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이 되어서야 무대에 발이 붙는다
연기를 하시기 전에 배드민턴을 하셨다고 들었다. 연기와 배드민턴은 거리가 상당해 보이는데.
원래부터 무대에 서는 꿈은 있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자라 그런 걸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동네에 여성국극의 마지막 세대들이 들어와 천막 극장을 세우고 공연을 하더라. 한 달은 있다가 갔는데, 매일 거길 드나들면서 나한테도 그런 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연극영화과에 갈 엄두는 못 냈고 수원에서 사회체육 교사를 하다가 극단에 들어갔다. 월급 주는 줄 알고 직장 다 그만두고 들어갔는데, 그건 아니더라. (웃음)
그렇게 연극을 시작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이 시작된 거였다. 생각해보면 참 힘든 길을 걸어왔구나 싶은데, 당시엔 몰랐다. 지금 <맨 프럼 어스>랑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 공연이 겹쳐 있는데, 이것도 지나고 나면 무리한 스케줄이었구나 생각할 거다. 이 또한 지나간다. 그게 연극의 매력인 것 같다. 지나가면서 느끼는 거. 하는 순간 힘들다면 안 하면 되는 거다.
연극이 아닌 국악을 공부하셨던데, 발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국악은, 미추에서 마당놀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했다. 한 10년 하다 보니 우리 소리, 우리 춤이 너무 매력적이더라. 마당놀이뿐만 아니라 연극을 위해서도 소리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국악대학에 간 거다. 발성을 하기 위한 몸, 성대의 크기, 그리고 통성, 흉성 같은 발성법을 판소리를 통해서 배워왔고, 그것을 활용하면 무대에서 정말 좋은 소리가 나왔다. 한동안 소극장에서 말하듯이 하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대세 아니었나. 그런데 그전엔 거의 다 대극장 공연이었다. 소리가 쩌렁쩌렁해야 하는데, 발성 방법을 모를 때 판소리 훈련을 많이 했다.
연극은 무대에서 공부한 것 같다. 무대에 올라서,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그때부터 연출가들이 화술 좋단 말을 많이 하긴 했다. 내 말이 잘 들린다고. 귀에 꽂힌다고. 그래서 내가 화술이 좋은 편에 속하는 구나 생각했다.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땐 3년간 역할을 쉼 없이 맡았다. 낮엔 아동극 공연 2번씩 하고 전단 뿌리러 다니다가 밤엔 또 성인극 공연 2번씩 하면서. 그때 <백설공주>에서 사악한 왕비를 했었는데, 지금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에서 백설공주를 하고 있으니 너무 웃기지 않나? (웃음)
낮엔 아동극 공연 2번, 밤엔 성인극 공연 2번이 가능한 일인가?
극장을 운영해야 하는데, 수익을 내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한 거다. 직접 전단도 뿌리고 포스터도 붙이면서 공연했는데도 힘든 걸 몰랐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 어떻게 그런 일을 했을까 싶지만, 그런 것들이 배우 서이숙을 있게 하는 바탕 아니겠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미술가나 음악가는 어렸을 때부터 레슨을 받고 기초를 쌓아서 예술가의 길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연극인은 그렇지 않다. 배우는 몸 하나로 어떤 것을 체득해서 그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스무 살짜리가 삶을 뭘 알겠나. 스무 살짜리가 어떤 것을 표현한다는 게 말이 되나. 긴 시간을 갖고 해야 하는 게 연극이고, 연극배우인 것 같다. 힘든 삶들이 차곡차곡 쌓여야 무대에서 그 배우가 어떤 걸 했을 때 신뢰가 생긴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마흔이 돼야 배우가 된다고. 마흔이 되어서야 무대에 발이 붙는다고. 20대가 노역한답시고 분장하고 연기하면 너무 어색하지 않나. 40대 배우가 30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만큼 연륜이 있어야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다. 그래서 연극이 어렵다는 거고.
어쨌든 무대를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더니
40대가 되면서 그 전과 연기가 달라지는 걸 느끼셨나?
조금씩 서이숙의 무대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라. 20대 때는 계속 병풍만 했는데, 어쨌든 쉬지 않고 어떤 역할이든 무대를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렇게 40대가 됐더니 “쟤 누구야?” 하고 연극계에서 관심 있게 봐주시더라. 그 즈음 한태숙 연출님을 만나서 <고양이의 늪>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서이숙이 알려지게 된 것 같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공연은 <고곤의 선물>이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7일인가 10일간 공연했는데, 전석 매진이었다. 홍보가 별로 활발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연극이 관객한테 감동을 주면 입소문이 쫙 퍼질 때였다. 첫 공연 후 그 타원형 객석에서 관객들이 저절로 기립을 하는데, 쓰러지는 줄 알았다.
불과 5~6년 전 아닌가? 그때랑 지금이랑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는지?
더 전문적으로 변한 것 같다. 디테일하게 보고, 또 어떤 것들을 용서해가면서 본다. 어떤 배우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까지 감안하면서. 블로그 같은 데 올라오는 감상평들을 보면 관객들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그래서 꼼꼼히 읽어보고 관객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무엇을 부족해하는지 피드백을 받으면서 더 신경 써서 만들어나가는 편이다. 공연이 좋으면 관객들의 관극 태도도 좋아서 결국 좋은 합을 이루게 된다. 연극은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관객들과 교감해서 꽉 찬 무대를 보여주고, 관객은 그 무대를 보고 감동받는 게 최종 목표점 아니던가.
앞서 언급한 작품 외에도 <이단자들>, <아워타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매기의 추억>, <오이디푸스> 등 수많은 작품이 있었다. 그 중 관객과 교감이 가장 좋았던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고곤의 선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작품이고, <오이디푸스> 때도 그런 경험을 했다. 관객들도 같이 숨을 못 쉬면서 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접신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서사 연기를 하는 편이고, 작품 전체의 의도를 잘 전달하자는 주의다. 그래서 연기가 좀 담백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마냥 담백하기만 할 순 없지 않나. 어느 순간엔 감정이 쑤욱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데, <오이디푸스> 때는 마치 이오카스테란 인물에 접신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관객들도 같이 숨을 못 쉬면서 다가오는 게 느껴졌는데, 그때의 쾌감이란! 그 맛에 연극하는 것 같다.
연극은, 무대언어는, 그런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일상적인 연기만 원한다면 TV 보면 되지 않나. 연극은 연극의 언어가 있어서 배우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야 하고, 연기하는 메소드도 있어야 한다.
최근 드라마 출연이 잦아지면서 배우로서의 삶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연극 작업이 어려워지기도 했을 테고.
작년 10월부터는 한 번도 안 쉰 것 같다. 사실 무리한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도 자리를 잡으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더라. 내가 왜 새로운 곳에 가서 이렇게 다시 시작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3년쯤 되니까 그쪽 사람들한테도 적응이 됐다. 이제 흐름도 좀 알 것 같고. 그러는 동안 연극 작업이 줄어든 것은 맞다. 연습에 공연까지 두 달은 꼬박 빼야 하니까 물리적으로 힘들긴 하다. 그래도 어쨌든 공약 아닌 공약으로 일 년에 두 편은 꼭 하기로 했는데, 연출들이 날 안 부른다. (웃음) 큰일 났구나, 하고 있다가 <맨 프럼 어스>랑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로 공약을 지키게 됐다. (웃음)
내가 무대에 설 날이 언젠간 온다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는 체홉의 4대 장막과 중요한 캐릭터들이 한집에 모은 것처럼 쟁쟁한 배우들을 한 무대에 모았다. 관객들과 어떤 교감을 나누고 계시는지?
이 작품엔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거창한 메시지가 있더라. 세 남매가 살면서 북적북적 살아가는데, 각자 아픔이 있다.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듯이. 오경택 연출이 그런 말을 남겼다. 기다리는 것이 기다리지 않는 것보다 나으니 기다리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니냐고. 기다리면 언젠간 온다. 내 삶이 그랬듯이.
미추에서 20년 동안 코러스에 단역만 하면서도, 다른 여배우들이 힘들다고 그만둘 때도, 난 기다렸다. 내가 무대에 설 날이 언젠간 온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기다렸다. 20년간 한 우물 팠는데, 무엇이든 올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
극장에 젊은 관객들이 많았는데, 기다리는 게 참 힘든 세대다.
그렇더라. 기다리면 되는데. 세상일을 어떻게 3~4년 해보고 결론을 내릴 수 있나. 적어도 10년은 해봐야 눈이 떠진다. 그리고 어떤 게 보인다면 이제 어떻게 잘 가느냐가 또 10년간의 싸움이다. 그렇게 20년쯤 되면 뭔가 알 것 같은데 왜 역할을 안 줄까 하면서 기다림에 대한 의심이 생기더라. 그러다 30년쯤 되니까 하나하나 책임져야 하는 게 많아지고 커진다.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하던 때처럼 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나는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관련된 모든 책을 섭렵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한다면 그에 관련된 자료를 다 모아서 읽었고,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할 때는 신경숙 소설을 다 독파했다. 그렇게 하면 배우가 무대에 설 때 흐트러짐이 없다. 든든하기 때문에. 그런데 어떤 걸 공부해야 할지 잘 모를 수 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20년 정도 지나야 어떻게 접근하고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보인다. 그런데 3년 정도 해서 되겠나? 택도 없다. (웃음)
연극이란 무엇인가 질문할 차례다.
연극이란 무엇인가? 나이 오십이 되어 가니까 늙음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더군다나 요즘은 사건사고가 너무 많아서 길 가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잘 늙는 건 무엇인지, 잘 늙어서 삶을 잘 마무리하는 건 무엇인지 묻게 된다. 故 장민호 선생님이 <3월의 눈> 공연 중에 툇마루에서 쓰레기인가 짚인가 뭘 하나 지그시 던지시는 걸 봤다. 그냥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때 삶이 저기 다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연기 하나하나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는데, 그 장면이 유독 큰 울림을 줬다. 그리고 나도 잘 늙으면 저런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또, 잘 늙어서 끝까지 무대에서 좋은 배우로 남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나한테는 이런 모든 질문과 깨달음을 주는 게 바로 연극이다. 연극을 안 했다면 그런 생각도 못해봤을 거고, 삶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물론 아직 다 느낀 건 아니지만 말이다. 연극은 끊임없이 질문을 준다. 정답이 없다. 무대에서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고곤의 선물> 좋았던 게 평생 가나? 그보다 더 좋은 연극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삶에 대한 많은 고민과 시대를 읽으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연극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로 보나. 연극은 은유와 상징을 갖고 관객들을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연극을 하려면 깊이 삶을 고민해야 하고, 고민한 만큼 무대에서 나온다. 그래서 연극은 위대하면서도 힘든 것, 싫으면서도 좋은 것 같다.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펌 : 서울연극센터 연극인. 김지현 연극칼럼리스트
첫댓글 정말 이분 목소리는 천정을 울리는거 같아요.. 매력적이죠 .상궁을해도. 흐흐
공부를 많이해야겠네용 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