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
한글반 >
문하
정영인
오늘
한 요양원의 노인 한글반을 시작하였다.
친한
친구가 부탁하길래 수락했지만 걱정이 많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8년째,
결혼이주민
여성에게 한글을 가르쳤지만 노인반은 처음이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지레
걱정이 되어 잠도 뒤척거렸다.
교재를
선정하고,
학습
자료를 준비했다.
8칸짜리
깍두기공책에 할머니들이 배울 아주 간단한 모음자 위주의 낱말을 컴퓨터로 쳐서 오려 붙였다.
‘아가,
아이,
….’
더구나
치매기가 있는 75세~95세
할머니들이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학생,
나는
선생님이다.
말은
어눌하지만 한글을 못 깨우친 한 맺힌 사연을 마음 속 깊이 숨겨 논 분들이다.
글을
모르는 것은 남에게 내비치고 싶지 않은 마음의 깊은 응어리가 될 수 있다.
한
할머니는 옛날 아버지의 완고함으로 여자라서 국민학교도 보내주지 않아서 까막눈이 되었다고 지나간 세월을 한자락 한탄을 한다.
어떤
할머니는 국민학교에 간신히 입학 했더니 6.25가
일어나 피난 다니느라고 한글을 못 깨우쳤다고 한다.
생전
연필을 한번 잡아보지 못한 분들이다.
귀
어둡고,
눈
침침하고,
생각도
어눌하다.
어떤
할머니는 손이 떨려 두 손 잡고 금을 그어도 지그재그다.
그리고
한 자를 배우면 곧 바로 두 자를 잊을 정도이다.
그분들의
마음에 박힌 사연들을 들으니 지금은 안 계신 하나뿐인 누님이 생각났다.
우리
집은 6남매였다.
맨
위로 누님 한 분,
내리
아들만 5명.
형제들은
아버지의 선견지명으로 적어도 고등교육을 다 받았다.
누님은
다섯 동생들 때문에 간신히 국민학교만 졸업했다.
생전에
누님은 아버지가 당신을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은 것을 한탄하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면서….
이
할머니들은 국민학교는 커녕 한글도 못 깨우친 분들이라 마음속 깊이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연을 품은 분들이다.
이제
인생의 끝자락 황혼녘에 따듬따듬 “가갸거겨…,
아야어여….”를
배우려고 한다.
둘째
날에는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아는 할머니는 두 분뿐이 안 되었다.
그만큼
기억력이 없는 것이리라.
몸짓발짓
소리를 박박 질러가며 한 시간을 끝냈다.
귀가
어두우니 크게 소리 내야 한다.
여느
수업보다 몇 갑절 힘이 든다.
줄
하나 제대로 긋지 못하고,
동그라미
하나 바르게 그리지 못한다.
손이
떨려 두 손을 잡고 물결치듯 줄을 긋기도 한다.
하늘에
계신 누님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할머니들을 가르치겠다,
한글을!
세종대왕님이
고맙다.
이리
쉬운 한글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 “슬기로운
자는 아림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고,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라고
했으니 세종대왕 덕분에 읽고 쓰는 자모로 못 나타내는 글자가 없으니 확실히 늘 우리는 세종대왕께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내가 가르치는 할머니 학생들과 요양원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할머니들은
목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를 한다.
어떤
분은 먹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떠 먹여 주어야 한다.
국수를
질질 흘리고 손으로 집어 먹고….
얼마
안 있으면 나도 저러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음이
울컥해진다.
요양원에
있는 그 할머니들을 통해 앞으로의 내 모습도 얼비친다.
나도
불원간에 저리 되겠지….
‘바다’를
공부했다.
어떤
할머니가 조미미가 부른 옛노래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른다.
그러자
할머니 학생들이 다 같이 따라 부른다.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움인지/
……
/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진 않겠지…//”
내가
되려 가사를 몰라서 물어서 신나게 불렀다.
다음에는
가사를 적어와 할머니들과 노래 부르면서 한글 공부를 해야 하겠다.
이렇게!
“다음은
수수께끼 문제입니다.
먹지
못하는 ‘라면’은
무엇일까요?
이
노래에서 찾아 보셔요.”
“라면입니다.
그리고
‘라’자를
찾아봅시다.”
‘라’자를
배우고,
‘라’자가
들어간 말을 찾게 한다.
고릴라,
랄라라,
라디오
등.
잠깐
쉬는 사이에 할머니 한 분이
“선생님,
커피
잡수세요.”하면서
믹스 커피 2개를
내 손에 쥐어 준다.
그래도
선생이랍시고 대접해 준다.
따뜻한
마음이 다가 온다.
공부를
잘했다고 조그만 초콜릿 한 개씩 드렸더니,
어떤
할머니는 막내딸 주어야 한다고 안 잡수신다.
이번
어버이날,
막내가
가방을 사주었다 하면서….
그게
우리네 어머니 마음이다.
우리
부모님도 저렇겠지….
누나는
인천 중앙시장에서 양키물건 장사를 했다.
혹가다
찾아가면 누나는 나를 따로 불러 미제 비타민 한통을 내 호주머니에 몰래 집어 넣어주면서
“넷째야,
이거
너만 주는 거야.
다른
애들한테 절대 말하지 말고,
열심히
먹어라.”
아마
나만 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누나가
그립다’
첫댓글 선행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축복받으세요~~
@@@ 선행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
되레 그런 기회를 준 함머니깨 감사하죠!
저희 성당에서도 노인 한글반이 있어요
모르니까 배우고싶어도 부끄러워서 안 나오시는 분들도 꽤 많으신것 같다고 히셨어요
부지런하시고 고우신 봉사에 박수 보내드립니다
@@@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
글을 쓸 줄 몰라 은행에 돈 찾으로 갈 때, 일부러 손에 붕대를 감고 가는 할머니 실화가 떠오릅니다.
누구에게나 말하기; 어려운 마음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님은 카타리나 본명을 가지셨는데 칠순이 지나서 한글을 깨우치셨답니다.
그리고 수차례의 성서 필사를 통해 익숙해지셨었습니다.
지금은 아흔 다섯, 말씀도 잘 못하시는 요즘입니다.
가장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데에서 쓰임을 다하시는 애씀에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