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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 : 2013년 1월 13일(일) / 1, 7호선 도봉산역 1번출구 (10시)
◈ 산행코스: 도봉산역-시인의집-석굴암입구-산악구조대-선인봉아래 명당자리(시산제)-도봉대피소-도봉탐방지원센터-뒤풀이장소(태정)-도봉산역-집
◈ 참석자: 19명 (세환, 정남, 종화, 양주, 창수, 형채, 원우, 재홍, 윤환, 경식, 원무, 재웅, 삼환, 전작, 문형, 영훈, 광일, 근호, 이인)
◈ 동반시 : "해" / 박두진
◈ 뒤풀이 : '오리고기'에 막걸리 / '태정' <도봉산역 만남의 광장 근처, (02) 3494-2006>
2004년 10월 10일에 첫 도봉산행을 거행하여 시작한 후, 200회를 2012년 말에 마감했다. 드디어 ‘산과 시’ 제2집을 발간하는 쾌거를 이룬 광주고 20회 등산모임인 '시산회' 회원으로서 긍지와 보람을 가졌으니 지금까지의 삶 중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개인적으로는 시산회 발기인이면서, 그동안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산행을 해온 터이지만 최근 2년간 허리와 무릎부상 등의 이유로 참석률이 저조했었는데, 몸 컨디션이 좋아져서 이번 새해 첫 등반은 꼭 참석하기로 맘을 먹고 집결지인 도봉산역에 10시에 도착했다.
대부분 산우들이 정시에 도착했고, 형채, 작, 윤환은 시산제에 사용할 떡, 과일 등 제물과 ‘산과 시’ 수정본을 싣고 등산로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하며, 졸업 후 몇 번 못봤던 이인(한의원 개업중)도 10분 쯤 후에 찬 기운을 물씬 풍기는 옷차림(트레이닝복, 운동화와 여름썬캡)으로 동네 뒷산 오르듯 눈길산행에 동참하였다. 오랜만에 본 인이는 한의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산속 토굴에서 6년간 수련을 하고 나온 뒤의 심오한 기운을 품은 도사의 풍채였다.
그런데, 산행을 시작하려는 참에 신임 조 총장의 한 말씀이 있었는데, 산행기 작성순서는 회원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하였고, “오늘은 갑무 회원이 불참하였으니 세환 자네차례네”라고 하면서 작성해 온 회원명단을 나누어 주었는데 나는 사양 한 번 못해보고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산과 시’ 1집에서 한 두차례 산행기를 써보고는 2집에는 한 편의 글도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 집필자인 김정남, 김종화, 이경식, 박형채 전임 회장들의 깊은 지식과 풍부한 산행 경험과 비교되는 글을 올리기에 부끄러운 일인지라 더욱 마음이 심란하고 무거웠다.
겨울산행치고는 참 좋은 날씨여서 우리의 시산제를 염려해 주신 도봉산 산신님의 배려인 듯하여 감사할 따름이다. 계곡엔 흰 눈과 얼음이 엉켜 다가올 봄이라도 전혀 밀리지 않을 기세로 풍광을 뽐내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많은 인파 속에 시산회원들이 삼삼오오 섞여 선두와 후미의 구분이 안되어 가끔 "선두 스톱!"을 외치며 걷다가 결국은 삼거리에서 나창수 원장을 놓치고 말았다.
질서 유지에 각별한 김정남 전 회장님은 다시 합류해서 출발 할 수 있도록 10여 분을 18명의 발을 묶어 놓고 있을 즈음 최근호 회원이 예전 군대생활을 떠올리며 ‘안진고’ 작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기러기가 무리지어 날 때 맨 선두에서 전체 무리를 일사분란하게 통솔할 지휘관의 중요성을 본받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선두에서는 삼거리 등 갈림길이 나오면 전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함께 가는 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조를 짜서 조장이 책임지고 통솔하는 제도도 나쁠 것이 없다.
이번 산행은 출발지에서 약 1.5km정도 떨어진 산악구조대 옆 편편한 명당자리까지 크게 힘들지 않은 코스이며, 순전히 시산제를 위해 일곱 차례나 올라온 길이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단 뒤로는 우리 얼굴위로 쏟아질 듯한 우람한 선인봉이 소나무가지 사이로 내려다보고 있는 성스러운 자리였다. 모두 위용이 훌륭한 선인봉을 올려보면서 선인봉의 산신령이 웃는다고 한다. 시산인들은 이제 산과 대화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 틀림 없다.
눈 덮인 너른 자리를 쓸고 제단을 만든 다음, 정성스레 준비한 시루떡, 전, 사과, 배, 대추, 북어, 홍어회무침, 생굴, 한과 등을 차리고 초와 향을 피우며 시산제를 거행하였다. 전작 회장의 시산제축문 낭독과 산행기자로서 시 낭독을 한 나는 여러 회원들의 후의로 제주역할까지 맡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동반시는 청록파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중 박두진의 시 '해'다. 새해 첫 산행에 어울리는 시다.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박형채 전임 회장이 준비한 ‘경축 제9회 시산제’ 프랫카드를 옆으로 걸게 하여 선인봉을 향해 4인 1조씩 재배를 끝으로 전작 회장과 조문형 총장이 준비한 푸짐한 음식과 막걸리로 음복하며, 천지신명께 올해의 안전한 산행과 회원들의 복을 빌며 시산제를 마쳤다. 산우들과 함께한 이 자리가 살아있는 동안 늘 행복할 것이다. 오늘뿐 아니라 300회, 500회, 또 더 계속될 수 있는 날까지......
음복 때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는 서로 권하며 우의를 더욱 다졌다. 조 총장의 며느리가 마련해 주는 홍어회무침은 며느리의 출산으로 당부간 먹지 못하게 됐으니 아쉬운 일이나 한 아이의 출산은 우리에게 더 소중한 자산이었다. 부디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한다.
하산길은 마당바위로 돌아가느냐, 더 가까운 길로 가느냐를 두고 모두 ''먹었으니 내려가자"였다. 역시 한 시라도 급히 먹으러 내려가자는 먹산회 전통은 어김 없었다. 하산길은 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묶고 천천히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였는데, 올라갈 때 만났던 흰 턱수염에 거적 같은 담요를 덮고, 낡은 섹소폰으로 선구자를 연주한 악사를 스쳐 지나며 마음 한 켠에는 미안함을 눌러 떨칠 수가 없었다.
두 시쯤 뒤풀이 장소인 참나무장작 오리구이 전문집인 '태정'에 도착하여 신입회원으로 이인 원장을 박수로 환영하였다. 이경식 산우가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유보(?)의 의견을 냈으나 웃자고 하는 얘기인 줄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인 산우는 앞으로 발목 부상에 대비해 침통을 휴대해야 할 것이다. 의사인 나 원장과 이인 한의원 원장이 동참하니 유사시에 대비하여 든든한 마음이 든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으리라.
그간 제2집 출간에 애쓴 박형채 전임회장을 감사와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큰 박수로 격려하였으며, 재경의 광주고 총동창회 등산회장으로 김정남 회장을 추대하며 축하하였다. 김정남 회장은 고사하였으나 위윤환 산우가 "세번은 고사하였으니 이번까지는 안된다"고 하니 포기하고 순순히 승락하였다. 부디 총동창회 산악회장직을 잘 이끌 것을 바란다.
신임 동창회장인 최광일 산우는 가을의 설악산행은 동창회 산행으로 할 것을 고려 중이라 했으니 환영할 일이다. 우리가 신임 동창회장은 잘 뽑았고, 퇴임하는 신원우 회장도 4년간 고생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시산회에서 동창회 총장과 회장까지 독식하고 있으니 시산회의 소임은 막중하다. 경조사에 가면 시산회원이 동창의 75%를 차지하는 것만 봐도 우리의 우의는 참 좋다.
산행 할 때 오늘의 기자 선정 문제로 골치아팠던 회장단의 고민도 미리 정함으로써 일거에 해결하였으니 조문형 총장의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왕회장이 심사숙고하여 작성한 올해의 산행지에 대하여 계획안을 보니 동과 서, 남쪽을 잘 안분하였고 무리하지 않게 높은 곳은 피하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7월말에 가는 백두산행은 좋은 계획이고 나도 가고 싶다. 이왕이면 5월의 철쭉산행도 동창회 차원에서 함께 가면 좋을 것이라는 것을 건의한다.
산행지가 소백산이면 무리가 가나 지리산 바래봉이면 동창회에서 추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 회원이 28명인데 인원이 너무 많으면 통제가 어려우니 30명으로 제한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반대의 의견도 있어 더는 거론하지 않았다. 내가 참석하니 분위기가 더 부드러워졌다는 덕담에 앞으로는 자주 참석하겠다고 했으나 건강이 회복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작이 회장이 끝인사겸 건배사를 “새해 안전한 산행,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한 잔하세”하자, 회원일동은 “그러세”하며 건배와 더불어 박수로 화답하였다. 도봉산 산신령님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 보는 가운데 눈 속에서 엄숙히 거행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난 산행은 영험한 도봉산과 산우들이 있어 넉넉하고 즐거웠다. 시산제를 훌륭하게 준비해 준 집행부에 감사한다. 시산회 만세!
2013년 1월 14일 기세환 씀.