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 한국. 무엇이 오늘날의 한국과 한국인을 만들었는가?
<한국인의 탄생>에서 세 명의 인물(단군, 고려 현종, 정도전)과 세 개의 키워드(생존, 전쟁, 혁명)를 살피고 있다. 단군은 우리가 살아갈 터전을 잡았고, 고려 현종은 한민족을, 정도전은 한국인 개인들을 만들었다.
한국인은 자신들이 전쟁민족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평시의 한국인은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야 하기에 다른 한국인을 증오한다. 경쟁의 방향은 평면적으로는 주변에서 중앙으로, 수직적으로는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 재난을 맞아 경쟁을 멈추고 협력할 때 적과 재난을 밀어내는 방향은 반대가 된다.
월정사 석탑은 8각형 모양에 8층으로 지어졌다. 이러한 다각다층 석탑은 고구려나 중국의 다층 목탑 형태를 계승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통일신라 석탑이 안정적이고 균형미를 강조하는 데 비해 다각다층 석탑은 수직성이 더 강조된다.
고려-거란전쟁에서 강감찬의 귀주대첩에 대승을 이룬 이후 거란에 입조했다. 여기엔 비밀이 있다.
고려가 황제국이 되면 다른 두 황제국(요와 송)과 제국 경쟁을 벌여야 했다. 여기엔 조공보다 넉넉한 하사품으로 조공국을 모집하는 출혈 경쟁도 포함된다. 제국이냐 왕국이냐는 백성의 삶의 질과 같은 실용적인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다. 현종은 송, 요에 뒤진 3등 제국 대신 1등 왕국이 되기로 했다. 이때부터 고려는 동북아시아의 균형을 결정하는 조정자가 되었다.
귀주대첩 이후 고려는 한동안 제국의 권리는 누리고 의무는 피했다. 주변국과 부족에 조공을 받는 재미를 누렸으며, 고려 임금은 중국에서 해동천자로 불렸다.
현종은 조선왕조에서도 한반도 역사가 낳은 특출한 성군으로 우대받았고, 조선왕조는 그에게 제사를 올렸다. 조선의 사관 뿐 아니라 왕들까지도 현종을 한반도 역사를 다시 세운 위인이자, 역사 자체가 현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의식을 가졌다. 단군이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시조라면, 현종은 실존했던 진짜 단군인 셈이다.
정도전은 인(사대부)이 민(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명제를 진리로 만들었다. 그는 인과 민의 관계를 뒤집었다. 인이 존재가치를 잃고 민이 인의 탐욕에 희생되는 세상이 오자 동학은 인과 민을 합치했다. 정도전은 백성 곧 다수를 위한 나라를 꿈꿨고, 동학은 사람 그러니까 모두를 위한 나라를 꿈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