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6일 문거(文擧)의 다산에 있는 서옥(茶山書屋)에 놀러갔는데, 공윤(公潤)이 여기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내쳐 이틀 밤을 자고, 마침내 열흘을 넘겼다. 점점 여기에 끝까지 있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애오라지 시 두 편을 지어 공윤에게 보여주었다.>라는 긴 제목 또는 서두가 달린 시가 있다.(정본여유당전서 1권, 479쪽) 같은 책의 해제에 따르면 이 시를 지은 연도는 1808년이라 하고, 선생이 다산초당에 머물기 시작한 것이 대체로 이때부터라고 한다. 그 전 해 1807년 가을에 지은 <작은 비에 국화를 마주하여 짓고, 공윤 윤종하에게 보이다(小雨對菊花示公潤[尹種河])>라는 시와 <또 공윤에게 주다(又贈公潤)>라는 시도 있다.
이들 시에서 보면, 선생의 증외조(曾外祖)인 공제 윤두서 옹이 공윤에게는 고조부가 되고, 외가 쪽 7촌인 셈이고, 선생이 서울 명례방에 살 때부터 잘 알고 서로 아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선생이 유배되어 강진에 와서, 주막집과 제자들의 집과 절집을 전전하는 동안, 거의 교류가 없다가 1807년 가을부터 다시 만나기 시작해서, 다산의 글방에서 요양하는 공윤을 찾아갔다가, 그곳이 마음에 든 선생의 바램으로 다산글방에서 유배가 끝날 때까지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진에 유배와서 거의 6년 동안 선생이나 공윤이 겪었을 그 피차간의 마음졸임, 안타까움, 미안함, 서운함 등등의 복잡한 심사도 만만치 않았겠다 싶다. 그런 것들을 조금씩 극복해내고 더욱 아름다운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선생의 의지와 공윤의 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공윤 윤종하는 그렇게 뜻을 같이 한 지 겨우 2-3년만에 아주 가버렸다. 유배중이라 그런지 표현이 조심스럽고 은유적이다. 그 깊은 슬픔은 그래도 느껴지지만, “저버리지 말라는 그 부탁”이 무엇이었길래, ‘그 보호는 하늘이 할 것이지 내가 어찌 하겠는가’라고 했는지 궁금하다.
공윤 윤종하(公潤 尹鍾河)를 위한 제문
경오년(1810) 8월 갑오일에 죄인 정약용은 술을 갖추고, 멀리 문거(文擧, *윤규노(尹奎魯))의 입을 빌어, 윤공윤의 관에 이별을 고합니다.
삶은 뜬 것이고 죽음은 쉬는 것이니, 억만 번 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태부 가의(太傅 賈宜)가 이미 깨달았고, 나도 또한 모르는 것 아니지만,
그대 떠났다고 하니, 내 마음 어찌 이리 아픕니까?
그대가 나를 좋아함은, 묵묵히 속에만 둔 것이지만,
저 떠벌리는 자들은, 허황되기가 돼지똥 말똥과 같습니다.
기미를 알아 세속에서 벗어남은, 우리 공옹(恭翁)과 같습니다.[외증조부(外曾祖父) 공재 선생(恭齋先生)이다.]
사랑스러운 이곳 다산(茶山)은, 연못 한 굽이에,
화초 향기 그윽하고, 대나무와 소나무는 푸르름을 자랑합니다.
초가을 맑은 날, 키 작은 등잔걸이에 촛불을 밝히고,
날마다 괘(卦) 하나씩 강론(講論)하며, 나는 이야기하고 그대는 읽었습니다.
갈무리하여 가슴에 품어, 환히 뱃속에 간직했는데,
마침내 입다문 채 죽었으니, 어찌 눈을 감았을꼬.
예상(翳桑)이 궁한 것이 아니고, 등심구이가 진미는 아닙니다.
광대나 동방삭(東方朔)과는 끝내 동등한 무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를 애도하는 것이요, 그대가 고인이어서만은 아닙니다.
그대는 성심으로 사물을 구제하고, 정성껏 인(仁)을 행하여,
능히 천금(千金)을 베풀어, 한 꾸러미의 돈도 없었습니다.
난새와 봉황이 굶어 죽으니, 까마귀와 까치가 번갈아 떠듭니다.
관(棺) 안에 편부(楄柎)를 깔지도 못하고, 삼태기로 겨우 대신했습니다.
그대는 아무것도 모르겠으나, 나는 서글프고 마음 아픕니다.
저버리지 말라는 그 부탁은, 내가 끄덕일 수 없는 것입니다.
본디 그만한 사람도 못 되는데, 하물며 구덩이에 빠져 있는 상태이겠습니까.
그 보호는 하늘이 할 것이니, 내가 어찌 감히 하겠습니까.
바람에 임해 눈물을 씻으며, 속마음 털어놓습니다.
부디 흠향하소서.
祭尹公潤 [鍾河]文
維歲庚午八月甲午,累人丁鏞,爲具絮酒,遙借文擧之口,告訣于尹公潤之柩曰。
生浮死休,億變齊同。太傅旣悟,我亦匪蒙。
子之云逝,胡獨心恫?子之悅我,默然含聰。
彼哆者口,汗漫苓通。研幾拔俗,念我恭翁。【外曾祖恭齋先生】
愛玆茶山,有池一曲。花艸棻芳,竹松交綠。
新秋小霽,短檠燃燭。日講一卦,我談子讀。
卷而懷之,皎然在腹。遂噤而死,何以瞑目。
翳桑匪窮,脄𦙫匪珍。侏儒曼倩,終非等倫。
以玆悼子,非子故人。忱悃濟物,肫肫其仁。
能散千金,乃無一緡。鸞凰餓死,雅䧿交嗔。
楄柎不藉,虆梩菫揜。子所不知,我乃悽慘。
弗偝之託,我所不顉。諒匪其人,矧在坑坎?
其保維天,我則何敢?臨風雪涕,輸寫肝膽。
尙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