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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37번 국지도→인월면 소재지→60번 국지도→일성콘도진입로를 지나 대정삼거리→861번 지방도 우회전→반선(뱀사골 입구)→덕동리
■ 반선교 - 간장소 6.6km의 '뱀사골 신선길' 깊고 웅장한 골짜기 단풍명소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뱀사골은 지리산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사이의 울창한 원시림 지대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지리산 북쪽 사면을 타고 흘러내려 길이 12㎞의 골짜기다.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여러 골짜기들 가운데서 가장 계곡미가 뛰어난 골짜기의 하나로 꼽힌다. 뱀사골의 옥류와 단풍은 남원십경중의 하나이다.
뱀사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정유재란때 불타버린 석실 부근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리산 북사면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유래로 뱀과는 관련이 없는 비탈이 심한 사이 골짜기란 뜻의 밴샅골이 변해 뱀사골로 불리어졌다는 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1300여년전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선 칠월 백중날 신선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이 일을 괴이하게 여긴 어느 대사가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려는 스님의 가사장삼에 몰래 명주실과 독을 매달아 두었다. 다음날 뱀소 부근에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고 하여 뱀사골이란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이무기에 죽어갔던 스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반쯤 신선이 되었다 하여 뱀사골 입구 동네를 반선(半仙)이라 부르게 됐다.
뱀사골 계곡에는 집채만한 기암괴석과 너럭바위가 곳곳에 있고, 수십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있으며, 뱀처럼 심하게 곡류하는 물굽이도 도처에서 볼수있다. 봄철에는 철쭉꽃이 계곡을 물들이고, 여름철에는 수량이 풍부하고, 수림이 울창하여 녹음 짙은 계곡 안에 삼복더위를 얼어붙게 하는 냉기가 감돈다. 가을철에는 빛깔이 다양한 단풍이 계곡을 덮으면서 아름답기가 피아골의 단풍과 우열을 가르기 힘들다. 불붙는 단풍과 암반 위로 흐르는 계류, 그 아래로 형성된 담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루어 발길을 붙잡는다.
뱀사골은 또 물이 맑아 한국의 명수(名水)로 통한다. 지리산의 깊고 깊은 산록에서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빚어져 즐비한 징담(澄潭)을 거쳐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뱀사골의 청정계류는 가히 손색없는 우리나라의 으뜸 물줄기라 부를 만하다. 계곡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그 만큼 잘 알려져 찾는 이도 많지만 그 품이 너무도 넓고 깊어 쉽게 오염되지도 않는다.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의 화개재에서 남원시 산내면 반선리 집단시설지구까지 8.7km 구간이 인기있는 탐방코스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소(沼)와 징담이 이 계곡의 가장 큰 자랑이다. 오룡대, 뱀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가 그림같이 전개돼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뱀사골의 특징은 계곡으로 이어지는 테크로드길이 완만하고 고른 경사도로 이루어져 힘들이지 않고 산행을 할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뱀사골에는 가족단위의 등산객들이 많다
반선주차장을 출발하여 반선교를 건너 차도옆 테크로드를 따라 0.3㎞정도 가면 「뱀사골 신선길」이라 쓰인 나무로 만든 올레길 출입문이 있다 와운교까지 2㎞구간을 계곡을 따라가면서 태크로드 탐방길은 계곡물과 기암괴석과 단풍나무가 어우러지는 풍광을 가장 가까이서 즐길수 있도록 해 놓았다.
신선길 테크로드에 접어들면 시작과 함께 크고 넓적한 바위와 맑고 깨끗한 청정계류가 풍부하게 흐르며 물소리가 탐방객들의 낙엽 밟는소리와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다른계곡보다 수량도 풍부하고 붉은 단풍나무가 많다. 기암괴석 사이를 흐르는 계류는 단풍과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다.
풍광에 취하여 신선길 중간정도에 이르면 집채만한 바위 두개가 겹쳐져 자연동굴을 형성한다 석실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 6.25전쟁후 빨치산들이 이념서적 등을 등사 인쇄하였다고 한다.
반선교를 출발하여 2㎞정도 지점에 있는 요룡대에 도착했다. 요룡대는 높이 30m가 넘는 큰 바위로 마치 용이 승천하려고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치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요룡대라 한다. 요룡대를 지나 와운교를 건너 다시 계류 옆 탐방로를 따라 오른다. 와운교를 건너 15분 정도 오르면 탁용소가 나온다. 탁용소는 큰 뱀이 목욕을 한 후 허물을 벗고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다 이 곳 암반 위에 떨어져 100m 정도 자국이 생겨났으며, 그 자국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용의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하여 탁용소라고 한다. 계곡에는 비취색처럼 맑은 수많은 소와 폭포가 골짜기를 이룬다.
반선에서 트레킹 시작 2.9㎞ 지점 금포교를 건넜다. 계속 계류 옆을 따라 반선 출발 3.8㎞ 지점 병풍소를 지나 병풍교를 건넌다. 병풍교를 건너 10분후 명성교를 건너고 5분 후에 옥류교를 건넌다. 반선 산행시작 5.2㎞ 지점 제승대에 도착한다. 제승대는 송림사 고승인 스님이 제를 올렸던 장소로 주변의 기암, 괴석, 계류가 장관이다..
반선 산행시작 6.6㎞ 지점 간장소에 도착한다. 간장소는 옛 소금 상인들이 하동 화개장터에서 화개재를 넘어오다 소금 짐이 이 소에 빠져 간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이 소의 물을 마시면 간장까지 시원해진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져 간장소라 한다. 이로서 '뱀사골 신선길' 올레코스 탐방을 종료했다.
[2020.11 시니어매일 정희자기자]
■ 정이품송 닮은 천연기념물 424호 '지리산 천년송'
와운마을 천년송 / 남원시
천년송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와운(臥雲)마을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리산국립공원의 북동쪽 자락인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355번지 일대에 있는 마을로, 지리산국립공원전북사무소에서는 동남쪽으로 3㎞정도 떨어져 있다. 해발 800m에 위치하고 있어 구름도 누워 갈 정도로 높고 험한 곳이라는 뜻에서 와운(臥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남단 산간 대분지에 위치하여 내륙성 기후대에 속하므로 대체적으로 온화한 기후를 보이며, 겨울철에는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추운날이 많고 여름철에는 아열대 저기압 및 지리산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 속한다.
와운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반산리, 미동, 와운리, 하부운리, 개선리가 병합되어 부운리에 편입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5년경 영광 정씨와 김녕 김씨가 국난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과 계곡을 찾아 다니다가 공기가 맑고 산세가 좋아 피난처로는 최적지라 생각하여 안심하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6.25전쟁이 일어난후 1951년 지리산이 빨치산의 소굴이 되자 전 주민이 피난 이주하였다가 1954년 수복과 함께 다시 입주했다. 1977년 지리산 전적비 및 기념관을 개관하였으며,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기암절벽과 깨끗한 물, 계곡, 수목 등이 알려지면서 관광지로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1995년 민박사업을 비롯 휴양촌을 가꾸기 위하여 마을 내 주택개량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 관광 휴양촌을 가꾸기 시작했다. 2009년께 도로가 연결되면서, 하나둘씩 관광객이 찾기 시작해 입소문을 탄 뒤 이제는 지리산의 최고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마을에는 지리산 명선봉에서 영원령으로 흘러내리는 동서로 뻗은 마을 뒷동산 능선의 가운데에 천연기념물 제424호인 지리산 천년송(할매소나무)이 있다. 우산을 펼쳐 놓은 듯한 반송으로 두 가지가 대등하게 잘 조화되어 있다. 그리고 속리산 정이품송을 닮아서 수형이 아름다우며, 애틋한 전설을 가진 유서 깊은 노 거목으로 희귀성과 민속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와운교를 건너면 바로 계곡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 위에는 분재형 명품소나무 2그루가 다정하다. 하트모양 팻말과 함께 부부송이라 적혀 있다. 흙 한 줌 없는 바위 틈에 뿌리를 드러내고도 파란 잎을 피워내고 있다. 탐방객들의 기도가 줄줄이 이어진다.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를 부부애로 꿋꿋하게 극복한다. 이곳에서 와운마을까지는 0.7㎞ 정도인데 하천변을 따라 마을길이 있고 테크로드길도 조성해 놓았다.
오르막길을 따라 와운마을 안내센터 앞에 도착하면 천년송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천년송가는길’ 상호의 식당옆 테크로드 언덕길을 따라 0.2㎞정도를 올라가면 천년송이 있다. 마을 안길쪽에도 2곳이 더 있다. 언덕길을 오르면 「지리산 천년송 와운명품마을」이라 적힌 홍보성 목재문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탐방객들이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하다.
두터운 용비늘 모양의 나무껍질이 오랜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하다. 수령이 500여년으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의 둘레 4.3m, 수관폭은 동서방향 18m, 남북방향 24.2m이며, 수세도 기운차고 왕성하다.
위쪽으로 20m 지점에는 할매소나무보다 좀 더 작은 할아시(할아버지)소나무 한 그루가 더 있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낸다. 주민에 의해 당산제의 제관으로 선발된 사람은 섣달 그믐날부터 외부 출입을 삼가고 뒷산 너머의 계곡(일명 산지쏘)에서 목욕재계하고 옷 3벌을 마련, 근신해야 한다.
이 마을은 지리산국립공원 해발 800m의 고지대에 위치하면서 천년송과 주변 산세가 뛰어나는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2015년 지리산국립공원 내 마을 중 처음으로 국립공원 명품마을 조성지로 선정됐다.
2016년에는 안내센터 신축, 상업 및 주거환경 개선, 랜드마크 설치 등 명품 시설 기반 중심의 탐방 인프라를 구축했다. 2017년 차 없는 마을, 홈페이지 개발, 특화음식 개발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맞춤형 특화사업을 중점 추진하여 그해 6월 29일 명품마을 준공식을 거행했다. 와운 명품마을은 현재 14가구에 33명의 주민이 래방객을 상대로 숙소(10개)와 식당(7개)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리산 최초로 명품마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 2020.11 시니어매일 장희자기자]
뱀사골 초입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계곡은 변강쇠타령의 무대이다. 길 가에는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변강쇠가 벌을 받아 장승처럼 굳어 죽었다는 전설을 형상화한 변강쇠백장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 인근 계곡에는 변강쇠와 옹녀가 놀았다는 백장바위, 남녀의 성기 모양을 한 음양바위, 바위를 긁어 국을 끓여 먹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근연바위 등 재미난 사연을 곳곳에 담고 있다.
춘 이월 반쯤 핀 복숭아꽃처럼 어여쁜 계집이 버드나무 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 하늘거렸다. 이처럼 어여쁜 계집이 팔자가 사나워 치마 자락 한 번 만지는 사내마다 모두 죽기 일쑤였다. 그런 계집이 제 짝을 만났으니 바로 계집만큼 유명한 변강쇠였다. 이들이 만나 천지가 흔들릴 정도로 운우지정을 나눈 변강쇠와 옹녀의 기운이 서린 그곳은 산내면 대정리 백장골 쌈지공원.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어화둥둥 내 사랑이야… 둥둥둥 내 사랑, 어허둥둥 내 사랑.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하해같이 깊은 사랑. 남창북창 노적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수에 직녀같이 올올이 맺인 사랑. 모란화 송이같이 펑퍼져버린 사랑…’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수식어는 아쉽게도 우스개 소리, 외설영화라는 오명에 묻혀 사람들에게 터부시 되어왔다. 영화 <가루지기>, <변강쇠> 등으로 익숙한 옹녀와 변강쇠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변강쇠뎐은 완숙한 사랑의 이야기다. 한국 고전에서는 보기 드문 성 문학이 녹아든 이 판소리는 그 동안 다소 낯 뜨거운 외설적 표현으로 터부시되어왔으나,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우리의 뜻 깊은 고전 문학이다.
변강쇠뎐의 흔적이 남아있는 백장계곡의 가늘고 길게 늘어져 흐르는 물줄기가 내려와 웅덩이를 만드는 지형은 남자의 힘이 쏘에 모여 기를 생성하는 형상이다. 그리하여 이곳 태아바위에 염원을 하면 귀한 아들을 얻으며 근연바위를 긁어 국을 끓여 먹으면 기운이 세진다고 하고, 비가 내린 후에는 전국팔도의 많은 명창들이 이 곳의 폭포에서 목청을 다듬기도 했다고. 역시나 전국의 장승들이 모여들었다는 전설처럼 수많은 장승과 남근상이 있다.
빨치산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는 '전적기념관'
지리산 빨치산. 이 땅에 대한 역사를 배운 이후 빨치산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좌파 게릴라로, 또 하나는 자신의 죽음을 뻔히 알면서도 그 이상을 펴기 위해 끝까지 싸웠던 지사들로서.
물론 그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마냥 그 희생만을 내세우며 그들을 폄하한다면 그것은 너무 결과론적인, 승자의 입장에서 쓴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당시의 희생이란 그 누구만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전적기념관 '추모의장' / 오마이뉴스 이희동이름은 전적기념관이지만 국립공원 안내소가 그 건물의 반을 사용하고 있고, 정작 지리산 전적에 관한 자료는 2층 구석에 그 구색만 갖추고 있다. 전쟁기념관이라는 것 자체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빨치산과 토벌대의 격전 직후의 모습을 본뜬 모형을 지나 들어선 기념관. 코너의 이름부터 달라진 세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추모의 장’이라. 기념관에는 빨치산과 토벌대 각각의 전투기기와 생활상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더불어 빨치산 출신의 증언이나 당시 시대상황 등이 끊임없이 비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예전보다야 비교적 중립적 시각으로 다뤄지고 있다.
기념관 한편에는 또한 지리산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한시가 적혀 있었다. 비록 우리에게는 단순히 빨갱이 수괴였을지 모르지만, 그 한시에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어도 자신의 정절을 굳게 지키고자 했던 비극의 혁명가 이현상이 담겨 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옛 전적기념관 자리에 건립된 탐방안내소는 지리산의 자연과 문화,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건평 1246㎡, 지상 2층으로 지어졌다.
1층은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계를 전시한 공간으로 공원탐방, 생태문화탐방, 지질이야기, 계곡이야기 등의 코너가 갖춰져 있다. ’아! 지리산이여..’라는 이름을 붙인 2층은 지리산의 아픈 현대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으로 빨치산과 토벌대에 대한 소개, 이들의 이동 경로, 작전 상황 등이 소개된다.
당시 빨치산과 토벌대로 활동했던 현존 인물들의 인터뷰 동영상과 빨치산들의 생활용품, 의복, 무기 등도 전시된다. 탐방안내소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개방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숙박 뱀사골 최상류, 화개재와 10분 거리에 위치한 뱀사골대피소(관리인 고영국 063-626-1732)는 뱀사골 산행객뿐 아니라 종주 산행객들에게도 인기 높은 산장이다. 단층건물 침상에 1일 80명이 묵을 수 있다. 침낭을 대여해주며 사발면, 햇반 외 간식거리를 판다. 대피소 앞마당에 취사장 겸 매점이 있다.
뱀사골 입구인 반선의 상가지구에는 민박을 겸한 음식점과 슈퍼마켓이 여럿 있다(지역번호 063). 그때 그 산채 식당 625-3329, 만물슈퍼 626-3365, 다있다슈퍼 626-6953, 뱀사골슈퍼 626-8822, 남원식당 626-5770, 터미널슈퍼 626-3355, 뱀사골산채식당 626-3078, 반선슈퍼 626-1794, 뱀사골민박촌 625-8955, 보리식당 625-1918, 일출식당 626-5071, 천황봉산채식당 625-1915, 산채전문식당 626-619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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