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ss - Prologue
오랜 기원을 가진 보드게임. 체스. 그 기원은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이 게임은 여전히 거대한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행사는 평범하지 않다. 10년 마다 개최되는 이 체스 대회의 체스 말은―――――
다름아닌 '인간'이었다.
"아아 지루해."
여름.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고 있는 한국에서 가장 황량하고 쓸쓸해보일지도 모르는 옥탑방의 좁은 콘크리트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녀석이 있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시커먼 머리색에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머리의 녀석은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고 만화책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은 삶에 찌들어있고 즐거움이라고는 없는 괴로워보이는 눈빛이었다.
삐리리리리~♪
"오, 왠일이래."
그는 전화벨이 울리자 만화책을 덮어놓고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에서는 알 수 없는 기계음이 섞인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세훈, 지금 당장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챙기고 그 일대 반경 1Km밖으로 빠져나가. 폭팔 시작 5분 전이다. 이미 근처에서 폭팔이 한 번 일어났다.'
"뭐야?"
'꾸물댈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거기서―――'
세훈은 전화기를 덮어 전화를 끊어버렸다. 한국에서는 흔히 있는 장난전화일 것이라고 생각한 세훈은 다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만화책을 집어들었다. 그 찰나, 꿍 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곧 주변 자동차들의 경보음이 윙윙대며 시끄럽게 울려대고 거의 모든 건물의 유리창이 열리며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번쩍 정신이 든 세훈은 방금 걸려온 장난전화가 생각났다. 휴대폰이 다시 울리고 있었다. 세훈의 귀에는 휴대폰의 벨소리가 '어서 전화를 받고 도망쳐!' 라고 외치는 듯 했다.
"이런 젠장!"
전화기를 낚아채고 급하게 전화를 받은 세훈은 허둥지둥하며 전화기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 뭐야 젠장!!"
'난 말했다. 빨리 뭐든지 무기를 챙기고 그 주변을 빠져나와.'
세훈은 방으로 재빨리 뛰어들어갔다. 좁은 단칸방에 들어온 세훈은 서랍과 책상을 뒤지며 지갑이나 통장, 사진 몇 장 등의 필수품목이나 가치가 있는 물건을 가방에 쑤셔넣었다.
'무기도 챙겨.'
"망할! 대학생 단칸방에 무기가 있을리가 없잖아!"
세훈은 신경질적으로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는 조용하고 침착한 소리로 대답하는 기계음 이외에는 없었다.
'부엌에 칼 정도는 있겠지. 그거라도 챙겨.'
"망할."
세훈은 부엌의 서랍을 열고 가장 날카로워 보이는 식칼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신문지로 감싸고 비닐봉투에 담았다. 휴대폰 너머에서는 마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듯이 세훈에게 냉정하게 지시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말고 달려라. 번화가를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해. 그곳이 안전하다.'
"도대체 거기가 어딘데?"
세훈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당황한 나머지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했으나 중심을 잡고 이내 다시 달렸다. 평소에 운동부족이었던 세훈으로서는 오랫동안 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턱턱 올라오고 호흡이 가빠진다.
"하아, 후우."
거칠게 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대자 곧 다시 기계음이 들려왔다.
'거기서 육교를 건너.'
세훈의 정면에는 녹색으로 칠해진 육교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육교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하는 바람에 육교는 비어있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간 세훈은 숨이 턱턱 막혀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젠장. 멈추면 안돼. 뛰어.'
"하아, 하아, 하아, 젠장! 더는 못뛴다고!"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전화기에 내뱉은 말을 뒤로 계속해서 숨을 헐떡였다.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세훈이 고개를 들자 앞에는 작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꽤 빠르네. 놓칠 뻔 했어."
가느다란 목소리를 내며 말한 여자아이는 꽤나 귀엽게 생겼었다. 검은빛깔의 짧은 단발머리에 노란 색 헤어밴드를 차고, 노란 색의 어떤 유치원의 유니폼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너, 너는 누구...?"
"음,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배웠으니까 얘기해줄까?"
세훈은 몸을 천천히 세우고 바로 앞의 여자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깜빡 잊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세훈은 무언가에 홀린 듯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참, 난 안경은이라고 해. 비숍(Bishop)이야."
"도대체 무슨 얘기를―――"
'젠장. 죽을지도 몰라! 옆으로 뛰어내려! 빨리!'
휴대전화의 다급한 소리에 세훈은 바짝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소녀는 웃으면서 오른손을 세훈을 향해 뻗고 있었다. 세훈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오싹하면서도 괴리감이 느껴지는 기분이 든 세훈은 뒷걸음질을 치며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소녀는 가만히 선 체로 오른손을 뻗은 체로 무언가를 천천히 중얼거렸다. 짧은 중얼거림이 끝나고나자 소녀의 오른손이 검게 빛났다.
"분해."
짧은 목소리와 함께 육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사라져있었다. 육교가 조금씩 균열이 깨지며 무너지려 하기 시작했다. 세훈은 비명을 질러대며 손잡이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매달렸다.
"으아아아아!"
쿠르르릉―――!!
육교의 중심부분부터 차례대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계단의 가장자리에 있던 세훈은 전화기에서 들려왔던 기계음의 조언이 떠올랐다.
'육교에서 뛰어내려!'
"에이익!"
세훈은 손잡이를 붙들고 육교를 뛰어 내렸다. 너무 당황하여 다리가 손잡이에 걸려 머리부터 떨어져버리는 신세가 되었다. 세훈은 그 높이에서 떨어지는 아주 잠깐동안 공포심에 휩싸여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콘크리트 바닥이 보인다. 이대로 떨어지면 어떻게 되지? 죽고싶지 않아. 죽기 싫어.
공포심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딱딱한 바닥을 기다리며 떨어지던 세훈은 예상외로――――
"아악――!... 응?"
눈을 뜨자 세훈의 눈 앞에는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찾았다."
"네?"
어안이 벙벙한 세훈은 주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훈을 안아들고 있는 여성은 햇빛에 비추어 황금빛을 내뿜는 금발에 머리를 뒤로 묶어 넘긴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녹색의 눈빛에 균형잡힌 얼굴은 TV에 자주 출연하는 스타같았다. 160Cm정도 되어보이는 키에 흰 반팔 셔츠와 청바지,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는 그녀는 꾸미지 않은 것 같았음에도 아름다웠다.
"걸을 수 있겠지?"
"네, 네."
그녀는 세훈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육교가 서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세훈을 죽이려던, 육교를 붕괴시킨 장본인은 그 자리에 없었다. 세훈은 멍하니 서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숍은 빠졌어. 그쪽으로 데려갈게."
'그래, 녀석이 얼빵해서 수고가 많았군.'
그녀가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세훈을 욕하고 있었지만 세훈은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비틀거리며 육교의 잔해로 다가가던 세훈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딱딱한 바닥에 쓰러졌다.
우끼끾끾끾끼끾
오타는 알려주시면 매우 굽신감사
첫댓글 잘읽었어요~
저도 체스 나오는 소설 구상중이어서 순간 당황했는데 여기는 현대네요.
어,그리고 오타 지적하면 폭팔 보다는 폭발 이고 경은이 나오는 부분에서 가만히 선 체로가 아니라 채로네요;;;
열심히 읽을게요~
고맙습니다.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
잘볼께요^^
감사해요. 노력할게요 ~
재미있네요. 본편도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