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불
김강호
보름에서 그믐까지 온몸이 야위도록
달빛으로 써 내려간 절명 시 같은 편지
난 정녕 읽지 못하고 두견새가 읽어서요
귀뚜리 울음 쌓인 돌담에 다가서면
눈시울 그렁하게 맺히는 당신 생각
그리움 긴 대궁마다 겹꽃으로 피어서요
서너 평 하늘에 박힌 점자 같은 별들을
마디 굽은 손가락으로 더듬어 볼 때마다
피엄 든 날들이 스며 망울망울 맺혀서요
섣달그믐 적막 속에서 활짝 웃는 납매臘梅를 보며
당신이 날 위해 피운 곁불이라 생각하니
백 년쯤 겨울이라 해도 행복할 것 같아서요
낙엽이 쓴 유서
김강호
청개구리 울음처럼 나도 한땐 파릇했다
고흐의 캔버스에 유채화로 스며들어
강렬한 색채로 남아 춤을 추고 싶었다
벌레 먹은 이력을 훈장으로 내밀면서
미완의 끝자락에 덧붙이는 한 마디
고맙다, 따뜻한 세상 동행해 준 이웃들
나 이제 어느 낯선 가난한 곳에 닿아
평화롭던 날들을 노래로 피우면서
사랑이 움틀 때까지 밑거름이 될 것이다
ㅡ시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 다인숲 2024
카페 게시글
시조 감상
곁불/ 낙엽이 쓴 유서/ 김강호
정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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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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