니다. 생명의 물은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성소에서 흐르는 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요한복음 7:37-38을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석유는 바닥이 나고 물은 말라 바닥이 드러나지만 예수 생명은 바닥나는 법이 없습니다. 전세계 기독교 인구를 17억으로 추산합니다. 17억이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먹고 마시며 살고있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성소에서 스미어 흐르기 시작한 물이 점점 많아져 강을 이룬 장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발목이 잠기고 무릎에 오르고 허리에 차고 그러다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물이 점점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성소 문틈에서 스미어 흐르기 시작한 물은 미약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흐르는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흐르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힘있게 흐르더니 마침내 헤엄쳐도 건너기 힘든 강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살리기 운동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셨을 때 백일잔치도 돌잔치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초라하고 조용한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운동은 전세계를 점령했습니다. 뚫고 들어가기 가장 힘든 공산권에도, 불교권에도, 회교권에도 생명의 물은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열두명으로 시작한 예수 운동은 전세계로 뻗어났습니다.
본문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물이 이르는 곳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첫째, 나무가 살아나고 실과가 열렸습니다.
7절을 보면 "강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고 했고, 12절을 보면 "강좌우에 각종 실과나무가 자라서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나무가 자라고 실과가 맺으려면 물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물 없으면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죽습니다.
프랭크린 홀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공기, 음식, 수면, 물입니다.
물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살리는 물과 죽이는 물입니다.
썩은 물은 마실 수도 없고,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썩은 물에서는 물고기도 살지 못합니다. 썩은 물은 사람도 썩게 만들고 예술도, 사상도, 교육도, 문화도 썩게 만듭니다.
썩은 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신론, 유물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입니다.
50년대나 60년대는 배고파서 도둑질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지금은 술 마시고 여자친구 선물 사주고 마약사기 위해 도둑질을 합니다.
미국에서 열린 신경과학회에서 '앤드리어스 바텔스'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남녀 17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장치로 촬영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20여군데 뇌 부위에 혈류량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맨 먼저 뇌에 반응이 나타난다는 실험결과인 것입니다. 뇌는 각 지체의 행동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총사령부입니다. 그 뇌 속에 썩은 정신, 썩은 문화, 썩은 예술, 썩은 사상이 주입되고 자리잡으면 그 사람의 행동은 파괴적이고 파행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생명, 예수생수로 가득 차면 죽은 것이 살아나고 썩은 물이 고쳐지는 것입니다. 예수운동만 이 민족과 이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둘째,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9절을 보면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 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라고 했고, 10절을 보면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썩은 바다에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한 강물이 흘러 들어가자 바다가 고쳐졌습니다.
바닷물이 고쳐지고 살아나자 물고기떼가 살아 헤엄치기 시작했고 어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탄광촌은 석탄생산이 중단되면서 광부들이 떠나고 폐광촌이 돼 버렸습니다.
어촌 역시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어부들이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바닷물이 살아나고 고기떼가 몰려들면 어부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우린 여기서 겸손하게 손을 들어야 합니다. 되살리는 역사, 새롭게 하는 역사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개혁으로도, 과학의 힘으로도 안 됩니다. 생명의 강물이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생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불란서 빠리시는 2000년 200일전부터 에펠탑에 대형 전광판을 만들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지나면 199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면 198이 되는 전광판을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12월 31일은 1시간마다 숫자가 바뀌도록 장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전이 되면 1분씩, 그리고 1분전이 되면 1초씩, 그리고 전광판의 숫자 2000년 자정이 되면 0이 되도록 설치를 했습니다.
이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전세계의 매스컴과 관광객 그리고 빠리 시민들이 1999년 12월 31일 대낮부터 에펠탑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12월 31일 오후 5시간 전부터 에펠탑에 설치한 전광판 시설이 고장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초긴장상태에 들어간 관계자들과 빠리시는 비상사태에 돌입해 원인을 찾기 시작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새천년 자정은 다가오고 있었지만 전기고장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에펠탑의 전광판의 불이 꺼진 채 새천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 고치고 났을 때는 새벽 3시였습니다.
최첨단 과학을 자랑하는 불란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뜻대로 에펠탑에 불을 켜지 못한 채 새천년을 맞아야 했습니다. 휘황찬란한 불이 켜지고 푹죽이 터지고 빵파레가 울리는 장관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과학의 힘이며 인간의 능력입니다.
11절을 보면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물이 미치지 못하는 진펄이나 개펄은 그냥 그대로 소금땅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나무도 살지 못하고 사람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듭니다. 그러나 다음해 바로 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흙에 배어있는 소금기가 다 빠지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적어도 5년내지 7년 이상을 기다려야 씨를 뿌릴 수 있는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소금물로 구성된 사해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나병 걸렸던 나만 장관이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목욕하고 병을 고쳤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실로암 연못에 찾아가 그 물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리는 물이요 되게 하는 물이요 일어서게 하는 물입니다.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큰 강을 이룬 그 물줄기를 내 심령에 댑시다. 그 물줄기를 내 가정으로 끌어들입시다. 그 물줄기가 한국교회를 살리고 우리 사회를 사리고 이 민족을 살리도록 그 큰 물줄기를 끌어들입시다. 그래야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삽니다.
주여 내 심령을 물댄 동산같게 하옵소서 내 가정과 우리 교회와 이 나라가 생명의 물줄기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다시 살아나고 다시 열매 맺고 다시 풍요롭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